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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알밤 Oct 06. 2023

21주 차: 신혼여행과 추석, 이건 살인가 아기집인가?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정했다. 원래는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으나 임신을 하게 된 후, 아버지께서 비행시간을 걱정하셔서 이왕이면 가까운 데로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제주도로 바꿨다. 목표를 휴양으로 바꾸고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들로 숙소를 예약했다. 9박 10일의 제주도 여행은 아주 완벽했다. 여름휴가 성수기를 지난 후인 데다가 추석을 2주 앞둔 시기여서 제주도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웨이팅으로 악명이 높은 정돈, 숙성도, 오는정김밥, 미영이네, 우무, 한림칼국수 등등 모두 웨이팅 없이 수월하게 먹을 수 있었다.


임신을 한 상태였지만 나름 결혼식 전 2주 동안 샐러드를 최대한 먹으며 관리를 했기 때문일까, 결혼식이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니면 20주를 넘어버린 주차 때문일까. 입맛이 폭발한 나는 매 세끼를 맛있는 걸로 찾아다니며 먹기 시작했고, 먹고 소화시킬 겸 주변 명소를 찾아다니며 걸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렇게 길게 휴가를 써본 적도, 먹으러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는 남편은 먹는 것도 힘들다며 복통을 호소했다. 또 나름의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 위해 하루 최소 한 번은 수영장에 갔다. 임신을 하니 몸도 잘 뜨는 건지 자꾸만 두둥실 뜨는 몸 덕분에 남편에게 수영도 배울 수 있었다. 물 공포증이 있음에도 수영을 배운 것이 너무 기뻐, 이날 썼던 일기에 ‘나는 신혼여행에 와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너무 멋있고 근사하다.’라고 적었다.


폭발한 내 입맛과 동시에 같이 폭발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차차의 태동이었다. 21주가 되며 신기할 만큼 움직임이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소한 느낌에 아침에 깨기도 하고, 쉬고 있다가 놀라기도 했다. 한 번은 카페 소파에 늘어져 둘 다 쉬고 있었는데, 내 옷 위로 배가 움직이는 것을 남편도 보았다. 이제 만지면 느껴지고, 눈으로 보여지는 차차의 태동에 신기하면서도 잘 있다는 신호 같아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마무리한 9박 10일 제주도 신혼여행은 3킬로의 살과 부쩍 커다래진 배로 증명되었다. 결혼하고 첫 명절인 추석 인사를 드리러 양가를 찾아뵀는데, 모두들 내 배를 보고 놀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차차는 내가 너무 먹어서 배 안 공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애미야 그만 먹어라’라는 신호를 보낸 게 아닌가 싶다. 드디어 다음 주면 태아 2차 정밀검사를 받는다. 이렇게 발로 차는 이차차 얼굴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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