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준호 Nov 24. 2024

하늘이 내리는 만나

두둑을 끄는 매력 

     뿌듯한 표정으로 아빠가 카트를 밀고 아리랑 마트를 나오고 있었다. 그 뒤를 부인이 재잘거리는 아들 딸의 손을 잡고 그윽한 눈길로 자녀들과 눈맞춤하며 따랐다. 유천은 그들의 움직임을 좇았다. 자동차에 다다른 아빠가 트렁크를 열고 카트에 실려 있는 삼겹살, 양파, 파, 참기름, 아이스크림, 초콜릿, 바나나, 사과, 포도를 옮겨 실었다. 유천은 침을 꿀꺽 삼켰다. 부인은 자동차 조수석에 두 자녀는 뒷 좌석에 올랐다. 트렁크 짐 정리를 마친 아빠가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는 부드럽고 위엄 있는 동작으로 서서히 후진하다가 앞으로 나아가 스르르르 사라져 버렸다. 

    머리를 흔들어 빼앗겼던 시선을 되돌린 유천은 마켓 입구에 널려 있는 신문 판매대로 향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데일리 뉴스,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제신문을 각각 쿼터 한 개씩을 집어넣고 빼들었다. 파킹낫으로 돌아가려다 널브러져 있는 광고지들을 기웃거리곤 이것저것 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리랑 마트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눈길을 주다 광고지를 바라보고는 서둘러 파킹낫으로 향했다.    

    자동차에 오른 유천은 열쇠 구멍에 키를 넣고 돌렸다. 끄륵끄륵 소리를 내다 겨우 "퉁퉁 퉁퉁" 소음을 내며 시동이 걸렸다. 유천은 "휴-우" 한숨을 쉬고는 비치블르바드로 나와 아파트를 향해 달렸다.   

    요란한 자동차 소리에 영희와 철수가 반갑게 아파트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신문만 가득 손에 들고 있는 아빠를 보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별일 없었지?" 

리빙룸으로 들어온 유천이 아들 딸을 보며 물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늘어진 목소리로 "네-에"하고 대답했다. 유천은 신문을 무릎 옆에 놓고 한 장 한 장 들추며 큼지막한 회사 구인 광고를 샅샅이 읽었다. 하지만 이력서를 낼만한 곳이 없었다. 그다음, 중간 사이즈 광고를 훑었다. 한숨만 나왔다. 그리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살아야 해' 라며 중얼거렸다. 신학이 전공인 자신을 위한 일자리가 일반 회사에는 없다는 걸 알았다. 이때부터 유천은 깨알같이 작은 광고를 훑고 또 훑었다. 일할 곳은 많았다. 하지만 결정하지 못하고 날마다 신문을 사서 큰 광고, 중간 광고, 깨알 같은 광고를 매일 반복하며 훑었다. 


    그러던 한 날 유천은 "캐셔 구함 K 리쿼"에 시선이 머물렀다. 리쿼는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나님은 낮추고 현실을 보게 하고 끌림의 신비를 통해 인연을 만들어 가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천은 서둘러 K 리쿼로 향했다.

    파킹장 여기저기에서 홈리스들이 서성거렸다. 빨간 '버드와이저', 파란 '코로나' 네온사인 광고가 촌스럽게 켜져 있었다. 출입문과 창문은 감옥 문처럼 투박한 검은 쇠창살로 보호되고 있었다. 가게 옆 벽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의 벽화가 문신처럼 그려져 있었다. 가게를 들락거리는 손님들 중 유천과 비슷한 인종들은 없었다. 그럴듯한 옷차림을 한 사람도 없었다. 유천은 외계인 마을에 온 것처럼 낯설었다. 출입문에 다다른 유천은 잠시 서성이다 가게 문을 열고 목을 빼 고개를 디밀고 두리번거렸다. 손님 아닌 것을 직감으로 안 듯 점원이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광고 보고 왔습니다." 

"아! 광고요!" 

점원은 "여기는 미니멈만 주거든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고 왔어요."

아래위로 유천을 훑어보다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점원이 손을 내밀었다. 

"곽상훈입니다. 가게 주인이에요." 

"아 그러셨군요. 유천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건넨 주인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일 해 보셨어요?"

"아니요. 어려운가요?"

"어렵지는 않지만 여기는 도둑놈들도 많고, 위험하기도 해요." 

