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어린 시절엔 ‘방학만 하면’ 하며 겨울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시린 추위에 꽁꽁 언 흙길 2km를 걸어 등교해야 했다. 중천을 지나 이우는 볕에 질퍽하게 녹은 길을 덕지덕지 진흙 묻은 신발로 그나마 덜 질척이는 땅만 골라 걷던 하굣길도 무겁게 지겨웠다.
내복을 껴입어도 추웠다. 그 시절 외투라야 기껏 합성 솜을 누벼 만든 점퍼거나 언니한테 물려받아 소매 끝단이 반들반들해지고 올이 눌린 모직 외투였다. 다른 동네 친구들은 나이 차 많은 언니가 떠줬네, 엄마가 입던 스웨터를 풀었네, 자랑을 해대며 꼭대기에 방울 달린 털모자며 두툼한 장갑, 게다가 꽈배기와 마름모가 이웃한 무늬의 스웨터와 목도리를 한 벌로 든든하게 입고 쓰고 두르고 다녔다. 모자 없이 귀를 벌겋게 내놓고 오래 걸어갈 적엔 뜨개 모자가 그렇게 부러웠다. 어서 방학만 했으면.
가장 밤이 긴 날들은 늦가을에서 겨울을 향하는 길목 어디쯤이다. 방학은 절기상 동지가 지나면서 점차 길어지는 겨울 볕과 함께 찾아온다. 눈이 시릴 만큼 쨍한 한파가 닥치면 방학도 한껏 무르익는다. 그러다가 제법 해가 길어졌구나 싶을 무렵 끝난다.
지금도 딱 이 무렵만 되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있다. 텅 빈 들녘에 찬바람만 휘도는 석양빛의 애수. 단발머리 촌뜨기 시절부터 똬리를 틀고 있던 왠지 모를 처연함이다. 지워지지 않는 허기가 일 년 내내 바람 빠진 투명 풍선처럼 늘어져 있다가 설 즈음의 눅진한 바람을 채우며 서서히 빵빵해진다. 물기 가득한 감정이 액체로 흐를 땐 제법 뭔가를 씻어 내리는 쓸모가 있지만 기체가 되고 나면 은근히 마음을 성가시게 한다. 이런 개운치 못한 기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세 살 위 언니는 동생들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언니의 놀이는 어쩐지 아슬아슬하고 세련되어 보여, 방학만 되면 악착같이 따라다녔다. 나와 막내 둘 다 데려가기에 부담될 때 언니는 곤란한 표정으로 망설이곤 했다. 그러면 교과서 삽화 속 기영이와 순이처럼 말 잘 듣는 표정으로 눈을 뜨고 조용히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더는 고민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 언니 몫의 집안일을 떠올리며 잇속을 차리자면 나를 선택하는 게 옳았다.
언니들의 놀이는 다채로웠는데 특히 거칠게 튼 손등과 때 낀 손톱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라주는 매니큐어는 냄새부터 설렜다. 뚜껑을 열면 화학 냄새에 아찔할 지경이었다. 손톱마다 각각 다른 색을 칠해보고 싶은 다양성 존중의 색 배열. 미적 감각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은 어쩐지 언니도 동생도 보이지 않았다. 집은 텅 비었고 배도 고팠지만 호젓함은 더 싫었다. 집 앞 골목에서 오빠가 또래 친구와 몇 살 어린 동생들과 놀고 있었다. 좋아하는 놀이가 다르기도 했지만, 오빠는 우리를 귀찮아했다. 어느 오빠가 줄줄이 셋이나 되는 여동생을 데리고 놀았겠는가.
오빠의 놀이에 끼거나 구경하는 게 그다지 내키지 않았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왁자지껄하게 구슬치기하는 중이었다. 발자국에 다져진 골목길은 반들반들해서 구슬이 굴러가기 좋았다. 나도 끼워 달라고 말해야지 생각했으나 구슬을 보기만 해도 몸이 오싹 추웠다. 꼽사리 껴 볼 생각은 시린 손과 함께 외투 주머니로 쏙 들어갔다.
안쪽 털이 진작 다 누워버린 채 언니한테 물려받은 부츠라 발도 시렸다. 구경만 하자니 시린 발이 점점 더 종종거리게 되고 배도 슬슬 고파졌다. 오빠가 ‘배고프다. 집에 가서 오빠랑 밥 먹자’ 하면 좋으련만 오빠는 언니가 아니었다. 언니는 밥이 없더라도 쌀 씻어 모락모락 김 오르는 밥에 김치보시기라도 꺼내 동생들을 먹였을 것이다.
