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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Oct 14. 2024

섬진강 둘레길

섬진강이 처음 내 마음에 들어왔던 때는 정채봉 작가님의 작품 '그대 뒷모습'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였다.

1997년 2판 13쇄로 발행된 책이 지금도 내게 있다. 이 책 65페이지부터 시작되는 2장에는 '스무 살 어머니'라는 큰 제목에 11개의 글이 실려있다.

정채봉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백운산과 광양, 해솔이 타는 냄새로 기억하는 어머니 이 문장들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그때부터 가보지도 않은 섬진강을 그리워했다.

다른 이들도 그런지 궁금한데 나는 유독 좋아하는 글의 배경이 되는 지역을 가보고 싶은 갈망이 컸다. 내가 첫 번째로 그 갈망을 느꼈던 책은 신경숙 소설가님의 초반작품 '풍금이 있던 자리'였고 두 번째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정채봉 작가님의 유년기의 무대가 된 광양이다.


섬진강은 전북 남동부와 전남 북동부를 흐르는 강이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과 함께 대한민국 5 대강에 포함된다. 길이 212.3 km. 유역면적 4,896.5 km.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에서 발원하여 진안군 백운면(白雲面)과 마령면(馬靈面) 등에 충적지를 만들고, 임실군 운암면(雲岩面)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곡성읍 북쪽에서 남원시를 지나 흘러드는 요천과 합류한 후 남동으로 흐르다가 압록 근처에서 보성강과 합류한다. 그 이후 지리산 남부의 협곡을 지나 경남 ·전남의 도계(道界)를 이루면서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들어 간다. 대체로 강너비가 좁고 강바닥의 암반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항해하는 데는 불편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섬진강 [蟾津江]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그 이후로 구례지역의 여름 섬진강을 가보게 되었지만 가뭄이 심했던 그 해 섬진강물은 바닥을 겨우 적시고 있었다. 글을 읽으며 만나고 싶었던 강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가뭄에 비틀어진 섬진강이 안타까웠다. 내 마음속 섬진강은 그렇게 오랜 시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남편을 보낸 4년 전 가을 오래 잠든 섬진강이 불쑥 떠올랐다. 섬진강을 검색했다. 섬진강둘레길(마천목장군길)이 눈에 들어왔다.


마천목 장군길은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압록까지 3개 구간 15.5km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시작하여 굽이굽이 오솔길을 따라가는 침곡역까지 1구간, 살랑살랑 강바람 맞으며 걷는 가정역까지 2구간과 오순도순 기찻길 벗 삼아 걷는 3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마천목 장군길에서는 군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화장실 이용이 편리하며 곡성의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은어의 거리가 있다.
마천목장군길은 조선개국과 장란공신(태종)인 마천목 장군이 소년시절 무예를 익히고 뛰어놀던 곳으로 도깨비살 전설이 전해지고 있고 트래킹과 체험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코스정보]
- 1코스 : 섬진강기차마을 ~ 침곡역
- 2코스 : 침곡역 ~ 가정역
- 3코스 : 가정역 ~ 압록유원지마천록 장군은 공민왕 7년 (1368) 장흥의 속현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해 곡성으로 이사를 왔다. 소년 시절 어머니를 위해 섬진강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고기는 못 잡고 둥글고 푸른색을 띤 돌을 주워왔는데 그것이 도깨비들의 대장이었고 장군은 도깨비들을 지휘해 섬진강 두계천에 어살을 만들어 마침내 어머니께 드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잠깐씩 휴식하고 사진 찍고 걷다 보면 5~6시간 소요되는 길이다. 주변 친구와 지인들을 떠올려 보았으나 긴 시간을 함께 걸을만한 분이 마땅치 않았다. 고민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면 미안함이 듬뿍 발라진 '그렇게 오래는 걷기 힘들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바로 혼자 걷기로 마음을 돌렸으나 2코스 숲길이 고민이었다. 혼자 숲길 2시간을 걷는 게 더럭 겁이 났다. 결국 실행을 못하고 세 번의 가을을 보내고 말았다.


