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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Zero 시작

FIAT LUX | 빛이 있으라 

"진통 시작된 거 같아요."


새벽 3시에 어리둥절해하며 무슨 일인지 묻는 나에게 아내가 했던, 말하자면 D-Day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이었다.


나름대로 준비된 딸바보임을 자부해왔음에도 이 순간 어리둥절했었던 연유를 굳이 밝히자면 이렇다. 예정일이 4일 남은 상태였고, 초산이었으며, 10달의 산부인과 진료를 통틀어 조산의 가능성은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었다. 낮동안 아내는 가진통은커녕 그 비슷한 느낌도 느낀 적이 없었고, 다음날 오후 일정과 점심 메뉴를 정하곤 했다. 이에 더해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는 불과 3시간 전에 왕좌의 게임 시즌 7 피날레 에피소드를 막 보고 잠든 상태였던 것이다. 그게 출산과 무슨 관계냐고 할지 모르겠다. 잘 생각해보면 출산의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과 파이널 시즌을 코앞에 둔 7 시즌 간의 대장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처리하는 건, 한 인간이 동시에 수행하기 쉽지 않은 태스크다.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친숙할 수 없는 두 가지이기에 능숙하게 병렬 처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리둥절했고, 그래서 선언문을 듣는 순간 바로 몸이 준비태세로 돌입하지 못했다. 단순히 진통 만이 느껴지는 것이었다면 가진통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지켜본 후 아침에 병원으로 가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순간적으로 조금만 더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바로 이어 이미 양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방금 전의 나 자신에게 경멸을 날리며 온몸에 전류라도 흐르기 시작하듯 초 집중 준비태세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만 리허설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양수가 터진 경우 감염의 위험성이 커지므로 진통의 진행 여부와 무관하게 서둘러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는 장모님과 서둘러 출산 가방을 챙기고 나는 얼굴에 물만 묻힌 채 잡히는 대로 집어 입고서 차로 향했다. 합정동에서 강북삼성병원을 향하는 길은 매우 무난한 편이지만, 새벽 3시경에 진통이 시작된 산모가 탄 차량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도로에 차량의 숫자 자체는 적지만 손님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택시들이 하이에나 때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나를 노리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하이에나들 틈바구니에서 잔뜩 긴장한 채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다..



야간 담당 분만실 간호사는 예상했던 대로 입원 후 항생제 주사가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문제는 입원실의 선택이었다. 강북삼성병원은 '공명룸'과 '버딩룸'이라는 2개의 자연주의 출산 전용 특실이 있다.  두 방의 차이는 산모의 침대가 더블 베드인지, 의료용 침대인지이다. 아무래도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테마의 특성상 공명룸이 더 인기 있는 듯하고, 아내도 공명룸을 선호했다. 이 2개의 방에 이미 다른 산모가 있다면 일반 분만실과 일반 병실을 이용해야만 한다. 자연주의 출산으로 유명한 종합병원에서 왜 전용 특실을 2개밖에 만들지 않았을까 의아하기도 했지만, 요즘의 출산율에,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국내의 인지도 등을 감안할 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아무튼, 상황은 이랬다. 공명룸에는 이미 다른 산모가 있었고, 버딩룸은 비어있다. 공명룸의 산모는 8시간 정도 이후에 퇴원한다고 한다. 이에 더해, 버딩룸에 지금 입원한다면 시간이 너무 이르기 때문에 반나절치의 입원료를 더 내야 하는 상황. 결과적으로, 지금 버딩룸에 입원할 거냐, 아니면 일단 일반실로 입원한 후 8시간 정도 이후에 공명룸으로 옮기겠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간호사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떤 요소에 어떤 민감도를 지닐지 알 수 없었을 것이므로, 고민이 될 법한 요소를 미리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알려준 셈이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합리적인 지출을 할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한다면야, 일단 일반실에 입원 후 오후에 공명룸으로 입원하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시나리오별 확률과 비용을 계산할 사람은 없다. 큰 고민 없이 바로 버딩룸에 입원했다.