 "그래 보았자 사람이 하는 일일 테지요 뭐. 사장님도 하시고 있고..." 유천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주인은 유천의 차림새, 얼굴, 눈빛을 살폈다. 순진한 사람이라는 확신은 들었으나 '일할 수 있을까?' 의심이 생겼다. 며칠 일을 시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속셈으로 질문했다. 

"정말 하실 수 있겠어요?"

"사장님이 허락하시면, 해보지요."

    관계를 맺어보겠다고 작정한 주인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알고 보면 인간이란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  좋은 사람도 나쁘게 대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도 좋게 대하면 좋아지는 것 아니에요? 개중에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환경이 좋지 못해 망가졌구나' 생각하고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만다' 작정하면 어려울 것 없어요."

유천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힘겨웠던 교회에서의 일들이 떠올라 잠시 멍하게 있다 "아 그래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해볼게요" 했다.

    구두로 임시 고용 계약이 이루어진 후 주인이 비로소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그런데 본래 무얼 하셨어요? 막일하실 분은 아니신 듯 보이는데." 

"신학을 했어요. 전도사로 교회에서 일을 했고요." 

"그러면 교회에 계셔야지 왜 이런 일을 하려 하세요."

유천은 거짓말이라도 하다 들킨 듯 얼굴이 빨개지며 답했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살아야 하는데 난 누에가 아닌가 봐요." 

"가짜 뽕잎을 진짜로 착각한 것은 아니고요?" 

주인이 미소 지으며 유천을 편드는 듯 대꾸했다. 유천은 주인의 신뢰하는 듯한 음성에 속 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교회에서 일을 해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인격이 아직 덜 성숙한 모양이에요. 믿음도 부족하고…"

 "그럴 리 있나요.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인간관계가 힘들 테지요. 사실, 교회는 모두 돈 내고 나오는 사람들이잖아요. 성직자들 몇 명만 빼고는. 그러니 교회 경영이 힘들 수밖에요.  돈 내는 사람들이 그 돈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에요? 물론 죽어서 천당을 가든지, 몇 배로 축복을 받든 지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인정받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한 사람들의 입장도 고려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 내고, 희생하며 봉사까지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나도 교회 나가서 돈 좀 내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었거든요. 돈, 돈, 돈만 하며 살다 죽을 것이 아니고 거룩한 존재도 되고, 인정도 받고, 천당도 가고, 축복도 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었지요."

눈동자를 반짝이며 유천이 물었다. 

"그런데 왜 나가지 않으셨어요?"

"거룩하고 근엄하게 살 자신이 없더라고요. '생긴 대로 사는 것이 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더 강했던 거였지요. 거룩을 좇아 살면 행복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몰라요. 물론, 이럴까 저럴까 갈등은 좀 했어요. 그때 교회 안에서 싸움이 일어났어요. 얼른 욕심을 접었죠."

"그러셨군요." 

유천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홈리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가롭게 웃고 떠들며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어요. 왜 그렇게 교회 안에서 싸우고 갈라지고 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평화의 사도라 외치며...  그리고 얼마나 많은 종교전쟁을 하며 사람을 죽이고 상하게 했어요. 한 하나님을 믿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종파를 만들고... 속세에서 속되게 사는 사람들은 싸움도 많이 하지만 술 한잔 마시며 화해도 잘하는데, 교회에서는 다들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는 이유가 뭐예요?"

    "띵똥" 시크릿 벨이 울리며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손님은 말없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주인은 손님의 요구를 놓칠세라 그의 입과 눈을 주시하고 있었고, 유천은 무슨 말로 질문에 답할까 생각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가게 안에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띵똥" 하며 출입문이 열리고 손님이 나갔다. 유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란 사실 서로를 완전히 모르잖아요.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탐색을 하지 않아요? 그러다 상대의 생각과 필요와 입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고. 그러며 친구도 되고, 사업도 같이 하고, 결혼도 하고, 싸우다 화해도 하지요. 그런데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그렇다고 이야기했으면 그것이 진리인 거예요. 악이라고 규정했으면 악인 것이고, 선이라고 규정했으면 선인 거예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속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죠. 그러니 대화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그런데 왜 자기들끼리 싸워요?"