올봄 어머니 생신기념 친정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구례를 시작으로 섬진강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막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는데 남도 쪽으로 내려가니 마침 화개장터에는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하동을 적시고 광양으로 흘러드는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절정인 벚꽃으로 무릉도원을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봤던 벚꽃길의 극치였다. 감탄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올해는 꼭 마천목장군길을 걸어보리라 다짐했다.




더위가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면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기차표를 예매했다가 취소하기를 두 번.

최근 직장에서 협업하던 파트너 동료가 넘어져 골절상을 당하고 수술과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재활까지 포함하면 석 달 기간이 필요하단다. 당장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서 업무 부담이 가중되었다. 10월에 이수해야 할 온라인 강의가 추가되었다. 아, 시도 때도 없이 얼마나 자기 발에 지원을 팍팍해주는지 억지춘향으로 날마다 강의를 들어야 하고 시험과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고 가중된 업무에 지쳐가던 중 나를 위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하루 온종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활력과 돌파구가 될 것 같아서 과감히 내질렀다.

(타국에서 최근 선적으로 몹시 분주하신 중에도 절친의 소설을 읽어주신 자축인묘 작가님께 죄송했어요. 혼자만 여유를 갖는 것 같아서요)


이런 상황에서 2코스의 두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출발 이틀 전에 기차표를 예매하고 절대 무르지 않기로 했다.

배낭에 얼린 생수 한 병, 텀블러에 물 한 병, 커피 1개. 바나나와 귤. 주먹밥 도시락과 에어팟, 보조배터리와 물티슈를 넣었다. 차에 두었던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와 운동화, 이상작품집 포켓북이 준비물이다.


기차역전용주차빌딩에 주차를 마치고 매거진 소설을 발행했다. 두근두근 마음이 떨렸다. 부끄럽지만 혼자 트레킹은 청년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길눈이 그다지 밝지 않아서 사전에 블로그와 곡성군청 홈피 검색을 많이 했었다.




곡성역에 8시 40분에 하차했다. 

자전거길과 도보길이 혼합된 1코스에 무사히 진입했다. 30분쯤 걷고 침실습지주차장에서 환경해설사 한 분을 만났다. 행운이었다. 그분도 탐방객을 찾아 나서야 할 판에 내가 눈에 띈 것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퐁퐁다리에서 침실습지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듣고 네이버 밴드 '침실습지이야기' 소개를 듣고 지도 두 장을 얻었다.

내가 계획한 트레킹 끝 지점 압록까지 걷기보다는 2코스 끝점인 가정역에서 증기기관차가 있으니 그걸 타고 곡성역으로 회귀하기를 추천하셨다.  압록에 이르러서 곡성으로 회귀할 방법에 대해 물으니 택시밖에 없는데 읍내에서 먼 지역이다 보니 택시가 귀한 지역이라 택시 잡기가 어렵다고 조언하셨다. 나도 회귀 때 이 부분이 걱정이었던 터라 고민이 되었다. 매운탕을 좋아하느냐 물어오셨지만 편의점, 분식집도 아닌 매운탕집에서의 혼밥은 계획에 없던지라 식사시간이 따로 계획에 없는 일정이라고 말씀드렸다.

사람을 기다리며 걸었건만 가는 곳마다 개들이 반겨주었다. 자꾸 개들만 따라붙었다. 사마귀, 심지어 새끼뱀까지도 자전거길에서 반겨주는데 정작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무섭지 않았다. 계속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이어져서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2코스 시작 침곡역에서부터 동공지진이 일었다. 블로그에서 봤던 내용과 달랐다. 최근 블로그 글은 안내가 상세하지 않았다. 간신히 침곡역 부근을 이리저리 서성이다 10여분을 소비하고 폐철길을 조금 걸으니 숲 속길 입구 이정표가 나왔다. 입구를 찾았으나 인적이 전혀 없었다. 나무계단 서너 개를 오르자 누군가의 무덤 두 기가 나왔지만 어느 곳이 길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일단 도로가 인접한 숲길로 접어들었으나 엉뚱한 길이 나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30분을 헤맸다. 이러다 119에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헬기구조, 사다리가 내려오고 사다리 타고 오르는 내 모습이 그려지고 TV화면 자막에 둘레길 트래킹 중 난사고.. 상상이 되었다. ㅎㅎ

