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랑과 정직함과 아픔이 어우러지는 곳에
이별의 아픔과 애처로움을 품고 그리워하던 외할머니를 반년 만에 만났을 때였다. 평창의 눈 덮인 산과 강과 들의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에 폭 빠져 먹고 마시고 수다 떨었다. 신이 질투하여 시간을 짧아지게 한 것일까? 창밖을 보니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분분하게 흩날리던 백설이 함박눈으로 바뀌어 산과 들과 지붕 위에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했다. 엄마 품처럼 느껴지던 세상은 위엄과 성스러움과 두려움을 품은 밤으로 변했다.
우리 가족은 아늑한 지붕 밑 둥지 같은 안방에 모였다. 그곳에는 둥근 식탁이 놓여 있었다. 중앙에는 빨간 봉오리의 촛불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하늘거리고, 가장자리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칼국수들이 수저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 이모부 그리고 나는 각자의 칼국수 앞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창밖에선 "툭..., 툭..., 툭..." 나뭇가지에 쌓인 눈 떨어지는 소리가 신이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들렸다. 신비가 내려 평화가 가슴과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때다. 난데없이 "딸가닥" 하는 소리가 났다. 성스러움이 놀라 도망간 듯 눈뜨고 싶은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동시에 쇠와 사기가 부딪치는 소리의 근원이 깨달아졌다. 기도의 모습을 유지하며 실눈을 뜨고 곁눈질로 이모를 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또 실눈으로 둘러보았다. 외할아버지가 칼국수를 먹고 계셨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나는 서로 눈맞춤하며 공감을 했다. 경건함에서 자유로워진 우리는 칼국수를 떳떳하게 먹기 시작했다. 번갯불 후에 따라오는 천둥소리처럼 달가닥거리는 소리와 후루룩 거리는 소리로 방안이 소란해졌다. 거룩한 곳에서 속세로,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때 외할머니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기도하는 그 짧은 시간도 기다려 주지 못하니, 참..."
"잡음 좀 있다고 하나님이 들을 소리를 못 듣겠어? 그렇지 않니?"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외할아버지는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순순히 백기들 외할머니가 아니다. "네 할아버지는 모내기하고 김매는 날을 꼭 주일로 정하시더라." 대응 사격 하듯 날카롭고 신속하게 반응을 했다. 결국 전면전으로 확전이 되었다. "하나님이 모를 심어 줘, 김을 매 줘.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교회에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것을 눈감아 주고 있는데, 감사는 못할 망정 불평을 해? 하나님이 있는데 왜 열심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망하고 병들어. 방언한다 입신한다 예언한다며,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 교회에서 장로다 권사다 하는 사람들, 싸움질만 잘하고... 바쁜 농사철에 목사들은 머리에 반지르르 기름을 바르고 짙게 화장한 여자들이 궁둥이를 흔들어대며 그들을 따라다니는 걸 보면 얼마나 눈살이 찌푸려지는지 알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존경받게 살아야 그들을 보고 교회를 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오히려 눈꼴사나운 모습들만 보이니, 원..." '다다다-닥' 기관단총으로 공격을 퍼붓듯 하고선 "너도 하나님이 믿어지니?" 우군이 되어 달라는 눈빛으로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속사포처럼 내뱉어진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할머니의 반격을 아예 차단하려 작정을 한 것인지, 손자와 사위에게 자신의 논리를 인정받으려는 속 샘인지, 그동안 억눌렸던 불만이 폭발한 것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하고, 사람이 대답을 하고,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안 해? 말도 안 되는 기적은 왜 그렇게 많은지... 성경에서만 말할 것이 아니고 지금 그런 기적을 보여주면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에게 그런 기적을 보여주면 내 재산 다 팔아서 교회에 바치고 믿지. 유천아, 안 그래? 넌 학교에서 공부하니 더 잘 알겠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몰라. 세상에 도둑놈들과 사기꾼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실,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뻥' 아니야?" 라며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그만해요. 입으로 죄짓고 있는 것을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의 일을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다 알아요. 겨우 1년에 두 번 방학 때만 오는 손자에게 몹쓸 이야기만 해대니, 쯧쯧..." 하며 혀를 찼다. "뻥은 뻥이지 뭐. 그런데도 그 뻥을 믿고 몸과 마음과 재산을 모두 바치는 것을 보면, 참으로.... " 하고선 외할아버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을 참는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아들 다섯을 품에 안고 저 세상으로 보내며 받은 상처, 당신이 아들 얻겠다고 씨받이를 들였을 때 받은 상처, 행복하게 살던 이웃, 고향 산천과 이별하며 받은 상처들을 치료하고, 외손자를 아들 삼아 보람 있게 사는 신비스러운 능력이 어디서 오는 줄 알아요? 이러한 신앙을 뻥이라니요!" 외할머니가 날카로운 반격을 했다. 다툼이 계속되면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은지, 외할아버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로는 당할 수가 없어" 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칼국수를 후루룩 거리며 먹었다.
