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럽게 진행된 약혼식 후 데이트 나들이가 신행이 되었다. 간신히 어미젖 뗀 강아지가 쫄랑쫄랑 집주인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객사 인근 충경로를 쭈뼛거리며 걸었다. 경이는 대목장에 나온 촌뜨기가 되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다 나왔는지 그 사이에 섞인 신랑이라는 사람이 배려 없이 성큼성큼 걷는 그 뒤통수만 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그날 객사 마당 은행나무 아래 수북이 쌓인 노란 융단을 밟고 문수는 농장과 거기에 딸린 집에 대해, 하고 있는 일과 결혼 후 해야 할 일에 대에 부풀어올라 경이의 얼굴에까지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댔다. 과수원도 아니고 농장이라는 말이 주는 든든함으로 보아 먼저 일을 시작해서 자리 잡고 동생 문수를 불러들인 형님이라는 사람이 탱자나무집 규모까지는 아니어도 그 동네에서 입담 꽤나 센 위인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슬며시 그동안 고생이 여기서 끝나려나 보다 싶어 경이는 그가 퍽이나 대단하게도 보였고 다정하게도 보였다.
낯선, 겨우 두 번째 얼굴을 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살아야 한다니 그걸 누구 맘대로 정했으며 왜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음에도 경이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큰 운명의 물줄기에 버티지 못하고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밤은 소녀였지만 또 소녀가 아닌 경이를 만들어 버렸고 그렇게 얄궂은 운명은 주인의 의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기어이 경이를 또다시 지난한 순례길로 이끌고 갔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부를 이용하여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취하는 행태가 용제와 정읍뿐 아니라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든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 악한 일에 희생양이 된 경이는 그 이후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고 혹독하다는 것을 열여덟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백제 무왕 때 호국사찰로 창건했다는 옛 절터가 있고 절터에 덩그러니 남은 당간지주와 석탑 뒤로 비슷한 이름의 산이 지척으로 보이는 그곳은 유난히 붉은 황토밭이 이국적인 곳이었다. 붉은 밭에는 봄부터 어떤 것을 품었다가 내놓았는지 알 수 있게 채 마르지 않은 고구마 덩굴이 군데군데 아무렇지 않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뭉치처럼 벌건 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붉은 밭의 일거리를 본 경이의 손이 움찔거리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덩굴을 한 데로 모으고 마른 것들은 불살라서 다음 해를 깔끔하게 준비해야 하는 농사의 순환고리를 잘 아는 경이였다.
죽순처럼 연하디 연한 때는 모든 계절의 순환이 농사나 주방 보조일이 아닌 놀이로 습득되는 게 옳은 것이었다. 동네 골목을 누비며 땅을 박차 오르고 달음질로 바람의 달큼함을 맛보다가 골목마다 매캐한 연기가 낮게 드리워지는 저녁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흙 묻은 옷을 대충 탈탈 털어내고 손도 씻지 않은 채 밥상머리에 지남석이라도 박혀 있는 듯 이끌려갔다가 겸상하는 어른에게 손 씻으라는 잔소리를 들어보는 단조로운 일상이 예사였다. 그렇게 온갖 놀이로 세상 살이 배울 준비를 꼼꼼히 다지며 어린 대나무가 되어가고 그러다 어느 날 훌쩍 커진 대나무가 되어 여름 땡볕과 돌풍에도 견디고 한겨울의 눈보라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의연한 어른이 되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죽순일 때부터 폭풍과 눈보라에 내던져진 경이는 심신이 여물새도 없이 지독한 상흔을 간직한 채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언저리에서 질기고도 질기게 살아남았다. 그 시절을 통과한 경이에게 남은 것은 일에 대해 무조건 반사로 반응하는 강박이었다.
깔끔하지 못한 붉은 밭을 보니 어린 농부의 근성이 되살아나 손이 근질거렸다. 손이 야무지고 부지런하면 고생하며 산다는 말이 있었던가. 적어도 그 시절 경이에게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이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매질을 덜 받는 것은 그나마 근면 성실이라는 것을 체득한 경이에게 부지런하고 야무진 손은 신상을 더욱 복닥거리게 할 뿐이었다.
고구마 덩굴이 끝나는 곳 옆으로 배추와 가을무가 알뜰하게 자라고 있었다. 뉘 것인지도 모를 그 푸성귀들을 보고 있자니 경이는 구정물 통의 찌꺼기처럼 침잠해 있던 용제의 큰 부엌살림들이 뿌옇게 파동을 타고 떠올라서 밭에 저것들을 어찌하나 심난한 걸음이 되었다.
