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해상국립공원 - 외나로도 2

단독대여-쑥섬 비밀정원

by 라이테

대문사진은 쑥섬의 초여름입니다. 제가 방문한 계절이 연말 한겨울이라 절정사진을 네이버에서 끌어왔습니다.




쑥섬은 단순히 바다만 보는 섬이 아니라 사계절 정원형관광지다. 섬 곳곳에 테마 정원이 조성돼 있고 계절에 따라 꽃과 식물 구성이 달라져서 방문 시기에 따라 분위기가 다채롭다.

선착장 부근에는 현지 분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민가가 길 따라 옹기종기 조용하다.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관광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섬이라서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관리형 관광지로 운영된다고 한다.

동네가 시작되는 초입에 쑥섬 안내도 간판이 위풍당당 서 있다. 안내도를 꼼꼼히 살피는 사이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은 벌써 눈에 뵈지 않는다. 초행길은 나뿐인가 생각하다가 사전 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니 주춤주춤 그럴 테지 하며 곧바로 쑥섬 정원을 향했다.


갈매기조형물 카페와 탐방로 입구


갈매기 조형물이 있는 카페 초입이면서 동시에 탐방로 입구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정원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숲길, 정원, 바다 풍경이 이어지는 코스다. 쑥섬 탐방로를 한참 올라야 정원이 있다.

울퉁불퉁 돌과 나무뿌리가 떡시루 안의 쌀가루와 고물처럼 켜켜이 얽혀있는 계단이 시작되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기울기가 가팔라서 헐떡 길이다. 바다 쪽은 춥다는 생각에 니트를 여러 겹으로 껴입은 옷차림이 거추장스러웠다. 차에 외투를 벗어 놓고 올걸 그랬다.



탐방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난대 원시림'이다. 2017년 대한민국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다. 겨울인데도 햇빛을 가릴 만큼 잎이 빽빽해서 어둑어둑 초록 그림자 아래 오솔길이 눅눅하다. 나무가 꽤 우거져 숲 속으로 깊어져 갈수록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는 아련해지고 검불을 밟는 나그네 발자국 소리만 두드러진다.


가꾸는 이의 손길이 여기저기 느껴지는 포토스폿이 있다. 얼마나 애정을 쏟는지 알 수 있겠다. 셀카봉도, 삼각대도 없고 지나가는 관광객 마저 없으니 포토스폿이 아쉽지만 마른침만 삼키고 지나왔다.

나무터널을 지나 환희의 언덕


깊은 숲을 지났다. 하늘을 가리던 나무들이 물러서고 말갛게 맨 얼굴을 드러낸 곳에 다다랐다. 산정에 자리한 비밀정원이다. 꽃이나 녹음이 흐드러진 계절이라면 성급한 발걸음부터 요란해지는 곳. 정원을 가꾸는 이는 중학교 국어교사 출신인 김상현 씨와 시골약사인 고채훈 씨 부부다.


부부가 쑥섬에 정원을 가꾸게 된 건 고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어서였다. 돌아가신 김상현 씨 어머니는 지적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6형제를 낳은 어머니는 성치 않은 몸으로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고, 이웃들은 그 사정을 알고 쌀과 반찬을 나눠주며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고향은 어머니와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자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있는 곳이다. 아픈 어머니를 떠날 수 없어 고향에 남기로 하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쑥섬에 멋진 정원을 꾸며 도움이 되고자 했다. 부부는 16년 동안 정원을 답사하고, 인터넷과 책을 뒤져 꽃을 공부하고 모아 온 돈으로 조금씩 정원 터를 사 일궜다.
쑥섬 입도 1500년대 이후 400년 만인 2016년에 일반인에게 개방된 전남 1호 민간 정원이 탄생했다.


산정에 올라서면 남서쪽이 툭 트여서 바다 위로 멀리 섬들이 떠있는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울어진 해가 그려내는 윤슬이 눈부시다. 파도소리로 저민 바람 따라 나그네 어깨가 서쪽으로 자꾸 기울어진다. 벤치에 앉아 나부끼는 은빛 팜파스그라스 너머 바다를 보고 있자면 뉘라도 마음의 테두리가 한없이 닳아 없어질 듯 하다. 용서 못할 일이 없고 이해 못 할 사람이 없게 마음을 주억거린다. 섬을 독차지한 호사를 오롯이 누렸다.