전쟁터에서 날아온 파편 같은 질문이 나의 가슴과 머리를 파고 들어왔다. '할아버지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고, 할머니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고... 논리 정연한 말로 외할머니를 이기려던 욕망을 포기하게 한 힘은 어디서 온 걸까?'
식사를 하고 즐겁게 밤 사과 대추 튀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동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눈빛에는 다시 사랑이 절절 흘러넘쳤다. 수많은 질문들은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질문들이 일었다. '원수를 대하듯 눈을 흘기며 다툼을 하던 두 분의 눈빛이 모든 것을 내어 줄 듯 부드럽고 따뜻하게 바뀌는 신비는 어디서 어떻게 온 걸까?' 이모와 이모부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차린 듯 벌떡 일어나 둘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성스럽게 눈 덮인 지붕 아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사이에 내가 누웠다.
불은 꺼지고 이야기도 사라져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시간, 시간열차를 타고 다시 질문의 계곡으로 들어선 것 같았다. '하나님은 왜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는 것일까? 목사님은 모든 답을 알고 있을까? 왜, 하나님은 이별의 아픔 속에서 인간을 살게 했을까? 별들만이 알 듯한 질문들이 모두 풀리는 때가 과연 있을까?' 하는 질문에 이어 잃어버린 다섯 아들 대신 사랑하는 손자를 1년 내내 기다린 할머니를 홀로 두고 떠날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들락거리며 눈동자를 말똥거리게 하여 창 밖을 보았다. 내리던 눈이 멈추고 달빛이 하얀 눈빛과 함께 그윽하게 방을 비추었다. 사랑스레 외손자를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눈동자가 보였다. 말 상대 없이 지내던 외할머니의 눈동자가 말 귀를 알아들을 만하게 자란 외손자의 초롱거리는 눈동자를 만나곤 가슴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난 평생 아들 다섯과 딸 둘을 낳았다. 그런데 딸들은 건강한데 아들들은 모두 병에 걸리더구나."
외할머니는 쓴 미소를 지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긴 한숨을 내쉬곤 이야기를 이었다. "아들 하나하나를 낳을 때마다 정성을 다해 절에 시주를 하고 수 없이 많은 절을 하며 빌고 또 빌었다. 혹시 부정이라도 탈까 봐, 목욕을 깨끗이 하고서. 추수 때는 시주할 벼를 가장 먼저 따로 베었어. 그리고 정성스레 탈곡한 벼를 방앗간에서 곱게 정미한 쌀을 이고 반나절을 송학산 절에 올라가 부처님께 공양을 했어. 그리고 절하고 또 절하며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도 아들들이 병드는 거야. 그래서 별들에게도, 서낭당의 큰 소나무에게도, 능력 있다 여겨지는 것이면 무엇에게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효험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했어. 무당을 들여 굿도 해 보고,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도 부적도 붙이고 고사도 지내보았어. 아들 살리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니. 그것들 중에 하나만이라도 맞으면 되는 거 아니야?" 했다. 그러고는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그런데도 아들들의 병이 더욱 심각해지더라. 아들 대신 나를 데려가라며 울며 불며 기도를 했지. 하지만 그것까지도 들어주지를 않더라. 그렇게 한 명 한 명 아들 5명을 품에 안고 영원한 이별을 했다" 하시곤 깊은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쓴 미소를 지으며 "그러는 중 살아남은 두 딸이 하나는 네 어머니이고 하나는 네 이모야." 했다. 나는 안쓰럽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병들어 죽었어요."
