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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Aug 07. 2020

마시멜로, 먹어버리면 어때!

#참지 못하는 아이


마시멜로 이야기.
 
아이의 만족 지연 능력을 알아보기 위하여 사탕이나 젤리를 두고 나가는, 자칫 단순해 보이는  실험은  아이의 이후 사회생활과 학업의 결과까지 시사한다. 실험 카메라를 보며 엄마들은 은근한 기대를 품는다. 자신의 아이가 참지 못해 먹어치우지 말기를. 끝끝내 달콤함을 좀 더 일찍 맛본 아이의 엄마는 탄식을 뱉는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기엔 실험은 참아내는 아이에게만 관대한 평가를 내리기 때문에.
 
실험에 따르면 나는 완벽하게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린 <실패한 아이>에 속한다. 약 17년 전,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나눠준 과일껌을 단숨에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먹어도 좋다고 할 때까지 참는 것이 조건이었다. 아마 선생님은 우리에게 마시멜로우 대신 껌을 준 모양이다. 오물거리는 볼을 보시곤 금방 내 쪽으로 오셨다. 그리고   혼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나보다 몇 분, 아니 몇 초더라도 오래 참은 친구에 비해 덜 우수하게 자란 걸까. 우리 엄마도 나 몰래 카메라를 비춘다면 탄식했을까. 하루 중 군것질을 꼭 끼워둔다. 달콤한 것을 손이 닿는 곳이라면 언제든 집을 수 있게. 그런데도 달달과 폭신 폭신의 대명사, 마시멜로우가 제목으로 들어간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읽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하다. 그 폭신함 속에 감춰진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명확한 진리’로 자리 잡혔기 때문이다. 아무도 실험군에 나타난 예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이 어떤 특수성을 가졌는지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와 남을 구별해주는 나다움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참을  없는 사람.”이라는 .



박도현다움, 그 첫 번째 _ 엄마가 내 산만함을 사랑하기까지


"궁금해하지 마!”
 
내가 자라면서 들었던 가장 상처됐던 말이다. 막말로 쌍욕도 아니고 거친 면도 없다. 하지만 내겐 사포 같은 말이다. 들으면 따끔따끔하고 쓰리다. 한 달에 한번  유치원에서 집으로 봉투가 왔다. 가정통신문 같은 것이었는데 그게 도착하는 날엔 엄청 맞았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 수업시간에 방해가 됩니다. 가정에서 지도 부탁드립니다.”  
 
고작 일곱 살이 ‘방해’라는 말을 감당하기엔 너무 아팠다. 뜻도 모르고 선생님이 쓴 문장에 들어있노라면 맞았으니. 나는 다른 애들보다 조금 유별났다. 다 같이 노래 부르는 시간에 밖에서 모래를 움켰다. 학습지 빈칸에 답 대신 그림을 잔뜩 그려 넣는가 하면, 잠들기 전 혼잣말도 했다. 그럴 때마다 유치원 선생님은 성을 냈고 색연필로 빨간 비가 내렸고 엄마는 걱정했다. 아무도 내가 왜 그런지 관심이 없었다. 선생님의 말보다 모래를 파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했다. 덧셈을 해서 10이 되는 것보다 10만큼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다. 일기를 손 대신 입으로 쓰는 게 즐거웠다. 그랬을 뿐인데. 모두 나를 이상한 아이로 보았다.

내게 주의력결핍 (ADHD)이 있다고 했고 방해꾼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까지도. 통신문을 구겨 던지며 내게 물었다. “다른 애들은 앉아서 잘하는데 넌 도대체 왜 그래? 왜 그러는데?” 하고.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 돌아온 사포 같은 말, 아까 그것이다.
 
하지만 늘 들어먹지 않던 엄마의 말. 오히려 들어먹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곧이곧대로 눌러왔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발상을 사랑하고 낙서로 기록하고 아직도 과자를 돌아다니며 먹는. 그런 내가 갑갑하고 폭력적인 유치원 교실에서 벗어나 만난 공간은 미대였다. 디자인과 전공 수업은, 특히나 우리 학교는 학생에게 좀 많이 열려있다. 열려있다는 표현도 웃기다. 학교가 학생에게 열려있는 건 당연한 건데. 그럼에도 나의 학교생활에 대해 듣던 이 대부분은 ‘와, 부럽다.’ 한다.



"강의시간에 삼겹살만 구워 먹지 않으면 돼.”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다면 나가서 생각해도 좋아요.”
 
