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베리티작가. 우리 사이엔 의리가 있다.
베리티 작가님(이하 작가)은 브런치에서 3천 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에세이 창작자이다. 그에 비해 관심작가는 62명에 불과하다. 그런 작가가 어떤 이유로 나를 구독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두어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무렵이었다. 나는 지금껏 그 이유를 묻지 못했고 짐작도 하지 못한다. 아마 우연히, 혹은 실수로 구독을 클릭하셨을 수도 있다. 운이 좋았다. 그 분의 관심작가라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이 때부터 나는 의리있는 독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브런치에서 작가의 글을 처음 읽은 작품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한밤중 편의점을 나와 걷던 장면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후 나는 서툰 댓글을 꾸준히 남겼고, 작가는 그에 성실하게 답했다. 답방 또한 빠짐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 작가의 글쓰기 방식과도 닮아 있다. 꾸준하고 밀도 있게 이어지는 연재의 흐름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면 현직 방송 다큐멘터리 및 교양 프로그램 작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가를 알면서도 동시에 잘 모른다. 사생활에 대한 노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간혹 작품 속에서 업무 이야기를 슬쩍 드러낼 때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작가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작가를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는 분명하다. 문학과 그림, 음악의 영역에서만큼은 전문가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딸기 들어간 차를 좋아하신다는 것.(켁켁)
오랜 시간 방송 현장에 몸담아 왔다면 분명 상당한 위치에 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놀라울 만큼 소박하다. 책의 전면에는 제목과 저자, 출판사, 그리고 짧은 소개 문장만이 담겨 있고, 후면에는 흔한 추천사조차 없다. 책 속에 삽입된 사진들 또한 모두 흑백이다. 최근의 화려한 색감의 출판 흐름과는 다른, 절제된 모노톤의 책이다. 이러한 구성은 오히려 작가의 문장과 닮아 있으며, 이런 면조차도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다.
짧은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의 노트는, 그렇게 ‘알려진 도시’의 이면을 기록하며 ‘미지의 도시’를 그려 나가는 하나의 ‘종이 다큐멘터리’이다. 방송 인터뷰를 하듯 자신의 작품 속에 도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많은 거장들을 초대했다. 그 문장 사이를 함께 거닐며 나머지 이야기를 완성해 줄 독자들을 기대해 본다.”
이 문장은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독자와 함께 완성되는 기록임을 보여준다.
책은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낯선 사람들의 도시’, 2장은 ‘서울, 그 동네’, 3장은 ‘비상업적 여행자들’, 4장은 ‘도시, 그리고 사람들’이다. 특히 3장에서는 작가가 초대한 거장들이 등장하는데, 그 면면이 인상적이다. 그중에서도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서술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밀도 있게 전개된다.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는 여행의 기록을 담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도시와 감각, 그리고 개인의 내면을 교차시키는 인문에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낯선 도시를 걷는 동시에, 그 도시 안에서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란의 카페 시장에서 어떤 카펫이 좋은지까지 세심하게 안내할 만큼 친절하다. 페르시안 카펫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나조차도 어느새 그 노하우를 메모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친절함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를 자연스럽게 글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문장의 결이다. 작가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정제되어 있으며,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상태에 가까운 밀도를 지닌다. 글쓰기가 무엇을 더하는가보다 무엇을 남기는가의 문제라면, 작가의 문장은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절제된 문장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때로는 여행의 동반자처럼 세밀하고 다정한 설명이 이어지며, 그 순간 독자는 문장 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몇 번이나 글을 읽다가 길을 잃었다. 방향을 잃었다기보다, 문장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유럽의 낡은 성벽 앞에 서 있거나,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의 문고리를 잡고 있거나, 돌계단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장면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그 안에 존재하도록 만든다.
작가의 글에는 길, 사람, 음악, 그림, 빛과 색, 자연과 도시 등 유무형의 요소들이 촘촘히 스며 있다. 한 권의 책 안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 읽는 내내 압도되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책에서 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 『푸른 저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작가의 문장이 아니었다면 그 그림을 이처럼 오래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도시의 밝은 면뿐 아니라 그 이면까지 함께 보여준다. 우리는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주로 정돈되고 아름다운 공간을 걷지만, 도시가 품고 있는 불안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까지도 담담하게 드러내며 도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시간 또한 이 책 안에서는 분리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한 문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새롭게 구성된다. 과거는 현재로 불려오고, 현재는 다시 과거 속으로 스며들며 하나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글에 가깝다. 잘 차려진 정찬처럼,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곱씹어야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책이 발간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이제야 서평을 쓴다. 서둘러 읽어내기에는 아까운 문장들로 가득해, 몇 번이고 멈춰 서며 오래 곁에 두고 읽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서평을 쉽게 완성할 수 없었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멈춰 서게 되고, 다시 돌아가 읽게 되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이 책은 단순히 ‘읽은 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싶은 책’이 되었다.
반갑게도 아래의 링크에 소개된 것처럼 오디오북으로도 만날 수 있다. 전문 성우의 목소리에 배경음까지 완벽하게 갖춘 놀라운 오디오북이다. 이미 책의 가치를 라디오방송에서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
내가 작가의 출간 도서를 소개하는 일이 오히려 작가나 책에 결례가 되지는 않을까 망설인 마음도 분명 있었다. 내게 책이 도착했을 때 솔직히 작가에게 양해를 구했었다. 이건 도저히 내가 서평으로 덤빌 책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어설픈 책소개를 남기는 이유는, 작가와 나 사이에 쌓인 작은 의리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관계이다. 그러니 이 서툰 문장들조차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시리라 믿는다.
어느 날 문득, 익숙한 거리나 낯선 골목을 걷다가 이 책의 한 문장이 떠오를 것 같다. 그때 나는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아직 읽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세련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그 문장을 조용히 증명하며,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책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