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을 지나다 자리공을 발견했다. 자리공은 뜰에 가꾸는 경우가 없는데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온 것 같다. 무리 짓지 않고 딱 한 포기만 자라는 게 기특하고도 반가웠다.
으깨면 붉은 물이 흘러나오는 자리공은 소꿉놀이의 좋은 재료였다. 실금 생긴 대접에 진액을 담고 물을 부어 박하 잎을 띄웠다. 소꿉놀이용 물김치를 만든 것이다. 독성이 있는 열매에 향이 강한 박하 잎으로 놀이해도 주의를 주거나 말리는 어른이 없었다. 아이들 놀이에 관여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끼리 하는 놀이는 그렇게 아슬아슬하고도 무사했다. 생업에 바빴던 시절이었다.
어린 우리도 자리공은 먹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간식이 궁해도 꽈리나 까마중 열매는 먹었지만 자리공은 먹지 않았다. 산딸기는 따먹고 뱀딸기는 아무리 탐스러워도 손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자리공이 끌어다 주는 새초롬한 기억이 있다.
동네 공동우물로 가는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에 딸 부잣집이 있었다. 그 댁 대문간엔 골담초와 자리공이 자라고 있었다. 딸 많은 집 특징 중 하나는 막내로 내려갈수록 일찍 멋 부리기에 눈을 뜬다는 것이었다. 위로 나이 많은 언니들이 있으니 언니들 하는 양을 일찍부터 배우는 게 자연스러웠다.
경순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경순 언니의 큰언니는 내 엄마뻘이었다. 일찍이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집을 떠났다. 대처에서 자리 잡은 언니들은 집에 다니러 오면서 신기한 물건들을 가져왔다. 경순 언니는 큰언니의 물건을 나이에 맞지 않게 걸치거나 끌고 나와서 자랑했다.
열 손톱 가득 빨간색이 칠해진 손을 활짝 펼쳐 보이거나 땅까지 질질 끌리는 3단 치마에 옷깃이 어깨를 다 덮는 알록달록한 블라우스를 입었다. 넘어지면 코가 깨질 것 같이 굽 높은 뾰족구두, 폭넓은 머리띠와 스카프도 둘렀다. 귀꿈스러운 경순 언니를 쳐다보는 우릴 향해 한마디 했다.
“안돼. 우리 언니가 나만 입어보라고 했어.”
스카프나 폭넓은 머리띠를 둘러보고 싶었던 우리들의 기대를 애초에 싹둑 잘랐다. 그런 말을 대차게 내뱉고 자세를 곧추세워서 짐짓 런웨이 모델 같은 모습으로 휑하니 돌아섰다. 돌아설 때 훅 하고 끼쳐오는 바람에 야릇한 향내가 풍겨 나왔다. 엄마의 화장대에서 몰래 발라보았던 코티 분첩 냄새와는 다른 향이 났다. 봄바람 같은 스카프와 향내가 어우러져 더 조바심이 났다. 심부름이라도 해주고 스카프를 기어이 목에 한번 둘러보고 싶은 간절함에 동동거렸다.
끝내 경순 언니는 대문간에 우리 자매만 남겨놓고 구두를 삐딱삐딱하게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대문간에는 얄밉게도 자리공 까만 열매가 살강에 드나드는 생쥐 눈처럼 우릴 비웃듯 쳐다보았다.
“에잇, 우리도 집에 가자.”
괜히 분하고 서운하면서도 미련이 남은 내 마음과 달리 언니는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집에 가면 언니가 손톱에 물들여 줄게.”
언니가 자리공을 거칠게 잡아 훑었다. 자리공이 터지면서 언니 손이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대문간 담벼락 그늘에 앉았다. 소꿉놀이와 공기놀이로 새까매진 손을 내밀었다. 자리공 진액에 손톱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이번에는 벌겋게 물든 손을 씻지도 않고 후다닥 보자기를 들고 나왔다. 대각선으로 접어 머리에 씌웠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히히거렸다. 서운한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이제 경순 언니네 집 가지 말자. 너희들도 가지 마.”
