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불명성의 매력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빌런 '안톤 쉬거'의 작명 유래가 기억에 남는다.
코엔 형제는 이 빌런의 이름에서 국적을 유추할 수 없길 바랐고, '쉬거(Chiguhr)'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성을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작중 병원씬에서의 르웰린 모스와 카슨 웰스의 대화 장면에서 엿볼 수 있는데, 카슨이 안톤 쉬거라는 이름을 알려주자 르웰린은 "Sugar?"하고 반문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빌런으로 꼽히는 '안톤 쉬거'의 캐릭터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도 많다. 어찌됐든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캐릭터 구조 따위는 완전히 무시된 채 오로지 본능과 운명에 반응하는 쉬거의 예측불허 방향성, 그리고 이로부터 오는 께름칙한 매력은 그의 국적불명 성이 귀결지어준다.
나는 코엔 형제의 작명 센스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이에서 착안하여 <다큐멘터리: 더 시빌리언즈>에 '다국적(multi-national)'을 초월하여 '국적불명(anti-national)', '출처불명', 즉 근원이 어딘지조차 모를 제반의 장치들을 마련하고자 했다.
크게 보면 작중 배경은 홍콩이다. 홍콩의 모텔방에서 촬영을 한다는 설정, 그리고 외계인 고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제작사 또한 홍콩의 프로덕션이라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극을 비중있게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은 HKU 출신의 홍콩계 아시아인이고, '쑤(Xu)'라는 중국식 작명을 통해 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체리(Cherry)'이다. 영미식 작명법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에서도 '체리'라는 이름은 (흔하지는 않겠지만)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국적불명의 장치들은 시작된다. 스토리를 중추적으로 전달하는 주인공은 '데이비드 마츠이(David Matsui)'이다. '마츠이'는 쉽게 일본계임을 알 수 있는 성이다. 하지만 이 이름의 유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오션스 트웰브(Ocean's Twelve)>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로비 콜트레인(해리포터 시리즈의 해그리드 역으로 유명한 배우이다)의 작중 예명에서 따왔다. 이 작품에서 마츠이는 오션 일당의 정보원으로 등장하여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대다 대충 퇴장하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 심지어 그의 예명이 왜 마츠이였는지도 매우 궁금했다. 아무튼 나에게 마츠이라는 성은 알쏭달쏭 알 수 없는 캐릭터의 느낌이 강했고, 이러한 느낌을 시빌리언즈 주인공에게 부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름은 '데이비드'라고 지어 한껏 국적을 파괴시켜버렸다. 다윗과 골리앗(David and Goliath)의 다윗에서 착안하긴 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이렇게 국적불명 아시안들이 등장했다면, 사이드킥으로 볼 수 있는 '닥터 타푸키(Dr. Tapuchi)'는 어떠한가. 사실 타푸키 박사라는 캐릭터를 개발하는 것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시빌리언'이라는 외계인의 존재를 렙틸리언 도시괴담으로부터 상당 부분 끌어다 쓰다보니 유대인과 세계유태자본론을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유대인과 헐리우드',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깊은 주제를 다루고 싶진 않고, 딱 겉핥기식 음모론 정도로만 다루고 싶었다. "역으로 자신을 선택받지 못한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미친 박사가 있으면 어떨까?" 점점 타푸키 박사에 대한 살을 붙여나갔다. '타푸키(Tapuchi)'는 유대계 성이지만, '로젠버그(Rosenburg)'나 '도노위츠(Donowitz)'처럼 대놓고 유대계스럽지 않다는 인상이 강하다. 심지어 타푸키 박사는 '아메리칸 사모아 의학대학' 출신이다. 아, 그렇다. <브레이킹 배드>의 광대같은 변호사 '사울 굿맨(Saul Goodman)'의 출신 대학과 같다. 사실 사울 굿맨과 같은 작품의 안티테제를 개발해내고 싶었던 나는 결국 오마주를 해버렸다. 사울 굿맨의 본명은 맥길(McGill), 아일랜드계이지만 유대계 이름(Goodman)을 사용하며, 그는 통신대학 출신 변호사이다. 그렇게 타푸키 박사는 탄생했다. 그에 대한 스토리는 따로 글을 적어 정리해놓을 예정이다.
자, 이정도 배경과 캐릭터 설정 뿐만 해도 이미 국적불명에 대한 의도는 충분히 드러난다.
이제는 영화적 구성 요소들을 보자. 작품의 형식은 다큐멘터리, 장르는 페이크 다큐이다. 내가 가장 영향을 받기도 했고, 궁극적으로 다뤄보고자하는 것이 영미식 다큐멘터리의 형식과 유사하다. 리키 저베이스의 <Life's Too Short>라든지, 애덤 맥케이의 <The Big Short>라든지. 그리고 전반적인 언어는 영어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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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이 써놓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의 의도는 관객이 '근원과 방향성'을 파악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목적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자면 이렇다.
첫번째, 작품이 원래 그런 것이다!
<다큐멘터리: 더 시빌리언즈>는 궁극적으로 '허황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방향성에 대한 고찰'에 대해 다룬다. 이 세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빌리언, 즉 외계인으로부터 구축되었고, 그들이 지구를 침략하기위해 갖춰놓은 시스템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맹신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완벽하다고까지 착각하는 이 시스템이 사실은 허황된 'fugazi'였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할까. 관객들에게 묻고 싶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말이다. 나는 정체성을 '어디에서 왔고,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하는지'라는 '방향성'으로 정의한다. 이 작품의 근원은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져있지 않다는 온갖 장치를 통해 역설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두번째, 주제의식에 더 집중하자.
역설적으로 캐릭터나 배경에 대한 몰입을 방해함으로서, 더욱 주제의식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연극의 '소격효과'와 비슷한 맥락이다.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허구이고,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 영화일 뿐이다. 리얼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인물들은 검증된 사람들이고, 그렇기에 시청자는 진위여부와 발언 근거에 대해 큰 의심을 갖지 않는다. 반대로 <다큐멘터리: 더 시빌리언즈>의 출신조차 불명한 출연자들의 발언은 끊임없이 가치판단이 필요하다. 어딘가 어색하고, 나사가 빠진 듯한 인물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비판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별 거 없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사실은 이것 저것 그럴듯한 이유들을 갖다붙여놨지만, 이러한 독특하고 키치한 요소들이 니치 마케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나의 믿음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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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더 시빌리언즈>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을 때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외계인이나 렙틸리언과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재밌게 다룰 수 있을까, 하고 시작했었는데 기획하다보니 점점 생각할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날아다니는 이 휘발성 강한 생각들을 기록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기에 하나씩 정리를 해볼까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여전히 많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았다.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도 많은 작품 같다.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