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해상국립공원-외나로도 1

이브의 경고-뜬금포 습격!!!

by 라이테

직장에서 중요한 재인증 절차를 앞두고 있었는데 뜻밖의 휴가 이틀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휴가를 어찌 보낼까 고민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았다. 다만, 두 시간 이상 장거리 운전이 마뜩잖았고 만나게 될 누군가의 스케줄을 미리 알아보고 약속을 정하는 게 번거로웠다.

휴가 전날까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그리다가 기차표는 매진되었고 떠올렸던 몇몇 이들에게는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망설이다가 결국 '내일 아침 일어나서 맘 내키는 대로 하자.'로 고민을 끝냈다.

계획적인 것을 좋아했고 돌발상황은 곧 상당한 스트레스인 나였다. 맘 내키는 대로 하다니 천지개벽할 일이다. 그곳이 어디든 가장 마땅하다 판단했을 것이니 내 의식에 표를 던져보기로 한다.

행선지 후보로 뽑은 몇 곳의 날씨예보를 체크한 게 유일한 준비였다. 이런 일은 당최 낯설다.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아무것도 실행 못하고 집에 주저앉게 될 거라는 확률 80% 이상이 가족 단톡방 예측 결과다.


다음 날 눈을 떴다.

'중년 아지매 혼자여행을 당당하게 보여주겠어.'

비장한 웃음 뒤로 전남 고흥 외나로도를 떠올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남도 오지에 만날 그이가 있다. T-맵 고속도로우선 주행으로 228km, 편도 3시간이 넘는 거리.


행선지가 결정되자 실행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바쁜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 당일치기를 기본으로 하되, 장거리라 고속도로 상황과 날씨 등 변수에 따라 1박 가능성을 대비해 미니 캐리어에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시간은 촉박해도 마음만은 넉넉해져 마음은 가볍게 두 손은 무겁게 컨셉으로 첫 방문을 알짜게 준비했다.

도서벽지에서는 먹고 버린 프랜차이즈 카페 컵홀더만 보아도 반갑겠지. 아스팔트와 소음이 버무려진 번잡함이 그리울 터이니 별다방 디저트류를 대방출해서 달래주기로 하자. 맥도날드에도 진출한 우리지역특산명물인 고구마맛 농협냉동찰떡도 빠질 수 없다. 혼자 살림에 과일까지 챙겨 먹긴 힘든데다 과일사러 읍내 나가기도 번거로우니 풋풋상큼 과일도 끼워넣는다. 매일 야근하는 피폐한 삶을 위로해줄 간식으로 꼬꼬무 솟아오르는 것들을 대차게 외면하느라 힘들었다.


차에 싣고 나니 10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 잠깐 들르면 3시간 30분 소요. 지역에서 서울보다 먼 거리다. 편도 2시간 운행이 내 마지노선인데 후덜덜덜 운전 부담이 상당했다. 평소 습관대로 운전석 앉자마자 하는 기도를 더 길게 하고 긴장한 채 출발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호남고속도로 진입, 잠시 후 익산장수고속도로 진입, 완주순천고속도로 진입, 사매 터널을 지날 때는 사매면 혼불문학관을 떠올리며 올라오는 길에 들러보리라 생각했다. 하행 마지막 휴게소 황전휴게소에서 잠시 멈췄다. 간단히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차 한잔을 마시며 숙소를 검색했다. 햇살이 따사롭고 기온이 섭씨 10도 위로 올랐다. 롱코트를 벗고 차에 올랐다. 완주순천고속도로에서만 서른여덟 개의 터널을 지나 다시 남해고속도로 진입, 고흥 IC로 빠져나왔다. 고흥군 내에서 남은 1시간을 달려야 한다. 그이 말에 의하면 구불구불 바짝 긴장하고 달려야 하는 길이란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대나무 색깔부터 다르다. 지방도로변 아담한 마을들의 채마밭은 이미 지난 계절을 놓지 못한 채 서둘러 올 계절을 맞으려나 보다. 중천을 지나는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졌다. 구부러진 길 따라 향방을 달리하여 쏟아지는 빛이 새참했다. 구간마다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 반복해도 색안경을 꺼내 쓰고 싶지 않았다. 남도가 고집스럽게 품은 빛을 맨눈으로 들이켜고 싶었다.




