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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Nov 01. 2024

불륜 전과 그때, 그 이후

    질문을 가득 품고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생수 같은 답을 줄 때 얼마나 뿌듯한 존재 가치를 느낄까? 듣고 이해해 자유해진 영혼이 지혜를 누리고 사는 것을 보는 맛은 또 어떨까?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신뢰하고 신뢰받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친구들을 상상하며 유천은 휘파람을 불었다.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올라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종달새라도 된 것 같았다. 머리 숙여 인사하는 성도들에게 같이 고개를 숙일 때는 천사 앞에 선 고귀한 신분이 된 것 같았다. 저들도 이런 만남을 그리며 꽃꽂이를 하고 교회를 단장했겠지? 오랜 세월 진리를 찾느라 외롭고 서럽고 힘겨웠던 지난날을 이렇게 보상받다니! 취임 예배를 마치고 유천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힘차게 치켜들고 "야호"하고 소리를 쳤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종달새 한쌍이 푸른 창공에서 "요로래오 요로래오" 지저귀었다.  

    취임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유천은 여기저기에서 변장한 사냥꾼들이 쏘아대는 총질을 피해 다니는 외롭고 두려운 종달새 같은 신세가 되었다. '이 사람의 진심은 무얼까?' '저 사람은 왜 지렁이 보듯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일까?' 답답하고 상심한 마음에 진심을 알아줄 누군가를 만나기라도 하면 껴안고 펑펑 울고 싶었다.  

    유천은 둘셋넷,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벌렁거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는 듯 입을 실룩거리며 그들은 유천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마다 유천은 지옥의 입구에 홀로 서 있는 듯 비루함을 느꼈다. 이후 그는 남의 이야기를 몰래 훔쳐 듣고 곁눈질하는 버릇이 생겼다.    


    온종일 추적추적 가랑비 내리는 주일 오후였다. 행정 사무실 앞을 지나고 있었다. 방 안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천은 여우의 기척을 들은 도둑고양이처럼 무릎을 살짝 구부려 자세를 낮추고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살금살금 문을 향해 걸었다. 쫑긋 세운 귀를 문에 살며시 대었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윤 집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우리가 자기 친구 되려고 교회에 나오는 줄 아는 모양이지?"

"하나님을 믿기나 하는지 모르겠어." 문 집사가 맞장구쳤다. "구원은 받았는지 몰라." 박 집사가 추임새를 넣었다.  유천은 머리에선 쥐가 나고 가슴에선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진실한 친구 되고 싶다"라고 담임 목사 취임 예배 때 한 말을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랜 세월 갈등하며 땀과 눈물로 쌓아 올린 신학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활짝 문을 열고 들어가 토론해 보자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대로 발 뒤꿈치를 든 채 사무실로 돌아와 창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찬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며 머리와 가슴을 식혔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신도들은 더러 목사에게 자기들의 감정을 뜨겁게 만들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신앙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더러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기를 기대하고, 더러는 신비한 기도의 능력을 발휘해 자기들의 병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하고, 더러는 끝없는 사랑으로 자신들의 약점과 허물을 용서하고 성인처럼 인정해 주기를 희망하고, 더러는 줄줄줄 외는 성경 말씀으로 설교하여 대형교회로 만들 꿈을 품고,  더러는 수많은 질문의 답을 얻어 삶의 가치를 높이고 행복해지기를 추구하고, 더러는 거룩한 교회에서 인정받고 사회에서 채우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다. 

    유천은 다양한 기대를 가진 이들과 생각과 지식을 나누며 피차 진리를 깨우치며 인격과 신앙이 성숙되기를 기대했었다. 먼저 교회 안에서 모든 권위적인 직위의 내려놓았다. 가운도 벗었다. 회의도 원탁에 둘러앉아 동등한 자격에서 진행했다. 높고 넓은 강대상을 보면대로 바꾸고 함께 어우러지는 예배를 인도하려 했다. 하지만 유천의 배려와 개혁이 오히려 신도들에게 얕잡아 보이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유천의 리더십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 수는 점점 늘었다. 결국 반은 의심하고 오해하여 갈등이 깊어지고, 반은 우정 깊은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유천은 진실한 친구 된 이들이 의심하는 성도들을 이해시키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자신을 모함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묵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동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착하고 순한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착하고 순했다. 오로지 한 명, 김 집사만이 "신앙의 낡은 옷을 벗어야 한다"며 이들을 변화시키려 했다.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말하며 자기주장을 분명히 했다.