“바람 쐬고 와~ 더 좋은 생각이 날 거야.”
 
우리 과에서 그리 특별하게 들릴 것 없는 교수님들의 말이다. 물론 제한 조건이 ‘우리에게만’ 일 수 있다. 존경하는 어떤 분은 ‘거기 특수학교래요?’ 하셨다. 특수하긴 한 것 같다. 나 같이 유별난 아이를 4년 동안 어떻게든 길러낸 것을 보면. 그런 동시에 ‘나와 꼭 맞는’ 곳이었다. 궁금한 것을 마구 늘어놓아도, 답을 찾으려 문을 열고 나가도, 혹은 들어오지 않아도. 유치원 교실처럼 나를 내몰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니. 현재는 졸업을 했으나 (코로나 19로 학위 수여식이 미뤄졌지만) 대학 강의실은 언제 들어서도 ‘존중’ 받는 느낌일 것이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내가 어떤 빛을 낼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작년 9월, 약 500명 정도의 청중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막학년에 TBWA KOREA 주니어보드를 하면서 서게 된 커다란 무대. <망치> 스피치는 참지 못하는 아이가 하는 말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듣게 했다. 그리고 무대 크기만큼 용기도 커야 했다. 대학생의 몸으로 유치원생 기억을 들춘다는 건 쉽지 않았다. 거듭 되는 연습에도 눈물은 뺨을 타고 흘렀다. 나 다운 모습 중 인정하기 가장 어려웠고 대중 앞에서 꺼내기란 더더욱 어려웠으니.


시원하게 들켜버린 이상, 세상 어딘가 있을 <또 다른 어린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온전히 특별한 너 다움이니까 울지 않아도 된다고.

작년 TBWA KOREA 주니어보드 <망치> 스피치



 

박도현다움, 그 두 번째 _ 사랑한다면 사랑해!
 
보통의 여자아이라면 부끄러워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지갑 사정이 괜찮다면 당길 때마다 곧장 초밥 집으로 향한다. 5일 내내 먹고 싶다면 그 주는 주 5회가 되는 것이고 딱 이틀만 그렇다면 주 2회가 된다. 하지만 전날에 참치 뱃살을 입안 가득 넣고 씹은 탓에 단골 일식집을 그냥 지나쳐야 하는 오늘도 있다. 좋아하는 것에 아끼지 않는 씀씀이는 장차 벌어갈 액수를 더욱 늘린다. 이것이 부끄러울 이야기? 초밥이 어디가 어때서! 할지 모르기에 덧붙이자면 사람으로 바꾸면 된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참을 줄 모른다. 애정에 형태가 있다면 밑동을 가려버린다거나 뿌옇게 만들어서 알아보지 못하게, 궁금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를 ‘밀당’이라고 부른다. 소질이 전혀 없다. 상대가 가려진 부분을 살피거나 상상할 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위 ‘속이 훤히 보여서 재미없는 여자.’가 될 확률이 높은. 어느 정도냐면 내 마음이 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 A부터 Z까지 차근차근 알린다. 정말 한심한 도슨트가 따로 없다. 한 번은 짝사랑이 마음대로 잘 굴러가지 않자 친구들을 불러내 술을 먹었다. 나의 남자 사람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야 답장을 무슨 바로 보내고 그러냐? 나중에 보내. 좀 도도하게 굴어라.” 그리곤 그게 매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부분이라며 비수도 꽂았다.


처음엔 '좋은 걸 좋다고 행동으로 말하는 건데 왜?' 혹은 '기쁜 걸 애써 감추는 매력도 있어?’ 했다. 그 사람이 몇 분만에 나에게 답장을 했는지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나에게 답장을 한 사실만이 보였던 거다. 일단 그 옹졸한 뺄셈부터 귀찮다. 상대의 답장 시각에서 바로 전 나의 것을 빼는. 구하고 나면 기분도 별로다. 괜히 친구들 말대로 구해진 숫자만큼 나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난 마음을 참지 못하는데. 당장 지금이어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그렇게 내가 좋냐?’ 물으면 ‘어! 네가 너무너무 좋아.’ 할 테다. 그리곤 네가 어떤 구석으로 나의 애정을 이리도 차오르게 했는지까지 상세히 말해줄 것이다. 언제라도 나를 괴롭힐 ‘만약’이 붙은 후회가 찾아오지 못하게.


