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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Nov 27. 2024

서걱거리는 밤거리

소녀가 된 은채이야기 - 정읍살이 1

눈동자에 물이 들 것 같았다. 거기 눈물이라도 한 방울 떨구면 파란 줄이 뺨에 그어질 것 같았다. 파랗다. 묵호항 물빛을 닮은 하늘이다.

식당 앞에 내놓은 대야에 지난 밤새 내렸던 빗물이 고였다. 꽤나 비바람이 셌는지 흙이 함께 튀어서 바닥에 가라앉았지만 윗물은 맑았다. 대야에 묵호항이 가득 담겨있다. 바람이 살랑이자 노파의 이마주름 같은 물결이 일었다. 맑은 물에서 막 건져 올린 아침햇살도 한 줌 거기 머물다 가고 식용유통에서 자라는 맨드라미도 심심했는지 하품을 해대다 고개를 빼죽 내밀어 본다. 평화롭고 고요하다.


철제 미닫이 문이 드르륵 거칠게 열리고 보통 야무진 게 아닌 손으로 땋아 내린 갈래머리 여자아이가 뛰쳐나왔다. 가슴이 묵직하게 솟은 똑 단발 소녀가 뒤따라 나왔다.


"송이야, 도시락 갖고 가야지. 기다려."

"계란말이랑 단무지 싫어. 언니가 새 반찬 해서 점심시간에 도시락 가져오면 안 돼?"

"점심때는 언니 바빠. 오늘은 그냥 가져가. 내일은 다른 반찬 해줄게."


젖은 손으로 도시락 주머니를 건네고 잠옷 겸 평상복과 근무복 일석삼조에 충실한 늘 걸치는 옷에 쓱쓱 손을 닦은 후 대야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낡은 옷차림에 비해 얼굴이 면장집 딸만큼이나 고와서 어딘지 모르게 조화롭지 않았다.  물 담긴 대야에 이물질 같은 얼굴이 훅 끼어들었다. 손으로 눈곱을 떼고 마른세수를 했다. 머리카락을 귀 뒤에 꽂고 붉은 잇몸이 드러날 만큼 입꼬리를 올려 방긋 웃어본다. 거기 어색하게 웃는 열여섯 탱탱한 소녀 얼굴이 물 위로 동동 떠올랐다. 탱자나무집에 처음 들어선 날 작두샘 양동이에 비쳤던 눈물 마른 자국이 선명한 여섯 살 경이 얼굴이었다. 그러다 손을 가만히 물속에 넣어보았다. 뽀얗고 가지런한 손이 물속에서 물방울을 튕긴다. 묵호항도 맨드라미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흙탕물이 일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경이는 이렇게 조용한 아침 풍경이 여전히 낯설었다. 아침부터 걸쭉한 욕이 날아들고 나날이 누룩처럼 커져가는 농사일과 집안일에 숨 쉬는 시간조차 아껴야 했던 용제살이의 쓴 기억이 잡뼈 우려낸 사골국처럼 눅진하고도 차지게 목을 조여오듯 했다.


여섯 살이 되어 시작한 용제살이. 용제 들판을 다니며 손발이 습진에 무르도록 일을 하고 탱자나무집에서 시답잖은 이유들로 매질을 당했다. 까무러치기를 알사탕 까먹듯하고 꿈조차도 마음대로 꿀 수 없던 수렁 같은 시간 10년이 지났다. 소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용제역에 내렸던 봄날의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있다가 시시때때로 마음에 눈물콧물 쏙 빼는 매운 파장을 일으켰다.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고 벌떡 일어난 밤이면 창고방의 북풍이 온몸을 에이듯 파고들던 설움이 목까지 차올라 입을 틀어막고 끄윽끄윽 신음 소리를 냈다. 용제를 떠나면 쓰라린 기억들도 모두 지워질 줄 알았다.