얼추 자란 것 같으니 이제 혼자 몫은 충분히 해내겠다는 주인말에 코뚜레를 한지 얼마 안 된 송아지가 어미소를 뒤돌아보며 울음을 남기고 트럭에 실려 미경이네 집을 떠나가던 그때가 언제였던가. 그동안 한 번도 기억나지 않은 그 장면이 불현듯 생경하게 떠올랐다. 그 소는 지금쯤 송아지 몇 마리를 또 그리 떠나보냈을까. 어린 소의 신세가 경이 자신인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걸음이 느려지고 앞서 걷는 문수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경이를 재촉했다.
지긋지긋한 일에서 놓여날 줄 알았던 신혼의 단꿈은 한순간 푹 꺼졌다. 닭농장은 문수의 소유도, 형 문석의 소유도 아니었다. 형제는 농장 소유주가 고용한 일꾼에 불과했다. 용제 탱자나무집에서 해마다 봄이 되면 병아리를 스무 마리쯤은 사다가 키워봐서 가축이라는 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경이도 잘 알고 있었다. 몇 마리쯤 풀어놓고 키우다가 때 되면 알 낳고 알아서 푸성귀 밭 벌레도 잡아먹고 그러다 밤이 되면 닭장으로 몰아넣고 고양이나 족제비가 물어가는 일 없이 문단속만 잘하면 되는 정도의 가욋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밥을 굶어도 농장 닭들은 모이를 줘야 하고 몸이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없으면 먹다 남은 약봉지를 찾아볼망정 닭이 아프면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했다.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일이라도 생기면 농장 주인까지 나서서 설치는 바람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고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게 닭농장의 실상이었다. 말이 좋아 농장이지 푸른 초원에 깨끗한 시설, 햇살이 가득한 곳에 밀짚모자 쓰고 한가로이 풀어놓은 닭에게 모이나 뿌려주는 그림 같은 일은 농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생각 속에서나 존재하는 풍경이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다 되도록 그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그런 절차들에 문수는 아무 급할 일이 없었다. 그에게 가장 급한 일은 농장일이었다. 유령처럼 이 세상에 법적 근거 없이 살아가는 경이인지라 결혼을 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는 문수였다. 다만 달라진 것은 정읍 중화반점의 산더미 같은 양파 대신에 눈 뜨면 닭똥냄새 가득한 농장에서 종일 시끄러운 닭 울음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을 해야 하고 주방장 인복의 잔소리 대신 문수형제와 동서의 잔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열여덟 경이가 서른이 넘은 혈기왕성한 남편을 받아내기에는 매사에 서툴고 실수 투성이었다. 용제나 정읍살이에서 일 도가니에 빠져 사느라 도무지 아무것도 배우고 익힌 게 없는 경이의 결혼생활이 매끄러울 리가 없었다. 주눅 들고 눈치 보느라 자발적인 일상을 할 수 없었으니 남편 문수에게 일일이 물어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남편이 좀 너그럽고 자상하다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일을 꾸려나가는 머리가 나쁘지 않았고 솜씨가 야무진 데다 싱글 생글 웃는 얼굴이 보는 사람마다 기분 좋게 만드는 곱상한 얼굴이었다. 다만 교육의 의무를 하지 못해서 그렇지 한 남자의 아내로서 크게 뒤처질만한 됨됨이는 아니었다. 그럭저럭 서로 애틋하게 여기고 한 눈 팔지 않는다면 봄날 살구꽃 같은 꿈을 창호지 두께만큼 꾸는 것은 영 터무니없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경이는 이틀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오른쪽 하복부가 묵직하니 통증이 있었다. 처음엔 쌓여있는 농장일을 밤늦도록 하느라 뱃속 아기가 힘들어서 배가 뭉친 줄만 알았다. 일을 놓고 좀 편히 누워있으면 괜찮아지려니 했다. 그런데 통증이 시작된 날 밤부터 열이 났다. 감기와 급체가 한꺼번에 왔나 싶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상을 차리고 누룽지 숭늉을 팔팔 끓여 더운 김을 쐬면서 들이켰지만 더부룩한 속에서는 숭늉마저 구토로 이어져 도저히 농장 일을 나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제 그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서 지난밤에는 한숨 못 자고 방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 통증을 견뎠다. 보다 못한 문수가 아침이 되자마자 정읍 본가에 전화를 걸어 메기 주둥이 여자를 농장으로 올라오게 했다.
"저릏게 쥐뿔도 없는 저런 년을 메느리라고 데리고 온 내가 잘못이지. 이 바쁜 철에 일을 만들어서는.."
"아픈 사람한테 지금 그런 말을 허고 그려? 그런 사람을 짝으로 맺어준 사람이 누군디요."
"내가 그런 줄 알았댜? 가난한 친정 있으믄 친정으로 돈 빼돌릴까 싶어 애초에 고아가 낫고 일 야무지게 하믄 되긋다 혀서 그런 것이지. 문수 네 잘못 아녀? 남의 집 자슥들은 어데가서 처자도 잘 데불고 오더만 서른 넘드락 장가갈 생각은 손톱맹키도 없으니깨 급한 마음에 저 년을 후딱 데리왔던거 아녀?"