버딩룸은, 숙박업소를 기준으로 한다면야 터무니없는 시설이라고 하겠지만, 종합병원 병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포근하고 아늑한 특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명룸과의 차이였던 의료용 침대는 이후 지내다 보니 순간순간 장점으로 느껴졌다. 산모가 회복 중에 침대에 눕고 일어나거나 자세를 바꿀 때, 일반 침대와는 비할 수 없는 편의성 때문이다.


그렇게 아내는 침대에 누워 항생제 혈관주사를 맞고, 파도처럼 반복되는 진통을 맞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신이 차려져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4시가 넘어있었다. 이 순간으로부터 출산의 그 순간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병원이나 조산원의 분만실 상황은 전혀 아는 바 없지만, 입원 후 일련의 과정에서 이 병원의 특징이 어느 정도 느껴졌다. 기본적으로는 종합병원이자 대학병원이다. 각 시간별로 배정되어 담당하는 간호사와 의사들이 있고, 각각은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시간대가 바뀌면 의사와 간호사들도 바뀐다.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니 산모와 가족 입장에서는 다소 번잡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큰 병원 특유의 시스템 덕인지 인계 과정의 문제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점차 온전히 신뢰해도 좋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낯설고 긴장되는 상황에서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차이인가.


아내는 항생제를 맞아야 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내진과 초음파 검사가 체계적으로 이어졌고, 마찬가지로 별다른 소견은 없었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아내가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입원하게 됐으니 진통 가운데에서도 잠을 자보려 노력하라는 말을 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쌓아오던 기초지식에 의거하더라도, 진통이 길게는 10~20시간 이상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이대로 점점 강해지는 진통을 다 이겨내고서 아기를 낳으려면 잠을 자긴 자야 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내는 침대에 누운 자세로 진통의 사이사이에 눈을 붙여보려 노력했고, 나와 장모님이 침대 옆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당초 예정일보다 4일 빠른 것 만으로, 몇 가지 준비 안된 상황들이 발생했다. 우선 출산 계획서를 작성하지 못했다. 내용은 대략 정해두었지만 실제 작성하는 것을 바로 오늘 하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태아 검사 종류를 정하는 등의 실무적인 내용은 행정적으로 처리했고, 분만 과정에서 장모님이 쭉 함께 하실지, 우리 부모님은 언제 연락을 드릴지 등에 대한 내용은 정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상의를 해야 하는데, 어느덧 진통 주기가 2분 가까이 짧아져 사실상 계속 진통을 느끼면서 잠깐씩 진통이 가시는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의 애초 안내사항은, 원칙적으로 분만 과정에서 장모님이 밖에 계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통이 심해질수록, 순간순간 아내에 대한 장모님의 든든함은 절대적이었다. 내가 남편으로써 해줄 수 있는 정서적 지지와는 카테고리 자체가 전혀 달랐다. 그나마 배워둔 마사지나, 진통에 도움이 될만한 자세들도 당장엔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됐고, 그저 '아내가 아파한다, 아내가 더 아파한다, 아내가 훨씬 더 아파한다..'의 점층이 계속될 뿐인 것이다. 반면 장모님은, 3번의 출산 경험뿐만 아니라, 간호사라는 경력, 이에 더해 산모의 '엄마'라는 사실 자체로 인해, 매 순간 아내의 호흡 소리와 표정만으로도 진통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아내가 현재 어떤 상태일지를 알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내는 장모님이 방을 떠나지 않으시길 바랐다. 그리고, 나 또한 그랬다. 장모님의 그 큰 자리를 내가 채우는 것은, 내 능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냥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딱히 설명이나 설득의 과정이 필요 없는, 누구라도 그 공간에 있었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병원 측 어느 누구도 장모님이 나가셔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내는 잘 해내고 있었다. 모든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아내의 복식호흡이나 침착함에 대해 정말 잘 하고 있다는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는 응원의 의미로 더 좋게 말해주는 면이 있었겠지만, 당황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은 채 호흡을 이어가고 있음은 확실했다.


