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빵집의 온기로 오늘을 굽는 제과점
요즘 나는 ‘애틋하다’라는 감각을 달고 지낸다. 신기하게도 일이 바쁘고 힘들수록, 새로운 일과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스쳐 지날수록 그 끝에는 늘 ‘애틋’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 말 하나로 모든 시간이 설명되곤 한다. 잘 지나왔구나. 또 하나를 건너며 무언가를 배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애틋해진다.
레트로 빵집 아카이빙을 시작하고 두 번째로 마주한 ‘임대문의’ 표시. 그럴 때마다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평소라면 미리 전화를 해보고 방문했을 텐데, 당연히 영업 중이겠지 하고 넘겨버린 내 안일함 때문일까.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미리 리스트업해 두었던 지도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제기동에서 쌍문으로 넘어가려던 길이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 한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내 눈과 발을 동시에 붙잡는 외관의 가게를 발견했다. 파스텔 블루와 샛주황이 어우러진 간판, 그리고 그 위에 적힌 ‘파이’라는 글자. 수제 파이 전문점일까, 카페일까. 잠깐 서서 가게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너무 오래된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현대적인 분위기도 아닌 그 어중간한 지점이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가게 앞을 서성이며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보았다. 돌이켜보면 이에나파이의 첫인상은 ‘애매모호함’이었다.
그래도 일단 본능이 이끄는 대로 들어가 보자 싶었다. 문을 열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빵을 진열하시며 밝게 인사를 건네셨다. 가게 안은 외관에서 느껴지던 유럽 프로방스풍 분위기를 그대로 안쪽까지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뒤 “배달 주문!”이라는 알림 소리가 울렸다. 옛날 빵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 잠깐 낯설게 느껴졌다.
매장 안에는 장식 요소가 유난히 많았다. 어딘가 어렸을 적 방문했던 파주 영어마을의 한 가정집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동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들르는 곳 같았고, 배달 주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쇼케이스에는 제철 딸기가 듬뿍 올라간 딸기 케이크가 가득했고, 빵집 전체에서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함께 느껴졌다. 매장을 가득 채운 선반에는 빵과 과자들이 빼곡히 놓여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곳곳에 놓인 인형과 상패, 자격증들은 묘하게 친숙했고 편안했다. 전 연령층을 고려한 듯 메뉴 종류도 꽤 다양했다.
시그니처 메뉴가 여러 개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멜론빵과 오이바게트, 그리고 소금빵이 특히 인기가 많다고 했다. 더 인상 깊었던 건 같은 건물 2층과 3층에서 빵과 케이크를 직접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아저씨가 빵을 만들고, 따님이 케이크를 만들고, 어머니가 계산과 홀 운영을 맡는다고 했다. 가족이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어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문득 나 역시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이 공간에서 따뜻한 기운이 더 또렷하게 전해졌다.
<이에나파이>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족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좋아하는 마늘바게트, 막내가 좋아하는 멜론빵,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 좋아하는 것 앞에서 사람은 참 쉽게 애틋해진다. 그리고 어쩌면 빵이란 그런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꺼내 보이게 하는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빵 봉투에도, 매장 한쪽 벽면에도 기차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궁금해서 여쭈어 보니,
“이에나가 외국의 한 기차역 이름이에요. 어감이 예뻐서 그렇게 짓게 됐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이라는 건 어쩌면 사람들의 잠깐의 머묾과 지나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장소겠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곳.
<이에나파이>도 그런 공간 같았다. 동네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잠깐 들러 빵을 고르고, 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작은 역 같은 빵집. 그래서일까. 이곳을 떠나는 발걸음에도 어김없이, 애틋함이 따라붙었다.
[이에나파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1212
방문 정보
• 방문 날짜: 2026.2.21
• 방문 시간: 오후 2시경
첫인상
• 외관부터 유럽풍 분위기가 느껴지는 빵집으로, 동네 제과점이라기보다 작은 카페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 하늘색과 주황색이 어우러진 색감이 밝고 산뜻한 인상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클래식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 오래된 빵집이지만 촌스럽기보다는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이 강했다.
