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간병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님이 가실 때쯤, 아빠와 동생이 일을 마치고 들어온다.
그러면 나는 아빠에게 엄마를 맡기고
파워 외향인으로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친구를 만나러 떠난다.
하지만,
어느 날 아빠가 말했다.
아홉 시까지는 들어오라고.
신데렐라도 열두 시예요 아버지.
엄마의 취침시간은 보통 9시 30분이다.
그런데도 9시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는
"아빠가 불안해서" 다.
언제나 모든 것을 우선 하는 아빠의 기분.
앞서 말했듯 아빠는 내가 부재한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그렇다고 뭘 해주거나 한 거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어지간하면 집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학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번의 가출과 독립으로 이제 그런 속박들에서 모두 벗어났다고 믿었던 나는
하다 하다 저녁 통금이 생긴 것에
그것도 아빠의 기분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에 힘들어 몸부림치고 있다.
아빠의 기분은 왜 모든 것에 선행되는가.
아빠가 일을 시작하고 나자 묻어둔 기억이 떠올랐다.
생산 인구일 때 생색을 엄청나게 낸다는 것.
정말로 엄청나게.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이 하는 것처럼.
그래서 집에서는 양말 하나까지도 신겨 줘야만 하는.
그래 돈 버는 게 오죽 힘들면 저러겠냐.
더럽고 치사해도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 사니까 좀 참자고 어린 송어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최소한의 의식주 이외에는 딱히 들어간 돈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내가 생산인구가 되고 아빠가 내가 벌어온 돈으로 살게 되자
아빠를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내가 돈을 벌어오는데
왜
태도가 저렇지?
그리고 알아버린 것이다.
아빠는 돈을 벌어 와서 생색을 내는 게 아니고 사람 자체가 오만한 것이었다.
그의 출생 배경을 보면 아들이 나올 때까지 다섯 명 이상의 딸을 낳고서 얻은 장남으로서.
대접받는 게 당연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대접받고 싶었구나.
아. 어린 시절부터 그의 비대해진 자아는, 어머니나 누나들에게 우쭈쭈를 당하다가
자기 자식들이 그래 주지 않자
견디지 못하고 있는 거구나.
아빠는 지금 신나 있다.
생산 인구가 되었고,
간병의 모든 책임과 속박을 나에게로 던져버리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서운해할 정도로
아
무
것
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옆에서 불러도 대꾸를 안 해서 방에 있던 나나 동생이 가야만 하는 상황은 이제 어색하지도 않다.
잔다고 들어가서 모든 업무를 밖에 내놓고는
방에서 핸드폰이나 하고 있다.
아빠는 가끔 내게 묻는다. 나를 왜 이렇게 대접하냐고. 내가 네 아들이냐고.
... 이러는데 아닙니까?
아빠가 내 아들이었다면 논리적으로 패 버렸을 것이다. 뼈도 안 남게.
내 아들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아셔야만...
*
사실 뭐 크게 어디서 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로 9시면 문을 닫고
나도 고작해야 30분 먼저 나오는 게 고작이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그 30분이 제일 재밌는 거거든요.)
그래도 나는 저항할 것이다.
아빠의 기분 때문에 또 내가 뭘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니까.
그건 다시 퇴보하는 일이다.
나는 내 통금을 어떻게든 부숴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