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Jun 26. 2024

이유 없는 다정함


서울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울 출장을 다녀올 때면 택시를 타고 역과 집을 이동하곤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냥 그날은 버스가 타고 싶어서였을까. 역사 문을 열고 나오자 부르릉 엔진 소리를 내며 손님을 기다리는 빨간색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본 적이 없었기에 간 버스가 집 쪽으로 가는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려는 순간, 전광판에서 1분 후 버스가 출발한다는 알림이 다. 혹시 버스를 놓칠까 핸드폰으로 검색 못한 채 마지막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님께 급히 물다.

"기사님, 북구 가는 버스 맞나요?"

폭넓은 질문에 기사님 잠시 생각하시더니 대답하셨다.

"네? 음... 북구요? 가기는 가죠."

좀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집 쪽으로 간다는 이야기에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좌석버스에 놓여있는 자줏빛의 두툼한 가죽시트 의자들이 사이좋게 배열되어 있었다. 차냄새와 방향제 냄새를 뒤섞은 특유의 향이 코 안으로 스며들었다. 어서 앉으라는 기사님 외침에 급히 주위를 둘러보다 중간쯤 되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타는 버스라 낯선 감정 느껴졌지만, 곧 익숙한 느낌 편안한 기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큼직한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5월의 들판 풍경은 초록 초록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른 해졌다. 주말 오후시간이었지만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예상보다 빨리 에 도착할 것 같았다. 마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버스 안에는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일행 없이 타고 있었고, 음악 소리도 대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버스 공기에 엔진소리가 얹어있는 조용한 듯 그렇지 않은 듯한 버스 안 풍경이 한참을 이어졌다.


렇게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버스는 지치지도 않고 중간중간 정류장에서 섰다가 버스 안에 탔던 승객들을 내려놓고 다시 자신의 길을 달렸다. 기차역에서 집 바로 앞에 서는 버스가 없었기에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방법 혹은 집 앞에 서는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자의 방법이 오늘의 계획이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내리면 집 가까이에서 내릴 수 있을지 검색하기 위해 타고 있는 버스 번호를 찾았다. 하지만 버스 안에는 버스 노선도만 차분히 붙어 있을 뿐 그 어디에도 버스 번호가 적혀있지 않았다. 급하게 버스를 타느라 머릿속에도 버스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일어서서 기사님께 이 버스가 몇 번 버스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위험하니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하는 차분한 안내 방송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역에서 같이 탔던 10명 남짓한 승객은 모두 내린 상태였다. 버스 번호를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싶어 창밖을 내다보니 바깥 풍경이 도시 풍경에서 숲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길은 모르지만 집으로 가는 방향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네이버 지도 현재 버스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급히 검색을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버스는 이미 집 쪽을 지나 바다가 있는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집 동쪽에는 예쁜 바다가 있다). 집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버스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버스는 바닷가가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달려가고 있었다. 설마 다음 정류장이 바닷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작은 정류장에서 멈춰 섰다. 여기서라도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을 누르고 이름 모르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기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기사님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 사람은 도대체 왜 여기서 내릴까라는 표정이었다)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여기가 어디냐고 기사님께 묻고 싶었지만 바빠 보이는 기사님께 어떤 말도 묻지 못한 채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먼지를 흩날리면 다음 정류장을 향해 도망치듯 달려갔다.


버스에서 내린 정류장은 작은 바닷가 마을 근처인 듯싶었다. 정류장 주변에 사람이 사는 집은 몇 채 없었고,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 뒤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해는 이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는 바닷가 풍경은 영롱해 보였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으니 점점 당황스럽고 스산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도도와 남편에게 영상전화가 왔다.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래도 버스를 잘못 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멀미가 있는 도도를 태우고 이곳까지 올 수 없는 남편은 어서 택시를 불러야겠다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 타고 가면 전혀 문제가 없다며 도도와 남편을 안심을 시킨 후 곧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카카오 앱에 내 위치를 출발지로 설정한 후 호출을 하였다. 그런데 근처에 택시가 없는지(바닷가와 조금 떨어져 있는 이곳으로 택시가 지나갈 리 없었다) 카카오 앱은 주위에 택시가 없자 점점 거리를 넓혀가며 택시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10여분을 기다리다 이제 어떡하냐는 생각이 들 찰나, 택시 하나가 잡혔다. 앱에서는 택시가 멀리 있어 여기까지 오는데 10분 정도 대기가 필요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붉게 녹슨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있는 정류장 옆에 의자 용도인지 그냥 존재하는 바위인지 알 수 없는 바위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허리 정도의 높이에 회색 빛을 띠고 있는 위가 평평한 모양의 바위였다. 택시를 기다리다 지친 나는 바위 위에 앉아 택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바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도로 옆으로 울창한 숲길이 펼쳐져 있었고, 바닷가가 보이는 쪽에는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하지만 마을은 소나무 숲 너머에 멀리 있었기에 앉아 있는 곳에서는 처연한 새소리와 바닷가에서 불어내는 윙윙 거리는 바람 소리만 가득했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 데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더욱 짙어져 주위 공기를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외딴곳에 홀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과 싸늘한 기운이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아이오닉 5 택시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숲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혹시나 택시가 숲길에 서 있는 나를 못 보고 갈까 싶어 세차게 손을 흔들어 댔다. 택시가 내 앞으로 끼익 소를 내면서 멈춰 섰다. 택시 안에서는 방금 서있던 숲 속을 가득 채우던 풀내음이 아닌 새 차 냄새가 풍겨왔다. 푹신한 의자가 나를 반겼다. 친절한 기사님은 어서 오시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가운 나머지 나는 평소보다 더 기쁜 목소리로 힘차게 인사를 하며 택시에 올랐다.