"대화하지 않는데 어떻게 서로를 알 수가 있어요? 그러니 오해하고 의심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거지요.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오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에요. 진리가 아닌데 진리로 오해하고, 악을 선으로, 선을 악으로 오해하곤 서로 하나님을 대리하는 생명을 건 싸움을 하는 거지요. 지금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주인인 하나님의 명령이고, 사단과 악을 상대한 싸움인데 어떻게 화해를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싸움의 보상이 천국에서 주어진다고 믿는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사랑으로 희생하며 섬기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요?"   

"사실 그들 때문에 교회가 유지되지요. 그러나 그들이 희생하는 것에 비하면 결과는 좋지 않아요. 사랑도 사고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거기에 지혜까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희생하고 섬기는 사람들 중에도 사고력과 분별력 있는 순수하고 정직하고 지혜 있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로군요."

"네. 안타깝게도...  그 소수가 기득권이 되어야 하는데..." 

"띵똥" 소리와 함께 손님들 몇이 들어왔다. 

"앞으로 더 좋은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이 있으니...  전도사님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 하실 수 있으세요?" 

"시간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괜찮을까요?"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그럼 내일 오전 6시에 뵙겠습니다."

가게를 나오며 유천은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안을 맛봤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며 먹고사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곳에서 평안을 누리는 이유가 무얼까?' 쓸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일찍 나오셨네요." 유천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상품을 진열하다 유천을 돌아보며 인사한 곽 사장이  "오늘 하실 일을 알려 줄게요" 했다. 

"어려운 것은 없어요. 상품에 가격이 모두 찍혀 있거든요. 손님이 상품을 가지고 오면 그 가격대로 돈을 받고 여기 캐셔에 찍으면 거스름 액수가 화면에 떠요. 그러면 그대로 거슬러 주면 돼요. 담배는 바로 뒤에 있으니 브랜드 이야기 하면 찾아 주면 되고요. 권총은 이쪽, 오른쪽 서랍에 있고 몽둥이는 저쪽 기둥 옆에 있어요."

유천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권총도 필요해요?"  

"호신용으로 두는 거예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곽사장이 태연하게 말했다. 

"한 번도 사용해 보지도 않았고, 사용할 일도 없었는데 몽둥이는 가끔 사용해요. 그렇다고 사람을 친 적은 없어요. 도둑질하는 놈을 보았을 때 몽둥이를 들고 설치면 도망을 가거든요. 그럴 때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따라가는 척하다 말아요. 그러면 몇 시간 후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스럽게 돌아오거든요. 이때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해요. 이것이 잘 되면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곽 사장이 멋쩍게 웃었다.  

유천은 무용담을 듣는 듯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홈리스들이 여전히 어슬렁어슬렁 파킹 낫 이곳저곳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를 힘들게 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이 지역의 홈리스들이에요.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며 손님들에게 구걸하다 무료함을 느끼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게 안으로 들어오곤 해요.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어서 싫어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 그들도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막아 보았자 효과도 없고 사이만 나빠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상대하기를 꺼렸지만 사귀어 보니 대부분 착한 사람들이에요. 개중에는 생각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어리석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있고, 욕심이 과해 절망적인 형편이 된 사람도 있어요. 성격이 난폭한 사람도 물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느 사회에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이들보다 머리에 쥐 나게 하는 인간들이 있어요. 동네 사람들인데 차림새는 그럴듯해요. 그런데 자녀들까지 데리고 와서 물건을 훔쳐 간다니까요. 그러다 들키면 핑계를 그럴싸하게 대기도, 거칠게 덤벼들기도 해요. 오히려 인종차별 했다고 큰소리치고, 고소한다고 난리법석을 떨 때도 있어요." 

어이없어 상을 찡그리고 있는 유천을 보며 곽 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맞더라고요. 그래서 확실한 증거를 잡을 때까진 쥐 죽은 듯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당하거든요."

"자녀와 함께 도둑질을 해요?" 

 "네-에." 

