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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하지 ; 여름에 이르다

by 차정률


하지(夏至) ; 여름에 다다르다

2025.6.21(토)

최저온도 20도, 최고온도 23도

하루 종일 흐림, 때때로 비


낮이 가장 긴 날, 밤이 가장 짧은 날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날, 10번째 절기인 '하지'는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태양이 오래 머문다는 말은 왠지 지구에 에너지가 꽉차올라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는 단단한 풍요의 눈부심이 느껴진다. 새삼스럽게 이런날이면 우리가 자연의 일부인 듯한 기분이 든다. 태양에 기꺼운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 올해 하지의 낮은 14시간 45분의 길이였다. 이것은 반대로 보면 밤이 가장 짧은 날이고, 하지가 지나면 밤도 점차 길어진다. 양의 기운이 점차 음으로 흐르는 시간이다.


하지에는 비에 관한 속담이 많다.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거나 "하지 지나면 개구리 울음도 더 멀리 간다"거나. 하지 즈음이 습도가 높고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 즉 장마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태양이 땅 위에 길게 머무는 동안 구름은 비를 모아왔던 걸까,

올해에는 20일 경 전국적인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제주에서는 12일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예년들에 비해 일주일이나 빨라 진 것이다. 또 1973년 이후 세번째로 빠른 장마의 시작이다. 보통 장마기간은 제주는 6월 19~20일경 시작해 7월 20일경 끝나고 남부지방은 23~25일경 시작해 7월 24~25일경 끝나고, 중부지방은 6월 24~25일경 시작해 7월 26일경 끝난다.


하지에 비가 온다면? 풍년이 된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냈다. 농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비이기 때문에, 기우제는 아주 중요한 나라와 마을의 행사다. 종로에 있는 사직단은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다. 서울살이 할 때 스쳐갔던 공간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까, 사직단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직접 살펴 세울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대대로 왕의 삶은 비와 가까웠다. 비가 내리는 일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우제의 유형은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산 위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산에서 불을 놓으면 타는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같이 난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하며, 연기를 통해 천신에게 기원을 전한다고도 합니다. 또 신을 모독하거나 화나게 하여 강압적으로 비를 오게 하기도 합니다. 부정물은 개, 돼지의 피나 똥오줌이 주로 쓰이지요. 전라도 지방에서는 마을 여인네들이 모두 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누면서 비를 빌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짚으로 용의 모양을 만들어 두들기거나 끌고 다니면서 비구름을 토하라고 강압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이 물이 떨어지도록 하는 유감주술로 부녀자들이 우물에서 키에 물을 붓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듯 물이 떨어지도록 하거나 아들을 못 낳는 여자들이 키에 강물을 담아 새어 나오는 물을 뽑아 밤에 황토와 체, 솥뚜껑을 우물가로 가지고 가서 고사를 지냅니다. 이때 한 처녀는 부지깽이로 솥뚜껑을 두드리고 한 처녀는 샘물을 바가지로 퍼서 솥뚜껑 위의 체에 물을 부으면서 “쳇님은 비가 오는데 하늘님은 왜 비를 내려 주지 않으시나요.” 하고 주문을 반복하지요.

_'모레는 하지,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우리문화신문, 2020


왕부터 군수들, 농부들과 아낙네들,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부정을 하거나 애청하는 방식으로 어떤 방법이든 해본다. 비가 오기를 바란다는 제의들은 사실은 참 우습기 짝이없는 비합리적인 행동이지만, 그 바람들 만큼은 쉬이 와닿는다. 삶을 위협하는 불운에 대항하기 위해서 마음을 모으는 일 만큼 좋은 연대가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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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의 풀들에 알알이 비가 맺혔다. 반짝거리는 물방울들에 잡초가 빛난다. 시끄러운 차 소리와 아이들의 뛰어다니는 사이 풀들이 자라고 있다. 요 며칠은 강한 바람이 불면서 굵은 비가 내려 며칠동안은 집밖에 나서기도 싫었다. 바지가 풍덩하게 젖고 양말을 신기 신은 날들, 하지만 이 불편함은 도시 삶의 애로 사항일 뿐이다.



여름으로 가자




이제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다. 따갑고 축축한 여름에 가장 신나는 건 아이들이고, 날마다 고민하는 건 내 몫이다. 잠깐 나가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려서 쉽게 지친다. 비가 많이 오면 나가 놀 수가 없어서 또 힘들다. "뛰지마"라는 말을 10분 마다 한번씩 해야하는 아파트 생활은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물놀이나 바깥에서 하는 놀이들은 내가 어린애일 땐 참 좋았는데, 바리바리 짐을 들고 수발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니 쉽게 용기가 안난다.


장마와 장마 사이 잠깐 날이 개였다. 옷차림은 몸빼바지가 좋다. 모기도 달려들지 않고, 넘어져도 덜 까지며, 바람이 숭숭 통하니까. 어른들의 지혜는 이렇게 아이들의 생활로 이어진다.

체공시간이 좋은 파란색 비행기는 지난 주에 첫째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집에서는 놀 수 없었다. (층간 소음 무섭다) 매일 '내일,내일' 하다가 말이 마음에 돌덩이처럼 쌓여 있었는데, 비가 멈춰 산책길에 데리고 나왔다. 머리 카락이 휘날리도록 아이들은 날리고 또 날린다. 처음 본 남자애가 다가와서 비행기를 주워주며 맴돌더니 비행기 날리는 연습을 같이 해준다고 이리저리 같이 뛰어 다닌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들을 좇아 잘도 뛰어 다닌다.


잠깐 사이에 다시 하늘이 어둡더니 비가 또 온다. 비행기는 또 언제나 날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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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와도 장마가 와도 놀아야 하는 게 아이들이다


ps.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째에게 묻는다.


"어떤 계절이 제일 좋아?"

"엄마"

"엄마가 계절이야?"

"응, 엄마는 다섯번째 계절이야."


너의 계절이 될 수 있어서 고마워




경유해온 텍스트들,


https://folkency.nfm.go.kr/topic/%ED%95%98%EC%A7%80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www.economytalk.kr/news/articleView.html?idxno=408685 2025년 장마기간 언제까지?... (기사)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9838

https://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24831 우리문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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