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불어온 바람
아득히 먼 옛날, 지금의 인도네시아 제도—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섬들—그곳에는 바람을 읽고 별을 쫓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뗏목과 카누를 타고 바다를 떠다녔다. 그들의 언어는 파도처럼 부드럽고, 그들의 씨앗은 어느 땅에서도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몽족 사내 '바눔'은 노를 저어 북쪽을 향했다. “저 강줄기 너머에도 쌀이 자라나고, 하늘이 맑다더라.” 그의 눈은 결심으로 반짝였다.
그의 일족은 메콩강 하류에 터를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은 농경의 땅이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더 깊은 내륙으로 들어갔다. 무성한 숲을 지나 산을 넘어 도달한 고원지대에서 또 다른 무리가 자리를 잡았고, 그들이 훗날 크메르족으로 불리게 된다.
거대한 사원의 나라
세월이 흐르고, 메콩 강변의 크메르족 후예들은 앙코르라는 나라를 세운다.
하늘과 닿는 사원을 짓고, 신을 위해 도시를 만들었다.
그중 한 여인, '소마'는 매일 새벽 사원 앞에서 기도했다.
그녀는 백성의 고단한 삶을 잘 알았기에, 신에게 빌었다.
“우리 땅에 평화를 주시고, 아이들이 배불리 먹게 해주소서…”
앙코르 와트의 돌벽에는 그런 백성들의 삶과 신앙이 새겨졌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북쪽 산맥 너머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니…
산을 넘어온 그림자
중국 운남, 대리국의 땅.
그곳은 불교가 번성하고, 산과 호수가 품은 고요한 왕국이었다.
하지만 1253년, 하늘이 뒤집혔다. 몽골의 군대가 대리국을 불태웠고,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한 타이족 청년, '룩 싸이'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울었다.
“아버지, 우린 이곳을 떠납니다. 하지만 반드시 다시 꽃을 피우리다.”
그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수십 년에 걸친 대이동이었다.
그들은 메콩을 건너고, 태국 북부의 깊은 계곡에 정착했다. 란나 왕국의 시작이었다.
또 다른 타이족 집단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 수코타이, 그리고 아유타야라는 강국을 세웠다. 그들이 이 땅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앙코르는 쇠퇴해 가고 있었다.
강의 서쪽, 또 다른 민족의 이야기
메콩강 서쪽, 이라와디 강이 흐르는 땅.
그곳에는 언젠가부터 버마족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한때 파간 왕조라는 대제국을 일구었으나, 몽골의 군대 앞에 무너지고 만다.
왕국이 무너진 날, 어린 버마 왕자 '난다'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도망쳤다.
“우린 다시 일어날 거야, 반드시.”
그때 미얀마 동부 산악지대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대리에서 밀려난 샨족들이었다. 그들 역시 타이계였고, 고요한 마을들을 하나씩 세워갔다.
동해의 민족, 그들만의 길
하지만 인도차이나 동쪽 해안, 홍강이 흐르는 평야,
그곳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 땅에는 오래전부터 비엣족이 살았다.
중국 진나라가 그들을 점령했을 때, 천 년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피 속에는 자유의 불꽃이 있었다.
939년, 장군 응오꾸엔이 외쳤다.
“바익당강의 조류는 우리에게 유리하다! 지금이 기회다!”
그날, 그들은 한나라의 후예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문명을 지켜 나간다.
중국의 영향을 받되, 그 속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겼다.
강과 산이 기억하는 이름들
세월이 흐르고, 제국은 사라졌으며 국경은 바뀌었다.
하지만 이 땅의 강과 산은 기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크메르족은 캄보디아가
중국 대리국의 타이족이 태국으로
이라와디강의 버마족과 샨족등은 미얀마로,
홍강의 비엣족은 베트남으로.
그렇게, 인도차이나는 하나의 여러 이야기의 집합체가 되었다.
수많은 민족이 떠돌다 정착하고, 싸우다 평화를 찾고, 지배하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의 베트남,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는
그 고대의 사람들, 강과 산과 별을 믿은 자손들이 만든 나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