그곳의 시간들을 탱자나무집 창고방에 비설거지하듯 쟁이고 땀 절은 수건으로 툴툴 티끌 털듯 떨어낸 후 비구름 영역 밖으로 떠나면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 한쪽이 시렸다. 그날들의 햇살 같은 석영이와 석민이를 떨쳐낼 수 없었고 대나무숲과 이어진 해빙기의 봄동밭을 버릴 수 없었다. 서러울 때마다 껴안고 울었던, 삼철이네 집에서 가져온 날 낯선 밤에 끙끙거리던 장구의 울음소리가 귀에 왱왱거렸다. 지긋지긋한 시절들 떠나왔으면 그만 덮어두어야지. 가을볕에 오지게 마른 질긴 무청 시래기 같은 미련이 경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럴 때면 울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맥없이 빈 손으로 가슴만 쳐댈 뿐이었다. 학대와 폭력의 기억은 이런 것인가. 끝내 기억 한 자락으로 여투어 있다가 셈속도 없이 뒤통수를 휘둘러쳤다.


"언니, 나 배고파. 밥 줘."

고운이가 부르는 소리에 경이는 화들짝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용제를 떠나던 날은 1986년 아시안게임을 개막한 날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메달 소식을 시끌시끌하게 전했다. 라면만 먹고 달렸다는 임춘애 선수와 아시아의 인어가 된 최윤희 선수의 금메달 소식이 맨주먹 청춘들에게 희망으로 속속들이 전달되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송이와 고운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송이네 안방에서 새우깡을 집어먹으며 당당하게 아시안게임 중계를 보았다. 처음 며칠은 송이엄마의 시커먼 속내가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고운 말투는 꿀복이 부사처럼  사근사근 달달했다.


"다른 건 할 것 없고 식당이 바쁘니까 그럴 때 잠깐 도와주고 고운이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고운이 데려와서 놀고 있으면 돼. 힘들 것 없지? 그러면 내가 용돈 넉넉히 쓸 만큼 챙겨 줄게."


그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니 경이는 믿기지 않았다. 일이라면 용제에서 논밭일, 집안일에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여섯 살 고운이를 살살 놀아주고 밥이나 간식 좀 챙겨주면 되는 것을 돈까지 준다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입암댁에게 살랑거려서 탱자나무집을 떠나게 만든 결정적 역할을 한 송이엄마였다. 돈까지 얹어준다는 말은 경이에게 민들레 홀씨처럼 가뿐했다. 아무 걱정 없이 여기서 이대로 붙박이가 되어 살아보고도 싶었다. 긴 레이스를 앞두고 출발선에 선 선수의 실격처리된 발처럼 출생신고와 넉넉한 용돈이라는 말이 마음에 설레발을 쳤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하기도 전에 송이엄마가 돌변했다. 요원한 경이의 출생신고는 여전했다. 용제를 떠나자마자 정주시청(정읍시의 옛 지명)으로 직행할 것 같던 말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졌다. 상황을 봐서 약속한 출생신고 이야기를 꺼내볼 요량이었다. 상황을 만들려고 송이엄마가 말한 일 외에도 눈에 보이는 대로 척척 일을 찾아 해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경이 너 따로 방 얻어 나가서 살아야 하는 거 알지?"

"네? 아줌마가 방 걱정 말고 함께 가자고 처음에 그랬잖아요."

"얘가 무슨 소릴 해? 내가 언제 그랬다는 거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우리가 너 데리고 있는 거 원래 방값 받아야 하는  거 알지?"

"아줌마, 제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홀에 있는 방에서 자는데 무슨 방값요?"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너 방값 보증금 할만한 돈 없다는 거 알아. 그러니까 방 값 달라는 얘기가 아니고 대신 네가 우리 집 살림 좀 맡아서 하라는 얘기지. 집안일 말이야. 아침에 송이 도시락 싸는 거 잊지 말고. 워낙 손끝이 야무지니까 잘할 거야."


용제살이때 보수를 받지 못하고 일했던 속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송이엄마다. 그녀의 흑심이 그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송이엄마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것은 출생신고였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저쪽인데 비위를 건드려서 득이 될 것은 없었다. 가벼운 입바람에도 날아갈 약속처럼 들렸지만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입바람 불기 전에 고분고분해야 출생신고를 해줄 것 같았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서늘한 바람이 한없이 들어갔다. 정읍에서까지 이대로는 살 수 없는 일이었다.

