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꽃 먹던 날

by 라이테

지난겨울 진영 단감을 먹고 나서 감씨 여남은 알을 버리지 않고 따로 챙겨 두었다. 씨앗은 매끈매끈 윤기가 돌고 동글동글 두툼했다. 탐스러운 열매에 어울리는 씨앗이었다. 빈 화분에 질기게 자라던 괭이밥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감씨를 콕콕 눌러 심었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아침, 껍질을 머리에 인 채 작은 싹이 올라와 있었다. 감싹이었다. 콩나물처럼 가늘고 길게 올라온 두 줄기 싹이 괭이밥 사이에서 기를 쓰고 버티고 있었다. 기특해서 자주 들여다보고 물도 거르지 않았다. 스무날쯤 지나자 떡잎 위로 잎이 두 번 더 돋았다. 화분에서 열매를 보기는 어려울 터라 시골집 마당에 옮겨심기로 했다. 마음은 벌써 단감을 따먹는 데까지 가 있었다.

마침 돌미나리가 한창 뜯을 만하다는 아버지 전화를 받고 화분째 차에 싣고 시골로 달렸다. 들판 구경도 할 겸 물길을 따라 난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정미소 건너 길가에 보랏빛 꽃이 흐드러졌다. 차를 세워 보니 등나무꽃이었다.


봄꽃 잔치는 이름난 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의 집 울타리에서도, 물이 줄어든 농수로가에서도 한창이었다. 가뭄이 이어지는데도 꽃들은 서두르지 않고 제때를 따라 피어났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제자리에서 향기를 내는 모습에 안분지족의 덕이 떠올랐다. 땅을 기듯 피는 꽃잔디와 허리께에서 피는 철쭉에 이어 등나무꽃까지 가세했으니, 다음은 아까시나무 차례일 것이다.


우리는 늘 그 나무를 아카시아라고 불렀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동네 어른들도 다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북미에서 건너온 아까시나무였다. 우리가 아카시아라 부르던 건 하얀 꽃이 피는 이 나무였고, 노란 꽃을 피우는 진짜 아카시아는 따로 있다고 했다. 이름 하나도 그렇게 뒤늦게 바로잡는 일이 있었다.


아까시나무는 한국전쟁 뒤 메마른 산과 들을 살리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땅을 기름지게 하고, 몇 해만 지나도 꿀을 딸 수 있을 만큼 빨리 자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고향 언덕에도 아까시나무는 유난히 무성했었다.




어릴 적 찔레꽃이 피던 언덕에는 구기자나무, 골담초, 개나리 사이로 푸릿푸릿 아까시나무가 높이 자라고 있었다. 언덕에 아까시꽃이 벙글면 마음이 울멍거렸다. 마을 어귀까지 아까시꽃 향기가 퍼졌다.

우리는 아까시나무 잎자루를 따서 가위바위보로 한 잎씩 떼어내며 학교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꽃을 따느라 나무 아래가 늘 시끌벅적했다. 까치발을 해도 닿지 않는 높은 가지에는 탐스러운 꽃송이가 매달려 있었다. 줄기에 가시가 있어 쉽게 손을 대기도 어려웠다. 결국 친구 등을 밟고 올라서야 했다. 위태롭게 서서 낭창낭창한 줄기를 붙잡고 가시를 떼어낸 뒤 힘껏 잡아당기면 가지가 쫘악 찢어지듯 내려왔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면 꽃놀이하기에는 넉넉했다.


먼지가 얼마나 묻었는지는 대수롭지 않았다. 꽃자루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붙잡고 두어 번 허공에 털어내고 나서 송이 끝이 코 앞쪽으로 닿게 높이 들어 올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어깨가 쑤욱 올라가도록 숨을 들이쉬면 향기는 황홀한 너울을 이루어 쏟아졌다. 몸이 바르르 떨리면서 입시울이 기울었다. 이번에는 눈을 살며시 뜨고 초록빛을 한 줄 머금은 하얀 꽃을 응시한 채 서서히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송이가 반쯤 들어가면 입술을 옹동그렸다. 꽃송이를 쥔 손에 힘을 조절해서 밖으로 다시 잡아당겼다. 입 안에서는 작은 송이들이 향기롭게 터졌다. 살강살강 꽃잎을 짓이기는 잇사이로 달큼한 물이 스며 나오면 친구 등 위에서 후들거리던 다리가 노곤하게 풀어졌다. 그렇게 아까시꽃은 간식이 먼저 되고 나서 소꿉놀이 재료로 쓰였다.