곽 사장이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나도 처음엔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자식들과 함께 세금 도둑질하는 부자들도 많지 않아요?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 먹고 떼어먹는 족속들도 있고. 그것도 자식들과 상의하면서... 사실 사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요지경 속 아니에요?  세금 안 내고 재산을 상속하려 부모와 자식이 합작하여 별의별 짓 다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여 불법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카드 빚도 남의 돈도 작정하고 떼어먹으며.  이런 일들 모두가 생존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 아니에요? 그러나 그 윤리 도덕의 기준은 철학과 가치관에서 오는 것이고. 철학과 가치관은 교육과 훈련받은 정도에서 오지 않아요? 그런데 배우고 훈련받는 것은 주어진 환경이잖아요. 환경은 우리의 의지에 관계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고...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어떠한 상황을 만나도 내 감정을 여유 있게 만들 수가 있더라고요. 그 후론 너무 손해를 많이 본다 싶을 때만 경찰을 부르는 척하고, 옛날에 무서운 깡패였다는 듯 쇼를 해요. 무섭고 잔인하고 독한 사람이라는 것이 인식되면 상대의 태도가 달라지거든요. 연극에서 실패하면 더 비참해질 수도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연극도 상황 판단을 잘해야 되더라고요. 알고 보면 그 연극 실력에 따라 인생의 승패가 갈리는 것 아니에요?"

곽 사장이 철학자나 된 듯 말했다.

"연극하며 산다는 생각은 못 해 봤어요."

"겉과 속이 똑같게 살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연극하며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에요?  어느 선까지 연극을 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연극 정도와 실력이 우리의 인격을 결정하는 것 같네요.  언제 어떻게 연극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상의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고..."

"신앙인과의 차이가 여기서 생기는군요. 저는 제 속에 있는 양심과 상의를 하거든요. 물론 무시할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연극을 하다 보면 양심이 '쇼 그만해,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하며 민망한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해요." 

 "사장님은 양심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어요. 신앙인과 아닌 사람이 여기서 갈리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신앙생활이 쉬운 것처럼 느껴지네요." 

"본래 신앙은 쉬운 것인데 인간들이 어렵게 만들어 버린 거지요."

"그래요? 그 말을 들으니 질문하고 싶은 것이 생기는데 다음에 해야겠네요."

"띵똥" 하며 출입문이 열리고 손님들 몇이 들어왔다. 곽 사장과 유천은 미소로 손님들 맞느라 바빴다. 

 

    유천은 아직 어리바리했지만 조금은 할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자리를 잃었다 찾은 즐거움과 봉사하는 존재감에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손님이 많아지고 있었다.

 '나의 친절 때문일까? 손님을 몰고 오는 사람도 있다더니....' 주인에게 도움 되고 손님들에게 인정받는 존재감에서 생겨난 뿌듯함이 다리와 가슴과 어깨 그리고 목에서 느껴졌다. 진실하게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실감되었다. 수많은 행복들 중 가장 큰 것은 존재감을 느낄 때인 것 같았다.  

    유천은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이들이 들어올 때면 더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만들어 지었다. 손님들의 얼굴에서 만족한 표정이 읽혔다. 좋은 직장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절로 나왔다. 인간관계는 역시 상대적이라는 진리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해도, 진심을 이야기해도, 뜻이 전달되지도 않고 열매도 없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성스러운 옷을 입고 거룩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머릿속은 득실을 계산하며 오만가지 감정들, 의심, 질투, 깔봄, 아부, 미움을 감추고 관계하던 때와 비교하니 이곳이 천국인 것 같았다.

    유천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손님이 요구하는 담배를 찾기 위해 진열대를 훑고 있었다. 갑작스레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천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한 사내가 마치 똥이라도 싼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유천의 몸과 머리의 세포들 모두가 얼어붙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점퍼 속에 몰래 집어넣다 떨어뜨린 상품들이 발아래 널브러져 있었다. 사내는 찌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비루한 눈빛으로 유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주인이 코치해 준 대로 욕하며 몽둥이를 휘두를까? 경찰을 부르는 시늉을 할까? 그러다 반항하며 덤비면 어떻게 할까? 권총을 빼들까? 시범케이스로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데... 여기서 밀리면 계속 일하기가 힘들어질 텐데...' 유천의 뇌가 과열된 탓인지 등줄기가 촉촉해졌다. 

    처분을 기다리느라 엉거주춤 서있는 사내에게 유천이 천천히 다가가 기죽은 눈동자를 째려보았다. 가게 안에 긴장감이 돌았다.'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시선들 모두가 유천에게 모였다. 하지만 위엄스럽기도 바보스럽기도 한 유천의 한마디가 긴장했던 모두의 팔과 다리의 힘을 풀리게 했다.  