치통으로 뺨이 퉁퉁 부어올라도 병원에 갈 수 없으니 침을 질질 흘리며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로 버텼다. 교복 자율화가 되어 사복 입고 통학하는 또래들을 보아도 그들의 이마에는 학생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한창 잘 나가는 읍내 대리점의 뱅뱅 청바지를 똑같이 입고 얼룩말그림이 큼직한 핀토스 가방을 어깨에 메어도 그들만의 풍모가 따로 있는 듯했다. 식당에 드나드는 손님이 송이네 집 첫째인 줄 알고 경이더러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면 얼굴이 빨개져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떴다. 학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출생신고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경이는 야무진 손으로 집안일을 윤기 나게 해냈다. 송이와 고운이도 깔끔히 챙겼다. 이만하면 됐지 싶었다.


"아줌마, 출생신고는 언제..."

" 너도 봐서 알겠지만 아저씨가 요즘 좀 바쁘니? 출생신고 할 짬이 나야 말이지. 쉬는 날 있으면 그때 해줄게 재촉 좀 하지 말고 기다려. "

"점심 장사 끝내고 잠깐 다녀오시면..."

"얘가 모르는 소리 하네. 아저씨 배달 다니느라 바쁜 거 알면서 그래. 언제 배달이 들어올 줄 알고.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야 너 용돈도 올려주고 그러지. 그리고 너 아줌마, 아저씨가 뭐야? 여기 용제 아니다. 사장님, 사모님이라 불러."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글자도 모르는 데다 혼자 가서 치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 열심히 일 해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얼추 송이자매의 뒤치다꺼리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송이엄마는 느지막이 일어나 밥상을 받았다. 집안일이 끝나면 식당 주방장 인복이가 출근하기 전에 산더미 같은 양파를 벗겨놓아야 한다. 그것이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칼질이라면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했지만 어쩐 일인지 주방장 인복이는 경이에게 양파 산더미만 날마다 시켰다. 매운 양파를 눈앞에 두고 앉으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눈물이 흘러내리는 만큼 정읍에서 품었던 희망도 서서히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용제를 떠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뿌리내려서는 안 될 곳에 싹을 틔우는 불안이 밤안개처럼 퍼져나갔다.




탱자나무집,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어렸다. 때리는 대로 맞고 욕이 쏟아지는 대로 들었다. 죽이겠다고 낫을 들고 쫓아오는 입암댁이 죽기 살기로 달아나는 소녀 경이의 빠른 달음질을 앞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동네를 서너 바퀴 돌았건만 두 사람 사이의 폭은 좁혀지지 않고 더 멀어졌다. 이러다가 더 큰 앙갚음이 있겠다 싶어 달음질을 멈추고 입암댁 손아귀에 머리채를 잡혀줬다. 그게 차라리 속 편하고 뒷수습이 빠르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어른만큼 자랐고 일머리도 생겼다. 눈썰미도 있고 야무진 솜씨도 생겼다. 그런데 속 빈 강정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자꾸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만큼 자격이 생기고 자유로울 줄 알았다. 탱자나무집 식구들처럼 당당해지고 못할 것이 없게 될 줄 알았다. 거기엔 자격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잘하는 게 많아도 두 가지 못하는 것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글자를 자유롭게 쓸 수 없었고 출생신고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 둘이 복병이었다.


물에 불은 손은 쪼글거리고 양파의 매운 성분이 눈물 콧물을 빼냈다. 주방은 볕 한 줌도 들지 않아 늘 물 고인 바닥에선 악취가 올라왔다. 수선화처럼 해실하게 웃는 눈부신 나이 열여섯. 악취와 수선화는 공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곱고 향기로운 게 흘러들어도 온갖 잡내로 가득한 곳에서 수선화 향내는 힘을 잃고 시들어갔다. 시작해보기 전부터 패배가 뻔한 하루의 일상이 열여섯 경이 앞에 되풀이되었다.