꽃이 흐드러지면 집집마다 아까시꽃술을 담갔다. 대나무소쿠리 가득 아까시꽃이 수북이 쌓이면 광에서 커다란 유리병이 우물가로 나왔다. 머리에 수건을 쓴 어머니가 도르래 샘물을 커다란 대야에 퍼올리면 어린 우리들은 덩달아 턱을 괴고 우물가에 앉았다. 먼저 소쿠리의 꽃을 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 부어 먼지를 씻어내야 했다. 지금이야 꽃잎을 낱낱이 따내지만 그때는 바쁜 일상에 꽃잎 따내기도 번거로운 일이었으니 꽃자루째 씻었다. 꽃이 가벼워 물에 둥둥 떴다. 그걸 양손으로 움켜쥐고 물속에 담가 흔드는 걸 우리가 거들었다. 물에 뜬 꽃이 손끝에 닿는 감촉도 좋았거니와 물을 튕겨 대야 밖으로 꽃잎을 멀리 날려 보내기 하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바쁜 어머니와 놀이가 더 재미있는 딸들의 엇갈린 풍경이었다.


깨끗하게 씻은 꽃은 물기가 빠지면 흰 설탕을 섞어서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았다. 마지막으로 투명한 술을 채우는데 꽃송이 사이사이 공기가 위로 빠져나오게 유리병을 흔들어 주었다. 입구 가까이 액체를 채우고 밀봉하면 끝이 났다. 밀봉된 유리병은 서늘한 광으로 다시 들어가서 여름 내내 긴 잠을 잤다.


유리병 뚜껑이 열리는 날은 추수가 한창일 때였다. 어른들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이어지는 탈곡에 온몸 가득 티끌을 묻히고 귀가했다. 밤이슬이 내리기 시작한 마당 귀퉁이에 앉아 아까시꽃술이 담긴 병을 정성스레 개봉했다. 긴 하루가 잔에 담긴 꽃술과 섞여 목울대를 일렁이게 했다. 때로는 으악새가 슬피 울고 때로는 저 푸른 초원이 등장했다가 끝내는 젊어서 놀아야 한다는 가락이 흘러나왔다. 한 번 개봉된 유리병은 몇 차례에 나뉘어 점차 비워졌는데 그런 날들의 어느 하루 우리는 결국 '시쁜 나무에 불 튀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나는 병 속의 아까시꽃이 궁금했다. 눈으로만 봐서는 도무지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집안에는 마침 언니와 나 둘만 있었다. 우리는 광으로 숨어들었다. 어떤 준비물도 필요 없었다. 단지 오래도록 병 속에 담겨있던 아까시꽃 맛이 궁금한 것뿐이었다.

단단히 닫힌 빨간 뚜껑을 언니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주어 열었다. 독한 냄새가 확 올라왔다. 그 냄새뿐이었다면 다시 닫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달달하고 향긋한 냄새가 따라왔다. 침침한 광 속에서도 병 속의 아까시꽃은 처연하고 도도해 보였다. 동화책에서 보았던 어느 성 안에 갇힌 공주 같았다.

결국 손이 병 안으로 들어갔다. 한 송이를 집어 들었는데 어느새 또 한 송이를 쥐고 있었다. 독하면서도 달았다. 그 뒤로 몇 번을 더 그랬는지 모른다.

우리는 유리병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서 병 속의 아까시꽃처럼 꼿꼿함을 잃고 기울어졌다.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술기운이 섞인 숨이 눅눅한 광 안에 가득 찼다. 피곤과 어둠을 안고 들녘에서 돌아온 어머니 손에 이끌려 광을 나왔다. 마루 끝 백열등 불빛 아래로 우리의 꾸러기 짓이 낱낱이 드러나고 말았다.




아까시꽃이 흐드러지던 그 언덕은 이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커다란 물류창고가 들어섰다. 논밭도 예전 같지 않다. 자운영이 피던 들판에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한 때는 고속철로 받치는 기둥이 논에 박히더니 이제는 나들목이 되고 있다. 땅이 제 모양을 잃고 다른 쓸모로 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땅이 사람살이에 한몫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쩐지 설미를 잃은 듯 허전하다.


그래서인지 화분 속에서 올라온 감싹이 유난히 오래 눈에 밟힌다.



덧)

살강살강-설익은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자꾸 가볍게 씹히는 소리. 또는 그 느낌.

설미-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 가늠, 갈피

시쁜 나무에 불 튀기 -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나무에 불이 붙어서 그 불꽃이 자기에게 튀어 해를 입힌다는 뜻.


글벗 수담님께서

제 작가명으로 시를 지어주셨어요.

제가 라일락 좋아하는걸 어찌 아시고...

깜짝 선물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사실은 자랑 ㅋㅋ)

감싹이 막 텄을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