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해변 해송숲의 그리움
쑥섬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마주하는 곳, 갈매기 카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손님이 한 명도 없다. 평일이면서 하루 중 두 편의 배를 남겨놓은 시간으로 봐도 그럴 수밖에.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고흥 유자향을 기대하며 주문대 앞에 섰는데 커피 향이 그윽하게 먼저 다가왔다. 마음이 잠깐 흔들렸지만 유자차로 결정했다. 테이크 아웃 잔에 가져가겠냐 물었다. 배 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았고 다음 배는 5시 배라서 그렇단다. 카페에서 마시겠노라 대답하고 벽면이며 오밀조밀 손이 많이 간 실내 인테리어 구경을 했다. 주인장 말투가 이 지역 출신이 아니다. 부산 출신인데 어쩌다 고흥까지 건너와 살게 되었단다.
차를 만드는 동안 주문대 앞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사람 참 많이 바뀌었다. 낯선 이와 단독으로 사담 주고받을 변죽이 없었는데 말이다. 세월 따라 뾰족했던 경계심이 조금 무뎌졌나. 바다 건너 나로 2 대교가 멀리 뵈는 통유리창 앞 테이블에 앉아서 뜨거운 김이 오르는 유자차를 마주했다.
허리를 꽉 조였던 띠를 풀어놓은 듯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고흥의 토질 덕인지 주인장의 솜씨 덕인지 마셔 본 유자차 중 으뜸이었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주문대와 내가 앉은 테이블 사이 이야기가 멀지 않다. 직접 수제로 만든 카페 유자차의 제조방식 비법을 풀어냈다. 어쩐지 맛이 다르더라 하며 추임새로 흥을 돋우는 사이 유자차는 이미 바닥을 보였다.
나 홀로 쑥섬행 소식을 기다릴지 모를 L에게 5시 막배로 나가겠노라고 전했다.
커피 한 잔을 고민하는 게 표정에 묻어났나 보다. 방금 내린 커피가 향긋하다고 한잔 권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빈 유자찻잔을 들고 주문대로 갔다. 이번엔 테이크아웃 잔이다. 시간을 보니 벌써 4시 40분. 막배가 5시인데 눈치도 없이 주인장 막 배를 막을 뻔했다. 감사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근무하다 나온 L을 따라 숙소로 들어갔다. 수련관에 재직하시는 분들 전체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는데 동참 가능한지 물었다. 반갑게 갈 편한 자리는 아니다. 배민도 없는 오지에 염두에 둔 식당이 없었고 밥을 지어먹을 상황도 아니었다. 멀리서 온 이에게 따로 식사 챙겨줄 여력이 없는 L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 그러마고 했다. 보일러와 침대 위 전기매트를 켜 주고 다시 근무하러 나갔다.
창밖은 어둠이 내리고 마음이 분주해졌다. 커피 그라인더 받침대에 흩어진 가루와 찌꺼기 통과 부속물들을 개수대에서 정리했다. 발령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야근 소리와 다급한 출근길 풍경이 살림에 묻어났다. 본가에서 두 시간 거리 객지 생활을 꿋꿋하게 잘 견디는 그녀가 대견하면서도 측은했다. 제대로 끼니는 챙기는 건지. 다짜고짜 재워달라고 해놓은 것도 모자라,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청소에 손을 조금 보탰다. 잔소리하면 혼자 있기 심심해서 그랬다고 넘기려 맘먹었다. 냉장고는 열어보지 않았다.
일부러 숙소까지 데리러 왔다. 밥 없을 때 몇 끼쯤 간편히 데워먹으라고 가져온 약밥(약식)을 들고 줄레줄레 따라갔다. 커다란 원탁 테이블에 이미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L을 제외하고 5명 모두 남자 직원.
메인 요리는 아귀채소찜. 시설관리담당 직원이 외나로도 출신인데 어선 가진 지인에게서 당일 낚은 아귀 세 마리를 가져오셨단다. 직접 손질해서 미나리와 숙주를 곁들여 양념 없이 쪄냈다. 2년 묵은 김장김치와 명이나물 장아찌도 올라왔다. 가장 나이 어린 막내 L에게 얼마나 살갑고 다정하게 대하는지 투박한 남도 억양이 나지막한 뱃노래처럼 정겨운 식사자리였다. 술잔이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참신한 바다 향이 아귀탕 냄비에서 뽀얀 김으로 끓어오르고 아재개그 티키타카가 탁구공처럼 튕겨 오른 훈훈한 자리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우리는 먼저 일어섰다. L은 다시 야근하러 갔다. 나로도행을 걱정하던 친구 K에게 사진 몇 장을 곁들여 안부를 전했다.