"Please don’t do that again. It is not good for you."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몽둥이를 들고 설치거나, 경찰에 신고할 것을 예상했는지 사내가 엉겁결에 "OK" 대답을 하곤 찌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잠시 유천의 눈치를 살피다 방향을 잃은 듯 허둥대었다. 동료들이 말없이 사내의 손을 잡았다. 비로소 사내는 어깨를 으쓱 펴고 팔자걸음으로 가계를 빠져나갔다. 

    사내는 호랑이에게 물렸다 안전하게 풀려난 듯 어안이 벙벙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둑질하다 걸려 본 중 이렇게 점잖은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가게 안은 평상시와 다르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주차장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며 바보 점원이 만든 유행어를 주절거리며 즐거워했다.   

"Please don’t do that again. It is not good for you."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데 유행어 마냥 온 동네에 퍼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가게에 손님 몇이 들어와 유천이 처음 들어 보는 담배를 찾았다. 유천은 진열장을 향해 돌아서 담배들을 훑고 또 훑었다. 작전에 성공한 사내는 순간을 놓칠 새라 서둘러 점퍼 속에 상품을 집어넣느라 바빴다. 직감으로 상황을 알아챈 유천이 아무 말이 없이 사내에게 다가가 점퍼 속에 넣은 물건을 빼앗아 제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Please don’t do that again. it is not good for you."  

바보가 가게를 지키는 상황을 사내들은 흥분하여 즐겼다. 하룻밤이 지난 후 가게는 더 활기에 찼다. 평상시 보이지 않던 얼굴들도 보였다. 옆 동네에서 원정을 온 것이다.   

    유천은 인생살이 자체가 고달프게 느껴졌다. '공포탄을 한 방 쏠까?  몽둥이를 들고 설쳐댈까?' 고민을 해 보지만 용기가 없었다. 주인의 실망한 얼굴이 떠올랐다. 바보 취급당하는 분노도 일었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손님이 없을 때에도 귓전에서 끊임없이 들렸다. 

'알량한 신앙심 때문일까? 뒤처리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연극 소질이 선천적으로 없어서일까?' 유천은 갑자기 생존의 두려움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오후에 가게로 돌아온 주인이 유천에게 물었다.

 "할 만하세요?"

 "네, 일은 할 만한데 도둑놈들이 많네요."

유천이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것을 다루는 실력이 여기서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거예요. 문제를 해결하려 소리 지르고 욕하다 보면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이 효과가 있어요?"

주인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며 "효과가 있으니 하지요" 대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주인이 설득하기로 작정을 한 듯 이야기했다.  

"'인생은 역시 연극이야'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미친놈처럼 화내며 쇼하는 내 모습이 나를 웃게 만들고 화까지 풀어주어요. 이러는 나를 바라보는 도둑놈들도 이때 내 눈치를 보며 같이 웃어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 묘한 하나 된 평안을 느껴요. 내가 웃을 때까지 적당히 호응해 주며 기다려 주는 도둑놈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착하게 보이면 깔보는 세상이니 독하게 보이려 하는 연극이고...  그러나 그들도 쇼의 의미를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기꺼이 관람객이 되어 주는 거예요. 도둑질 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재미있지 않아요? 그렇게 배우와 관객이 함께 웃음으로 공연을 마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지요. 그러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서로 상황을 모면해야 하니까 연극하고 웃음으로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는 거지요. 이렇게 하고 나면 당분간 평화가 유지돼요.  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고 표현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했으니 휴식이 필요해진 거지요.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필요를 채우려 그들은 도둑질하고 난 연극하고 그리고 서로 웃음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거예요."

    유천은 연극할 것을 다짐하고 캐셔 앞에 섰다. 아직 양심적인 손님들만 들어오고 나갔다. 10시가 되었다. 손님들이 떼를 지어 들어왔다. 유천은 잠시 눈을 감고 '독해져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도둑을 잡고 난 후 연극을 하려 해도 입과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대신 도둑놈을 원정까지 오게 한 바보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다 하늘을 바라보며 푸념을 했다.

'정직하게 순수하게 진실하게 대하는 인격이 이렇게 처참하게 바보 취급을 받아야 하나요? 눈을 뜨고 있는데도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라니...  하나님은 도대체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조치도 취해주지 않은 채 또 하루가 지났다. 


