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뿌리째 뽑혀 옮겨심긴 늙은 나무
은퇴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였다. Pre School 이 끝난 후 돌보미 학원에 인계되기 싫어 운다는 외손녀 소식이 들린다. "뿌리째 뽑혀 옮겨 심긴 늙은 나무 신세" 된다는 친구들의 충고를 야멸차게 거절하고 65번째 생일을 기점으로 목회 은퇴를 했다. 그리고 서둘러 맞벌이하는 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5살 된 외손녀 손을 잡고 유치원을 오가며 피부치가 나누는 정의 달콤함과 생명력을 즐긴다. 교문 앞에서 손 흔들며 "빠-이"하고 돌아서 걷는데 아련하게 낯익은 "빠-이"하는 소리가 뒤에서 또 들린다. 손녀가 돌아서 손을 또 흔들고 있다. 짠한 마음으로 나도 같이 흔들다 시간에 떠밀려 다시 돌아서 걷는 손녀를 아리게 바라본다. 사랑은 이별의 아림을 낳고 아림이 인생을 예술되게 함이 새롭다. 발길을 돌려 걸으며 "뿌리째 옮겨 심긴 늙은 나무"는커녕 사랑과 인생이 익는 행복에 미소를 짓는다.
집으로 돌아온 난 Youtube의 영상들을 이것저것 크릭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일찌감치 학교로 간다. 교문 앞에 도착하니 하나 둘 모이는 젊은 엄마들 사이에 흑일 점으로 할아버지 한분이 외로이 있다. 동지를 만난 듯 반갑게 인사하고 수다 떨다 손녀가 나타나자 하던 대화를 동댕이쳐 버린다. 그리고 손녀를 번쩍 들어 안고 비비다 얼른 내려놓고는 "재미가 있었느냐? 학교가 어뗐냐?" 말을 거니 어깨를 으쓱하며 짧게 "굿"해 버리고 놀이터로 가잔다. 얼마나 사모했으면 엄마 만나는 것보다 놀이터로 먼저 가는지! 애잔한 마음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네와 미끄럼과 몽키 바와 시소를 번갈아 즐기는 손녀를 바라보며 판단과 결정이 옳았다는 확신에 하늘이 더 맑고 넓고 푸르다.
하루하루의 임무를 콧노래와 함께 수행하며 몇 주가 지나고 토요일이 되었다. 3살 베기 손자까지 데리고 자동차에 자전거와 스쿠터를 싣고 큰 놀이터 공원으로 원정을 간다. 엄마가 준비한 먹거리들을 배낭에 멘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주들과 화창한 CA 날씨에 하는 나들이가 신이 숨겨 놓은 은밀한 정원으로 소풍 가는 듯하다.
셋이 두리번거리며 원정 간 공원의 새로움을 즐기다 모래로 된 어린이 놀이터에 다 달았다. 손녀와 손자가 신발과 양말을 벗어 내게 던지곤 잠시 머뭇거리다 어린이들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할아버지는 아랑곳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놀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내게 돌아와 충족을 시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손주들을 바라보며 사랑을 위한 존재가치에 행복을 누린다.
시간이 내가 누리는 행복을 질투하는가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주들이 고쳐야 할 행동들을 보인다. 경쟁 치열한 세상에서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려면 양보와 나눔 그리고 질서를 지킴이 길들여져야 하는데....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간섭하니 종이 왜 주인의 일에 참견하느냐 듯 짜증을 부린다. 이해시키고 설득하다 실망하고 싸우며 미움과 사랑을 넘나 듦이 반복되며 외로움과 피곤이 쌓인다.