10시쯤 귀가한 L과 한 시간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 잠이 들었다.
출근하는 L을 따라 아직 어둑한 길을 나섰다. 수련장 앞바다에 막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엔 바다를 낀 이면도로를 산책 삼아 걷다가 도로가 멀리 나로 2 대교 근처까지 이어진 것 같아서 차로 돌아와 이동했다. 며칠 후면 새해 일출 보러 일출명소마다 북새통이 될 텐데 앞당겨 남도에서 일출을 보았다. 나로 2 대교까지는 못 미치고 길이 끊겼다. 해가 산 위로 떠오르기까지 오래 기다릴 수 없어서 편백숲으로 차를 돌렸다.
나로 우주센터 넘어가는 길에서 옆으로 방향을 틀어 꽤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 무선 기지국 주차장이 그 출발점이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입구 주차장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8시 20분.
나 홀로 여행에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안일한 생각일지 몰라도 산에서 별 일 있겠나 하는 마음이 없다면 혼자 숲에 들어갈 수 없다.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며 오롯이 편백숲을 누리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조금 들떴다.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대신 편백숲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시나브로 낮아지는 순둥순둥 길이라 어렵지 않았다.
외나로도에서 가장 높은 봉래산은 고흥 사람들이 제일로 꼽는 자연경관이다. 봉래산 산행은 나로 우주센터 넘어가는 고갯마루 부근의 무선국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이곳부터 정상(410m)-시름재-편백나무숲-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약 6km, 쉬엄쉬엄 3시간 코스다. 수령 100년이 가까운 9천 그루 삼나무와 1만 2천 그루 편백나무가 산중턱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리 높지 않아서 밋밋해 보이지만 편백과 삼나무숲을 비롯해 사철 푸른 상록활엽수와 야생화가 바닥을 뒤덮고 있어 심심할 틈 없이 묘마가 넘친다.
편백숲의 원형을 보려거든 봉래산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곧 지척에서 삼나무와 편백숲이 시작된다는 걸 냄새로 먼저 알았다. 50미터 전방부터 나무 색깔이 달랐다. 지금이 겨울인가 싶게 푸르렀다. 봉래산이니 쑥 사진도 한 장 찍었다. 피톤치드를 말할 필요가 없다. 100년 넘는 편백이 내뿜는 신선함이 간간히 비치는 햇살 사이로 나풀나풀 춤을 추듯 내린다. 편의시설이 요란하지 않은 걸 보니 관의 관리가 촘촘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그것이 천연의 자연스러움을 풍긴다. 가지치기를 비껴 난 덕에 위아래 굵기 차이가 커서 원뿔모양 수형이 도드라지고 이것이 장관을 이루었다.
나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눈앞의 편백나무는 실컷 봤지만 편백숲의 장관은 정상코스로 들어서야 볼 수 있다. 나무와 숲 둘 다 보기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동선이 수월하려면 근처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으로 향해야 하는데 10시 오픈인 과학관 시간이 맞지 않았다. 외나로도 도로 끝이 궁금해서 다음 코스로 염포를 향했다.
오른쪽으로는 억새밭과 논이 엇갈려 지나고 그 너머 물빛 고운 바다가 잇대어 있는 길이다. 왼쪽으로는 작은 마을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길 따라 버스 정류장이 다정해 보였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상등을 켜고 잠시 도로에 차를 정차했다. 그래봤자 지나는 차가 거의 없었다. '아, 여기서 살면 좋겠다' 병이 또 슬슬 도진다.
염포 해변은 외나로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소박한 몽돌 해변이다. 검은빛 자갈이 파도와 부딪히며 독특한 소리를 자아낸다. 해송 숲이 우거져 있고 캠핑장이 있다. 염포마을 골목길을 속속들이 눈에 담고 싶었으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전에 나로도 일정을 마무리해야 간단히 점심을 먹고 출발할 수 있고 해저물기 전에 귀가해야 다음날 출근이 무겁지 않을 것 같아서다. 미련 남은 발길을 재빨리 접고 온 길을 거슬러 나로우주과학관으로 향했다.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더니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은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꼭 한 번 다녀오시라 권하고 싶은 곳이다. 물론 성인이 탐방하기에도 벅찬 곳이다. 워낙 방대한 핫플이라 섣부르게 이 지면에 쓸 일이 아니다. 꼭지를 따로 하여 여행기를 써야 할 곳이다. 그러니 사진 몇 장으로 아쉬운 흔적만 남기려 한다.)
