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자아의 껍질을 깨는 것이 행복의 기초
by지준호 Sep 06. 2022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할 때면 식탁 위에 수저와 냅킨을 준비하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식사를 하고 난 후 비타민을 부인에게 주고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먹으며 아내의 건강을 지켜주는 존재 가치를 느낀다. 이렇게 보람 있는 일을 어느 순간부터 중단하였다. 그리고 비타민을 혼자만 먹는다. 삐쳐서 …. 이러곤 남모르는 끙끙거림의 고통을 겪는다. 가슴속으로 들리는 음성이 있어서…. 또 삐쳤어? 그렇게 속이 좁아? 비타민 하나도 못 줘? 그래서 혼자만 먹어?
이 소리에 비참함을 느끼지만 삐침 풀기가 쉽지를 않다. 부부간에 내숭 떨 일이 뭐 있다고…. 알량한 자존심의 힘이 참으로 세다. 이러한 자존심과 주시는 음성 간의 힘겨운 싸움을 끝내고 비타민을 아내에게 건넨다. 진땀이 난다. 멋쩍은 웃음을 웃으며 '삐치니 비타민 주는 것이 힘들어지네, '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아내의 눈동자에서는 초롱초롱 빛을 발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내 눈동자와 아내의 눈동자 사이에선 사랑의 불꽃이 튄다. 영혼을 둘러싼 단단하고 두꺼운 겉 사람을 깨고 나온 속 사람들의 만남이 두 눈동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듯.....
난 겉 사람만 만족시키며 산 어리석음을 본다. 속 사람이 만족하고 속 사람이 만나야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맛보는데, 속 사람은 숨겨 놓고 겉 사람을 만족시키며 살았다. 그래서 늘 가면을 쓰고 허풍에 쉽게 노예가 되곤 하였다. 약점, 죄, 상처, 부끄러운 일들은 깊은 곳에 꼭꼭 숨기고 진실을 말할 줄 모르며..... 이러며 자연스레 남들에게는 잘하고 내 가족에게는 건성으로 대했다. 이러한 이중생활과 체면 치례가 남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가족에게는 무시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남들에게 받는 존경의 말들도 겉치레의 말들이 대부분 인 줄도 모르고.....
이러한 어리석음을 깨달으라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아무리 겉 사람을 위해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며 부끄러운 곳을 가려도 시간이 지나면 말라 부서지는 나뭇잎을 밀치고 수치가 드러나는 진리를 말씀하시려..... 그래서 결국 외로움과 두려움 근심 걱정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노예 신세가 되고, 자존감은 사라지고 용기는 쇠하고, 진실한 친구는 없어지고, 하나님이 주신 창의력과 능력과 지혜는 잃어버리고,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행복과 은사들은 멀리멀리 도망가 버리게 되는데....
속 사람이 나를 주관하게 하라고.... 그리고 속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서 당당하게 한 고유한 인격체로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라고 내 속 사람을 보게 하시는 사랑이 보인다. 비타민을 다시 아내에게 주며 단단한 껍질을 깨고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기쁨, 순수한 사랑의 맛, 세상을 보고 분별하는 능력, 만난 상황의 사실관계를 진리 안에서 바르게 보는 실력, 정직한 영들과 진정한 친구 되는 기쁨을 깨달으며 신앙생활은 속 사람을 찾는 일임이 새롭다.
이렇듯 하나님과 소통된 가운데서 오는 자유와 능력과 지혜로 세상살이를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삶 가운데서 주님을 닮은 창의력과 생명력으로 세상을 밝게 하며 누구에게나 다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신앙인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겉 사람이 필요한 것들 채우기 위하여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구함이 욕심 가운데서 나온 것들인 줄도 모르고….
주어진 모든 환경은 주님이 주신 것인데 이 가운데서 단단한 겉 사람의 껍질을 벗고 주님과 교통 하며 그 안에서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것이 지혜 중의 지혜임이 새롭다. 죄 있는 인간 세상이라서 단단한 껍질로 나를 보호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껍질을 깨고 나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을 누리는 즐거움을 맛보며..... 봄을 만난 생명들이 서로에게 뒤질세라 오묘한 색깔로 새싹과 꽃을 피우며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자신을 드러내듯, 갈등이 사라지고 사랑을 나누는 기쁨, 영혼이 맑아지고 가슴이 트이는 상쾌함과 존귀함과 생명력이 단단한 껍질을 깨는 나에게 봄을 맞이한 생명들이 누리는 환희를 누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