돌아갈 시간이 기다려져 시계를 보고 또 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말 대신 "10분 후에 출발하자"고 했다. 30분을 더 달란다. 승강이를 벌이다 20분으로 절충을 했다. 20분이 지났다. "가야 할 시간" 하니 들은 척도 않는다. 놀이를 중단시키며 "약속했잖아?" 하니 손녀가 "더 놀게 해 달라"며 떼를 부린다. 누나와 다투기를 일삼던 손자도 어느새 동지가 되었다. 둘을 향해 "엄마가 저녁 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 어두워지고 있잖아" 설득하기를 구걸해도 소용이 없다. 한계점이라 여겨져 손녀의 두 손을 힘으로 잡아끌고 자동차에 태우려 했다. 손녀는 궁둥이를 뒤로 빼고 버티다 모자란 힘을 울음으로 채운다. 힘겹게 길거리에서 싸우다 돌아서 "빠이" 하고 혼자 가는 연극을 하니 털썩 주저앉아 울며 불며 항거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쌍한 눈으로 흘긋거림에 마음이 모질어진다. 우는 녀석을 들어 강제로 자동차에 태우고 "오늘 저녁은 NO Youtube" 했다. 이를 지켜보던 손자는 순순히 자동차에 오른다. 운전하는 동안 손녀는 울음을 그치고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말없이 딸이 준비한 식탁에 앉았다. 딸과 사위도 우울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말없이 저녁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자 손자가 보란 듯 아이팻을 들고 나온다. 난 이것을 빼앗으며 오늘은 No youtube 했다. 손자는 "으앙" 하며 집 전체가 떠나갈 듯 큰 소리 내어 울음을 운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면서..... 사위와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와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허겁스레 질문을 한다. 전후의 속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손녀가 "할아버지가 아이 팻 빼앗았어." 하며 해야 할 말은 빼고 고자질한다. 미안함과 억울함과 황당함이 뒤섞인 채 말없이 딸과 사위 눈치를 살핀다. 할아버지의 파트타임 육아에 당연히 편들어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허망하게 딸과 사위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말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어정쩡하게 싸움이 끝나고 상한 마음으로 모두들 각기 자기 처소로 흩어져 버렸다. 은퇴 후 쉼과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모든 일을 포기하고 도와주고 있는데 감사는커녕 불쾌해하다니! 스포일 될 아이들 염려와 함께 내 존재와 처신에 문제가 있는지, 서러운 마음으로 돌아다본다. 친구들의 충고가 떠 오른다. "뿌리째 뽑혀 옮겨 심긴 늙은 나무가 될 거야."
2. 공감의 언어로 가족 사랑 회복하기
외로움과 서러움이 무한한 시간을 통과하며 어설픈 너그러움 뒤로 숨는다. 이에 힘입은 난 한가로운 시간 딸과의 서먹 거림을 풀 마음으로 "대화하자" 제안을 했다. 딱딱한 식탁에 둘러앉아 커피를 나눠마시며 어색한 분위기를 살갑게 하려 시시껄렁한 수다를 떨다 본론이 툭 튀어나온다. "난 지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너절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 침구를 깔끔하게 정돈하고, 샤워 후 베쓰 탑과 세면대를 말끔히 닦으며, 너희들에게 누 되지 않고 오히려 희생하며 돕고 있고, 목회하다 깔끔하게 은퇴하여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실을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 한마디였다.
빙빙 돌리는 숨바꼭질 대화법을 꼭 집어 지적이라도 하는 듯 딸은 차갑고 직설적인 말로 응수를 한다. "그렇지 않아 아빠, 아빠가 다녀온 화장실에는 늘 흔적이 남아 있어. 아빠가 사용한 접시도 싱크대에 매일 똑같은 모양으로 있고...." 인식하지 못했던 허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구체적인 사실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당황하는 나를 아예 TKO 시키려는 듯 이어지는 진심의 고백에 멘붕이 온다. 자신과 아무런 상의 없이 자기 집에 온 것과, 엄마 아빠가 목회하며 부부 싸움할 때 받은 상처로 아직 나를 미워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면 쓴 목회자라 여기고 있단다.
