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그리고 목포

by 꼬드kim

완도가 왜 가고 싶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섬이 가고 싶어서였는지, 모임의 주제 때문이었는지.

우리나라 섬은 3,000개 넘는다던데, 내가 가본 곳은 10개 안팎이었다. 여의도와 같은 곳을 포함해서 말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나 싶은 의구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물론 많은 섬을 여행해 본다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건 안다. 그러나 그만큼 나를 닫아두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가고 싶은 마음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몇 년째 벼르던 곳을 가야겠다고 정하고 나니, 일정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거리가 먼 만큼 휴가도 내야 하는데 긴 휴가를 내기도 쉽지 않고 비와 태풍도 들락거리고...

올해도 못 갈 것 같은 기분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떠나기 일주일 전 휴가를 내고 숙소부터 찾는다. 늘 나의 좌충우돌은 여행지에 대한 욕심에서 시작된다.

3박 4일이라는 시간이 완도 하나를 보기에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는데, 완도를 in 목포를 out로 정하고 해외여행하듯이 루트를 정하고 있다. 갈 때의 체력은 비축되어 있을 거라며 말이다.


목요일. 평일이다. 12시에 잤는데도 새벽 5시 눈이 떠진다. 짐을 싸 두지 않아서 발생하는 긴장감일 것이다. 대충 넣으면 될 것을 8시가 넘어서야 출발을 했다. 출근 시간대는 피했을 거라 예상했는데,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광명시를 지나 평택을 가는 데까지 3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오늘 보려고 했던 여행지는 구경할 수 있을까?'

속도를 낼 수 있는 시간이 되자, 하늘은 점점 더 짙은 잿빛이 되어가고, 후두둑 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와이퍼의 단계를 최고로 올려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만큼 내리쳤다. 신기하게 장거리 운전만 하면 비가 퍼부어준다. 운전 훈련이라고 시키는 듯이 말이다. 비는 나의 욕심을 꺾어버렸다.

“엄마! 점심은 완도 가서 먹어요.”라고 내 나름의 방법을 고집한다.

‘나는 여행을 즐기는 것이 목표인가? 완도까지 도착하는 것이 목표인가?’

내가 달려온 곳과는 사뭇 다르게 완도는 화창함을 내비치고 있다. '오늘 완도 수목원은 반드시 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점심도 포기하고 무작정 직진 했건만 애매한 내비게이션의 안내 덕분에 동일 구간을 두세 번 반복 이동하고 있다. 이러다가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듯하다.

결국 애매한 내비게이션의 가르침을 버리고 그냥 내달렸더니 4시 전 완도수목원이라는 표지판이 나에게 잘 왔다고 인사해준다. 장장 7시간이 걸렸다. 다른 누군가가 점심도 안 주고 운전해서 여기 왔다면 투덜거렸을 텐데 그게 장본인이니 못난 나를 구박할 수밖에.

완도수목원은 3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다고 했는데, 조금 후 방역 예정인 식물원부터 관람을 하라고 한다.

관람객을 찾아볼 수 없는 수목원의 한적함은 7시간 동안의 운전에 대한 보상인 거 같아, 최대한 느릿하게 이 여유를 즐긴다.


엄마를 위해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들을 찾아봤다. 요리를 잘하시는 엄마는 맛있는 음식에 대해 조금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완도에서 전복을 빼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 개의 글에서 발견한 집을 오늘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삼고 출발한다. 6시가 넘으면 어두컴컴해지는 낯선 곳. 그곳이 바로 여행지가 아닌가 싶다. 평일이라서 그런 것인지, 소개글들과는 달리 맛집이 아닌지 딱 한 테이블에만 손님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다.

회를 먹을 것인가 계획하고 왔던 전복을 먹을 것인가? 결정이 느리다. 여행 중 한 번 먹을 거라면 그냥 이런 한가함 속에서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전복세트를 시켰다. 전복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다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복 장조림은 색다른 맛으로 느껴졌다.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매력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 집을 전복 맛집으로 꼽는다면, 나는 김치 맛집으로 꼽고 싶어졌다. 매번 번거롭게 담가야 하는 김치 겉절이. 음식 잘하는 엄마를 둔 덕분에 까다로운 내 입맛에도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드니 겉절이 김치 맛집이 맞는 거 같다. 더는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쯤

