나에게 <스카이 캐슬>은 어딘가 쿡쿡 찌르는 다큐
몸이 안 좋아져서 쉬는 날에 침대에 누워있는 날이 많아졌다. 많아진 탓에 과자를 끼고 넷플릭스를 달고 산다. 가장 많이 보는 게 스카이캐슬이다. "너 이거 핫할 때 안 봤어?"라고 묻는다면, 안 보긴. 본방 몇 분 전부터 티브이 앞에 대기 타고 있었는걸.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 볼 때마다 감상이나 집중하는 부분이 달라졌는데 스캐는 다르다. 한창 본방을 볼 때도 지인들과 언쟁을 하기도 했었는데. 내 눈은 아직도 혜나가 아닌 예서만을 따라간다.
"저 성질머리 하고는.",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 "한국사 시간에 수학 문제 푸는 왕싸가지." 등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다. 다 맞는 이야기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엄마 앞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는 성질머리가 불같다. 그런 만큼 속이 물러 터졌다. 조금이라도 정신력이 흔들리면 펑펑 울어버리거나 방안에 있는 독서실 칸 문을 걸어 잠그고 문제를 푼다. 혼자 있고 싶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다.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이것도 맞다. 그래서 공부에서 말고 사랑에서는 고수가 될 수 없다. 배웠거나 대신해줄 수 없으니 서툴 수밖에.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는 마냥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어찌할지 몰라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그 애가 다른 여자애를 좋아해 버려도 마음속으로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예서 같은 애들은 성적 말고 사랑에서는 계산적일 수가 없다. 자기 마음을 지키는 법은 스스로 배워가야 하니까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이상하게 혜나는 노력파, 예서는 편법파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예서는 누구보다도 노력파인데. 한국사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 정도로 열심히다. 누군가 성적을 1부터 100까지 만들어준다면 그것은 편법이다. 하지만 100이 200이 되고 싶을 때, 받는 건 조력이다. 100까지 닿는데 예서는 급식이든 쉬는 시간이든 공부를 한다.
시험문제를 유출한 건 김주영이다. 모르고 연습문제를 풀고 시험을 본건 예서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안타까웠다. 자기 노력이 남으로 인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 예서는 물러 터져서 편법인 것을 알고서는 절대 시험을 치를 아이가 아니다. 남 앞에서 보이는 자신만만한 모습에 비례해 두려움도 큰 아이라서.
이제야 내 이야기. TBWA KOREA 주니어보드 최종면접을 두 번이나 보았다. 작년과 올해. 당연히 작년은 불합이 떴고 올해는 감사하게도 지금의 소중한 나의 14명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면접장에서 너무 긴장되고 간절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나왔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오히려 같이 면접 본 오빠가(지금의 내 멋진 아트 선배님) 내가 초면에 입고 온 원피스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말해주며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면접에서 딱 한 장면만이 기억에 스친다. 망치에 대해 물으시려고 "너는 어떤 아이니?" 하셨다. (물론 이렇게 묻지는 않으셨고 내가 듣기엔 이렇게 들렸다.) 나를 두드리시던 물음. 그것에 울음이 터진 것.
'내가 예서 같은 게 쪽팔린 걸까. 말할까, 말까.'
아마 작년이었다면 후자였을 테고 난 또다시 솔직하지 못한 대답으로 불합격을 맞았겠지.
예서라는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내가 예서라고 말하는 건 좋아하지 않았는데. 올해 돌아보면 (아직 몇 달이 한참 남았지만) 내가 그걸 좋아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아주 견고히. 그래서 아마 스캐를 몇 번이고 다시 봐도 더더욱 좋아질 것 같다, 예서가. 이별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한 드라마여서 퉁퉁 부은 눈으로 1화를 맞이할 때가 생각이 난다. 부은 눈으로 또 울었다. 너무 닮아서. 저 행동들을 내 집, 내 방에서 내가 똑같이 했었으니까. 대사마저 같았다. 인정하기는 더더욱 싫었지만.
그렇게 드라마의 캐릭터지만 애정을 남달리 가졌다. 나중에는 우주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너의 서툰 모습까지 그 사람의 눈에 예쁘게 비치기를, 성적만큼 중요한 일과 사람들이 생기길. 목표에 대한 야망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홀로 마음을 지키는 법도 키워나가길. 어찌 보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
이럴 땐 아픈 게 좋은 것 같다. 별생각을 다해, 였을 걸 이런 별스러운 생각도 다 하게로 만든다. 며칠 전 일로 우울해서 잠만 좇는 사람이 오늘은 스캐로 다행히 예전과 같은 시각에 잠든다. 이 별생각을 전부 다 읽어주는 사람이 몇 있을까 싶지만 어딘가 생각을 줄기차게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동안에 마음이 낫는다. 고맙습니다.
- 2019.08.01 작년 어느 여름날 중
가장 마음이 힘들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