    유천은 새벽 일터로 나가며 싸늘하게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불렀다. 

'낮아진 자세로 섬기며 진실하게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더 잘 되어야 할 텐데 거꾸로 멍청이가 됩니다. "온유한 자는 복 있다" 하신 말씀이 진정으로 맞는 건가요?'

    청소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였다.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곧 전쟁이 시작되겠지...'

권총을 만지며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더욱 야속하게 느껴졌다. 2시간 남짓 지났을까 낯선 손님들이 들어왔다. 유익을 줄 손님이 아님을 직감으로 알았다. 이웃 동네에서 온 원정 팀이 분명했다. 유천은 반복되는 억울함에 전략을 바꿨다.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몸과 머리가 함께 상황을 읽고 반응하며 적응했다. 유천은 손님이 무언가 찾아 달라고 요구하면 고개를 끄떡여 대답하곤 뒤에 들어온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만 있었다. 친절보다는 차갑고 예리한 눈으로 감시하면서... 적들이 작전을 포기하였다고 판단이 될 때야 비로소 손님의 요구를 위해 돌아서서 일했다.  하나님께 불평이 절로 나왔다.    

'뒤통수에도 눈 하나 더 만들어 놓으시지 왜 한쪽에만 있게 했어요?'      

하지만 그딴 소리하지 말고 지금 당한 현실에 대처하기를 차갑게 요구하는 듯했다. 마냥, 적들이 작전을 포기했다고 느껴졌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또 유천의 뇌가 수를 짜 냈다. 돌아서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찾다 도둑이 예고할 수 없도록 잽싸게 다시 돌아서 감시를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 필요한 물건을 찾다 날렵하게 돌아서기를 하고 또 했다. 도둑질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술레를 자기 혼자만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서러워 외로움에 떨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몇 번이나 했을까? 드디어 점퍼 주머니에 상품을 재빠르게 집어넣는 사내를 보았다. 유천은 사내에게 걸어가 멈춰 서서 살기 돋친 눈으로 사내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긴장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들 모두가 유천에게 모였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유천은 도둑에게 다가가 손바닥을 펴며 차분하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로 고요를 깼다. 

"Give me."

낮고 엄숙한 말에 사내는 점퍼 속에 숨긴 상품을 유천에게 순순히 돌려주었다. 이를 받아 든 유천은

"Please Don’t do that again. It is not good for you" 하고 사건을 종결해 버렸다. 모두가 이상한 세계에 온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보다 긴장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기대보다 사건이 싱겁게 끝났다는 허탈감에서 나오는 작은 소음들이 들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소란함이 벌어지고 엄숙해진 가운데 "please don’t do that again. It is not good for you" 소리가 들리고 긴장이 풀리고 평시처럼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이 되었다. 

    

    파킹 장에서는 사내들이 "Please Don't do that agian. It is not good for you"를 흥얼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또 그 문장을 내뱉으며 웃고 즐겼다. 유천에게는 바보 취급받는 힘겨운 하루하루였지만 그래도 1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주인에게 너무 많은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한 비루함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해가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주인이 "별일 없었지요?" 하며 들어왔다. 유천은 까탈스러운 손님의 시비를 조금 손해 보고 해결한 일, 추가로 주문해야 할 상품들을 말한 뒤 무겁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장님 저는 더 이상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나는 도둑을 끄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가 봐요. 감당할 수가 없네요."  

"이 놈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된다니까요. 몽둥이를 들고 욕하고 경찰을 부르는 척 연극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야 되는 줄은 아는데...  그것도 성격이 어느 정도는 받쳐 주어야 되는 것 같아요. 연극할 마음을 먹어도 무대가 펼쳐지면 내 방식대로 하게 돼요. 차라리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 게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배우가 오래 머무르면 모두가 괴로워지는 것 아니에요?”

곽 사장은 '이런 품성을 가지고 어떻게 먹고살까?' 한심스러운 눈으로 유천을 바라보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체념한 듯 말했다.

"손해를 많이 보게 해서 죄송했습니다." 