좋아하는 전복죽이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망설여진다. 사실 지금 먹은 양만으로도 위경련이 발생할 지점에 이르렀으며, 이 맛있는 전복죽을 지금 먹는다 한들 소화도 못한 채 다 게워낼게 분명했다. 망설이다가 사장님께 죽만 포장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흔쾌히 가능하다며 엄청 먹어대던 김치도 담아주셨다. 관광지에서 쉽게 만나지 못했던 훈훈함을 나는 내 추억의 저장소를 충전시키고 있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나니 밤이 깊어졌다. 전망대에서 황홀한 불빛을 쏘고 있는데도 침대에 붙어 몸이 돌려지지 않는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하루, 정말 긴 하루였다.



늦잠을 자도 될 텐데 5시 반이 되자 눈이 또 떠졌다. 청산도 들어가는 배를 7시에 타라고 생체리듬이 깨운 알람이렷다. 어제 챙겨주신 죽을 아침으로 먹고 표를 사기 위해 숙소 앞에 있는 선착장으로 출발한다. 조금은 느긋해도 될 이 여행을 자꾸 바짝바짝 당겨서 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바다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진다. 준비를 하고 온 것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가야 하는 청산도 코스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버스에 타서 아저씨에게 루트를 물어보니, 상서 돌담마을부터 가서 둘러보며 내려오는 길을 택하라고 권해준다. 아저씨의 조언에 따라 일명 청산도 슬로길 중 비경이 아름답다는 7코스를 나는 선택했다. 아저씨는 정류소에 정차한다는 것을 큰 경적소리로 대신했다. 청산도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니 내 예민함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10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너무 밝다. 유난히 맨드라미가 많은 이곳이 어릴 적 추억을 새삼 돋게 한다. 7코스의 마지막인 목섬을 가려고 하는데 내비게이션이 또 말썽이다. 자꾸만 사람들이 사는 골목으로 나를 데려간다. 하는 수 없이 지도를 보고 내 맘대로 경로를 이탈한다.

목섬은 정보를 알고 오지 않았기에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다. 해가 쨍하고 떴음에도 불구하고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목섬의 나무숲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섬인데도 불구하고 등산을 하는 기분이다. 10월 날씨 치고는 제법 더운 25도를 넘어가는 날씨. 결국 나는 "엄마 그만 가자."라고 엄마를 설득했다. 한참을 내려와서 정자에 앉아 쉰다.

우리와 적당이 거리 둔 강아지 두 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다. 유난히 겁이 많은 나는 바짝 긴장했으나 엄마는 아까 본 강아지들 같다며, 가방을 열어서 뭐 줄 것이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음식이 나올 것을 알았을까? 강아지들은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걸 아는 엄마는 "앉아~"라고 얘기하자, 강아지는 엄마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얌전히 우리 앞에 와서 앉았다. 신기한 광경이다. 겁 많은 내게 그 어느 강아지도 이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던 적이 없는데, 이렇게 앉아 먹을 것을 기다리는 걸 보니 왠지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주인이 있어서 잘 길들여져 그렇겠지만 내게 동물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심어주는 좋은 강아지 두 마리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겐 밤 밖에는 없었다. 건네준 밤이 자기들 취향이 아니다 보니 어느샌가 다른 여행객을 향해 달려간다. 아쉽지만 안녕이다.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어서 알아두었던 짜장면 집을 검색했다.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나온다. 망설여졌다. 먹으면서 쉬어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완도로 가서 먹을 것인가. 더 둘러봐야겠지만 뜨거운 열기는 여행을 멈추게 했다. 그러던 사이 버스의 경적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그냥 가자고 하신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벌써 방전이 된 것이다. 아쉽지만 남은 여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배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식사 후 숙소로 돌아가 잠시 쉬기로 했다. 잠이 올까 싶어 누워 있어 보지만 역시나 내게 낮잠은 쉽지 않은 영역이다. 하는 수 없이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전망대를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로 열지 않는다고 한다. 해초라떼가 먹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여행지에 와서 먹어야 하는 현지 음식을 자주 못 접하고 마는 거 같다.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명사십리로 이동했다.

고우면서 단단한 백사장에서의 산책이 오늘 쌓인 피로를 다 풀게 해주는 거 같다. 곱디 고운 석양을 눈에만 담아두기엔 너무 아쉬워 카메라로 담아보지만 역부족이다.