비록 마음을 들켜 받을 상처는 미리 각오해야 하더라도. 마음껏 전하지 못한 후회는 더 괴롭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밀당에 아무런 재능이 없는 건 나를 위한 현명한 전략일지 모른다. 
 




박도현다움, 그 세 번째 _ 방콕 시티 얼룩말
 
3학년 수련회 전날이었다. 원래 두근거림에 잠을 설쳐야 하는데 우리 집은 울음바다였다. 자신만의 확고한 패션을 고집할 나이, 열 살. 현재 반 오십 눈으로는 겨우 열 살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수많은 쇼핑몰을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휘젓고 다닐 수 없던 시절. 당연 선택지는 엄마가 골라준 것들이다. 백화점에서 대체 몇 번의 “돌아보고 올게요.”가 오갔는지 죄다 마음에 들었다. 그중 얼룩무늬 하얀 상의를 골랐다. 크고 작은 브로치와 현란한 체인. 이걸 수련회 둘째 날 입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방콕 시티 (가본 적은 없지만) 한 마리의 얼룩말이 되겠노라 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거실로 나오는데 엄마에게 잔뜩 먹구름이 껴있었다. 아까 걸려온 전화가 문제였던 것일까. 열 살의 추측이 날로 뾰족해지는 무렵이었다.
 
“채연이가 똑같은 걸 샀는데 너도 가져간다니까 울고 불고 난리래. 걔가 먼저 샀으니 우리가 양보해주자."
 
작은 머리를 열심히 굴려 어렵게 고른 한 벌. 나의 얼룩말이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양보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 ‘흥, 걔 보고 바꾸라지. 내가 입을 거야. 똑같은 건 싫어!' 여기 <곱게만 자란>의 또 다른 대표주자도 울고 불고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날만큼은 오냐 오냐가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엔 엄마는 늘 ‘네가 참아야 해.’ 싸우기라도 하면, ‘네가 먼저 사과해.’ 했다. (물론 절대 들어먹지 않았지만) 결국 거친 숨을 몰아 쉬고 벌겋게 부은 눈으로 소파에 앉아 다른 옷을 골랐다. 그건 자존심 대결에서 진 것도 아니고 양보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관광버스에 두 마리의 얼룩말이 나란히 앉게 될게 뻔했다. 그게 너무도 싫었다.   


이 수련회 에피소드, 이름하야 <얼룩말 사건>은 15년 후인 올해까지 이어온다. 엄마가 나를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할 찰나, 툭하면 나왔을뿐더러 '애증의 주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여태 그런 얼룩말로 살아가고 있다.


전공 강의실에서 동기들이 ‘이거 네 작업일 줄 알았어.’ 할 때 혹은 교수님께서 한눈에 내 이름을 부르실 때. 나는 내가 ‘하나뿐인 얼룩말’이어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글에 실은 그림들도 직접 그린 것들인데 사람들은 ‘너 다워서 좋아.’ 해준다. 가끔 이런 칭찬에 들떠 내가 전공에 딱 들어맞는 인재가 아닐까 자만이 잔뜩 부풀린 해석도 하곤 한다.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하여튼 간에 얼룩말 무리 중 얼룩말을 고집하는 것,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 도저히 참지 못해 버리는 것. 모두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인 이름하여 ‘YOLO’ (욜로) 트렌드가 무려 3년 전부터 등장했다. 현재는 꾸역꾸역 참아야 할 때, 미래를 위한 투자만이 현명하다고 여기던 젊은 세대가 왜 걸어왔던 방향과 반대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이는 사실 치열하고도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지친 그들이 내린 최종의 결단이기도 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래 때문에 지금 당장을 불행하게 매달릴 수는 없다는 의지. 참지 않아도 돼! 하는 부르짖음. 나에겐 멋짐 그 자체이기도 한.
 
자, 마시멜로우를 먼저 먹어버리는 아이. 아직 별로로 느껴지는가? 그래도 참을성이 없기에 인내하는 아이들보다 못한 삶을 산다고 절대 단정 짓지 말자. 그 아이들은 현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의 달콤함을 좀 더 소중히 여길뿐이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이 과일껌을 놓아준다면 ‘단숨에 먹어치울’ 것이다. 그것이 나를 나답게 하는 아주 멋진 실수이기 때문에. 그리곤 인내만을 옳은 길로 바라보는 이에게 외칠 것이다.
 
“ 마시멜로, 좀 먹어버리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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