곽 사장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한숨만 길게 내쉬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한 임금이나 받아 가세요. 또 일 할 곳을 찾을 때까지 작지만 생할비가 필요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조금 더 넣었어요." 라며 봉투를 유천에게 주었다. "하지만 어디 가든 독해져야 살 수 있어요. 세상은 교회가 아니란 말이에요" 했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유천은 고개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양손에 먹거리를 들고 돌아올 가장을 기다리는 아내와 어린 아들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어디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할까? 캘리포니아의 붉은 저녁노을이 생존하기 힘겨운 유천을 더욱 서럽게 했다. 피킹장에서는 여전히 "Please don't do that again. It is not good for you."가 메아리처럼 떠돌았다.

    가게에서 나오는 유천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거예요?" 한 사내가 인사를 건넸다.  유천이 담담하게 "잘 있어요.  내일부터는 못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서 오른손을 흔들었다. 한 사내가 의아한 눈초리로 "내일부터 못 봐요?" 물었다. 유천이 짜증 난 듯 "네. 내일부터는 못 봐요" 했다.

"무슨 일 있어요?"

"일을 그만두었어요. 주인에게 더 이상 손해를 보게 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먹고살려고?"

"다른 일 자리를 찾아봐야지요. 사람 구하는 곳은 많더라고요."

다른 사내가 심각함을 느끼고  "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 당신은 여기서 더 일해야 해요. 먹고는 살아야지요" 했다.  

"끝났어요. 다 정리하고 인사하고 나오는 길이에요. 주인이 너무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는 걸 당신들이 더 잘 알잖아요." 

순간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잠잠해졌을 때 한 사내가 소리쳤다. "안 돼요. 우리가 주인에게 가서 이야기할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끝난 일이에요." 

"아니에요. 우리와 같이 주인에게 가요."

두 사내가 양쪽에서 유천의 팔을 잡아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내들도 떼를 지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뒤로 젖혀진 채 엉겁결에 끌려가게 안으로 들어온 유천을 보며 한 사내가 주인에게  "이 사람을 더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했다.

"안 돼요. 내가 있으면 사장님의 손해가 너무 커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주인에게 사내가 "앞으로는 도둑질하지 않고 이분을 우리가 지켜 줄게요" 했다.

    주인이 상황을 알아차리고 사내들을 화난 얼굴로 째려본 후 물었다. 

"정말 이 사람을 지켜 줄 거야?"

"우리가 빈말하는 것 봤어요?  어리바리한 사람이 가게를 지키니 장난 삼아 물건을 훔치곤 했을 뿐이에요. 그래도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 진심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기도 했고, 전도사는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시험하고도 싶었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너무 다른 반응을 즐겼을 뿐이에요."

다른 사내가 "도둑질하는 우리를 점잖게 대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래서 도둑질을 하고 또 했어요.  그래도 이 사람은 끝까지 우리를 짐승 대하듯 하지 않았어요."

또 다른 사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듯했어요. 이제는 알아요.  자신의 생업이 달린 직장을 잃으면서도 우리를 지렁이 보듯 하지 않은 것을요. 살아오면서 이러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이제는 우리가 이 사람을 지킬 거예요."  

"일을 계속해 보시겠어요?"

곽 사장이 물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곽 사장님에게도 당신들에게도."

하늘을 날듯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서며 '연극할 용기가 없어 못한 것이지 인격적으로 대우해서 한 일은 아닌데...'  유천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선명하게 정리되는 것이 있었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힘, 진실함이 밝혀질 때 나타나는 힘, 진리에 접근할 때 나타나는 힘들. 모두가 자연스러운 힘이다. 이 힘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일임이 새롭다. 이제부터는 이 자연스러운 힘에 의하여 살아가야지...'

    유천은 "퉁퉁 퉁퉁"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자동차를 몰고 아리랑 마트로 갔다. 아이스크림, 삼겹살, 양파, 사과, 포도, 케이크를 샀다. 그리고 늠름한 모습으로 카트를 끌고 나와 식품들을 트렁크에 싣고 자동차를 운전해 두 자녀와 부인이 기다리는 집으로 달렸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이게 뭐야." 

"하늘에서 내린 만나(성경, 출애굽기 16장 30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하늘에서 내린 양식의 이름)." 

"하늘에서 내린 만나가 뭐야?"

"생존의 걱정, 관습, 전통, 고정관념을 버리고 진실을 나누는 곳에 하늘이 내리는 일용할 양식." 

    도둑을 끄는 매력이 복이 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떠오르는 둥근달이 초라한 아파트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불륜 전과 그때, 그 이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