나로도는 고흥읍에서 동남쪽으로 25km쯤 떨어진 섬으로 30분쯤 걸린다.
나로도라는 지명의 유래는 옛날 중국 상인들이 이 바다를 지나다니면서 "바다에 펄럭이는 낡은(老) 비단(羅) 같은 섬"이라고 불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섬 풍정이 그 이름대로 비단결 같다.

나로 1 대교를 건너면 먼저 마주하는 섬이 내나로도(동일면)이고, 다시 한번 다리를 건너면 외나로도(봉래면)와 마주한다. 1994년 고흥반도와 내 나로도가 연륙교로 이어졌고 1년 후 섬과 섬 사이를 나로 2 대교로 연결했다. 조선시대 말 목장터였던 나로도는 들판, 바다와 섬을 동시에 구경할 수 있다. 길이 45.6km 해안선의 기복이 심하고 동쪽 돌출부에는 암석해안이 발달되어 있다.

나로해수욕장은 폭 100m, 길이 1.2km의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362호 상록수림이 있다. 그 외에도 내나로도에는 갯벌, 해변, 산림 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해수욕, 갯벌체험, 산림욕 등 다양한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내나로도 안에는 국립청소년우주센터가 있고 덕흥천문대, 덕양서원이 있으며 덕흥해수욕장이 있다. 나로 2 대교를 건너 외나로도의 나로항, 나로우주해수욕장, 나로우주센터우주과학관과 봉래산과 삼나무 숲을 방문할 수 있다.

지역에서 출발이 늦다 보니 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남동쪽을 향한 건물이 들어앉은 언덕배기 아래 꽤 넓은 훈련장이 있고 그 앞에 바다를 끼고 있다. 진입로 쪽에 야영장도 있고 야영장 앞에 아담한 해수욕장이 있는 천혜의 절경이다. 꽃이 귀한 계절에 남도를 빨갛게 수놓는 동백꽃이 터줏대감처럼 맞이한다.

그에게는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다. 출발 전 미리 연락하면 분명 멀다고 오지 말라고 할 게 뻔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전화를 걸었다.


"언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여길 와. 나갈게, 있어 봐."

그의 첫마디였다. 알상 속 흔한 대화는 아니다. 액면으로 해석하면 문전박대 같지만 이게 그의 방식이다. 얼굴 이미지는 야무지고 귀엽고 다정한데 그의 투박한 말투는 남도사람 특유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있다.

발령받은 지 한 달 남짓이라 아직 허니문 기간이니 일이 오죽 많으랴. 날마다 초과근무의 나날들. 근무 시간을 오래 뺏을 수는 없다.

간식거리를 들고 들어가 센터장님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로 들어가 동료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우리 언니가 연락도 없이 이 먼 데 까지 왔어요. 우리 언니 예쁘죠?"


예쁘다니 민망하다. 그의 마음에는 내가 예쁜 사람으로 새겨졌나 보다. 센터장님 앞에서도 그렇고 아끼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꾸 예쁘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한다.


"나, 알아서 구경 다닐 테니 밤에 잠이나 재워 줘."


서둘러 나왔다. 예약 없이도 이용가능한 숙박업소도 있고 센터 자체가 수련관이기에 얼마든 빈 객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밤이나 되어야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짜고짜 능청스럽게 재워달라고 했다.

행선지 선택이 즉흥적이라 사전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잠깐 들여다본 쑥섬을 떠올리며 야영장 앞쪽에서 차를 멈추고 여객선터미널로 도착지를 입력했다. 작은 섬에 여객선터미널 건물이 상당히 크다. 관광철이 아니라 그런지 터미널 실내 조도가 어둡고 이용객이 한 명도 없다. 창구 밖에 있던 남자직원에게 쑥섬을 말했다.


