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세 나라 기업들의 '조용한 전쟁'
호찌민에서 택시를 타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수의 사람들이 일본 혼다 오토바이를 몰고, 아파트 단지 앞에선 중국산 CCTV가 작동 중이다. 그리고 그 아파트의 홈쇼핑 채널에선 한국의 주방용품이 소개된다.
이 도시에서 일본, 중국, 한국의 기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같은 시장에 들어섰지만, 걷는 길은 너무도 다르다.
‘신뢰의 속도’를 믿는 일본
일본은 베트남에 일찍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1990년대 초반, 베트남이 개혁개방(도이머이)을 선언하던 시점부터였다.
그들은 먼저 다리를 놓고, 도로를 깔고, 항구를 지었다.
일본의 ODA 자금은 하노이의 수많은 육교와 고속도로에 남아 있다.
"도로를 먼저 놓아야, 공장이 들어설 수 있다"
-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 관계자의 말
일본 기업은 기다렸다.
자국의 기업이 들어가기 전에, 현지와의 신뢰를 쌓는 데 수십 년을 투자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베트남 자동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도요타),
오토바이 시장은 혼다가 압도적이다.
느리지만 깊이 들어간다.
이것이 일본식 베트남 전략이다.
생산기지를 옮기는 중국
미중 무역전쟁 이후, 중국 제조기업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베트남 북부 지방에는 새로운 산업단지들이 생겨났고,
많은 곳에서 중국계 기업의 간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가장 빠르게 실천하고 있는 나라다.
자국내 인건비와 규제 비용이 올라가면서,
베트남은 새로운 탈출구로 주목받았다.
그들은 거대한 자본을 들고,
공장을 세우고,
로컬 인력을 빠르게 채용하고,
공급망을 통째로 옮겨버린다.
“협력보다는 통제, 신뢰보다는 속도”
- 베트남 현지 전문가의 평가
하지만 문제는 이미지와 정치적 리스크다.
베트남에는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존재한다.
때문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더라도,
중국 기업은 ‘보이지 않는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빨랐지만, 깊지 않았던 한국
한국은 삼성과 LG 덕분에 베트남에서 성공적인 진출국으로 인식된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수출의 25%를 차지하며 국가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거대한 존재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방식은 일본과 중국과는 또 다르다.
“빠르게 들어가, 브랜드를 만들고, 시장을 선점하라.”
- 한국 기업 특유의 ‘속도 중심 전략’
초기에 제조업 중심이던 진출은,
최근엔 한류를 기반으로 프랜차이즈, 화장품, 식품 등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성'과 '현지화'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현지화 없이 한국 가격과 방식을 그대로 들고 왔다가 실패했고,
프랜차이즈는 2~3년 만에 문을 닫기도 했다.
또한 파트너십보다는 독자 진출을 선호하면서
현지 정부나 고객과의 관계에서 일본처럼 뿌리를 내리기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마무리
베트남이라는 시장은 단순히 ‘동남아의 생산기지’가 아니다.
젊은 인구, 늘어나는 중산층, 빠르게 도시화되는 내수 시장...
이제는 누가 가장 오래, 깊게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일본은 신뢰로,
중국은 자본으로,
한국은 콘텐츠와 브랜드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오래 살아남는 전략은 ‘관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