관계를 회복하려 시작한 대화였는데 불에 기름을 부은 듯하다. 자신을 도우려 온 것에 감사하며, 존경스러운 목회자로 여길 것이란 기대는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머리가 멍하다.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있는 부부 싸움에 이렇게 큰 상처를 입고 상황 모두를 비틀어지게 보고 있다니! 그동안 예의 바르고 친절한 말들은 내숭이었단 말인가? 아빠와 딸이라서, 사랑하니까, 진심을 알 것이라 믿고, 신뢰하는 관계라 여기고 산 어리석음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피를 나눈 가족인데 소통이 되지 않아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다니!
할 말을 잃은 침묵 속에서 갈등을 겪는다. 인연을 멀리하고 편하게 살까? 잃어버린 가족 사랑을 찾을까? 이때 소통되지 않는 상태로 아들 딸을 양육하며 무지와 오해로 주고받은 상처를 나누는 일이 먼저라는 소리가 내면에서 인다. 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질문하고 다시 듣고 또 듣는다. 나를 완벽하다 여기고,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서로 다른 감정과 상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명령하며 욕심 찬 기대를 가지고 살아온 내가 보인다.
부모는 자녀를 조건과 기대 없이 희생하며 양육하고, 자녀는 이 은혜를 헤아려 알고 감사할 때 동물들이 누리지 못하는 가치와 행복을 누리는데..... 고도로 발전하는 과학스러운 문화의 세상을 넋 놓고 쫓아가며, 기대를 품고 양육하다 실망하고 아파하며 그 원인을 타락한 세상과 세대차에 돌리며 한숨 쉬며 살았다. 허점 많은 존재들이 서로 다른 감정과 지식과 경험과 성격을 가지고 서로 갈등하고 다투다, 정직한 대화로 소통하며 사랑과 인격을 익히며 진리의 길로 인도를 받아, 다툼을 사랑싸움으로 만들고 행복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모자란 생각은 사회에서 준 권위 뒤에 숨기고 일방적인 잔소리로 자녀들을 내 마음에 들게 하려 하였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교육 효과가 없다고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다.
어리석음과 미안함 그리고 미세한 감정과 품었던 꿈을 세세하게 나누며 영혼이 소생함을 느낀다. 불의를 상대해 싸울 때,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결단할 때, 자신의 희생을 통한 섬김을 할 때, 높은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시며 신비한 에너지를 주시고, 아름다움이나 자연스러운 질서와 의로운 일들을 볼 때 평화로움을 느껴 너그럽고 여유 있어지게 하고, 거짓을 말할 땐 스스로 기죽어 비천해지게 하시다 그래도 계속할 땐 콧 등에 땀까지 나게 하시는 공감의 언어가 느껴지면서.....
인간의 손과 지식과 감정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변화된 환경도 보인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화된 사회에서 치열해진 생존 경쟁으로 형성된 이기적인 문화와 가치관으로 핵가족을 선호하다 결혼을 회피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기를 포기하며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며 공감되는 언어를 잃어버린 세상.
뿌리째 뽑혀 옮겨 심긴 늙은 나무가 된 서러움 가운데 공감의 언어를 깨닫게 하시며 인도하는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이 공감의 언어가 할아버지와 아들 딸 그리고 어린 손녀 손자 사이의 세대차와, 지식과 능력과 성격의 다름을 이해하고 어우러지게 하여 능력 있고 가치 있어 행복한 삶이 되게 함에 설음 가운데 미소가 인다.
천국을 분명히 알고 누리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고 너희 안에 있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새롭다. 하나님의 영이 공감의 언어로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여 진리에 이르러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며 살게 하는데..... 난 머릿속에 있는 알량한 데이터와 감정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며, 힘겨울 때면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구하고, 만족한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율법을 지키며 살려 애쓰다 위선자 되는 신앙생활을 했다.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하는 정직한 대화를 통해 사랑이 회복됨을 느낀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즐기며 인생과 행복을 딸 집에서 익혀가는데 이 삶이 소문이 났는가 보다.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우리도 가지고 싶다" 고. 그리고 그렇게 몇 주 시간을 보내고 4살 5살 손녀 둘을 부모님에게 맡기고 부부가 미래를 위한 몇 달간의 출장을 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