기사님이 백미러로 나를 흘끔 보시더니 바닷가에 놀러 갔다 오는 길인지 조심스레 물으셨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해지는 바닷가 근처도 아닌 바닷가로 가는 숲길에서 택시를 부르는 것이 이상해서였을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싶어 고민스러웠다. 버스를 잘못 타서 바닷가로 왔다는 이야기를 하려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버스를 탔는데 정류장을 놓쳐서 집에서 떨어진 바닷가로 오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사님께서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웃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사님은 웃지 않으시며 말을 이어갔다.


"손님, 괜찮아요. 많이들 그러세요. 어떤 분은요. 승용차만 타고 다니시다가 어느 날 버스가 타고 싶으셔서 버스를 탔는데요. 부산까지 가셨다가 밤에 부산에서 콜 하신 손님도 계셨어요. 그에 비하면 손님은 그나마 다행인 경우예요. 손님은 아까 계셨던 곳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으시잖아요."

기사님의 위로에 버스를 탈 때 번호라도 확인하고 탈 것을 너무 급하게 버스에 오른 스스로 책망하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기사님, 그런데 여기에는 사람도 차도 없던데 어떻게 콜을 받고 오신 거예요?" 궁금했던 내가 물었다.

"그게, 사실 제가 바닷가에 놀러 온 외국인 친구를 방금 태워다 주고 시내로 나가려는데 손님한테 콜이 왔어요. 손님한테 콜을 받았을 때 제가 손님이 계셨던 곳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손님이 계시는 곳은 길이 좁고 어두워서 바닷가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택시나 승용차도 잘 안지나 다니는 길이예요. 저쪽으로 가면 더 빠르고 좋은 길이 있어서 모두 저쪽 길로 빠져서 시내로 나 가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사람이 이 시간에 있을 리가 없는데 콜이 계속 뜨더라고요. 혹시나 싶어서 왔어요.

운전을 하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어요. 인적이 드문 곳에 밤 시간이나 새벽에 뜬금없이 콜이 뜰 때 말이에요. 그때는 혹시 위급상황인가 싶어서 멀리서 콜이 와도 갈 때가 있어요. 물론 그렇게 가면 남는 게 없어요. 하하하. 그래도 가야죠. 혹시 모르니까요."

기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고마움이 몰려왔다. 기사님의 고운 마음이 아니었다면 오늘 택시를 타지 못하고, 어두운 숲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 것이다.


"기사님, 참 마음씨가 좋으신 분이시네요. 기사님 덕분에 저도 그렇고 다른 손님들이 편집에 갈 수 있었네요."

내 말을 건네자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에이, 아니에요. 손님, 세상 삭막해졌다고 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작게나마 마음 쓰 살려하고요.  그게 그렇게 큰일도 아니고요.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죠. 모든 순간 자로 잰 듯 이익만 따지고 살면 좋지만 세상은 그렇게 살아지나요?  또 그런 마음씀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고 그렇게 사는 게 세상 아닌가 해요."

기사님의 말을 들으며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스스로에 대한 완전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 세계에는 좋지 않은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며칠 전 아이와 함께 바닷가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도 그랬다.




5월의 화창한 오후였다. 시계는 4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도도와 나는 놀이터에 나가 친구들과 놀 것인지 아니면 지난주부터 가기로 계획한 바다에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고민하고 있었다기보다는 도도가 심각히 고민 중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도도는 아주 큰 결단을 내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 바다에 가요!"

도도의 이야기를 듣고 시계를 보니 이미 시계는 4시 15분을 향하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바다까지 자동차로 약 30분 정도 걸렸다. 계산을 해보니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바닷가에서 내리면 오후 5시. 바다에 도착해서 약 1시간 30분 정도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도에게 지금 가면 조금밖에 놀 수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도도는 여전히 굳힌 마음을 펴지 않았다. 모래사장에 가서 가지고 놀 덤프트럭과 굴착기 등을 챙기고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짐을 들고 도도의 손을 잡고 택시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강동 바닷가로 가주세요."  

기사님은 알겠다고 말씀하셨고, 택시는 바닷가를 향해 출발했다. 기사님은 백미러로 흘끔 도도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친정 가시나요?"