하지만 7시에 가까워지자 긴장감이 커졌다. 이제 새벽이 아니라 아침이 됐고, 명백히 밤을 새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어제저녁 이후로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이기 까지 했다. 어떻게든 잠을 자고 음식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진통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심했다. 첫 조식 식사가 들어왔지만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조금 있다 먹자고 말하며 식판을 한편에 밀어두었다. 밀어두면서 나는 생각했다. 당연히 시간이 갈수록 진통은 점점 더 세질 텐데, 지금 밀어둔 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그때 주사제를 확인하러 들어온 간호사에게 아내가 물었다. 아기가 나오려면 얼마나 남았을지. 간호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보통은 아직 한참 먼 거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자고, 먹어두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 말 중에서 '아직 한참 멀었다'는 말이 간호사의 입 밖으로 나올 때, 나는 아내의 표정을 보았다. 이렇게 힘든걸 반나절 이상 더 해야 하고, 그 가운데 뭘 먹고 자 두기까지 하라니. 좌절, 원망, 허탈, 슬픔이 뒤섞인 그 눈빛에는 아내가 지금 겪고 있는 진통의 무게감이 담겨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생물학적 남성인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바로 그 영역을 처음 목격한 것 같았다.


직전 번의 내진에서는 자궁문이 4cm가량 열린 정도의 진행이라고 했다. 전날 외래진료에서 이미 2cm가량 열려있었다고 했다. 산술적으로 계산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20시간 가까이 지나는 동안 겨우 2cm가 더 열린 것이니,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내의 눈빛은 그 새 담담함과 비장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애초에 이 모든 과정에서 흔들림이 없으셨다. 문제는 나였다. 앞으로의 기약 없는 시간 동안 내가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아무런 시나리오도 그려지지 않았다. 아내가 해달라고 하는 것들, 예를 들어 물을 떠다 주거나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알 수 없었다.


야간 당번에서 낮 당번으로의 인원 교체가 이뤄지는 듯했다. 임신 시절부터 가장 친숙했던 간호사가 출근한 듯 병실로 들어왔고, 아내도 나도 마치 십수 년은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냥 반가웠다. 극단적으로 긴장된 순간이라는 특징 있었겠지만, 실제로 아내의 임신 과정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알고 있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기댈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예컨대 다른 간호사가 '진행이 잘 되고 있다'라고 말할 때는 어느만큼이 응원의 의미이고 어디부터가 의학적인 얘기인지 추정하기가 어렵다. 반면, 그래도 몇 차례 대화를 나눠본 간호사가 똑같은 말을 할 때에는, 표정이나 뉘앙스에서 보다 많은 정보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평균적인 초산 산모보다는 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최소한 진행이 더디다는 사실보다는 훨씬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다가 8시 즈음에, 아내의 진통이 확실히 달라졌다. 아내는 본인이 현재 느끼는 증상 몇 가지를 설명하면서 간호사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바로 나가서 얘기를 전했고, 간호사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별 거 아니니 안심하라고 답했다. 그러다, 위에 말한 친숙한 간호사가 혹시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잠시 기다리라며 몇 가지 도구를 챙겨 병실로 따라 들어왔다.


간호사는 아내에게 증상을 구체적으로 조금 더 물어보더니, 내진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진 과정에서 간호사의 표정이 사뭇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진행이 정말 빠르네요'라던 말은 잠시 후에, 아기가 나올 준비된 것 같다는 말로 순식간에 발전했다. 아기가 곧 나온다고? 아직 한참 남았다고 한 지 한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믿을 수 없고 어리둥절 한 마음의 한 켠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조금 자리 잡았다. 최소한 아내가 십 수 시간을 더 진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후 불과 1분 사이에 병실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메디컬 드라마의 수술 장면에서 보던 장비들과 함께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위치를 잡는 모습은 마치 잘 훈련된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 오르는 것 같이 체계적이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연극 무대의 막이 바뀌는 것 같았다. 배경과 조명이 일사불란하게 바뀌면서 분명 같은 공간이었던 것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신했다.


그렇게, '진통'씬은 막을 내리고 '분만'씬이 시작됐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비유를 써가면서 표현하지만 그 시각 그 자리에서의 나는 그저 눈을 꿈뻑이며 '어?.. 어?.... 어!!?...'를 속으로 외칠뿐이었다.