그 와중에 증기기관차 기적 소리는 어쩜 그리 예쁘게 들리는지. 아직 완전히 겁을 먹지는 않았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차도를 찾아서 내려왔다. 숲길을 포기하고 왕복 2차선 차도를 땡볕에 30분 정도 용감하게 걸었다. 챙겨 온 선글라스와 마스크 덕을 봤다. 마침, 건너편에 가드레일 절단된 부분이 있기에 얼른 건너가서 보니 자전거 도로가 인접해 있었다. 다행히 다시 자전거 도로로 내려왔다. 자전거 도로 오른쪽 가에는 나무가 우거져서 그늘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중간에 쉴만한 정자가 있어서 도시락과 커피를 마시며 잠깐 쉬었다. 발행글의 댓글도 좀 달았다. 그때까지도 2코스에서 자전거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더구나 도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걷고 걸어 가정역에 도착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압록까지 가지 않기로 했다. 숲 속에서 헤맸던 게 조마조마 적잖이 힘들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트레킹 단체팀은커녕 개인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이것은 완전 내 예측을 벗어난 돌발상황이 되어버렸다.

가정역에 도착하니 12시 10분. 점심시간이 되어서 1시 이후에나 증기기관차나 레일바이크 표를 판매개시한다고 창구가 막혀 있었다. 곡성 기차마을 가는 증기기관차 시간을 보니 1시 45분에 운행한단다.

예매한 상행 차표 시간과 증기기관차를 타고 기차마을에 도착하는 시간과 차이가 1시간 이상 났다. 재빨리 코레일 앱을 열었다. 시간이 딱 적당한 기차표가 남아 있었다. 예매표를 취소하고 다시 더 이른 ITX로 예매했다.

 섬진강변으로 내려와서 물소리를 들으며 오래 앉아 있었다. 지난 글에 첨부한 두 번째 물소리가 이때 찍은 동영상이다. 첫 번째 동영상은 1코스 퐁퐁다리에서다.

두 가 세월교 다리 건너에는 오토캠핑장이 있어서 여름 피서지로도 손색없다.

숲길 때문에 고생을 좀 했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아직 단풍이 전혀 들지 않아서 10월 말쯤이면 더 고운 섬진강을 만날 것 같다. 그때 다시 숲길을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에어팟을 끼고 황테너의 가곡과 가을 노래들을 들으면서 다음 홀로 여행지를 물색했다. 가능하다면 전남 강진을 가보고 싶다.



둘레길 시작점 자전거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이름도 이쁜 달뿌리풀/감/애호박
잎이 다 떨어진 배롱나무에 걸쳐있는 거미줄
자꾸 따라오는 누렁이 5분쯤 따라오다 돌아갔다/ 침실습지 전망대
침실습지 퐁퐁다리. 강물범람 때 구멍으로 물이 퐁퐁솟아 퐁퐁다리
자꾸 개들이 반긴다 구린내가 나는 사람이라 그런지ㅋ
석류열매가 탐스럽다
모과열매 안익어서 초록/자전거도로길 옆 나무가 우거졌다
침곡역
문제의 침곡역 폐철길/숲길 입구
두가세월교
가정역 두가세월교 아래 섬진강
곡성역으로 타고 갈 증기기관차
기차마을에 도착한 증기기관차


덧)

섬진강 풍경 보여드리려다 글이 길어졌어요~^^

당일에 댓글로 응원해주신 작가님들,

혼자 간 누이 걱정에 전화 안부를 길게 물어주신

신앙의 동지이며 막내동생 삼은 아헤브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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