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머니볼>&에세이<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후기
마라톤과 야구의 공통점은 둘 다 인생에 비유된다는 것이다. 두 종목 모두 비교적 긴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사뭇 다르다. 마라톤이 '긴 호흡으로 끝까지 달리는 끈기'를 말한다면, 야구는 '9회 말 2 아웃에서도 뒤집을 수 있는 역전의 기회'를 말한다. 어쩌면 페이스메이커를 놓치면 따라잡기 힘든 마라톤과, 끝날 때까지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야구는 인생의 서로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대척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끝이 어딘지 몰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을 살고, 빌리 빈은 혁신을 통해 스몰마켓 팀의 반전을 꾀한다. 두 사람 모두 끝없이 달리는 인생을 살지만, 방점은 서로 다른 곳에 찍혀 있다. 하루키가 방법(How)을 이야기한다면, 빌리 빈은 결과(What)를 이야기한다. 하루키의 소설보다 그의 '하루키적인 삶'이 더 자주 회자되고, 빌리 빈의 성적보다 '머니볼'로 대변되는 통계적 지표들이 더 주목받는 이유도 아마 그들의 서로 다른 관점 때문일 것이다.
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제는 그 기준들이 너무나 거대하다는 데 있다. 과정이 중요해서 하루키처럼 매일 10km를 달려야 하고, 결과가 중요해서 빌리 빈처럼 세상을 혁신해야 한다면, 솔직히 나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겠다는 무력감부터 든다. 그런 비범한 사람들만이 삶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꼭 그렇게 그럴듯해야만 할까. 한 번뿐인 인생을 멋지게 살아내고 싶은 욕망은 때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나아가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짐이 되기도 한다. 등산을 할 때 저 멀리 솟은 정상을 보지 말고, 내 발치에 놓인 다음 디딜 곳을 보며 마주한 풍경을 즐기라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이어져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곳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 걸음이 즐거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래의 대단해질 나를 상상하며 오늘을 소모하기보다, 당장 눈앞의 오늘을 소중히 누리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임을 늘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