"모르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자식을 건강하게 먹이고 키울 겨를도 없었고. 일본이 망한 다음에는 또 전쟁통에 피난 다니느라 자식을 돌볼 겨를이 없기는 했지만." 하고서 할머니는 또 큰 한숨을 쉬었다.
"엄마와 이모는 병에 안 걸렸어요?"
외할머니가 허탈한 웃음을 웃으며 "일본 놈들에게 양식을 다 빼앗겨 먹을 것이 없고 난리통에 피난을 다니느라 굶기를 밥 먹듯 하는데도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더라. 아들들은 다 병들어 죽는데... 그러니 미워지는 거 있지. '딸이 병에 걸리지 하필이면 왜 아들이 걸려.'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너의 엄마와 이모를 보니 죄책감이 들어 괴롭기도 했어. 그래서 서낭당과 절에서 그리고 별들에게도 잘못했다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지. 한편으로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 먹으며 아들을 낳으려 별의별 짓을 다 했어. 그러는 사이에도 세월은 흐르더구나. 결국 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만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는 씨받이를 들이더구나."
나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씨 받이가 뭐야?" 물었다. 할머니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신 아이를 낳아 주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했다. 난 크게 눈을 뜨고 "할머니 대신?"하고 물었다. 외할머니는 일어나 앉아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이셨다. 나도 일어나 앉아 외할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 씨받이와 한 집에 살았어요?" 물었다. 외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이며 천천히 "그럼..." 하고 대답을 했다.
"씨받이가 밉지 않았어요?"
"왜 밉지 않았겠니. 그런데 미운 것보다 나 자신이 더 비참해지더라. 세상에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고. '무슨 큰 잘못을 해서 나는 이렇게 저주를 받나?' 하는 생각에 외롭고 괴롭고... 아들도 하나 키우지 못하는 것이 살아서 무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힘없는 나라에서는 자식도 키울 수 없다는 탄식도 해보고,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력함에 하늘을 보며 원망도 했어. 삶의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죽을까도 생각했지. 하지만 죽을 용기가 없었다. 그럴 때 할아버지가 씨받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자존심도 상하고 질투도 생겼지만 독한 마음이 들더라. '어떻게 해서든지 조물주에게 잘 보여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어금니를 물었어. 그래서 씨받이가 밉고 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더 잘해 주려고 했다. 어쩌겠니. 내가 더 이상 아들을 낳지를 못하는데. 씨받이가 아들을 낳으면 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될 것이고, 못 낳아도 걱정이고, 낳아도 걱정이고... 남몰래 많이 울었지.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씨받이가 아들을 낳아 주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또 했어."
"어떻게 미운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가 있어요? 아들을 낳으면 찬 밥 신세가 되는데."
"마음을 곱게 써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 같아서 억지로 했지. 신이 하시는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어. 씨받이를 미워하면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았어. 그래서 더 잘해주려고 했다. 못된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을 고쳐 먹고 또 고쳐 먹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절에 가 공양을 하고, 나그네들을 대접하며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집안에 대 끊기는 일을 막아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데도 어느 날 허망하게 할아버지께서 씨받이를 내보내는 거야."
"왜요?"
"모르지... 물어보지도 않았어.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를 않았어."
"시원했겠어요."
"그랬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그런데 허무한 생각도 들더라. '절을 다니고 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때부터 부처님을 믿는 것도 서낭당에서 비는 것도 모두 그만 두어 버렸어.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더라. 의지하던 모든 것을 버리니 허탈해지고 외로워지는 거 있지. 세상에 좋은 것도 의욕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아마도 그때가 내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 고래미에 사시는 구 권사님이 나를 자주 찾아와 위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가시곤 했어. 참으로 고마운 분이지. 그런데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야. '교회에 같이 가자.' 권유를 했으면 좋겠는데 하시지를 않는 거야. 같이 가자고 해도 가지도 않을 거면서. 참으로..." 하시곤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별의별 짓 다하며 교회는 가지 않겠다 생각을 했어요?"
"절에 다니며 교회를 가는 것이 마음에서 허락되지 않았어."
"무당에게 가 굿도 하고, 서낭당에서 빌기도 했잖아요."
"글쎄, 깊이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 동양 귀신에 익숙하고 서양 귀신은 낯설어서였는지,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말에 빌 가치도 없다고 생각을 해서였는지, 동양 귀신을 섬기다 서양 귀신을 섬기면 동양 귀신이 질투할 것 같아서였는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교회 가서 빌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면서요."
