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이 분명한 입암댁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저녁연기처럼 번졌다. 가늠하건대 경이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욕받이가 되는 것은 불 보듯 훤하다. 그것뿐이랴. 저녁상을 준비하다 부엌에서 나와 들고 있던 국자라도 당장 던질게 뻔했다. 밥을 굶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경이는 탱자나무집으로 내려가는 길 대신 읍 소재지로 이어진 오솔길을 택했다. 어둑어둑 해거름이 되니 용제 들판의 보리싹이 초록에서 재색으로 덮이는 어둠을 등지고 터벅터벅 약국으로 향했다. 납덩이를 달아놓은 신발이라도 신은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급하고 당황스러운 것은 처음 느껴보는 아랫배의 통증이었다. 석영의 심부름으로 읍내까지 나가서 신문지에 둘둘 말린 것을 사 왔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느닷없이 약국집 라임이 떠오른 것은 석영이 인천으로 간 이후에도 라임이 전화로 경이의 안부를 묻고 탱자나무집까지 몇 번을 찾아왔던 일 때문이었다. 탱자나무집에 혼자 두고 온 경이가 걱정이 되어 석영은 라임에게 경이를 부탁하고 떠났다. 다행히 라임이 도청소재지에 있는 약학대학에 다니느라 집에서 통학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약국이 있는 읍내로 가는 길은 야산을 두 개나 넘어야 갈 수 있다. 경이에게 어둠에 대한 공포는 매질도 이겨낼 정도였다. 아무리 입암댁이 급한 심부름을 시켜도 밤에 야산을 넘어가는 일만은 하지 않았다. 그 일로 피멍이 들고 허벅지를 물어 뜯기면서도 기어이 버텼다.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잡고 죄다 뽑히는 아픔, 깨진 사기그릇 조각으로 온몸을 긁어대는 아픔보다 더 한 어둠의 공포가 경이를 짓눌렀다. 반복된 감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포는 방광을 쉽게 점령해서 아무 데서나 오줌보를 열었다. 그런 경이가 지금 야산을 넘고 있었다.
기다시피 해서 간신히 산마루에 올라서니 어느덧 주위는 깜깜해졌다. 한숨 돌리며 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멀리 장화리 여염집 불빛들이 반딧불이 꽁무니를 콕콕 박아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경이에겐 끔찍한 순간들이 벌집처럼 촘촘히 짜인 탱자나무집도 멀리서 보니 불빛이 아른아른 소담스러운 별수국 같았다. 보이지 않아야, 거기 그런 아픔이 있는 줄 속속들이 알지 못해야고운 것이대숲을 병풍처럼 두르고 들어앉아 있었다.
해가 져서 추웠다. 오후 내내 질펀하게 녹은 봄동밭에 앉아 젖은 엉덩이로 늦겨울 시샘바람을 맞고 앉아서 그랬는지 오들오들 떨렸다. 내리막길 걸음을 재게 서둘렀다. 겉싸개를 벗긴 날 것의 두려움이 경이를 앞서 초롱불빛처럼 깔렸다. 두려움을 밟고 눈물을 철철 흘리며 산길을 지나갔다.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하는데 거긴 무덤이 세 개나 있다. 그 앞에서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숨이 차오르게 뛰어서 지나는 수밖에 없었다. 무덤 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하필 반대편에서 트럭이 덜컹덜컹 불빛을 비추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산속 오솔길을 비켜나 얼른 굵은 소나무에 바짝 몸을 기대고 숨었다. 무덤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산속에서 마주치는 자동차였다. 금방이라도 차를 멈추고 험상궂은 사내가 벌컥 문을 열고 내려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거친 호흡을 잠깐 멈췄지만 심장이 몸 밖으로 뛰쳐나올 듯했다. 몸을 바짝 웅크려 공벌레가 되었다. 트럭은 그 숲에 초경을 하느라 몸살에 잠식당하는 소녀가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하는 듯 매운 연기만 내뿜고 휙 하니 지나갔다. 언 손을 녹이려 입김을 내어 불었다. 뜨거운 눈물이 마른땅 같이 쩍쩍 갈라진 손등 위로 떨어졌다.
읍내를 관통하는 신작로에 들어섰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약국을 보는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통증이 허리와 골반을 타고 온몸으로 뻗어나갔다. 머리카락이 쭈뼛서고 귀가 먹먹해졌다. 약국이 경이에게 벚꽃 날리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약국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불빛이 가물가물 하더니 이내 작아지면서 눈꺼풀 밖으로 사라졌다.
