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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추분 : 치우침 없이

by 차정률


추분(秋分) : 가을의 분할점



2025.9.23(화)

최저 온도 19도, 최고 온도 25도

약간 흐리고, 지역에 따라 비



치우침이 없다


추분이 지난 이후로 여름의 기운이 사그라들고 가을이 깊어진다. 선명한 단풍이나 사락거리는 낙엽들, 달큰한 밤이나 아삭한 사과까지 가을을 상징하는 것들은 많지만, 가장 즐거운 것 동시에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쾌청한 하늘이다. "쾌청"이라는 단어는 가을 하늘로 완성되는 건가 싶을 만큼 잘 어울린다. 투명하고 시원하면서도 저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하늘들이 펼쳐진다. 구름이 머무는 자리들이 하늘 위에 또렷이 새겨진다.

추분은 일종의 가을의 선언이다. 이전의 계절들이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서막이었다면, 추분이야 말로 지금부터 가을이라는 계절로 바뀌어감을 알린다. 태양이 황경의 180도의 추분점에 통과하게 되며,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


태양 아래 지구는 치우침 없는 절반이 된다. 기울어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다, 태양의 위치가 지구의 적도 바로 위에 놓인다. 낮이 길었던 여름과 밤이 길어질 가을의 사잇점이다. 중국에서는 '계란 세우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추분이 되면 지구가 평형 상태가 되어 달걀을 세우기 쉽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춘분'과 '추분'의 두 번의 분점이 있고, 이 분점(Equinox)은 equal night을 의미하는 aequus nox에서 유래했다. 자연적인 균형점을 이루는 날, 정확한 중간점, 치우침이 없는 날이다.


치우침이 없는 거 어떻게 하는 건대?


치우침이 없다는 건 아주 매혹적이다. 대대로 우리 선조들에게도 중용의 미덕이 있지 않았나, 나는 현명한 중간이 늘 탐이 났다. 중간점이 이른다는 건 양극단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넓은 시야로 적절히 자리 잡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늘 어려운 문제다. 적절히, 적당히, 그 언저리 중간 즈음은 찾으려 하면 할수록 삐끗하기 쉬웠다. 내 몸을 잘 다루고 바른 곳을 볼 때야만 잠시 찾아오는 균형감은 동시에 나의 숙제다.


적당히, 균형감 있게 하기 가장 어려운 일상의 숙제는 바로 환절기에 옷 입기다. 추위에 약한 몸둥아리는 조금만 추워도 입술이 새파랗게 돼버리는데, 그렇다고 길게 입고 나가면 쉽게 더운 내가 진동하게 된다. 평소에 보지 않는 일기 예보와 최고 온도 따위를 챙겨보지만 실제와 예측은 늘 다르다.


이 숙제가 세 배의 어려운 과제가 된 것은 아이 둘이 태어나면서부터다. 하나는 나와 닮아 추위를 많이 타고, 하나는 나를 닮지 않아 쉬이 땀을 흘린다. 지난 주말에 얇은 긴바지와 짧은 소매 옷을 입혀 외출을 다녀왔더니, 첫째가 감기에 걸려버렸다. 간밤에 열이 38.5가 되어 버렸고 목주변이 화끈화끈 뜨거워진다. 교차 복용으로 약을 먹이고 물수건을 온몸을 닦아주자 겨우 잠이 든다. 그래도 밤새 체온계로 다시 열이 오르지 않는지 살핀다.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고, 아이가 먹고 싶은 간식을 챙겨 오랜만에 가정 보육을 한다. 서점에서의 마지막 철학클럽 수업이나 도서관에서의 쓰기 수업엔 가지 못했다. 엄마가 된 나의 흔한 결석 사유이다.


치우침 없이 균형감 있게 살고 싶은데, 엄마의 내가 끊임없이 나인 나를 밀고 들어온다. 그렇게 나는 애써 지키려는 균형점을 잃는다. 적절하게 사는 건 더 많은 준비물을 갖추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해열제와 바람막이 점퍼, 적절한 청소와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바라바리 싸들고 가을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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