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지나던 날들이 순진한 덕이었는지 수확을 서두르는 분주한 손길마다 가을 알곡에 오진 재미를 봤다는 10월 중순이다. 씨 뿌린 대로 넉넉히 여문 농장 옆 텃밭 푸성귀와 달리 생뚱하니 비실한 사과나무는 여름내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버짐 핀 아이처럼 어딘지 부실한 잎사귀가 자꾸 오그라 들고 있었다.
사과를 유독 좋아하는 은채는 정성 들여 쌀뜨물도 부어주고 문수가 먹다 남긴 막걸리도 몰래 부어줬건만 어쩐지 사과나무는 촘촘한 가지에 턱없이 적은 여남은 열매만 간신히 위태하게 매달고 있었다. 입덧으로 반년 넘게 고생하면서도 농장일을 힘겹게 거들어야 했던 은채는 사과나무가 여남은 사과를 키워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산달이 다가오는 스무 살의 자신과 같아서 서럽기도 했다. 그랬던 사과나무가 다행히 가을 비바람이 달았는지 제법 빛 고운 붉은색을채워가고 있었다.
서리를 맞아야 딸 때가 된다는 사과가 평년보다 이른 첫서리를 면사포처럼 뒤집어쓰고 있다가 막 떠오르는 햇살에 몸을 녹여 붉은 이슬을 만들어 내고 있을 때였다.
아침상을 간신히 정리한 은채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 사이로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묘령(妙齡)에 은채는 첫 아이를 낳았다. 스무 살 밖에 안 된 엄마의 삶이 첩첩산 구비였음을 위로라도 하는 듯 아기는 진통 두 시간 만에 3.2kg으로 순풍순풍 태어났다. 초승달처럼 그린듯한 눈썹에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엄마를 똑 닮은 아들이었다.
꼬물꼬물 손가락 발가락 열 개씩, 울음소리가 우렁찼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가 은채는 고마우면서도 낯설고 생소했다. 열 달 가까이 품었다 태어난 아들이지만 내가 낳은 아들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결혼을 끝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소녀였던 은채는 두렵고 어렵고 무섭기만 한 남편에 대한 정을 키워볼 새도 없이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체념하듯 운명처럼 받아들인 이유가 아이를 보면서 더 확연해졌다.
잡초 씨앗으로 땅에 떨어져 세상에 태어났건만 이리저리 차이고 비틀리고 땡볕에 녹아나고 뜯기면서 스무 해를 핏줄이라고 왕래하는 사람 하나 없이 살았는데 내 피와 살을 나누어 만든 혈연가족이 생겼다는 게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이제 태어난 지 겨우 24시간도 채 되지 않은 아기가 남편 문수보다 더 의지가 된다는 게 신기했다. 주먹을 힘껏 쥐고 우는 아기를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지켜주리라. 아기는 어미 떠난 삶을 살게 하지 않으리라 은채는 산고로 들뜬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 은채에게 아기는 보호대상이며 은채 자신이며 울타리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마음속에 희미한 불빛 같은 희망이 가물거리며 점차 크게 다가오는 듯했다. 먹지 않아도 배고플 것 같지 않고 아기와 함께 하는 지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제대로 키워보리라, 받지 못한 사랑을 부어주리라. 자신을 낳아주신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 생각이 나서 은채는 설움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양가감정에 휩싸였다.
"오메, 우리 밀양박씨 대를 이을 손자가 태어난 것이 시방 꿈이여 생시여? 문수야 이게 참 말이제?"
"아, 눈앞에 애기를 보고도 그려 엄마? 애가 복 있는 날 태어났구먼. 오늘이 동독 서독이 통일된 날이랴. 이 날 태어난 것이 이 놈 큰 인물로 자라겄어."
"내가 알아본깨 올 해가 백말띠라고 허더만 백말띠에 가시내가 태어나면 못쓰는디 우리 집안은 복이 있응깨로 아들이 태어났어야. "
"그러지. 엄마도 손자 생겨서 좋지? 이제 원풀이 혔어. 그러고 보면 은채 쟈가 쓸모없는 사람은 아녀."
"시방 뭔 소리여? 이게 다 누구 덕인디? 내 덕이여. 내가 느이 아부지 지긋지긋헌 술중독으로 돌아가고 어려운 중에도 남헌티 모질게 안허고 좋은 맴으로 살어서 그런거여."
문수는 칠보댁과 태어난 아이에게 온갖 좋은 의미를 다 갖다 붙였다. 장남 문석에게서 태어난 손녀 둘 만으로는 늘 아쉬웠던 칠보댁이 문수에게서 손자를 얻자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호들갑스러웠다.
"애기 이름은 내가 미리 지어놨어. 박상민여. 어뗘 이름 좋지?"
"그려. 이름 졌으믄 하루라도 서둘러서 출생신고 혀야제?"
엄마가 이십 년을 기다려 '김은채' 석 자를 얻은 반면 아들은 태어난 지 닷새도 안 되어주민등록번호가 생겼다.
상민의 출생은 문수 모자의 마음을 헤실헤실하게 풀어주어 은채가 원하는 것은 뭐든 말만 하면 당장 들어줄 것 같았다. 칠보댁은 뽀얗게 삶아서곱게 접은 거즈수건이며 무명천 기저귀를 직접 만드는 정성을 들였다. 큰자부영심의 딸들이 입고 보관해 두었다물려준 배넷저고리를 칠보댁은 마뜩잖아했다. 문수를 앞장 세워 중앙동 가장 큰 아기용품점에 직접 나가 사온 새 옷으로 큰소리를 쳤다.