약국문 앞에는 동백꽃이 툭 떨어지듯 붉은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아침부터 까치가 유난히 울어댔다. 날씨가 더없이 화창하고 벚꽃이 분분한 날이었다. 탱자나무집 마당이 시끌시끌했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석영과 미국 유학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석민이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석영이 인천으로 떠난 후 처음이었다. 규진과 함께였다. 장화리 출신이라고 하기엔 미덥지가 않을 만큼 석영은 왕관 없는미스코리아였다. 양손에는 선물 꾸러미가 가득이었다. 경이 앞에도 선물 상자가 놓였다.
상자를 열어보니 언젠가 석영이 영화 속 서양 여배우처럼 입었던 스타일의 고운 블라우스와 폭넓은 치마와 레이스장식 뽀얀 양말이 들어있었다. 그 밑에는 소녀에게 딱 필요한 속옷이 감춰져 있었다.
"경아, 이 옷 입고 이제 나랑 인천으로 가자. 그동안 고생했어."
검사가 되어 나타난 규진을 의식해서였는지 입암댁이 종일 경이에게 고운 말을 했다. 밥상을 차려도 혼자서 따로 부뚜막에 놓아 먹던 것을 넓은 잔칫상을 두 개나 펼치고 경이도 한 자리 차지했다. 바쁜 농사일이 시작된 때였지만 경이도 모든 일에서 놓여난 날이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았던 암바사 음료가 박스채로 우물가에 놓였고 석민이 미국에서 가져왔다는 초콜릿과 크래커, 캐러멜이 대청마루 한편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입암댁은 석영이 해외에서 사 온 기념품과 화장품, 가방과 옷을 구경하느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경이는 그동안 석민이 주고 간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자랑하고 싶어졌다. 선물 받은 새 옷을 갈아입었다. 마을 앞 정자에 나가 석진과 얘기를 나누는 석민에게 두꺼운 책을 들고 수줍게 다가갔다. 평소에는 그렇게 읽으려 해도 읽을 수 없던 글자들이 막힘없이 입에서 줄줄 새어 나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꿈만 같았다.
음식을 너무 과하게 먹은 탓일까? 갑자기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났다. 아랫배가 묵직하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을 치를 것만 같았다. 책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집으로 뛰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참았던 것을 쏟아내고 말았다.
하필 이런 날에 이런 일이 생겨 경이는 엉엉 울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속 시원한 울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석영이 사 준 고운 새 옷이라서 더 슬펐다. 울고 싶어도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는 답답함이 숨 막혔다. 힘을 바짝 더 주니 간신히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엉덩이에서 등 쪽으로 따뜻함이 번져나갔다. 기분 나쁘게 눅눅한 그 느낌에 몸을 들썩이는 순간 라임의 목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왔다.
"경아, 정신이 좀 들어? 일어나 봐. 나쁜 꿈을 꾼 거야?"
이대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어느 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입암댁과 석환의 가혹한 학대가 경이의 심장을 더 조여왔다. 동네 친구들이 새 옷을 입고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떠들썩할 때도 이제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그들의 세계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새로운 일들이 매일 쌓여 있었고 그들의 세상을 넘 볼 겨를이 없었다.
입암댁은 일주일 두 번 가는 한글학당을 일요일 한 번으로 줄였다. 경이는 일요일 한글 학당을 가기 위해 평일에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아궁이에 불 지필 시간도 없이 일하느라 냉방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온몸 관절이 다 분리되는 통증을 느꼈다. 몫을 다 해내지 못하는 경이에게 입암댁은 외출을 금지했다.
"할 일도 다 못허고 무신 공부를 헌다고 그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어야 허는 거여. 근본도 모르는 저 년을 데려다가 멕여주고 입혀주고 살핐더니 지 주제도 모르고 언감생심 공부가 무신 얼어 죽을 말이여."
석환이 학대에 가세했다. 서울 새댁이 며칠 째 가출을 한 분풀이를 경이에게 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한글학당에서 주었던 한글 교본과 공책을 아궁이에 넣어 불살랐다.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옷을 다 벗기고 눈 덮인 토방에무릎을 꿇렸다. 무릎 위에는 몸서리치게차갑고 무거운 블록덩이를 올려놓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가혹한 체벌을 했다. 육체적 고통도 견딜 수 없었지만 열다섯 살 소녀의 발가벗은 몸은 간신히 버티던 넋을 놓기 충분했다.
서러웠다. 가슴에 꺼지지 않는 화롯불이 타고 있었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화롯불이 온몸을 불사를 것 같았다. 한 밤중에 몰래 가출을 감행했다. 죽을 만큼 몰매를 맞았다.
"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디 그 말이 틀린 말 아니랑게. 배은망덕한 년. 이년아, 너는 이 시상에 없는 년이여. 네가 여그서 지금 죽어나간다 혀도 시상 아무도 죗값 물을 사람이 읎어.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도망가믄 네 년이 어디서 사람 구실이나 허고 살 것 같으냐. 어림 반푼어치도 읎는 일이제. 누가 네년 말을 믿어주기나 헐 것 같은 모냥인디 정신 바짝 차려 이년아. 이런 경을 칠.