여기서 잠깐 다시 돌이켜보자. 나와 아내는 불과 7~8시간 전에 왕좌의 게임 시즌 7 피날레 에피소드를 시청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막 잠들고 아내는 잠이 채 들기도 전에 아내의 양수가 터져 나왔고, 병실을 골라 입원한 후로 3시간이 조금 넘게 흘렀을 뿐이다. 새벽이라는 핸디캡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막막함을 받아들인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분만이 시작됐다. 시종일관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해봤다.  


강북삼성병원의 자연주의 분만 장면은 미묘한 조합이었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또는 퓨전 같다고 할까. 공간 자체는 자연주의 출산의 이미지와 걸맞은 아늑하고 친근한 분위기이지만, 엄연한 의료용 침대와 의료기구들이 갖춰져 있다. 의료진들은 다분히 적극적으로 아내의 상태를 살피고 진통 과정에 예의 주시하지만, 아무런 주사제도 약물도 개입되지 않는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반감이 있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의사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고, 집에서 둘라(doula)만 불러 출산하는 극단적 자연주의 출산 산모들이 보기에는 의료진의 개입이 다소 심하다는 인상이 있었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대안문화적 발상과 최신 의학이라는 기술적 혜택의 장점만을 합친 듯한 조합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균형감을 지니는 듯했다. 오히려 약물의 개입이 없기 때문에, 의사들은 힘을 주는 위치나 호흡의 방식, 아내의 컨디션 등에 훨씬 집중하는 듯 보였고, 이에 대한 가이드 내용이 무척 디테일했고, 이미 갖춰져 있으나 쓰이지는 않고 있는 장비들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안도감을 줬다.


분만 모드로 돌입하면서 나는 침대 밑에서 손을 잡아주던 자세에서 벗어나 침대 위로 올라가 아내의 뒤에 앉아 아내가 나의 배와 가슴에 기대는 자세로 바꿨다. 임신 이후 아내가 늘 얘기하던 분만 자세였다. 내가 나름대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진통 마사지나 자세 등은, 가수가 준비는 했으나 부르지는 못한 레퍼토리가 돼버렸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마지막곡 한곡만 갑자기 부르게 된 느낌. 어쨌든 상관없었다. 이 곡만큼은 나름 자신 있는 대표곡이었으니까.


한편 아내의 진통의 세기는 마치 지수(Exponential) 함수의 그래프와 같았다. 매 시점 지금까지의 상승치보다 훨씬 급격하게 진통이 강도가 상승했다. 매번 파도가 한차례씩 올 때마다 아내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고, 어느 시점부터는 남편으로서 그 모습을 보고 있기 힘들고 안쓰러웠다. 아내가 너무도 힘들어하는 모습에 눈물이 울컥 맺히려고 하는 시점에,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고 계신 장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렇게 내 아내를 낳으셨을 장모님이, 자신의 딸이 또 스스로의  딸을 낳기 위해 일생일대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 그 찰나의 순간에,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곧 태어날 내 딸의 딸의 딸의 딸로 이어질, 거대하고 무한한 굴레의 일면을 느꼈던 것 같다. 눈물이 참아지지 못한 채 흘러나왔고, 그 울음은 단순히 감동이라고는 표현할 수 없는, 마치 어린아이가 거대한 폭포나 광활한 협곡을 보고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어느덧, 아내는 진통을 참아낸다기보다는 아기를 내보내기 위해 힘을 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아내의 뒤에서 아내를 받치고 있는 자세로는,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가 훨씬 적었다. 안 그래도 별달리 하는 일은 없었지만 뭔가를 나르거나 말을 전할 수도 없어진 것이다. 아내에게 심호흡을 하라는 말을 계속 반복할 수도 없었기에, 그저 아내와 함께 호흡을 맞춰나갔다. 아내가 혹시라도 본인이 호흡을 멈추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 잊을 경우를 대비해서,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심호흡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는 호흡 주기를 맞춰야 하므로, 아내가 숨을 참으면 나도 어느 정도 숨을 참게 됐고, 이를 통해 아내가 느끼고 있는 고통의 정도와 지금 얼마만큼의 힘을 주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내 발목을 잡으며 힘을 주고, 나는 아내의 손을 잡거나 다리를 끌어올려주는 자세로 호흡을 맞춰나가며 수십 분이 흘렀다.