해가 옮겨가면서 사내아이들이 놀던 골목에도 슬슬 그늘이 졌다. 오빠보다 두 살 어린 영호 오빠가 말했다.
“우리 집 마당으로 가자.”
평소에도 그들은 담장이 따로 없는 영호 오빠 마당에서 자주 놀았다. 남향인 집에 담장이 없으니 마당 안쪽까지 해가 깊숙이 들어와 응달이 적다. 게다가 영호 오빠의 어머니는 성정이 물처럼 순하고 좋은 분이어서 어지간한 장난꾸러기 짓은 눈감아 주셨다.
구슬치기가 끝나고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려고 영호 오빠 집으로 옮겨갔다. 내 또래 몇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오빠가 얼른 딱지를 챙겨 나오며 말했다.
“넌 따라오지 말고 집에서 놀아.”
배가 고파서 아침에 쪄놓았던 고구마라도 먹을까 망설였지만, 오빠를 따라나섰다. 배고픔보다 심심한 게 더 싫었다. 이럴 땐 귀에 장애가 있어 늘 집안일만 돌보시는 엄마를 둔 지연이가 부러웠다. 종일 엄마가 집에 계시니까.
겨울 부업을 나가신지라 어른이 안 계셨던 영호 오빠 집에 장난꾸러기들 소리가 가득 찼다. 손을 높이 들어 공중을 가르는 바람 소리와 함께 대왕 딱지가 따사로운 마당 한 지점에 곤두박질치며 ‘딱’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튀어 올랐다. 딱지가 도망가지 못하게 신발을 바싹 붙여 내리치는 신기술도 보였다. 한 차례 딱지놀이가 진행됐다. ‘으, 어, 아’ 승부 대결 따라 추임새도 덩달아 튀어 올랐다.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까지 했다.
나도 오빠한테 작은 딱지 두 개를 얻어냈다. 달력으로 접은 딱지 한 개, 곰표 밀가루 포대로 접은 딱지 한 개. 혼자 딱지놀이를 했다. 재미없었다. 주머니에서 검정 고무줄을 꺼내 변소 앞 감나무에 한쪽 끝을 묶어놓고 한쪽 끝은 손으로 쥐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을 팔랑팔랑 넘나들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뒤돌아보았다. 영호 오빠가 부엌 앞 흙마루에서 마당으로 몸을 굴렀다. 입에서는 빨래터에서 봤던 비누 거품보다 더 하얀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까만 눈동자는 숨어버렸다. 순간 나는 눈과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곧 내 팔을 잡아끄는 손이 있었다.
“얼른 집에 가 있어. 어서 일어나. 집에 가.”
오빠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고무줄을 팔랑거리며 놀고 있는 사이 등 뒤에서 딱지치기하던 장난꾸러기들이 배가 고파 우르르 그 집 부엌으로 몰려간 모양이었다. 솥단지 뚜껑도 열어보고 아궁이 속도 뒤져보고 벽에 걸린 바구니도 털어보고 찬장 서랍도 열어봤다. 고구마 한 조각이 있었다. 딱 한 조각이라 나눠 먹지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집주인 영호 오빠만 먹었다.
흙벽을 뚫고 드나드는 쥐가 나무로 만든 찬장까지 구멍을 뚫고 음식을 넘보았다. 쥐를 잡으려고 고구마 조각에 쥐약을 발라 찬장에 넣어 놓았단다. 쥐약이 발린 줄도 모르고 고구마 한 조각을 먹었다.
다음 날, 영호 오빠는 전날까지 신나게 뛰놀던 마당에서 멍석에 둘둘 말린 채 지게 발채에 무겁게 올랐다. 그렇게 영호 오빠는 다 자라지도 못하고 열 살 나이에 너무도 가볍게 떠나버렸다. 꽃 같은 어린아이가 떠나는 장례 길에 꽃상여도 봉분도 묘비도 없었다.
아들을 지게에 지고 한 손엔 삽을 한 손엔 작대기를 짚고 공동묘지를 향해 가는 그 댁 아버지의 휘청하는 뒷모습이 지금도 오래 묵은 먼지처럼 뿌옇게 남아있다.
그 시절에 그렇게 억울한 삶이 천진한 어린아이 주변을 처연하게 감돌았다. 해빙기가 시작되기 전 동장군이 더는 기세등등 못하는 딱 그즈음.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보리밭처럼 들뜬 흙이 돼버리는 내 마음도 뭔가로 옴팡지게 꾹꾹 다독여 주지 않으면 퍼석퍼석해진다.
대문사진 - 네이거블로그(가감지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