"아들 다섯 모두를 잃은 후에야 교회에 관심이 생겼어. '그쪽에 가서 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구 권사님의 인품에 끌리기도 하였고."
"교회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그랬어요."
"글쎄, 구차한 생각이 들었어. 구걸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권사님이 다녀 가신 후에는 점점 더 교회가 궁금해지는 거 있지. 그곳에는 내 기도를 들어줄 하나님이 계실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내가 그곳에 가서 기도했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을 것이란 마음도 생기고. 구 권사님은 나와는 다른 사람 같이 보였고."
"권사님이 부러웠겠네요."
"부러웠지. 품위도 있어 보이고. 축복받은 사람, 거룩한 사람.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어. 권사님이 집에 와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할 때, 사실, 하고 있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건성으로 듣고 대답을 하곤 했지. 교회 가자는 이야기는 언제 나올까, 기대를 하면서. 그러다 돌아가실 땐 허전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어. 권사님이 오실 때면 '오늘은 교회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시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에 목마름이 생기곤 했어.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며. 나와 같이 교회 다니는 것을 싫어하시는 걸까? 나 같은 것은 교회에 가면 안 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까지 인심 잃고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지나던 어느 날이었어. ‘같이 예수를 믿으시면 좋을 것 같다’고 권사님이 어렵게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느라 말까지 더듬거리며."
"권사님은 왜 그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하자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교회에서는 전도하라고 가르친다는데."
"내가 절을 다녔으니까. 내 눈치를 보신 것이지. 그때 내가 절을 가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떠났는지 아닌지 분별이 안 되었던 모양이야. 절을 다니는데 교회를 가자고 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분이시네요."
"그래서 동네에서 존경을 받았는가 봐."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외할머니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권사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얼른 '그렇게 할게요' 대답하고 싶었지. 하지만 말이 나오지를 않았어. 그래서 ‘나 같은 것도 교회 갈 수 있어요?’ 하고 되물었지." 했다.
"그러니 뭐라고 하세요?"
"나에게 앉은 체 바짝 다가오셔서 제 손을 덥석 잡고 '물론이지요. 저 같은 것도 다니는데요.'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러셨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죄지은 자도 오라, 목마른 자도 오라 와서 값없이 먹고 마시라.’ 그 말을 들으니 신비하게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 그리고 위로가 되고 새로운 힘이 솟더라. 사랑도 느껴지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잘 지도해 주세요.’ 했지. 그때부터 난 교회에 나가서 권사님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며 권사님이 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 했어. 정성을 다해. 그리고 열심히 빌고 또 빌었어. 헌금도 열심히 내면서."
"뭐라고 빌었어요?"
"그냥 빌었지. 하나님이 사랑만 해 주시면 좋은 일 알아서 주실 거라 믿고서. 그러다 보면 꼭 눈물이 나오더라. 그래서 늘 펑펑 울기만 했어.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 하나님을 대하 듯하려고 했고.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가 천사였었다'라고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말씀을 들었거든. 그것만이 아니야. 첫 수학한 곡식은 무조건 하나님께 바쳤지."
"무엇이든 다?”
"그럼. 호박 오이 무 배추, 논과 밭에서 나는 것은 모두. 닭이 첫 계란을 낳으면 그것도 가장 먼저 목사님께 드렸지. 첫 알이라서 피가 빨갛게 묻은 것은 잘 닦아가지고."
"그렇게 열심히 섬기면서 달라진 것이 있었어요?"
"아니! 아무것도."
"그런데 무엇하러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아직 정성이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았는데 무엇을 주시겠나? 하는 생각을 했지. 목사님이 그러시더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라고. 그리고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복을 주신다'라고. 하나님의 때가 언제가 될지 누가 알겠니? 그래서 좋은 일을 놓치지 않으려 언제나 변함없이 열심히 섬겼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열심히 섬겼어요?"
할머니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고개를 떨구고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당히 체면치레로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마지못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런데 얌체처럼 믿는데도 신비하게 축복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떡고물 같은 부스러기도 하나 떨어지지 않더라." 했다.
"그 사람들은 어떤 축복을 받았는데요?"
"아들 딸도 잘 낳고 땅도 잘 사들이고, 출세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 난 점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거야. 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인가?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목사님께 모두 말씀을 드렸지."