“응. 언니.”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 집 담장을 타고 오르는 포도 덩굴에 까맣게 익어가는 포도송이가 아른거렸다.
경순 언니 머리에 분홍색 둥근 기둥이 달랑거렸다. 센베이 과자 봉투에서 보았던 속이 빈 둥근 기둥 모양 분홍색 물건에 머리카락이 돌돌 말려 있었다.
“너희들 이거 뭔 줄 알아? 구루뽕이야.”
방귀 이름도 아니고 구루뽕이라니 이름도 희한했다. 그러더니 이마에 대롱거리던 것을 쑥 빼서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앞머리를 돌돌 말아 깍지를 끼웠다.
“머리가 꼬불꼬불해진다. 너희들 이거 없지?”
집에는 왕빗, 대나무 참빗만 있었다.
“언니, 그거 안 아파? 하나만 해줘.”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초원의 집’ 드라마에 나오는 로라 머리가 생각났다. 거기다 해수욕장 갈 때 쓰는 챙 넓은 엄마 모자를 쓰고 보자기를 찾아서 앞치마처럼 두르면 딱 로라가 될 것 같았다.
“안 돼. 우리 큰언니가 안 된대.”
이번에도 언니가 손을 잡아끌었다.
“따라와. 언니가 빠마해 줄게. ”
언니는 기찻길로 곧장 내려갔다. 기찻길이 지나는 비탈 밑으로 족제비싸리나무가 무성했다. 비탈로 내려가 줄기를 잔뜩 뜯었다. 툇마루에 앉아 잎을 다 훑어냈다. 빈 줄기를 반으로 접어서 그 사이에 머리카락 끝을 끼우고 돌돌돌 말아 올렸다.
“언니, 아프다. 언제 풀어야 해. 가려워.”
“안 돼. 이거 금방 풀면 소용없어. 참아.”
초원의 집 로라를 생각하며 참았다. 툇마루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라면가닥처럼 머리가 꼬불거렸다. 로라처럼 엄마 모자를 쓰고 보자기로 앞치마처럼 둘러 로라 흉내를 냈다.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비춰 본 모습은 마음에 쏙 들었다. 머리카락 굴곡이 풀리기 전에 빨리 나가서 자랑해야 했다.
공동우물로 빨래하러 가는 언니를 따라나섰다. 경순 언니가 거기 있었다. 빨래를 다 마쳤는지 옆구리에 대야를 끼고 일어섰다. 그런데 경순 언니가 일어선 곳에 뭔가를 빠뜨리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곧 빈 대야와 수건을 챙겨 다시 우물가로 왔다.
“너희들 이거 뭔지 알아?”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경순 언니는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는 그것의 뚜껑을 열고 손바닥에 몰랑몰랑한 것을 덜어냈다. 국화꽃에서 나던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걸 물에 젖은 머리카락에 비벼대니 거품이 마구 일어났다. 거품이 일어날수록 꽃냄새가 점점 퍼졌다.
“이거 유니나샴푸야. 머리 감을 때 쓰는 거야.”
머리에 국화꽃을 꽂아놓은 것보다 향내가 진했다. 구루뽕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거 해볼래?”
언니 대신 내가 대답했다.
“나 해볼래.”
언니가 가자미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너, 빠마머리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머리 감을 거야?”
유니나샴푸와 로라 사이에서 나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세숫비누 하나로 온몸을 씻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단순한 일상 속에는 은근한 따뜻함과 소박한 만족이 스며있었다. 거품 하나에도 생활의 정취가 묻어나던, 느리고 정겨운 시간이 흐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손세정제와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까지 세정 방식도 한층 섬세해졌다. 더 깨끗해지고 편리해졌지만, 하나로 충분했던 시절의 여유와 온기는 점점 멀어져 간다. 명절 선물세트에도 이제는 세숫비누가 자리를 뜬 지 오래다. 고단한 삶의 비늘 한 조각이 시대 건너편으로 떨어져 나간 듯 아릿하다. 문득 그 단순하고도 따뜻했던 감성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