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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소서 ; 작은 더위, 그러나

by 차정률
소서 (小暑) ; 작은 더위



2025.7.7(월)

최저온도 26도, 최고온도 34도

매우 무더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


소서라는 말은 참으로 귀엽다. 작은 더위, 원래 이말은 하지에 다다른 여름이 본격적인 더위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가장 높이 뜬 하지의 태양이 서서히 지구를 덮히다가 소서와 대서 사이에 완연한 무더위를 펼친다.


이 절기에 관한 속담은 이렇다, ‘소서 모는 지나가는 행인도 달려든다’, ‘소서가 넘으면 새 각시도 모 심는다’, '7월 늦모는 원님도 말에서 내려 심어 주고 간다’ 행인도, 새색시도, 그 고고한 원님마져도 일손을 돕게 되는 긴박감이 느껴진다. 소서는 모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서가 되기 전에 모든 손을 빌려 모내기를 끝내고 논매기를 해야한다.


논매기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볏대 사이에 갇혀있는 뜨거운 한여름 열기이다. 그 열기 속으로 고개를 숙이고 일하다 보면 질식할 것 같이 숨이 막힌다.
논매기의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개를 구부리고 일하는 등위에는 유월의 따가운 햇살이 살을 파고들었다. 웬만큼 두꺼운 옷을 입어도 어느 틈으로 기어들었는지 피부가 발갛게 익어있었다.
두꺼운 옷을 입으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옷이 감기고, 얇은 옷을 입으면 살을 태우는 고통이 따르니 논매기만큼 힘든 농사일은 없었던 것 같다.

출처 : 뉴스프리존(https://www.newsfreezone.co.kr)


앉아서 쉴 수 있는 밭매기와 달리(심지어 우리에게는 놀라운 밭매기 엉덩이 의자가 있다) 물이 대어져 있는 논에서의 일은 고작 허리를 펴는 것 말고는 쉬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벼의 잎에 베이거나 쓸리는 것도 다반사이고 거머리의 위험을 감수하기도 해야하는 일이다. 속절없는 여름의 해는 얼마나 뜨거울까.


힘이 들 때 다같이 노래를 부르면, 힘든 걸 잊을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같은 것을 내내 반복하다 겨우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고된 노동을 할 때에, 주거니 받거니 이어부르는 소리로 버텨내려는 노래들이 우리 나라 곳곳에 남아 있다. 근심을 토로하고, 신세를 한탄하고, 그러나 지금의 일들이 어떤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노래들. 지난한 슬픔과 묘한 용기가 있는 소리들이다.



울진읍 읍내리에서 거주하는 김동암(1919년생)이 부른 「논매기」의 악보이다.


(후렴) 이히야하아 아하헤헤에헤헤 하절로 노야
이히야하아 아하헤헤에헤헤 하절로 노야
비가 졌네 비가 졌네 남산 너메 비가 졌네
어뜬 사람 팔자가 좋아 부귀영화로 잘 사는데
우리같은 인간들은 무슨 팔자로 일하는가

전라남도 서남부 도서 해안지역에 분포하는 논매는소리. ©MBC


* 국립국악원 https://www.gugak.go.kr/ency/topic/view/935

"지금 이 소리는 00 지방에서 ~~ 소리입니다" 라디오를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추억의 소리 중 하나다. 국립국악원의 논매기 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를 권해본다


너무나도 심각한 더위


그러나 - 올해는 이 '그러나'라는 사잇말이 정말 잘 어울릴 것이다 - 오늘의 날씨는 작은 더위가 아니다. 이것은 아주아주 큰 더위다.


장마가 시작된다며, 바뀐 나라의 공무원들이 배수구의 쓰레기를 치우는 뉴스들이 자주 나왔다. 그러나, 장마는 정말 짧았다. 아이들을 위해 꺼내어 놓은 장화는 고작 한번 신겼을 뿐이다. 제주와 남부 지방의 장마는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알렸다. 이것은 역대 두번째로 짧은 장마 기간이라고 한다.


열대야와 폭염 주의보도 지속되고 있다. 이동네 내일의 예상 최고 기온은 37도이다. 서울은 소서인 오늘 첫번째 폭염 경보가 발령되었다. 경남 밀양은 오후 1시45분의 기온이 40도에 가까운 39.2도까지 올랐다. 평년 대비 10.2도나 높은 온도이고 밀양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후 7월 상순 기온으로 역대 최고치이다.


에어콘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더위이다. 문만 열어도 숨막힐 듯한 습기와 더위가 몰려온다. 이 더위에도 누군가는 밖에서, 선택지 없이, 일할 것이다. 더위를 피해 실내로 들어왔지만 발이 시리는 느낌에 죄책감이 든다. 에어콘이 필수품이 되어갈 수록 사치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의 어느 나무는 자연발화를 했다는 기사도 공포물처럼 읽힌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마냥 설레이기만 하는 계절이 되지 못하는 이유들도 늘어난다.


논밭은 아니지만 아파트 단지 안에도 무성히 잡초들이 자란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단지 안에서는 대대적으로 약을 뿌렸다. 강아지풀이나 클로버 꽃 반지를 만지는 아이들에게 여러날 풀을 만지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도 자연은 자기 모양 대로 자라 제 갈길을 간다. 기어코 초록을 밀어올린다.


곳곳에 피어오른 하얀 꽃들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무질서한 여름의 풍경들은 가끔 위안이 된다. 그중에는 여름의 꽃 수국도 있다. 수국은 하얀 꽃으로 피었다가 땅의 성분에 따라 색을 바꾼다고 한다. 작년 여름에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이다. 수국은 어떤 색으로 변해갈까, 더위를 피하기만 하느라 초록을 멀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는 수국의 목격자가 되어 보아야겠다.







경유해온 주소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012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www.kbmaeil.com/1001576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5/07/06/20250706500078?wlog_tag3=naverhttps://m.joongdo.co.kr/view.php?key=20110614000000251

https://www.gugak.go.kr/ency/topic/view/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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