아마 좀 늦은 시간에 아이와 함께 바닷가로 향하는 것을 보시고 의아하셔서 말씀하신 듯싶었다. 나는 아이가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급히 짐을 챙겨서 간다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은 지금이 좋은 때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그렇게 택시는 약 20분 정도 도로를 달렸다. 평소 도도에게 멀미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멀미가 사라진 터라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한참 조용해졌던 도도가 말했다.

"엄마, 언제 도착해요?"

이제 10분이면 간다고 도도를 다독였다. 기사님도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가능한 한 빨리 가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웩, 웩"

내 품에 안겨 있던 도도가 토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시트에 묻을까 싶어 도도가 쏟아내는 토를 두 손으로 받아냈다. 그렇게 도도는 두 번 정도 토를 했고, 내 손에는 도도가 뱉은 토로 가득 찼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기... 사 님, 아이가 토를 해서요. 잠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뒤에서 일어난 긴급한 상황을 모르셨던 기사님이 뒤를 돌아보시고는 그제야 아이가 토한 사실을 알아차리셨다. 기사님은 곧바로 옆길에 차를 천천히 세우셨다.  기사님이 우리가 타고 있는 쪽으로 오셔서 차 문을 열었다.

"손님, 어서 내리셔요."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기사님, 지금 제 손안에 토가 가득해서 내리기가 힘들어요." 당황한 내가 말했다.

"그럼, 내가 아이 발을 잡을 테니 천천히 내립시다." 기사님이 말씀하시며 도도의 두 발을 잡았다. 내 두 손은 도도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어진 상태였기에 기사님과 발맞춰서 도도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아가야, 괜찮니? 멀미하는구나. 괜찮 괜찮아."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기사님의 도움으로 차밖에 도도를 내려놓고 손에 묻은 토를 털어 냈다. 기사님이 닦으라고 주신 물티슈로 손을 닦고 도도 티셔츠에 잔뜩 묻은 토사물도 닦아 냈다. 토사물이 잔뜩 묻어 있 윗도리를 벗기고 임시로 가져온 바람막이 점퍼를 도도에게 입혔다.


"기사님, 죄송해요. 괜히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나는 너무 죄송해서 기사님께 연신 사과를 했다.

"에이, 아니에요. 죄송하긴요. 아기가 일 번이지요. 애가 이제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 기사님은 별거 아니라며 말씀하시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기사님 덕분에 뒷수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님은 혹시라도 도도가 또 놀랄까 싶으셨는지 백미러를 계속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아주 천천히 갈 거니까 괜찮아. 아가야. 이제 5분만 가면 된다."

도도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사님은 도도를 배려해 천천히 바닷가로 택시를 몰았다. 활짝 열린 네 개의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무더워진 6월이 찾아왔다. 7월에서 8월에나 등장하던 동남아 무더위가 몇백 년 만에 빠르게 우리나라를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손부채를 휘두르며 푸른 바다 표지만으로 기분이 시원해지는 김연수 작가님의 책 너무나 많은 여름을 펼쳤다. 책을 읽다 아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비록 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지만 제 뒤에 오는 사람들은 지금 쓰러져 울고 있는 땅 아래에 자신이 모르는 가능성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 세계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말입니다.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 中">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유 없는 다정 존재한다. 작가님은 글쓰기라는 창작활동에 빚대 표현했지만 작가님이 던져준 문구를 읽으며 우리가 사는 삶 속에 존재하는 이유 없는 다정에 대해 떠올렸다. 누구나 박수갈채를 보내는 선행에서부터 삶 속에서 발견되는 사소배려까지 우리가 사는 삶 속에는 이유 없는 다정히 존재한다. 때로는 우리 역시 이유 없는 다정을 건네는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육아의 세계에 발을 내딛기 전에는 타인에 대한 다정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오롯이 나 하나 잘 살아가면 된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육아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내 힘만으로는 버거울 때를 종종 마주했다. 아이와 집안에 있을 때에 그럭저럭 내 힘으로 버텨냈지만 아이와 세상 밖으로 나가면서는 누군가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초면인 사람들이 나와 아이에게 수없이 건네주었던 이유 없는 다정함을 기억한다.


아이를 안고 퇴근길 손님으로 가득 찬 버스를 탈수 밖에 없었던 어떤 날, 버스에 올라타자 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아이와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이리 와서 앉으라며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던 날을 기억한다. 우리는 염려하는 마음을 가 누군가가 건이유 없는 다정함을 선물하기도 선물 받기도 한다. 그런 이유 없는 다정함은 당시 처음 엄마 역할을 맡아내느라 전전긍긍하며, 어린아이로 인해 타인에게 혹여나 불편함을 줄까 위축된 나에게 조용히 '괜찮아요. 아이들은 원래 그래요. 잘하고 있답니다.'라는 따뜻한 다독임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섬세한 배려로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을, 하루하루를 웃으며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게 이유 없는 다정함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니 숨겨져 있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던 따뜻한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 내고 그 마음은 또다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간다. 우리 누구에게나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얼마든지 그 세계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 만으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