바다 위 비밀정원은 메인 공간인 별정원, 달정원(문학정원&인연정원), 태양정원(우돌프 스타일 정원), 치유정원, 수국정원, 동백정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별정원은 40여 가지 꽃들이 사계절 피고 지는 코티지 정원으로, 별모양 디자인이라 별정원으로 부른다.

별정원 옆으로 문학정원과 인연정원이 있다. 쑥섬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을 팻말에 담아냈는데 꽃과 한 줄로 읽는 문장이 조화로운 야외 북카페이다.


별정원 / 비밀정원 안내도
문학정원 내 팻말


별정원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트래킹 코스가 나오는데 신선대와 성화등대를 볼 수 있다. 트래킹 코스가 어렵다면 수국정원을 거쳐 마을로 내려가는 쉬운 길이 있다.

쑥섬에는 고양이가 많이 보이는데, 섬의 환경과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예전부터 섬 안에 당숲이 있어 개나 닭처럼 소음이 큰 가축을 기르지 않았고 그 환경 속에서 고양이들이 자연스럽게 살아오게 됐다고 한다. 섬을 탐방하다 보면 곳곳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쉬운 길을 따돌리고 트레킹 코스로 접어들었다. 바로 돌길이 시작되면서 운동화의 요철 덕을 제법 봤다. 숨도 조금 거칠어지고 이마에 땀이 솟았다. 손에 들고 가던 긴 외투는 애물단지가 되어갈 즈음 신선대를 지나 성화등대로 내려가는 길에 다다랐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등대 앞에서 바다 구경을 실컷 했다. 일몰시간이라면 관광공사 누리집에 나올 한 컷 풍경이 펼쳐질 텐데 탐방로에서 일몰을 기다리기엔 막배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웠다. 낮 동안 등대는 불이 꺼져 있는 걸까, 아니면 밝아서 등대 불빛이 드러나지 않는 걸까.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이 날의 바다는 갓 시집온 새색시 마냥 얌전하기만 했다. 물빛은 또 얼마나 고운지 비취옥 가루를 바다에 풀어놓은 것 같다.


다시 탐방로로 올라와 이어진 길을 마저 내려왔다. 탐방로에서 마을길로 이어지는 끝머리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다. 섬 북쪽 끝에 있다고 하여 우끄머리 쌍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우물이다. 양반집 고택 뒤꼍이든 담장 낮은 여염집 앞마당이든 우물은 들여다보아야 제맛이다. 쓰임을 다한 우물들은 샘의 근원이 말라있거나 계절 따라 마른풀 아래 흐르지 못한 물이 조금 고여있기 마련이다. 한 시절 쉴 틈 없고 요란스러웠을 우끄머리 우물곁엔 졸린 고양이만 이따금 머물다 지나간다.


우끄머리 쌍우물


우물 앞으로 난 길은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 최불암 선생께서 좋아하는 길이란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가 빽빽하다. 때가 되면 동백꽃이 눈물처럼 그렁그렁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꾳송이를 후둑후둑 토해내는 곳이다. 붉은 송이가 가여워 동백그늘 아래서는 꽃송이들 사이로 어린아이처럼 앙감질이라도 할 성싶다.


동백나무 터널



모퉁이를 돌면 여염집이 시작된다. 이미 이 땅 살이를 거두고 터전을 등진 주인을 잃은 담장이 쓸쓸하다. 물기를 잃고 바싹 마른 담쟁이덩굴만 갯바위 따개비처럼 납작 붙어있다. 허락도 없이 주저앉은 양철 대문을 밀고 마당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다. 그 마당엔 처네로 어린 동생을 업은 단발머리 소녀가 검정고무신 발로 팔랑팔랑 사방치기 하는 풍경이 순식간에 나타날 것 같다.

한 집 건너 두 집이 비었다. 빈 집은 고양이들의 안식처가 되었을까. 육지 길냥이와는 달리 겨울철 쑥섬 고양이들은 뽀얗게 살을 올리고 햇살 따스한 담장 아래로 사뿐히 뛰어내린다.

여염집들
고양이 벽화


다시 갈매기 조형물 카페 앞에 섰다. 그제야 시간을 확인하니 3시가 넘어섰다. 3시 배는 이미 떠났고 3시 30분 배를 타자니 섬 안에서 차 한잔이 아쉽다. 유자는 고흥 특산품이 아니던가. 갯내를 밀어낼 향긋한 유자맛에 벌써 침이 고였다.

막배를 생각하고 걸음이 느긋해져 카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갈매기 카페 내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장식물

(다음 편에 계속)


덧)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남을 이르는 말. 중국 진(秦)나라 때의 <여씨춘추전>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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