"목사님이 뭐라고 하세요?"
"교회를 다니면 사탄이 방해를 많이 한다고 하시더라. 의심 마귀가 찾아오기도, 주위 사람들이 싸움을 걸어오기도, 어려운 일을 만나 낙심도 하게 된다는 거야. 그러나 그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해 주신다는 거야."
"하긴 다니자마자 축복을 해 주면 그것 다 받아먹고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
"그래서 의심과 서운한 마음이 들 때 변덕스러운 감정을 이기고 또 이겼지.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하며 사탄의 역사를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 정성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날이면 신비한 기적도 보여주시고 더 큰 축복을 해 줄 거라 기대하고 최선을 다 했어.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주어지는 복을 나만 빼놓는구나' 하는 섭섭한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사탄이 주는 시험이었네요."
"그런데 그때는 사탄의 시험이란 생각이 들지를 않았어.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가 된 것 같고, 점점 외롭고 쓸쓸해지더라.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하나님도 도와주시지를 않았고."
"왜 하나님은 그렇게 실망하도록 버려두셨을까요?"
"모르지.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렇게 선을 베풀며 열심을 다해 섬겼는데... 더 억울한 것은 동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고, 피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거야. 하긴 아들이 5명이나 죽었는데 정상으로 보이겠어? 가까이하기가 꺼려졌겠지. 버림받은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뭔가 보이지 않는 큰 죄가 있으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겠지. 부정 탄 사람이라 여기기도 했을 것이고. 이때부터 다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거야. 화단에 피는 백일홍과 채송화도,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들도, 들꽃과 벌 나비도,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드는 것도 모두 헛된 것으로 느껴지는 거야. 봄이 되어 동네 사람들과 강에서 하는 천렵도. 모두 재미가 없어져 버렸어.”
"전에는 그런 것 좋아했어요?"
"그럼, 내가 산과 들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여름이면 봉숭아 꽃을 따서 그릇에 담아 방망이로 콕콕콕 찧어 너희 엄마와 이모의 손톱 위에 묶어 주고 잠을 재우곤 했다. 그러면 너의 엄마와 이모는 예쁘게 손가락 물드는 꿈을 꾸는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잠을 자곤 했지. 손톱에 묶여 있는 봉숭아가 잘못될까 꼼짝 못 하고 누워 잠자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안쓰럽기도 헸고. 이튿날 아침, 싸맨 손가락을 풀면 봉숭아 꽃 물이 손톱에 얼마나 은은하게 예쁘게 들어 있는지 몰라. 그때 너의 엄마와 이모는 세상에서 자기들이 가장 예쁜 듯한 표정이었어! 보고 있는 난 덩달아 행복했었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랑하며 어우러질 때 맛보는 행복을 즐기며 살았어. 그런데 그런 것들 모두가 쓸데없는 것이라 여겨지더라. 세상살이가 다 의미 없는 허무한 것이라 느껴지고. 딸들과 이웃, 그리고 풀, 벌레, 나무, 하늘의 별들까지도 모두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았어. 우주로부터 버림받아 홀로 된 외로움을 느꼈어."
할머니는 큰 숨을 몰아 쉬시곤 "그렇게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점점 기운이 없어지는 거야." 했다.
"아픈 곳도 없이?"
"응, 밥도 먹기 싫어지고. 그러던 어느 날부터 먹어야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를 먹으려니 먹을 수가 없는 거야. 무서운 생각에 가슴이 덜컥했지. 그래서 억지로라도 먹으려 했는데 안 되더라고. 먹고 마시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먹고 마시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 두려움은 말할 수 없이 컸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 그냥 누워있을 수밖에."
"병원에 가 보았어요?"
"그땐 변변한 병원이 없기도 했지만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지... 죽을까 봐 두렵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런데 또 살아 보려고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 다 먹고. 그러나 약을 억지로 먹고 또 먹어도 효과가 없는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는 날 등에 업고 용한 의원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거 있지."
외할머니가 수줍은 웃음을 웃으며 "외할아버지 등에 업혀 다니는 동안 차도가 없어 초조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거야. '죽을 지경이 되니 남편 등에 업혀 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했다.
"전에는 할아버지 등에 업혀 본 적이 없었어요?"
