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함이 사라진 자리의 나 -
제2화. 명함이 사라진 자리의 나
부제: 텅 빈 여백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다.
젊은 날, '명함'은 나의 이름이자 무게였고, 내가 세상에 던지는 가장 강력한 증명서였습니다. 명함 케이스의 두께가 곧 나의 존재 가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명함에 인쇄된 직함, 회사 이름, 직통 전화번호는 나를 지탱하는 든든한 '외부의 갑옷'이었습니다. 나는 그 갑옷을 입고 전쟁 같은 하루를 보냈고, 세상은 그 갑옷의 빛깔과 무게로 나를 평가했습니다.
퇴사를 결정하고, 마지막 출근을 마친 날, 나는 습관처럼 남아있던 명함들을 책상 서랍에서 꺼냈습니다. 빽빽하게 인쇄된 글자들은 이제 아무런 효력도 없는, 그저 종이 조각일 뿐이었습니다. 나의 '외부적 정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갑옷을 벗어던진 자리에는 찬 바람이 불었고, 나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요한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명함이 사라진 자리의 나는, 누구인가?'
젊음이 '성취'를 쫓는 시간이었다면, 중년은 '성숙'을 찾는 시간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직함과 직장이라는 튼튼한 다리를 잃자, 나는 허공에 선 듯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텅 빈 여백'이 오히려 가장 풍요로운 공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외부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내 마음은 나직하게 속삭입니다.
직업이 나를 정의하던 시절, 나는 늘 '남의 문장'을 살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가치, 상사의 지시, 조직의 목표가 나의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명함이 사라지자, 나는 비로소 '나의 문장'을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궤적을 반추하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 질문은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우물 바닥에 고인 맑은 물처럼, '본질적인 나'를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나는 그 빛을 따라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잘했던 일, 그리고 가장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의 조각들을 주웠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나만의 가치와 방향에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명함은 사라졌지만, 그 위에 새겨져 있던 나의 경험과 지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나의 '내면의 문장'이 되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회사라는 큰 이름 뒤에 숨어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삶 그 자체'로 나를 설명합니다.
잔잔하게 퍼지는 아침 커피 향 하나에도 감사하며, 창가에 앉아 나의 글을 쓰는 이 고요한 시간이 나를 채웁니다. 이 고요는 외로움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섬세한 준비'입니다. 나이 듦은 끝이 아니라, '깊어짐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진짜 이름'으로 된 새로운 명함을 쓰고 있습니다.
이 명함에는 직함 대신 ‘나의 진심’이, 회사 이름 대신 ‘나의 철학’ 이 새겨져 있습니다.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진짜 내가 서 있었다.'
다시 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