양파를 소쿠리에 던지고 경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당 미닫이문 옆 벽에 걸린 국제석유집 이름이 큼직하게 새겨있는 거울 앞에 섰다. 입김을 내어 거울을 옷소매로 닦았다. 거울 안에서는 마른 청사과 같은 소녀가 푸석푸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지루한 일상이 소녀의 등 뒤로 연극이 끝난 무대의 커튼처럼 드리워지고 있었다.

 귤색 양파껍질이 달라붙은 손으로 거울 속 소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볏단처럼 야무지게 묶는 손가락 끝이 물에 불어 쪼글거렸다. 질끈 동여맨 검정 머리끈만큼의 탄력도 없는 한숨이 거울 속 소녀 입에서 새어 나왔다. 거울 속에서 소녀가 사라지고 거칠게 식당 미닫이 문을 열었다. 적당히 건조하고 상쾌한 바람이 훅 끼쳐 들었다.

중화반점이 중와반저가 된 역시 낡은 글자 같은 미닫이 문 안에서 주방장 인복이의 거친 소리가 삐져나왔다.


"경이 이년은 양파 손질하다 어디갔댜. 당장 안 들어오냐?"


사철 가래가 톡톡하게 낀 주방장의 목소리가 오래된 숫돌처럼 단단하게 들려왔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천리 밖으로 달아나는 그런 목소리였다.


"저 인간은 눈이 귀에도 달렸나."


눈칫밥 10년 세월 날렵한 손맵시에도 성질이 고약한 주방장 인복이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닦달을 했다. 그는 자랑할 게 없었는지 흔히들 말하는 주방장의 거친 근성을 과감히 경이에게 보여주었다. 달포에 한 번쯤은 중화반점 주인인 병산이 와도 대거리를 했다. 어떤 날은 출근을 하지 않는 생강짜를 부렸다. 병산은 손님이 먹다 남긴 고량주를 한 잔 들이켜고 인복을 모시러 가곤 했다. 근동에 그를 이길 솜씨가 없었다.

인복의 기세는 등등했고 경이를 고용한 것도 아닌데 성에 차지 않거나 심술이 나면 철판질을 하다가도 긴 자루국자로 경이 정수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인복이에게 맞을 이유가 없었다. 경이도 함께 욕을 쏟아붓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바득바득 대들었다. 거친 손이 경이 뺨 위에 날아들었다. 주저앉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철판질에 이골이 난 사내의 주먹에 깨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인복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경이에게 그는 인복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름값이 지닌 특혜가 경이에게는 전혀 없었다.


오래 잠들어 있던 우물 같은 장면이 누름돌 같은 기억들 사이를 비집고 낯설게 왔다. 전설 같은 상상 속 이야기인지 오래전 기억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흑백의 소환이었다.


배가 고팠고 울었다. 왜 밥을 먹지 않고 울기만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밥을 먹을 수 없는 나이였는지 어디가 탈이 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에두른 소녀들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서로 닮은 구석이 있는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날숨에 단내 나는 어떤 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찌어찌 어렵게 구했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내밀었다.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그런 것 따위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따끈하고 부드러웠다. 꿀꺽꿀꺽 소리까지 삼킬 듯 잘 받아넘겼다. 염소젖은 잘 먹어 다행이라며 희미하게 웃던 소녀들 사이에서 엄마일 거라 짐작이 되는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소녀들의 얼굴이 구심력을 잃은 듯 산산이 흩어지면서 흑백 소환은 다시 빠른 속도로 잠자는 우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날이면 경이는 도리깨질로 타작마당을 멀리 벗어난 콩 한 알이 되어 서걱거리는 밤거리를 배회했다.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낯 선 소도시에서 경이의 발길은 갈 곳을 잃고 그 자리를 맴돌았다. 흰 달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풀벌레 소리도 잦아들었다. 밤거리에는 봄날의 영화를 주근깨 같은 점으로 박아놓은 벚나무 홍엽이 소슬바람에 마른기침을 해대며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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