    어느 날 김 집사가 유천을 찾아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이야기했다.

"윤 집사님이 집사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초대했대요." 

"누구의 생일인 모양이지요?" 유천은 김 집사의 걱정을 덜어주려 태연한 척 반응했다. 

"교회 일을 상의하기 위해 모인다고 박 집사가 나에게 전화를 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교회에서 회의를 하는데..." 유천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목사님을 쫓아내려고 밀당하려는 거예요. 아름다운 목소리로 뻐꾹 거리며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그 둥지에 있던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게 하는 못된 뻐꾸기들 같아요." 라며 흥분했다.  

    유천은 가슴이 아렸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만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성도'라 불리는 것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일들과, 그 후유증으로 더욱 의심하고 오해가 깊어지는 교회에서 먹고사는 일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들의 기대와 달라도 그렇지. 힘겹고 고독한 길고 긴 시간 동안 진실한 신앙이 무엇인가를 찾다 겨우 답을 발견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전공자의 말을 들어 볼 생각도 않다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자기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다고, 다양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고 저들끼리 합세하여 쫓아내려고 하다니!' 교회를 떠날까?


    윤 집사가에게 만나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유천은 기대 반, 의심 반의 아리송한 기분으로 "언제든 좋아요. 사무실로 오세요"라고 답했다. 듣고 이해하고 이해시켜 서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한가한 목요일 점심시간으로 약속을 했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윤 집사였다. 친근함을 과시하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자녀들 이야기, 비즈니스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듣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고는 비밀스러운 정보를 알려주려는 듯 의자를 끌고 유천 가까이 바싹 다가앉아 속삭이는 소리로 물었다.

"목사님, 김 집사의 과거를 아세요?"

"모르지요." 하고 뚱한 목소리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답했다.

"저희도 몰라요.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결혼을 몇 번 했었다는 소문만 있고, 지금 남편은 어떻게 어디서 만났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입술을 삐쭉거렸다.

"과거를 서로 나누지 않아서 그런 것이에요. 시간이 지나 친숙해지면 그런 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텐데... 남의 사생활을 추측해 말하는 것은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이에요." 유천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머리를 긁적이며 윤 집사가 얼버무렸다.    

"교인들이 불만이 많아요." 윤 집사는 질책받아 상처 입은 수치심에 반격을 가하려는 듯 공격적으로 말했다.  

"그래요?" 태연하게 유천이 되물었다. 

"네."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윤 집사가 답했다.  

"불만이 뭐래요?"

"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유천은 머리에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신의 에너지를 긁어모아 미소 지으며  "그래요?" 했다.  

"은혜를 받아야 전도도 하고, 교회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하고, 헌금도 할 수 있는데 은혜를 받지 못하니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불평이 많아요."  

유천은 온몸의 기운이 쏙 빠져나갔다. 남아 있는 숨을 몰아 들이쉬고 내쉬곤 "그렇군요"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 명이..." 하고 윤 집사는 자신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가볍게 하려는 듯 이야기했다.   

"은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그때 양심을 통하여 들리는 음성을 듣거나, 진리와 사랑을 깨닫거나,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지으신 아름다움을 느낄 때 받는 사랑의 감정이 은혜이지요. 물론 그렇게 되도록 목사가 역할을 해야 하지만 때때로 너무 감정이 뜨겁게 될 때 느껴지는 은혜만 원하는 것 같아요.  그것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작용도 많아요.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바보처럼 되기 쉬워요. 그래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하튼, 알려 주어서 감사해요. 성도들이 은혜받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유천이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잘 알지요. 목사님의 진심과 수고를... 아직 경험이 없어 모르시는 것 같은데 목사님은 카리스마와 신비한 능력이 있어야 해요. 설교가 어려우면 안 돼요. "믿어라. 하나님이 일하신다. 사랑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면 축복하신다", 확신에 차고 간단명료하게 설교를 해야 해요. 그래야 헌금도 많이 내고 대형 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어요. 생각이 깊고 논리적인 사람들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봤어요? 몸이 부서져라 충성하는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감정적인 사람들이에요." 윤 집사가 항의하듯 말했다.

