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당신은 큰 실패를 겪고, 벼랑 끝에 몰린 사업가다. 채권자들은 이미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험상궃은 사채업자들은 당신의 가족을 인질로 삼고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당신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훔치기로 마음먹는다. 훔치기만 하면, 브로커들은 비용을 지불하기로 되어 있다. 그 돈이면 당신의 빚은 깔끔하게 탕감할 수 있다. 가족도 되찾고, 손에 쥐는 건 없지만 깔끔하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삼엄한 경비속의 미술관으로 향한다. 그렇게 당신은 미술관에 모셔져있는 예술가의 작품과 마주한다. 정교하고, 강렬한 설치 미술 작품. 마치 레고로 조립한 듯한 성인 남자 키는 되어보이는 탑의 모습이 보인다. 당신은 도둑 파트너와 함께 그 탑을 통째로 훔쳐서, 아지트로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당장이라도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상황...!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대가의 작품을 분리해서 꽁꽁 숨긴다. 마지막 부품을 숨기자마자 경찰들이 아지트에 들이닥친다. 경찰들의 조사가 이뤄지지만, 브로커의 도움으로 당신은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머리가 아프다. 조각낸 대가의 작품을 다시 합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인용했던 말이고, 피카소가 했던 말로 소문이 나있다. 그 진위보다 중요한 건 저 말의 뜻일테다. 위대한 예술가라는 양반들이 양상군자처럼 훔치기나 한다니? 그게 모방과는 또 무엇이 다른가? 어쩌면 그냥 내로남불의 한 종류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훔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이 말은 이해가 된다. '제대로' 훔친다면, 당신도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모방은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이라는 뜻이다. 즉, 다른 것의 형태와 구조, 특징을 있는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원본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쉽다. 물론, 모방이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회사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결재 서류들은 기존 것을 모방하여 사용하지 않는가? 효율성을 위해서는 모방도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것이 주 목적인 창작에선 훈련을 위해서 사용된다 (물론, 모방도 새로운 창작이 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모방에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더 정확히는 '왜'가 필요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지,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따지지는 않는다. 어짜피 원본이 있음을 알고, 원본을 본떠서 사용했음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훔치는 것은 다르다. 원본을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을 정도, 더 치밀하게는 원본을 지워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원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왜'가 필요하고, '이유'가 필요하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왜 이렇게 연결했는지, 왜 이런 가격이 나왔는지 등등 모든 것에 '왜'가 붙어야 훔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원본의 정수를 찾아낼 수 있다. 정수를 찾았다면, 이제는 그 정수를 나만의 것으로 표현해서 원본을 모르게 만들어야 한다. 즉 해체-분석-차별화-조립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진정한 훔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는 컨닝페이퍼(치트 시트)를 만드는 일화와 유사하다. 컨닝페이퍼를 만들다가 결국은 머릿속에 공부할 내용이 정리되어 시험을 잘 치루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제대로 훔치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모방과 훔치기를 혼동하거나, 제대로 훔치지 못하는 경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특히 효율적이고 획일적인 결과 도출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비선호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제대로 훔치기만 한다면 어느새 당신도 대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서두에 쓴 도둑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제대로 훔쳐서 물건을 팔았다면, 그는 앞으로 예술가로의 제 2막을 시작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그저 모방만 했다면, 그는 지금도 브로커에게 쫓기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