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간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는 사례를 생각해보았다.
-은퇴 후의 공허함
박 모 씨는 대기업에서 30년을 근무한 뒤 정년 퇴직했다. 처음엔 자유가 주는 해방감에 여행도 다니고 늦잠도 즐기며 만족해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 점점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아졌는데 마음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프리랜서의 불안
디자이너 김 씨는 회사 생활을 접고 프리랜서가 되었다. "내 시간의 주인은 나"라는 말에 들떠 자유를 만끽하던 것도 잠시, 일정이 비어 있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커피를 연거푸 마시고, 해야 할 일 앞에서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가 오히려 나를 방황하게 만든다”고 했다.
-주말이 두려운 직장인
평일엔 업무에 쫓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던 박 대리는 주말만 되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진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불쑥 떠오른다. 그는 차라리 바쁜 평일이 낫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유가 주어질수록 마음은 더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 불안의 근원은 무엇일까
-‘자유’는 선택의 부담을 수반한다.
시간이 많아진다는 건 곧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 무엇을 해야 의미가 있을지,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정해진 일과 속에서는 비교적 평온했던 마음이, 자유라는 이름의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잃는다. 자유는 달콤하지만, 동시에 방향 없는 방황을 부른다.
-성과 중심 사회에서 '존재'는 불안하다.
우리는 흔히 역할과 성과를 통해 자신을 확인한다. 직함, 책임, 성취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이다. 시간이 많아지면 그 질문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들려온다.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는 현대인은 결국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을 시간 속에서 직면하게 된다.
-일상이라는 구조가 사라졌을 때
일과 루틴은 무의미해 보일 수 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내면의 질서를 지탱해주는 틀이다. 시간이 많아져 루틴이 무너지면, 그 빈틈을 스스로 메워야 한다. 그러나 자율은 훈련되어야 작동한다. 훈련되지 않은 자율은 방황으로 이어지고, 그 끝에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안한' 상태에 도달한다.
나는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생각보다 게으르고,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지 못한 채 살아온 느낌이 든다. 사업가인 친구나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교가 된다.
시간이 많으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불안하고, 시간이 없으면 또 촉박함에 짓눌리며 초조해진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류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불안을 극복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식의 결론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불안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섬세한 문제다.
불안을 시간 안에서 해결하는 일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은퇴를 앞둔 내게 이 불안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곧 다가올 현실이고, 나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