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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된 레거시 서비스를 다듬으며 알게 된 것들

뷰티 플랫폼 '화해'에서 보낸 4년을 돌아보며...

by cherry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건 내가 끝내고 떠나야겠다'는 각오로 마주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입사 초기, 고객이 화해 서비스에서 화장품 정보를 충분히 탐색한 뒤에도 구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지점을 발견했다. 그 단절된 흐름이 계속 마음에 걸렸고, 나는 그 문제를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건 꼭 해결하고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품었고, 실제 해결까지는 간단할 것 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조직의 우선순위와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사용자 여정을 하나씩 정리해가는 데 4년이 걸렸다.



입사의 이유, 그리고 나만의 미션

이전 회사에서는 의사결정이 대부분 위에서 내려오기만 했다. 신규 서비스 구축을 담당했지만, 서비스 출시 후 디자이너로서 문제를 정의하거나 전략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는 제품의 본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환경, 바텀업 또한 가능한 문화를 원했고, 그래서 화해를선택했다.

실험 중심의 목적 조직 구조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이 나를 끌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푸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당시 나 스스로에게 설정한 기준은 세가지였다:

(1) 가설 기반 문제 정의 경험을 더 많이 쌓을 것
(2) 목적 조직 체계에서 협업을 경험할 것
(3) 레거시가 많은 오래된 서비스를 직접 다뤄볼 것



자리 잡기까지 스스로 정의하고 시작한 온보딩

입사 초기, 디자인팀은 목적 조직 중심으로 일하느라 팀 간 교류가 적었고, 기능 조직으로서의 역할은 다소 약해 보였다. 그런 구조 속에서 디자인팀은 다소 단절된 느낌이었고, 나 역시 어디에 소속감을 가져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담당할 스쿼드가 출범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공백기를 주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UX Checkup List (UX Evaluation)을 만들어 온보딩을 직접 진행했다.

기존 UX의 강점과 문제를 구조화해 우선순위를 재정리하는데 도움이 됐고, 이후에도 레거시 개선을 앞두고 유용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그 당시에 작성했던 UX Checkup List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이를 별도의 글로도 정리해볼 예정)

또한, 뷰티 산업과 유저 데이터를 분석하며 화해 유저만의 특성을 파악했고, 이 조직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스쿼드 중심 조직에서의 경험

화해는 목적 중심의 CFT(Cross Functional Team) 체계로 운영된다.
디자이너는 기능 조직인 디자인팀에 소속되지만, 실질적프로젝트는 목적 조직인 스쿼드 단위에서 수행한다.

나는 커머스, 검색 같은 핵심 영역의 스쿼드에서 일하며 다양한 목표에 맞춰 사용자 경험 개선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가설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
사용자 UT와 A/B 테스트를 통해 가설이 실제 고객 문제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 문제의 범위와 우선순위가 핵심이다.
빠르게 쪼개고 실험하고 실행하며 배우는 흐름이 중요했다.


(3) 신뢰 기반의 문화가 문제 해결 속도를 높인다.
직군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가 빠른실행을 가능케 했다.


(4) 기능 조직과 목적 조직 간 균형이 필요하다.
스쿼드 안에서는 목표 달성에 집중하고, 디자인팀과는 방향성과 일관성을 함께 조율하며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목적 조직 속 디자인팀의 자리, 어디에 있어야 할까?

초기엔 디자인팀의 역할이 애매하게 느껴졌다. 목적 조직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전체 서비스의 일관성이 흔들리거나 커버리지 밖의 사용자 경험이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디자인팀은 서로 연결되고 관점을 조율하며,
하나의 유기적인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허브가 되어야 했다.

새로운 리더의 합류와 함께 디자인팀은 기능 조직으로서의 방향성과 책임 범위를 정리해나갔다. 빠르게 실행하는 스쿼드 사이에서 디자인팀은 서비스 전체의 흐름과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데 공감이 형성되었다.


이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도들을 함께 해나갔다:


(1) 디자인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각 목적 조직이 빠르게 실행하는 과정 속에서도 공통 컴포넌트와 톤앤매너를 체계화해 빠른 실험 환경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서비스 내 UX Writing 등의 원칙들을 디자인팀에서 제시하고 정리하며, 전체적인 서비스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2) UX 리서치 조직을 제품 디자인팀과 함께 운영했을때 이점들이 많았다.

정량 지표 외에도 정성적 리서치를 통해 실제 고객의 목소리를 설계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3) 목적 조직 간의 변화 사항을 주기적으로 공유했다.
서로의 프로젝트가 미치는 영향을 함께 살피며 기능 간 단절을 줄이고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4) 팀 내 자유로운 공유 및 피드백 문화를 만들어 갔다.

정기/비정기 공유를 통해 각자의 문제에 공감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 가며,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더 나은 해결책을 함께 찾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5) 서비스 내 그레이 영역은 디자인팀에서 주도적으로 챙겼다.

운영 이슈로 발생한 그레이 영역은 조직 내에서 운영 티켓으로 접수했고, 이에 대한 세부 정책과 UX 방향성은 디자인팀에서 주도적으로 조금 더 챙기는 형태로 전체적인 서비스 경험을 신경 쓰려고 했다.


