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배우는 유통의 본질

by Yan

한국의 식품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태국에서는 그 존재감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K-Food 열풍이 아세안 전역을 휩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국만큼은 예외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이 질문은 단지 실패의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태국이라는 나라가 식품과 유통에서 얼마나 완성도 높은 구조를 갖고 있는가"를 되묻는 것이기도 하다.


태국의 산업 구조와 경제 개요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산업 구조가 정교한 나라다. 전체 GDP의 약 60%는 서비스업에서 나오며, 제조업 비중은 약 30%, 농업은 10% 내외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주는 인상만큼 단순한 구조는 아니다.

제조업에서는 전자와 자동차 산업이 눈에 띈다. 일본, 중국, 유럽 자본이 대거 진출해 있고, 이들 기업은 태국을 생산 기지이자 허브로 활용한다.

농업과 식품가공업은 여전히 국가 브랜드의 핵심이다. 태국 쌀, 고무, 해산물 등은 수출 중심이며, Thai Union, CPF(Chareon Pokphand Foods) 같은 글로벌 식품 대기업은 국내 생산망을 바탕으로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

서비스업, 특히 유통과 관광은 GDP 기여도와 고용 면에서 압도적이다. 하지만 유통은 단순한 소비 채널이 아니다. 유통을 장악하는 기업은 곧 생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힘을 갖게 된다.


경제지표로 보는 태국의 무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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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아세안 주요국 중 경제 기초체력이 안정적인 국가이며, 외국인 자본에 대해선 분야별로 매우 선별적인 태도를 보인다. 특히 소매 유통과 식품 가공 부문에선 자국 기업 보호 성향이 뚜렷하다.


태국 유통의 특이성과 우리가 배워야 할 전략

1) 수직통합형 유통 지배력

- 대표적인 예는 CP 그룹이다. 이 그룹은 가축사료부터 가공식품, 물류, 편의점(7-Eleven)까지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통합돼 있다. 이는 단순한 계열사 체계가 아니라, 시장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 유통망을 가진 기업이 곧 생산과 소비를 조율하는 주체가 된다. 따라서 외부 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2) 현지 파트너십 중심의 외국 자본 전략

- 태국은 유통업에 외국 기업이 직접 지사를 세우는 것을 매우 제한한다. 대신 합작회사 또는 라이선스 계약 형태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 코스트코, 월마트, 까르푸 등의 대형 유통업체가 철수한 배경에는 이 구조적 제약이 크게 작용했다.

3) 다층 소비계층에 대한 세분 전략

- 태국은 선진국형 소비자와 개발도상국형 소비자가 혼재하는 시장이다. 고급 백화점에서부터 로컬 재래시장, 길거리 포장마차까지 동시에 존재한다.

- 하나의 제품군만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CP, ThaiBev 같은 기업은 이 이원적 소비구조를 철저히 이해하고 있다.


CJ와 이마트는 왜 실패했나

1) CJ제일제당

- 한때 태국 시장에서 K-Food 열풍을 타고 HMR 제품군으로 접근했지만, 현지 입맛과 소비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접근했다는 비판이 있다.

- 독자적인 진출을 시도했으나 유통망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CP 계열에 밀려 확장에 실패했다.

- 무엇보다, 태국 시장에선 '제품력'보다 '채널력'이 우선인데, CJ는 이 구조를 간과한 것이다.


2) 이마트

- 태국 진출 자체를 본격화하지 못했다. 유통 규제가 많고, 수익성이 낮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 실제로 태국내 대형마트 시장은 Tesco Lotus(지금은 CP가 인수), Big C 등 현지화된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으며, 외국 브랜드는 거의 철수했다.

- 이마트는 베트남, 몽골 등에는 진출했으나 태국만큼은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진입을 못하였다.


태국에서 배워야 할 것

태국은 단순히 '진입'한다고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이 나라는 유통의 장악력이 곧 경제 주도권을 의미하며, 이를 둘러싼 규제와 관습은 외국 기업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벽을 만든다. 따라서 한국 식품 기업들이 태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지 제품 현지화가 아니라, 유통 구조의 통제력, 현지 파트너와의 관계 형성, 다층 소비자 전략이다. 태국은 동남아의 실험장이 아니라, 완성형 유통시장이다. 이 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전략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매년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 CJ 같은 식품회사들의 진입은 계속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통업체의 진입은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식품회사만으로 시장을 장악하기 어렵다. 이게 태국을 어렵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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