"없었지. 그런 일은 망측하다고 생각했으니... 세상 살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인간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것이란 생각도 들고. 죽어가는 게 한편으로는 좋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외롭고... 그러다 약 먹는 것과 용한 의원 찾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게 되더라. 무엇을 해도 효험이 없으니. 결국 꼼짝 못 하고 방에 누워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되었지."
"아무것도 못 먹고?"
"물만 조금씩 마셨지. 그런데 그렇게 몸이 아파 거동을 할 수 없는데 귀는 그렇게 밝은지... 밖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거야."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죽은 사람 염할 때 사용할 삼베 사 오는 이야기, 묘지를 어디에 쓸까 상의하는 이야기, 임종을 보아야 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야기... 내 앞에 와서는 곧 낫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는 자기들끼리 장사 지낼 준비를 하고 있는 거 있지. 그때 배신감과 함께 절망스러움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를 해 놓고서..."
"누가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목사님이 오실 때마다 교인들, 친지들, 모두 따라 들어와 함께 울며 불며 기도를 했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그리고 '빨리 건강해져 함께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자'라고 한 마디씩 하더라. 그럴 때는 낫겠다는 희망이 생겼어. 병마와 싸울 의지도 생겼고, 기도 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지. 특별히 목사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마가 물러갈지어다' 명령하는 기도를 할 때는 곧 낫는다는 확신이 들게 하려고 '아멘, 아멘' 하며 더 열심히 응답을 했어. 믿음대로 된다는 말을 들었었거든. 그리고 회복되면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나님께 다짐도 했어."
"그렇게 기도한 사람들이 방을 나가서 장례 준비를 해요?"
"기가 막히더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우롱할 수가 있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다고 바보 취급하는 거잖아. 그땐 참으로 외롭고 고통스러웠어."
"그럴 것이면 왜 기도를 해. 응답받는 걸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소리는 왜 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뻥치는 거잖아? 그것도 눈물까지 흘리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랬던 거지."
"신비한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온 구경꾼도 있었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너무 속이 상했어. 신앙의 허구와 이중성을 삭히는 것도 힘들었고. 그 후로는 사람들이 와서 '낫게 해 달라'라고 기도를 하면 화가 나는 거 있지. 믿지도 않으면서 나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기도하는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어. 거짓된 사람으로 보였고. 그래서 기도를 마친 다음 얼굴을 뚫어져라, 자세히 보곤 했어. 저 사람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의심하며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그럼 기도하지 말라고 그러지 그러셨어요?"
"물론, '그만해!'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어. 어떻게 기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감히 할 수가 있겠니? 하나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은 마음도 들고. 나를 위해 하는 일인데 부끄럽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래서 참고 또 참았지. 그러면서 차라리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할 바에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 해 주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 그래도 그렇게 기도해 달라고는 말할 수가 없더라. 사실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기대하기도 했어. 믿어지는 마음인지, 믿고 싶은 마음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게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하나님께 원망이 생기는 거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성경에서 확실하게 강조하며 하신 말씀이 "뻥"이라는 생각이 들고.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 의심이 생기는 거야. 더욱 내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데 기도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까지 믿을 수가 없게 되니 더 허망하고 외로워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더구나. '난 이대로 상처의 아픔만 맛보는 인생살이를 하다 허무하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두렵고 서럽고... 알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나도 없고... 모두가 날 속이는 존재들인 것 같아 혼자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어. 그때 내 일생 처음으로 큰 소리 내어 마음껏 '엉엉' 울었어. 다른 사람들 하나도 의식하지 않고. 그날 밤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내가 깊고 캄캄한 좁은 구덩이로 한없이 떨어지는 거야. 그렇게 떨어지며 내가 있던 곳을 올려다보니 환한 빛이 있는 곳이었는데 그 빛으로부터 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빛이 가물가물해지며 희미해져 곧 사라지게 될 것 같은 순간이 되었어. 깊고 캄캄한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며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운 생각은 없었고. 그냥 이대로 떨어져 내 인생을 허망하고 억울하게 상처만 받다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독하게 드는 거 있지. 그래서 위를 향해 손을 들고 젖 먹은 힘을 다해 흔들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을 했어. '주님! 나를 이대로 버리실 겁니까? 평생 상처만 입고 살다 죽게 할 것입니까? 아들 다섯을 품에 안고 저 세상에 보내는 어미의 상처를 외면하는 당신이 진정 사랑의 하나님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은 다 내게로 오라'라고 하신 말씀도 뻥입니까? 차라리 뻥이면 뻥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깨끗이 포기할게요.' 하면서”
"밥 먹을 힘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어요?"