좋은 디자인팀이란 결과물 이상의 함께 논의하고 성장하는 문화를 갖춘 팀임을 실감했고, 목적 조직에서만큼은 '동료애'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레거시 시스템과 마주하며 배운 것들

화해는 10년 이상 운영된 서비스로, 다양한 레거시가 쌓여 있었다.
정책은 파편화되어 있고, 기능마다 과거의 결정들이 뒤엉켜 있었고, 기능 간 구현이나 OS별 정책이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도 많았다.

기존 맥락 없이 문제를 파악하는 일이 반복되며 피로감이 컸지만, 어느 순간 관점이 바뀌었다.


레거시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겠다

과거의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현재의 기준으로 더 나은 UX와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정책으로 바꿔갈 수 있었다. 이 관점에서 기존 정책을 재정리하며 오히려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또한 두 가지 중요한 교훈도 얻었다:


(1) 기능 조직일 때보다 문서화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느꼈다.

공통 정책이나 여러 목적 조직 간 참고할 내용은 공식 문서로 명확히 남기는 것이 협업과 일관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2) 레거시는 점진적으로 없애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체를 갈아엎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중요한 지면부터 우선 개선하고, 신규 디자인시스템을 점진적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이로 인해 과도기적으로 신·구 시스템이 혼재했지만, 결국 하나씩 정리되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한층 더 성장한 나,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들

화해에서의 4년은 내가 가진 디자인 철학과 관점을 명확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특히 다음 두가지 변화는 나를 근본적으로 성장시켰다.


(1) 서비스 전체 구조를 설계하는 시야

이전엔 기능 단위 최적화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상위 목표와 서비스 전체 맥락 속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실험 중심의 목적 조직 체계에서 일하면서, 지면단위의 최적화만으로는 서비스 퀄리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체감했고, 상위 목표에 맞춘 전략적 설계가 장기적인 성과와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해 상반기 동안 맡았던 '성분 검색' 프로젝트들은 단순검색 기능 개선을 넘어서,
'화해만의 검색 → 제품 탐색 → 성분'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화해만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문제 범위와 우선순위를 나눠 2주 단위의 크고 작은 기능 배포를 반복하며 큰 흐름을 만들어갔다.

이런 방식은 더 이상 '어떤 지면을 잘 만드는가'가 아닌 '서비스 전체를 어떻게 연결하고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디자이너로 나를 성장시켰다.



(2) 비즈니스와 UX의 균형을 잡는 관점

디자인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해석하는 능력도 함께 더 성장했다.

주니어 시절에는 사용자 중심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비즈니스 우선이라는 현실 속에서 UX의 균형을 설계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고객에게 지속 가능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비즈니스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작년에 진행한 '제품-상품 탐색 일원화' 프로젝트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배경 설명: 화해는 제품정보와 판매하는 상품정보에 대한 탐색 경험이 파편화되어 있었고 하나의 탐색 경험으로 구조 개선과 동선정리를 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고객의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고, 제품 탐색 수 증가와 구매전환율 향상이라는 명확한 비즈니스 목표 아래 진행되었다. 기존 사용자 유형별 주요 지표를 분석해 각 유형의 탐색 흐름과 이탈 지점을 파악하고, 각 유형의 목적과 맥락에 맞춰 탐색 동선을 전략적으로 재설계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단일 기능 개선을 넘어, 조직 내 UX 의사결정 기준을 제시하고, 제품을 더 전략적인 시야로 바라보게된 전환점이 되었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고객과 비즈니스 모두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



다음 챕터를 향한 고민

이제는 어떤 문제든 차근히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레거시는 확실히 어렵고 복잡하지만, 그 속에서 분명한 성장의 기회가 있었다.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은 몇 년 전부터 이어졌고 명확한 답은 없었지만, 스스로에게 다음 기준들을 물으며 방향을 정리했다:


(1) 여전히 hands-on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다.

(2) 일정 수준의 자원과 안전성이 있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

(3) 새로운 문제를 풀며 계속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4) 나는 결국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을 가장 즐긴다.


이런 기준을 통해, 나는 새로운 분야와 문제를 마주할 수있는 조직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번 선택이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 믿는다.






이전부터 가져왔던 고민, 그리고 화해에서의 4년은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반복하게 했다.


"디자이너는 조직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까?"

나는 디자이너가 단순히 요구사항을 시각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의 방향성과 조직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는존재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디자이너는 여전히 후반부에 투입되는 실행자로 머물러 있다. 제품의 상위 전략을 세우는 초반 단계부터 디자이너가 함께하지 못하면, 디자인은 단지 겉모습을 다듬는 역할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디자인은 예쁜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와 비즈니스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균형 잡힌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앞단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이해관계자 사이의 균형을 잡으며, 제품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주체적으로 조직 내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환경이 구축되어야, 비로소 디자인이 진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며,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디자이너로 계속 성장하고 싶다.

다음 챕터에서도, 나는 그 균형을 고민하며 한층 더 단단하게 나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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