역사
• 약 20년 이상된 동네 빵집이다.
•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로, 아버지는 빵을 만들고 딸은 케이크를 담당하고 어머니는 홀 응대를 맡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 오래된 빵집 특유의 안정감과 가족 가게의 분위기가 함께 느껴졌다.
외관
• 프로방스풍 제과점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
• 곡선 장식이 있는 단조 간판 브라켓이 달려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짐
• 가게 앞 데크에는 화분과 우산꽂이 등이 놓여 있어 생활감 있는 풍경이 만들어짐
• 출입문에는 시그니처 메뉴를 소개하는 POP 포스터가 붙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메뉴를 볼 수 있었다.
• 전체적으로 유럽풍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는 듯한 인상.
내부
• 우드 선반과 패턴이 있는 리넨을 사용해 따뜻한 분위기가 전해짐
• 케이크 쇼케이스 아래 받침대 디자인이 독특해 시선이 자연스럽게 케이크 쪽으로 향했다.
• 제조 공간과 홀 공간이 분리된 구조였으며, 매장 안에 들어왔을 때 빵 냄새가 강하게 나지는 않았다.
• 아파트 단지 상가에 위치한 가게라 주민들의 방문이 많은 편으로 보임
• 매장 안에서는 배달 주문 알림 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배달 서비스도 활발히 운영되는 듯했다.
• 한쪽 벽에는 아치형 원목 벽 수납장이 설치되어 있어 마치 가정집 거실 같은 분위기가 전해짐
• 음료 메뉴판과 전자동 커피머신도 준비되어 있어 간단한 음료와 함께 빵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음.
• 작은 인형 장식들이 곳곳에 놓여 있어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레트로 요소
• 손글씨로 작성된 메뉴판
• 옛 서체와 일러스트가 들어간 벽 장식들이 붙어 있었다.
• 자체 제작한 스티커 사용
• 베이비 마들렌, 로쉐 코코, 씨앗 고소미 등 예전 제과점에서 볼 수 있는 메뉴 이름들이 남아 있었다.
메뉴 및 진열
• 동네 단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가게이지만 배달 앱을 통해 주문하는 손님들도 많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메뉴 구성이 다양한 연령층을 고려한 형태로 보였다.
• 쌀가루로 만든 빵을 강조하고 있었고 실제로 쌀빵이 인기 메뉴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 식빵, 단팥빵 같은 기본적인 빵부터 시작해 샌드위치, 멜론빵, 바크초콜릿 같은 비교적 트렌디한 메뉴까지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 냉장 제품, 실온 빵, 케이크 쇼케이스가 각각 구분되어 진열되어 있고 매장 동선도 비교적 깔끔한 편.
• 가격대 역시 동네 빵집답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
구입 메뉴
멜론빵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해서 선택했는데 멜론 크림이 넉넉하게 들어 있었고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허니마늘바게트
마늘 스프레드의 양이 과하지 않아 부담 없이 먹기 좋았고 단맛도 적당한 편이었다.
동물 쿠키
기본적인 버터 쿠키 맛이었지만 모양이 다양하고 귀여워 간식처럼 먹기 좋았다.
단팥빵
팥의 당도가 조금 있는 편이었고 식감은 쫄깃함과 약간의 푸석함이 함께 느껴지는 스타일이었다.
로쉐 코코
코코넛 칩의 식감이 살아 있었고 버터 풍미와 잘 어울렸다.
초코 머핀(서비스)
작은 사이즈였지만 촉촉한 식감이 좋았다.
씨앗 고소미(서비스)
전통 제과 메뉴 같은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기타
• 재방문 의사 있음
• 멜론빵 추천
• 다음 방문 시 오이바게트 시도 예정
• 바쁜 상황에서도 사장님 응대가 매우 친절.
한 줄 정리
• 오래된 동네 빵집이지만 배달과 다양한 메뉴 구성을 통해 지금의 생활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는 현재형 제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