"오메. 배 출발 시간이 2시 인디 우짜쓰까. 쪼까 있어보요. "

창구 쪽을 향해 말한다. 시간은 딱 2시였다.

"김양, 얼른 쑥섬 표 하나 끊어드려."

김양님에게 신용카드를 제시했다.

멀리 선착장을 쓰윽 내다보더니

"지금 배가 선착장에 들어오고 있응께로 서둘러 가보시요."

선착장 가는 출구까지 나와서 손가락으로 100미터 전방을 가리킨다. 서둘러 가면 탈 수 있다고 했다. 황급히 티켓과 신용카드를 손에 쥐고 뛰기 시작했다. 떠나는 배도 잡아 줄 인심이었다. 매표소의 김** 님은 존중받지 못한 호칭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듣는 '김양'이라는 호칭과 섬사람 인심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낯선 지역을 방문하는 이가 조금 느슨하게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 같은 누그러짐으로 다가왔다. 감사인사를 경쾌하게 날렸다. 심신을 이완하는 뜻밖의 훈풍에 입고 간 롱코트를 벗어 팔에 걸쳤다.

다음 배는 3시. 친절하신 분 덕에 한 시간을 벌었다.

아담하고 작은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눈앞 건너편이 쑥섬이란다. 운항거리 0.5km, 2~3분 소요. 배에 앉자마자 바로 일어서야 하는 가까운 유인섬. 외나로도가 고흥군 봉래면이고 부속섬이 쑥섬이라면 이곳에 쑥이 많다는 말이다.

외나루도의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0.5㎞ 떨어져 있어, 배를 타면 이동시간이 3분이 채 걸리지 않는 육지와 아주 가까운 섬이다. 쑥섬은 쑥이 향긋하고 질이 좋아 쑥섬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전남 1호 민간 정원이기도 한 이곳은 김상현, 고채훈 부부가 14년간 꽃씨를 심고 가꾼 해상 정원으로 꽃정원, 달정원, 태양정원, 수국정원이 있다. 행정안전부 주관 ‘2017~2020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3 3섬’등에 선정되었으며, 2021~2022 ‘한국관광 100선’ 선정지이기도 하였다. 야트막한 지붕에 높은 돌담이 특징인 이 마을에는 주민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고양이들이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국내 유일한 ‘고양이 천국’으로 불리며 관광객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섬 곳곳에 고양이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이 ‘고양이 섬’ 임을 알려준다.

표를 꺼내 들었으나 표 검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승선료 2천 원, 쑥섬정원 입장료 6천 원이 함께 결제되었다. 관광 비수기이고 평일이라 한산해서 그렇지 성수기에는 미리 인터넷예매를 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고 현장 발권할 경우 승선 최대 탑승 인원 12명에서 벗어나 정시 탑승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신분증 검사와 승선 명부 작성도 해야 하는데 워낙 다급하니 패스해 주셨다.

배를 타자마자 실내 좌석에 앉았다. 여유를 좀 느껴보려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떠나온 선착장부터 시작해서 멀리 보이는 나로 2대교를 거쳐 고개 한 바퀴 돌리고 나니 벌써 쑥섬 선착장이 코 앞에 있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은 다섯 명. 내 나이 또래의 아버지와 청년 아들, 60대 중반쯤의 배낭 멘 남자분, 동네 주민인듯한 아주머니와 나.

외지인들을 향해 선장님이 한 마디 던진다.

"나가는 배는 3시, 3시 반, 5시요. 막배 놓치지 않게 조심허씨요. "




(다음편에 계속)


나로도의 꽃들
쑥섬가는 배 내부
외나로도 야영장 내 고흥10경 안내도
쑥섬 선착장
쑥섬에서 바라본 외나로도/멀리 보이는 교각이 나로2대교.
쑥섬 산정에 올라 바라본 다도해



행복잔고 탈탈 털어 아낌없이 누리는 설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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