유천이 이야기했다.  "사람이 희생하고 충성하고 봉사할 수 있는 동력은 두 가지 욕망으로부터 오지요. 하나는 생존과 번식, 그리고 명예와 돈, 권력에서 오는 욕망이에요. 다른 하나는 진리를 깨달은 데서 오는 욕망이에요. 어둠에 있던 사람이 빛으로 나오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겨요. 자유를 몰랐던 사람이 자유를 알면 자유를 모르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생겨요. 예수는 이러한 욕망으로 인간을 동등하게 여기고 희생하고 가르치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 섬김을 받는 거예요. 진리이고, 빛이고, 자유의 근본인 하나님으로서. 이런 예수를 알면 알 수록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닮게 되고 그가 뜻하는 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예수를 아는 것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이고, 은혜받는 것이고, 소통이 깊어지면 예수를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되지요. 그러나 개인적인 욕망에서 일어나는 사랑은 어느 날 뜨거워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고 말아요. 그렇게 인간관계가 복잡해져 울고불고, 배신당했다, 속았다, 아우성치는 거 아니에요?" 

    윤 집사는 "맞아요" 하고는 무언가 반박하려 "그러나" 내뱉고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목사님을 위해 하는 이야기인데 김 집사는 가까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네, 집사님의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유천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체면치레로 답했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헤어졌다. 소득 없는 만남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는 윤 집사의 뒷모습을 유천은 허망하게 지켜보았다. 

    유천은 생각에 잠겼다. 모르는 것, 이해되지 않는 것, 아픔과 고민, 부끄러움을 서로 나누며 진리와 사랑이 깊은 진실한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의도를 가지고 적당히 살을 붙이고 빼며 대화하는 관계가 허망했고 서러웠다. '교회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이유가 보였다. 권력 투쟁이라니...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역할은 고사하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며 미워하고 질투하고 모함하는 현실에 억울함이 치밀어 오르며 양볼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름답고 신비하게 느껴지던 파란 하늘의 흰 구름, 밤하늘의 별들,  산과 들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식물들과 야생화가 쓸쓸하게 보였다. '목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꿈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생존과 진로를 걱정하며 유천은 숨을 몰아쉬었다.

    김 집사에게 전화가 왔다. 

"걱정이 돼서 전화했어요. 윤 집사가 뭐래요?"

"윤 집사 다녀 간 것을 어떻게 알아요?" 

"목사님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아, 그랬군요. 성도들이 나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군요." 

"질문도 하지 않고, 속마음을 드러내지도 않고, 노예와 거지 근성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만 구하니 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그 모양 그 꼴이지요. 감정만 뜨겁게 해 자기들의 주머니와 헌신을 털어가는 목사를 능력 있다고 우상 섬기듯 하고 있으니... " 김 집사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그렇게 배우고 훈련받아 온 걸 어쩌겠어요. 최소한 이해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질문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진실을 이야기해도 오히려 의심만 하니..." 유천이 답답한 듯 말했다. 

"질문이 신앙에 방해되는 행위라 여기는데 어떻게 질문을 할 수가 있어요?" 김 집사가 투덜거렸다.

"아름답게 신앙이 자란 젊은이들과 성도들이 씨앗이 되어 큰 나무 역할을 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래야겠지만 자라던 이들이 교회를 떠날 것 같아요."

"어쩌겠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져요. 성전에서 외면당하고, 사단의 괴수 취급을 받으며 머리 둘 곳 없이 살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저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운데요.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일하지 않고 왜 그렇게 무능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그리고 왜 나쁜 놈들을 쓸어버리시지를 않았는지..." 

