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에게 배우는 인내의 리듬 -
제3화. 식물에게 배우는 인내의 리듬
서문: 하루의 온도를 기록하는 사람
나는 하루의 온도를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온도는 내가 내린 커피 잔의 미지근함이 아니라, 거실 한쪽에 조용히 서 있는 작은 화분에게서 느껴집니다.
식물들은 언제나 그 자리, 흙 속에 뿌리를 박고 서 있습니다. 눈에 띄게 자라지 않아도,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견고한 침묵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속도 경쟁이 멈춘 이른 아침, 나는 커피 잔을 들고 그 작은 생명체 앞에 섭니다. 커피가 식는 속도보다 훨씬 느린 그들의 리듬 앞에서, 나의 초조함은 잠시 멈춥니다. 그 멈춤은 가장 강력한 전진의 언어라는 것을, 이 식물들은 말없이 가르쳐줍니다.
흙 속의 치열함
나에게 식물은 '인내'라는 철학을 물체 화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고작 푸른 잎사귀 몇 장뿐입니다. 하지만 그 땅속, 어둠 속에서는 매 순간 치열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흙의 섬유질을 뚫고, 물과 양분을 끌어올리며, 자신을 지탱할 기둥을 만들고 있습니다.
잎이 단 한 장 늘어나는 데 수 주일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긴 침묵의 시간 동안, 우리는 식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성장의 시간'이며, '보이지 않는 인내의 리듬'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던가요. 우리는 타인의 화려한 결실(꽃)이나 눈에 보이는 성공(잎사귀)에만 초조해합니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뿌리를 내리는 시간의 가치
나의 삶에도 수많은 '침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악양골에서 강남까지 이어졌던 치열한 방랑의 시대, 그리고 60대에 AI를 배우고 글쓰기를 시작한 새로운 도전의 순간들.
《귀인의 필적/작가의 저서 중》의 기록처럼, 나는 늘 남들보다 느리게 배우고, 느리게 결과를 냈습니다. '막내의 특권'처럼 순수와 인덕으로 돌파하려 했지만, 내면에는 늘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초조함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잎사귀를 키우는 시간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나를 지탱해 준 것은 화려한 커리어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모든 순간을 배움의 기회로 삼으려는 '내면의 강인한 뿌리'였습니다.
식물은 뿌리가 깊어야 폭풍우를 견딥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정하더라도 스스로 자립하여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만드는 것이, 이 모든 '배움의 방랑'이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열매입니다.
영원한 현역의 태도
나의 '배움의 방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60대에도 AI를 배우고 글쓰기 작가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영원한 현역'으로 살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입니다. 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그 느림은 조급함이 아니라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신중함에서 나옵니다.
식물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빛과 물에 감사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성장합니다.
이 작은 화분 앞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나에게 가장 깊은 위로가 됩니다. 나를 가장 잘 위로하는 것은, 내가 내린 커피 한 잔의 온기 속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여유'였습니다. 인생의 속도는 빠를수록 좋은 게 아닙니다.
'나에게 맞는 속도가 있습니다. 나의 뿌리를 깊게 만드는 리듬이 바로, 가장 견고한 인내입니다.'
오늘의 문장
'인내는 멈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어나는 성장이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는, '스마트폰 앨범 속 잊힌 사진 한 장 : 기억의 본질을 주제로, 과거의 찰나와 현재의 충만함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모닝브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