"오메, 시방 우리 밀양박씨 대를 이을 손자아녀? 우리 손자가 처음 입을 옷인디 어디 가시내들이 입다 만 옷을 우리 손자헌티 입힌다고 그려? 택도 없제. 대를 이을 손자가 흔(헌) 옷이 웬 말이여."
칠보댁은 영심이 병문안 왔을 때 이런 말을 몇 번이고 쏟아놓아 은채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동서는 아들 낳아서 좋겠네. 나는 애 둘을 낳았어도 이런 대접 못 받았는데 아들 낳으니 다르네."
"형님, 죄송해요. 어머니가 10년 만에 손주를 봤다고.."
"동서, 지금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해? 내가 아들 아들 노래를 불렀던 어머니를 모르겠어? 이제 우리 현지, 민지는 찬밥신세 됐네."
문석처는 봉투 한 장을 은채 머리맡에 던지듯 놓고 쌩하니 차가운 얼굴로 돌아갔다. 칠보댁의 어리석은 망발은 동서지간에 삭풍으로 불어 은채를 더욱 옥죄는 동인이 되었다.
칠보댁은 신이 나서 손자를 안겨준 며느리를 위해 육질 좋은 붉은 소고기를 끊어오고 산모용 미역을 사다 날랐다. 빛깔 좋고 모양도 고른 것으로 마련해 놓았다가 세 덩이나 달였다는 호박물도 큰 들손이 달린 그릇으로 가득 만들어 놓았다. 산모의 젖이 적을까 봐 미리 가물치 대줄만한 곳도 알아두었다.
"내가 이러는 게메누리이삐서 그라는 줄 알믄큰 오산이여. 이게 다 우리 손자 상민이 땜시 그러는거제. 애기가 배꼽이 툭 튀어나오게 젖을 먹어야 잠을 잘 자고 그리야 우리 문수가 밤잠 설치지 않제."
칠보댁은 수확철이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산구완을 하느라 열흘을 머물렀다.
칠보댁 기분이란 게 금방 손바닥 뒤집듯 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지경이니 은채는 칠보댁 변덕이 언제 바뀔지 몰라 불안했다. 게다가 친정 식구가 없으니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편들어 줄 사람 없다고 내키는 대로 은채를 구박했다. 이런 칠보댁의 성정을 잘 아는 은채로서는 산바라지 받는 열흘이 편치는 않았다.
결혼 이후 무시와 냉대를 하던 시모가 손자를 얻었다고돌변한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달리 산후조리에 보탤 손이 없으니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문안 왔을 때 바람처럼 휑하니 가서 출산 후 열흘이 다 가도록 얼굴을 비치지 않은 영심도 걱정이었다. 칠보댁 망발에 여전히 노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으니 지척에 살면서 매일 농장에서 얼굴 마주칠 때마다 불편할 게 뻔한 일.
차려내 오는 밥을 앉아서 먹고 아기가 배고파 울면 젖을 물리고뜨거운 구들장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은채는 이 순간이 꿈같았다. 지금껏 이런 대접을 받은 일이 없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식구들의 입담처럼 상민이 복덩이 아들임이 틀림없다고인정하게 되었다.
북쪽으로 난 창호문 한가운데 뚫린 손바닥만 한 유리창 밖으로 미륵산이 지척으로 보였다. 산 꼭대기에 송신소가 있는 그 산은 억울하거나 서글플 때 묘한 위로를 받는 엄마품 같은 산이었다. 하얀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방앗간 기계의 롤에 눌려 막 빠져나오는 쌀가루 같은 큼직큼직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눈발 사이로 보이는 지척의 산에도 희끗희끗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기는 먹고 자고 먹고 싸고 순둥순둥했고 은채는 농장에 나가지 않고 아기를 돌보며 칠보댁이 만들어 놓고 간 반찬과 미역국에 세끼 밥을 먹으며 행복했다.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빼놓지 않고 마셔야 했던 문수가 상민이 태어난 이후 술이 줄고 퇴근 후에는 자는 아기 곁에 누워서 아기 손을 잡아 보기도 하고 기저귀를 만져주곤 했다.
농장에 겨울이면 불어닥치는 조류독감도 발생하지 않고 순조롭게 지나갔다. 농장시설을 최신으로 보수하면서 문수의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 토요일 오전 근무, 일요일 교대근무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마 밑 고드름이 녹아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가 시리지 않고 붉은 황토밭에 지천으로 널린 봄동이 제법 키를 높이는 볕 좋은 날이면 문수는 상민을 안고 농장 마당을 거닐며 아기에게 찬바람 끝에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때 이른 볕을 쬐어주었다.
행정구역상 시에 속한 옆 동네 어곳에는 낮은 구릉과 평야가 이어지는 곳으로 재래시장 규모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규모가 있는 상점들이 들어선 거리가 있었다. 번화한 시내까지 멀리나가기 힘든 은채는 주로 이곳에서생필품을 구매해서 쓰곤 했다. 상민이 배냇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낸 이발소도 이곳에 있었다. 농장에 딸린 집에서만 종종거리던 은채는 어곳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이곤 했다.
아기는 봄비 맞은 푸른 보리처럼 건강하게 자랐고 은채는 하루 세끼 농장 인부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일에서 놓여났다. 꿈만 같은 날들이 잠시잠깐 보석처럼 박혀 있었던 시절이었다.
또래들은 새내기를 벗어나 물오른 버드나무처럼 캠퍼스의 열정과 자유와 낭만과 고뇌와 투쟁으로 채워가던 때였다.
무엇을 하기에도 두렵지 않을 나이, 하림(夏林)처럼 밀도 있고 뚜렷한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