"무한하게 믿고 기다려 주시는 거지요. 하나님과 동등하고 고유한 인격체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의롭게 살 수 없는 인간들을 위해선 그들의 죄 값으로 대신 죽으신 거지요. 전지전능한 능력을 사용하기보다 진실한 친구로 여기고, 친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는 사랑에 무한한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어떻게 제자들이 변화됐는지.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땐 서로 높아지려 질투하고 미워하고 위선 떨며 살던 이들 아니었어요? 그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의와 사랑을 위해 생명을 던지는 존귀한 존재가 됐어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십자가이고 그 안에 무한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작은 예수가 된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그들을 통하여 이루는 거예요" 유천이 눈을 지그시 감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고 신뢰하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사기꾼들과 거짓말쟁이들이 판치는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김 집사가 물었다. 

"원하시기는 하지요. 그러나 그 일은 시공을 초월하고 생과 사를 넘나들 수 있는 존재나 신앙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아시겠지요." 빙그레 웃으며 유천이 말했다.

    유천은 진실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을 만나면 새로운 힘을 얻지만 그들 또한 성도들에게 따돌림당하고 미움받는 것을 보며 한편으론 가슴이 아프고 한편으론 우정이 깊은 친구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김 집사가 제안을 했다. 

"봄의 기운이 가득한 날이에요. 새싹들이 경쟁하듯 돋아나는데 우리, 힘찬 생명력을 느끼러 가요. 제가 내일 도시락을 싸가지고 올게요." 

"그래요. 아름다운 봄의 생명력을 즐기면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을 것 같아요." 유천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애팔래치아 산맥 끝자락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과 들의 나무들과 식물들이 수정하느라 꽃가루를 온 천지에 뽀얗게 뿌리고 있었다. 연한 연두색의 새싹을 틔우는 참나무 숲 속에 하얗게 핀 덕우드가 뭉게구름처럼 하늘하늘 피어 있었다. 태네시 강변의 나무들은 제각기 고유함을 드러내며 퍼플, 연두, 흰색의 새싹들이 앞다투어 피어오르고, 더러는 분홍, 하양, 노랑꽃을 피웠다.  이들 안에 크고 작은 노란색, 검은색, 갈색, 파란색, 빨간색의 새들이 더러는 나뭇가지에서, 더러는 숲 속에서, 더러는 강물 위를, 더러는 하늘 높이 날며 비발디의 봄을 연주하듯 나름의 고유한 목소리로 지저귀며 생명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유천은 김 집사와 함께 천국 같은 산길을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에 관한 생각도, 윤리 도덕도 사라지고 둘은 점차 자연과 동화되며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저기 저 꽃 좀 봐요. 신비를 간직한 요정 같아요." 김 집사가 나비가 나는 듯한 몸짓으로 이야기했다.

"하늘을 봐요. 나무들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는 구름과 푸른 하늘이 너무 고아요." 유천이 화답을 했다.

"피어나는 어린 새싹들 좀 봐. 야들야들한 연약함이 생명의 경이를 드러내고 있어요." 

    유천과 김 집사는 걷고 또 걸으며 인적 없는 깊은 산속에서 숨을 멈추고 섰다. 산 비둘기 두 마리가 다투다 날고, 다시 다툼으로 퍼덕이다, 하늘로 날고, 다시 나무들 사이를 빠져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나뭇가지에서 다투고 하늘을 날고, 저 나뭇가지에서 어우러져 퍼덕이다 하늘을 날고, 풀 섶에서 함께 뒹굴다 하늘을 날았다. 

"재들은 왜 저렇게 싸움을 하고 있지요?" 김 집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사랑 싸움하는 것 같아요." 