목포는 느긋하게 가려고 했는데 또 새벽에 눈이 떠진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아무래도 새벽인 거 같다. 가까운 곳에서 생선 백반을 시켰다. 닭고기가 들어간 미역국. 현지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청해포구 세트장에 대한 평이 제각각이었다. 날씨가 좋으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듯싶어서 이른 아침부터 들어갔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서 바다를 끼고 있는 한가한 세트장은 다른 사극 세트장과는 또 다른 묘미를 줬다. 역시 여행은 날씨가 제일 중요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목포에서는 색다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현지를 잘 여행하려면 현지식을 먹어야겠지만 첫날 먹은 전복에 해산물이 좀 물렸던 것 같다. '파스타 집이 좀 머네'라고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순간 두 명의 여성이 우리를 지나쳐 경보 속도로 지나간다. 아차차.. 그들도 우리와 같은 곳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30여분을 대기하고 먹을 것인가,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해야 할 것인가. 벌써 1시가 넘어가는데 말이다.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의 배려로 나는 목포까지 와서 맛있는 샤프란 리조또와 오징어 먹물 파스타에 라떼까지 먹고 콧노래를 부른다.

목포에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들이 있었다. 한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머물러 쉬고 싶은 곳이다. 숙소에 짐을 넣어두고, 얼마 남지 않은 오늘 햇볕을 즐기기 위해 엄마가 좋아하시는 산-유달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달산을 등산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을 만큼 쉽다고 표현한 글이 낚시가 될 줄이야. 둘레길로 접어들어도 자꾸만 등산로로 빠지는 유달산은 결국 나에게 완주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지름길을 검색하는데 할머니 두 분이 골목길 바닥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골목길인지 할머니들의 집안 마당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그곳을 지나가라고 하는데... 하는 수 없이 나는 할머니들의 담소를 방해했다.

"할머니 혹시 이쪽으로 내려가도 되나요??"

"그럼 그럼, 요기 길이여. 내려와.~"

서울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한국의 거리 풍경은 딱 요즘 번화가로만 기억이 머물러 있었나 보다.

두 사람도 빠듯하게 걸어 다니기 어려울 공간이 이곳에 빽빽하게 있었고, 살고 계신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한나절 동안 돌아다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친구들과 한참 놀다가 엄마가 부르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던 그 골목길처럼 나의 애잔한 추억을 불러일으켜준다. 한참의 골목을 지나고 나니 축제를 준비 중인 목포가 내게 다가왔다. 코로나로 입장객이 제한되어 밖에서 살짝 감상해야 했지만 왜 나는 여유 없이 이곳을 내려왔는가를 되물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1박 2일이면 된다는 목포를 1004의 섬이라는 곳까지를 얘기해주시는데 왜 나는 이곳을 단 하루만의 시간만 가지고 내려왔는지 다시 한번 아쉬워할 뿐이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늦잠을 자고 교통체증이 시작되기 전 출발하려고 했으나...



결국 마지막 날까지 새벽 5시에 눈이 떠진다. 주제는 잘 지켜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겠다. 한옥의 특성상 다 같이 공동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곳이라 6시까지 잠을 자보려고 하지만 한번 깬 잠이 다시 올리 만무하다.

결국 7시쯤 갓바위라는 곳과 시간이 되면 근대역사박물관이라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남들과 다른 시간에 여행한다는 것은 박물관 같은 곳을 관람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대신 한가함이라는 것을 준다. 숙소로 다시 들어와 아침을 먹으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바로 서울을 갈 것인가, 아저씨가 추천한 고하도를 케이블카로 갈 것인가. 케이블카를 타려면 대기시간까지 합쳐서 6시간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결국 차로 목포대교를 건너서 다녀오기로 했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는 목포대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운전하고 있지 않았다면 영상을 촬영했을 것 같은 기분. 돌아오는 대교보다는 고하도 방향의 대교가 예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하도 전망대를 관람하기 위해 계단으로 오르고 있다. 정말 무더운 날씨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지만, 어쩌면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이곳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을 인내하며 걸어본다.

결국 12시가 넘어서야 서울로 나는 출발한다. 서울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교통 체증으로 체감한다. 다음 여행에는 꼭 더 느긋함을 가지고 오겠다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