우주과학관을 나와서 선착장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생선회를 먹을 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서 혼밥을 반길까 싶어 살며시 식당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리 불러도 주인이 없다. 옆 식당으로 갔다. 테이블 몇 개 안 되는 식당에 의자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점심 장사 준비가 안 됐나. 신발 벗고 올라가는 턱 있는 바닥 한쪽에서 너 댓 명이 모여 김장이 한창이다. "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도 받는 둥 마는 둥이다. 기본 메뉴만 식사가 가능하단다. 방해꾼이 된 것 같아 나오고 싶었으나 혼밥인 바에야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냥 나올까 하다가 나로도 식당 한 끼는 먹어봐야겠기에 송구한 마음을 꾹 누르고 갈치조림을 주문했다. 옆집 식당 주인도 그 넷 중 하나인 듯하다. 민망해서 김장하는 이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딱 단답형 대답만 돌아왔다. 머쓱해져서 테이블에 올라간 의자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장사 준비가 안된 식당의 반찬은 그럭저럭이었다. 조금은 툴툴거리려는 마음을, 맛보라고 한 접시 내주신 김장김치로 달랬다.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카페인 생각이 나서 근처 카페를 찾았으나 있을 리 만무했다. L에게 이제 집으로 출발한다고 전화 인사를 남겼다.
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친구 K에게는 찍은 사진 몇 장을 전송했다. 한참 지나서 숫자 1이 사라지더니 이내 올라온 답톡은 우울모드가 여전하니 당분간 SNS 소통을 삼가 달라는 말이었다. 사람이 언제나 유쾌할 수는 없는 일이지. 우울모드를 좀 덜어주려고 일부러 애썼는데 오히려 번거롭기만 했나 보다. 이럴 땐 잠잠히 기다려 줘야지.
문득 L의 경고성 조언이 떠올랐다.
'벅차면, 억지로 꽉 쥐고 있는 관계들 탓에 마음이 시들어간다면 과감하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놓아버려라'는 말. 그 말 끝으로 떠오르는 두 얼굴이 있었다. 사람 관계라는 게 일방적일 수는 없다. L의 말은 그르지 않았다.
내려올 때는 남원 혼불 문학관을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남원을 지나는 상행 완주순천고속도로에서는 미련 없이 지나쳤다. 피곤이 갑자기 밀려오고 내 집 이불속이 그리워졌다.
쑥섬을 비롯 외나로도 몇 곳을 둘러봤는데 어쩐지 나는 10분 정도밖에 머물지 않은 염포 그 해송숲이 가장 그립다. 해송숲에서, 작고하신 정채봉 작가의 '그대 뒷모습' 수필집이 생각났다. 작가께서 갓난쟁이 아기 때 스무 살이 채 안 된 어머니 등에 업혀 외가 가는 길을 해송 타는 내음으로 기억한다는 대목을 읽고 또 읽으며 눈물 흘렸었다. 해송만 보면 나도 모르게 갈 곳 잃은 그리움이 만조 때 바닷물처럼 차올라 먹먹해진다. 그가 어머니 곁으로 떠난 지 25년이 지났다. 그가 태어난 승주, 자라난 고장 광양에는 지금쯤 매화가 봉오리를 열었을까.
미리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오픈하는 것은 무색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싫은 기색 없는 L이 고마웠다. 그녀가 나로도에 있었으니 돌발여행을 단행한 것이다. L은 그런 사람이다. 겉치레나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내도 흉허물이 안 되는 사람. 함께한 시간이 짧아도 깊은 속내를 꺼내고 서로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 정이 푹푹 빠지게 쌓여 있는 사람, 나이 차가 많아도 망설임 없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친구 셋 만 있으면 세상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도 이런 친구를 꿈꿔본다.
우리 어머니가 하늘의 별로 돌아가신 나이가 바로 저 스무 살이었던 것이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나를 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이 세상살이를 마치신 우리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르곤 한다. 바닷바람에 묻어오는 해송 타는 내음. 고향의 그 내음이 어머니의 모습 아련히 보이게 한 날을 기억한다.”(정채봉 「스무 살 어머니」 중)
덧)
고흥 나로도에는 이 외에도 명소가 많으나 이동시간이 길고 계획 없던 여행이라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외나로도 편을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