너무 많이 맞았던지 실신을 했다. 이대로 죽겠거니 했다. 사흘동안 냉골 창고방에 누워있었지만 석영과 석민이 없는 탱자나무집 식구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질긴 목숨은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간 폭력의 도가니에 빠졌다가도 다시 이어졌다. 사흘 만에 깨어났다. 까무러쳐진 사흘은 기억에 없는 날이었다.
'누군가의 분풀이를 받아야 목숨을 연명하는 존재로 태어났구나, 고통을 식물(食物)로 삼아야 하는 운명이구나'
깊은 체념을 했다. 얼마나 더 많이 맞아야 죽을 수 있는지 실험 대상자가 된 것 같았다.
죽을 줄 알았던 경이가 다시 깨어나자 입암댁은 또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우박처럼 퍼부어 고된 경이의 삶을 예고했다.
"이런 평생 빌어먹고 살 년, 평생 사내에게 맞고 살 년"
입암댁의 저주는 오래도록 경이의 삶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행랑살이일꾼도 버티지 못해 다 나갔다. 그들을대신한 것은 경이의 손이었다. 장갑도 없이 맨 손으로 농약이 살포된 논에서 종일 일했다. 손바닥 껍질이 몇 겹으로 벗겨지고 피가 맺혔다.습진이었다. 라임에게서 얻은 연고도 경이 손바닥엔 무용지물이었다. 하루 온종일흐린 논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니 약발이 받을 리가 없었다. 밤이 되면 가렵고 아프고 찢어진 손바닥 상처가 아려서 밤잠을 설쳤다. 급기야 손바닥에서 농이 흘러나왔다. 농이 흐르니 집안일을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만지는 것마다 농이 묻어났다. 폭력과 폭언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옆 집에 살던 송이엄마가 정읍으로 이사를 나간 지 반년 만에 탱자나무집을 찾아왔다.
입암댁과 대청마루에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 아주머니, 언제까지 이 집에 데리고 계실 거예요? 그러다가 나중에 시집이라도 보내려면 동네사람들 눈치도 있고 그동안 식모살이 했으니 나 몰라라 할 수 없잖아요."
"저까짓 모지리 반거챙이가 뭔 시집여. 사람 구실이나 헐지 몰러."
"솔직히 말해 경이야 야무지고 깔끔하고 일하는 것 보면 욕심나지요. 어느 댁에서 데려갈지 몰라도 데려가면 집안 일으킬 만해요. 이대로 데리고 있다가는 책임 물을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입암댁은 송이 엄마가 흘리고 간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출생신고를 하고 정규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는 말을 그동안 석민에게 숱하게 들어왔다. 그렇지 않으면 경이에 대한 책임을 입암댁이 크게 져야 한다고 미국에 갈 때도 신신당부하고 갔던 말이었다. 근본도 모르는 경이를 뉘 자식으로 입적한다는 말인가.
입암댁이 읍내에 나가고 없는 틈에 오전에 왔던 송이엄마가 경이를 찾아왔다.
"너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살래? 죽어라 일해도 달라지는 게 없잖니. 너 올해 몇 살이야?"
"열여섯이요. 어쩔 수 없어요."
"열여섯이면 이제 다 컸네. 너도 나가서 밥벌이해서 돈을 모아야지. 여기서 일한다고품삯주던?"
"돈은 무슨 요? 때리지나 않으면... 어디 갈 곳도 없고 지난번에 한 번 집 나갔다가 죽을 만큼 맞았어요."
"너 아줌마가 정읍에서 식당 하는데 거기서 함께 살래? 너만 좋다면 바로 출생신고도 해줄게."
출생신고라는 말이 커다란 바위가 되어 경이를 울리며 쿵 하고 떨어졌다. 석영과 석민이 떠나고 난 탱자나무집 차꼬에 묶인 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한 줄기 훈풍으로 불었다. 출. 생. 신. 고. 이 네 글자 뒤에 숨어있는 힘을 경이도 알고 있었다. 거기엔 학교, 공부, 꿈, 예쁜 옷, 돈이 담겨있었다. 이런 것들을 몽글하게 매만지고 싶었다.
머루알같이 유난히 까맣고 큰 경이의 눈이 윤슬처럼 반짝였다.
탱자나무집은 눈물을 길어 올리는 깊은 우물이며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너무 일찍 맛본 슬픔의 중독일지였다.
단단히 뭉쳐진 고통 알갱이가 거기 가라앉아 있어 담가둘수록 진하게 우러났다. 칼을 목구멍 끝까지 밀어 넣고 피를 토하는 지경까지 고통을 당했으니 이제 됐다 싶어 알갱이를 빼내도 슬픔의 잔향은 여전히 너울을 만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