"그것이 신비였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평생을 살면서 겪은 모든 아픔과 설움이 이 부르짖음에 담겨 터져 나오는 것 같았어. 체면이고 뭐고 없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토해 내었어. 바로 그때였어. 위를 보니 내가 떨어지기 시작한 아주 먼 곳에서 꺼져 가던 작은 불빛이 다시 살아나는 거야. 그리고 조금씩 밝아져 나를 비추기 시작하는 거야. 이때 깊고 어두운 구덩이로부터 밝은 빛이 비치는 곳으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더라고.”
"풍선처럼?"
"아니, 풍선보다 더 가벼운 하얀 깃털로 된 날개 달린 천사의 옷을 입은 것처럼.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어. 그리고 근심과 걱정 외로움 모두가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거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이 느껴지고. 천국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니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 같았어.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이런 일이 일어난 후 난 점점 기운을 차리게 되었지."
"바로 일어났어요?"
"아니,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물을 마셔 보았지. 그랬더니 마실 수가 있는 거야. 그다음 죽을 먹고 그리고 밥을 먹게 되었지. 나의 임종을 보고 장사 지내려 모였던 친지들이 머쓱해하며 모두들 돌아갔어. 죽어야 하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되니. 몰라... 그들이 돌아가며 무어라 말을 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분명히 죽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겠어요?"
"모르지... ‘파 놓은 묘지는 다시 메워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사놓은 삼베는 물려야 하나, 죽을 때까지 보관하고 있어야 하나? 목사님 기도의 응답일까? 저절로 낫게 된 걸까?’ 그러지 않았겠어?"
"목사님 기도의 응답은 아닐 거예요. 응답될 거라고 믿지도 않고 뻥으로 했을 뿐인데. 그것도 체면치레로. 할머니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일 거예요. 아니면 울부짖으며 속에 있는 아픔들을 토해낼 때 상처가 치료되었을지도 모르고. 죽음의 직전까지 낮아진 곳에 신비가 내린 것일까? 아! 정직이 서로 만나면 처음엔 다툼을 하지만 점점 신비가 내려 진리 안에서 평화와 지혜를 선물로 주는 것 같아요."
"모르지, 어쨌거나 난 홀로 죽음에 이른 무서운 고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을 느끼는 생명의 신비한 기운을 경험하게 된 거야. 그때부터 난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천국으로 즐길 생각을 했어. 홀로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으며. 내게 빛을 비추신 분이 하나님이라 믿어지고 그분에게 사랑받음이 느껴지게 되면서 난리통에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고 네가 태어나고, 다섯 아들 대신 '너를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사랑이 느껴지는 거야. 그렇게 너희와 함께 살던 우리는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양아들을 들이려고 너희와 헤어져 평창으로 이사를 한 거야. 그러나 방학이 되면 이리로 오는 너를 기다리고 만나는 순간순간이 모두 행복해. 외할아버지와도 가끔 다투기는 하지만 정직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을 외할아버지께서 하신다는 신뢰,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피조물이라는 안쓰러운 생각에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
그윽한 빛에 비추인 환한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무엇이 되길 바라?"
"글쎄. 난 네가 사람들을 신비가 내리는 곳으로 안내하는 목사가 되길 원해."
"난 파일럿이 되고 싶은데..."
실망한 듯했지만 ‘누가 아니 앞으로 펼쳐질 신비한 일을...’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리고 "왜? 파일럿이 되고 싶어?" 물었다.
"빨간 머플러. 멋있잖아요.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른 사나이. 사나이 중에 사나이 같지 않아요?" 할머니는 "그래?" 하고선 "누가 알겠니. 네 영혼이 하늘을 신나게 날아다니는 신비를 맛볼지. 그러면 모든 것이 달라질걸.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맛보는 즐거움, 불의를 상대하며 이기는 뿌듯함, 어둠에 그윽한 빛을 비추는 이런 달빛의 보람을 맛볼지, 누가 알겠니"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시곤 미소 짓는 외할머니의 눈동자가 달빛과 흰 눈이 섞인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