병실을 메우는 소리는 이제 아픔을 참는다기 보다는, 크고 무거운 것을 밀어내기 위해 힘을 줄 때의 소리에 가까워졌다. 아내가 내 앞에서 수백 킬로그램의 물건을 밀어낼 일은 없었으므로,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내의 소리였다. 소리를 바탕으로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그때쯤,  의사들이 말했다.


"교수님 모셔오겠습니다."



아내의 담당교수가 병실로 들어왔다. 분만 모드로 돌입한 직후에 마침 회진시간과 겹쳐 잠시 병실에 들렀던 담당교수는, 이제 누가 봐도 아기를 받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정말 얼마 안 남았나 보다 하는 생각에 희망감이 들었다. 파도가 올 때마다 예리한 눈빛으로 아내의 상태를 살피며, 힘을 주길 독려했다.


하지만, 분만의 막바지라는 것은 누차 말했듯 그 진통의 강도고 최대치로 끌어올려진 것이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매우 힘에 겨웠다. 임신 중에 왜 분만은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들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산모가 탈진하듯이 혼절해버리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그만큼, 매 순간 아내는 말 그대로 온 힘을 다 쏟아내고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매번의 파도를 매우 긴장한 채 함께 맞이했다. 나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리라는 확신으로, 아내와 나 사이에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음반인,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1955년 판을 재생했다.


이제부터는 '출산까지 몇 분이나 남았을까'라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이번 파도에 나오냐 아니냐'라는 횟수의 개념이 된 것이다. 마치 야구처럼, 시간제한은 없지만 마냥 기약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의 파도가 지날 때마다,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럴수록 아내를 돕는 의사들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칠 수밖에 없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이를 듣는 나는 묘하게 서운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힘든데 조금만 더라니. 온 힘을 다 쏟아붓고 있는데, 조금 더 하라니. 내가 그 상황에서 '거 말 좀 그렇게 하지 맙시다'라는 식의 얘기를 하고 얼굴을 붉힐리야 없지만, 아마 의사들도 산모와 가족들이 다소 야속하게 느끼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게다. 그만큼, 그 공간 전체의 긴장감은 한없이 날카롭게 버려져만 간다.


그 긴장감 속의 장면이 눈앞에 선하다. 내 앞에 아내가 누워있고, 두 다리 사이에 의료용 천이 몇 겹 쌓여있다. 이는 마치 커튼과 같아서 내 시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볼 수 없다. 그 커튼 뒤로 수술모와 마스크를 쓴 3명의 의사가 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는 가운데에, 젊은 편인 두 여자는 각각 좌우에서 아내의 다리를 하나씩 눌러준다. 그 뒤에는 수명의 간호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보조를 하고 있다. 이 찰나의 장면은 완전히 좌우대칭을 이루고, 이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영화 장면이라고 쳐도 연출이 과한 장면처럼 보였다. 마치 웨스 앤더슨이나 장 피에르 주네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미술이 과장된 장면. 이 극단적인 순간에서의 이런 비현실적인 시각 자극은, 그 긴장감을 한층 더 예리하게 만들었다.


서슬 퍼런 긴장감의 송곳에 찔려버릴 것만 같던 그때.


파란 커튼 뒤에 맑은 물 한줄기가 눈에 보이더니, 아기가 쏟아져 나오듯 탄생했다.


'쏟아져 나오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건 잘 알겠지만, 지금으로써는 그 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갑자기 그냥 그렇게 화면 안에 등장하듯, 내 딸은, 그렇게 태연하게 내 눈 앞에 등장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소리 내어 울었던 것 같다. 사실 어떻게 울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내의 그 길고 지난했던 진통이 끝났다는 사실, 그래서 아내의 얼굴에 일순간 환희가 찾아왔다는 사실, 아이의 이목구비와 손발 그리고 팔다리가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보인다는 사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이 아니라 엄마의 가슴 위에 누워 첫울음을 터뜨렸다는 사실,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수백 페이지의 글과 수십 시간의 이야기로도 부족할 것들이었다. 그 모든 게 단 한순간에 벌어졌다.


내 딸의 삶은 그렇게 마법과 같이 한순간에 시작했다.


마치 우리 모두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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