"이제 어쩔 수 없지 어쩌겄어. 호적도 없는디 의료보험 안되믄 병원비가 많이 나올 것인 게 누나 이름으로라도 혀서 병원을 가봐야지. 저렇게 죽겠다고 뒹구는데."
아침에 농장에 나갔던 문수는 기다시피 농장에 나온 경이의 다급한 비명소리를 듣고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음을 그제야 알았다. 아프다는 소리는 했지만 바쁜 농장일을 돕지 않을 수 없으니 농장에 나와서 일하는 경이의 행동이 평소 같지 않고 굼떠서 잔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무던하던 경이가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며 눕지도 앉지도 그렇다고 벌떡 일어 설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수는 형 문석에게 농장일을 맡기고 닭똥 냄새를 씻을 겨를도 없이 평상복으로 갈아입자마자 택시를 불러 타고 병원으로 달렸다.
"급성충수염입니다. 왜 지금 오셨어요? 심지어 임신도 했는데.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현재로선 아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주머니도 위험해요."
"선생님, 아기 포기할 수 없어요. 수술 안 하는 방법 없을까요?"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니까요. 그럼 약물투여 없이 수술해 봅시다."
결국 경이는 마취제, 진통제 없이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기를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시누이 문숙의 의료보험증을 제출했다. 경이는 문숙이 되어 진료를 받고 지체할 겨를도 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도 없이 생살을 두부 자르듯 하는 칼을 고맙게 받아야 했다. 수술부위에서 흘린 붉은 피만큼 설움의 눈물을 흘리고 나서 오른쪽 하복부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큰 수술자국을 남겼다. 의료보험증의 위세는 대단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경이를 문숙으로 둔갑시켜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산모와 아기의 목숨을 구했다. 엄마가 품은 첫아기는 고모가 될 사람의 이름으로 지켜냈다.
임신으로 항생제를 처방받지 못하니 회복은 더뎠다. 회복이 더딘 만큼 농장일을 할 수 없었고 남편 문수의 눈초리가 불편해졌다. 수술자리가 아물 때까지 조심하지 않으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 섣불리 일을 나설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했던 며칠간의 입원생활은 큰 고비를 넘겨주었지만 위태로웠고 결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의료보험증을 발급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출생신고가 먼저였다. 태아를 위해서는 혼인신고가 선행되어야 했다. 경이에겐 첩첩산중이었다.
태어날 때 부모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지만 부모 얼굴조차 모르고 스무 살이 되었다. 이제 와서 낳은 부모도 버린 경이를 누가 대신 나서서 부모가 되어 주겠다고 할 것인지 참담했다. 그깟 종이 한 장에 대단한 위력이 있는지 몰랐지만 결심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일들은 수없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반드시 해 놓아야 할 일이었다.
스무 살의 경이는 만삭인 몸으로 문수의 외숙이 잃어버렸다 되찾은 딸이 되어 김종구의 '자(子)'가 되었다. 성씨(姓 씨)도 없던 경이라는 이름 대신 온전한 이름 '김은채'가 되었다. 이 땅에 태어난 지 이십 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망명도 아니고 귀화도 아닌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헌법의 보호를 받는 자국민이 되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이십 년 세월 동안 무상교육의 혜택은 비껴가고 스무 살 청춘의 문맹인이 되었고 온갖 떫은맛 쓴맛은 빠짐없이 다 맛보고 지나갔다. 용제에서도 정읍에서도 그토록 갈망하던 '출생신고'를 결국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기 직전에야 할 수 있었다.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던 그 일이 왜 이렇게 지난했는지 은채는 그날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호적을 만들고 곧바로 문수와 혼인신고를 하고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의료보험증이 생긴 일은 은채의 일생 최대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또 다른 구실이 되었다. 남동생에게 부탁해서 은채가 된 경이를 '자(子)'로 입적(入籍)시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준 메기 주둥이 여자는 이제 숨길 것도 없이 드러내놓고 며느리를 생선 먹은 고양이처럼 박대했다.
"호적도 이름도 없어서 어디 사람 구실도 못할 이 년을 사람 만들어 주었더니 은혜를 모르고 이 따위로 해??"
출생신고는 은채에게 쏟아지는 온갖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인간의 존엄을 알지 못하는 불한당 같은 그들에게 은채는 자비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년'이 되었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년'이 되었다.
선거권이 주어지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금을 납부하고 병원이나 약국 출입이 당당하고 자유로워진 대가는 두고두고 무시와 학대를 불러들였다. 시모뿐 아니라 함께 농장에서 일하는 문석 부부를 넘어 심지어 시외숙에게까지 치료제도 없는 이 전염병은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