"사랑싸움인지 그냥 싸움인지 내기할까요?" 김 집사가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좋아요. 지는 사람이 저녁 사는 거예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부리를 맞대고 비볐다. 결국 그들은 한 몸이 되었다. 그리고 파르르 떨었다. 그러다 "툭"하고 풀숲으로 떨어졌다. 유천과 김 집사의 몸도 두 비둘기와 함께 파르르 떨렸다. 황홀경에 빠졌다가 두 개체로 돌아온 비둘기 한 쌍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아 꼼짝도 않고 동그란 눈동자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김 집사와 유천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 포옹을 했다. 둘은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전율을 느끼고 숨을 가쁘게 쉬었다. 유천의 입술이 어느새 김 집사의 입술에 포개어져 있었다. 이때다. 유천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온몸의 황홀함이 하나로 뭉쳐 저 입속으로 쑤-욱 들어왔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오독오독한 통살이었다. 유천은 입속으로 들어온 혀를 빨다 자신의 혀를 그녀의 입속으로 넣기를 하고 또 하다 두 몸은 풀숲에서 하나 되어 무엇으로도 통제할 수 없이 뒹굴었다. 수정하느라 뿌려진 온 산의 꽃가루가 둘의 몸에 뽀얗게 내려앉았다. 자연의 섭리는 윤리와 도덕, 교리의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그 뜻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실 거야,  이미 용서받은 죄인데... ' 유천이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나 되었던 몸은 다시 둘이 되었다. 이때 유천의 생각 속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윤 집사가 가까이하지 말라고 한 것인가?"

"이래서 사람들이 목사를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일까?" 김 집사의 마음속에서도 의심이 싹텄다. 

'아! 이제 난 목회를 할 수가 없다. 그녀 앞에서 어떻게 설교를 할 것인가?' 유천은 새롭게 일어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김 집사도 ' 이 사람이 삯꾼 목사인가? 진실한 목사라면 산에 가자고 했을 때 거절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와 각자 세워 둔 자동차를 타고 인사도 하지 않고 둘은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유천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캄캄한 곳에 거하는 영혼이 되어 밤새도록 괴로워하다 편지를 썼다. 


김 집사님, 

제가 집사님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김 집사님이 죄를 짓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집에 돌아와 비둘기가 한 몸이 된 후 한 동안 멍하니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저도 멍하게 한 밤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점점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여 저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정신을 잃기 시작한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각각의 존재들이 노랗게 꽃가루를 뿌리며 하나가 되기 위해 세상을 뿌연 세상 속에 있을 때부터였습니다. 난 어떤 경계도 두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비둘기 한쌍이 나무와 숲 속을 날아다니며 사랑 싸움 할 때 나는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둘기 두 마리가 한 몸이 될 때 이미 난 내 마음을 컨트롤할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집사님과 교회일을 상의하며 신뢰하고 신뢰받으며 하나 되기 시작한 것도 어떤 경계를 무너뜨린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의 활동이 비둘기 두 마리의 사랑싸움이었듯이요. 여하튼 난 감당할 수 없는 온전한 사랑에 함몰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난 불륜을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은혜로 다 용서하신 죄를 짓고 있는 것인데... 지으신 사랑을 즐기고 있는 것인데... 난 자유로운 영혼이야.' 라면서. 그러나 다시 둘이 된 순간  '그래서 윤 집사가 가까이하지 말라고 한 것일까?' 김 집사님을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호라,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인간이여! 저는 비로소 나를 모르는 인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아니,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있는 걸 몰랐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다양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내 안에 선조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것을 물려받은 나, 육체의 본능에 노예 된 나, 이성, 도덕 윤리에 종속되어 있는 나,  명예에 지배받는 나, 환경의 영향 아래 있는 나 등,  수많은 내가 서로 갈등하다 협력하고 타협하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알고 나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견하며 그에 따라 살아야 했는데... 그것을 난 몰랐습니다. 

    목회를 그만하겠습니다.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는 못할망정 죄의 노예가 되게 한 자가 무슨 목회를 하겠습니까? 그동안 사랑받고 신뢰받던 순간들 정말 행복했습니다. 감사드리며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만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집사님께 하였던 모든 말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치부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모르고 했다고 진심마저 쓰레기 취급받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간직했던 사랑과 신뢰의 마음까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다시 신앙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사실 하나님에 대하여만 공부를 했지 정작 먼저 했어야 할 나라는 인간에 대하여는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내가 속해 있는 세상에 대하여도 몰랐습니다. 관계란 쌍방을 함께 알고 속해 있는 환경을 알아야 진리 안에 있는 깊은 행복과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인데... 그저 남들이 던져준 암기할 것, 믿어야 할 것들만 외우고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남들보다 깨었다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난 나 자신도 모른 채로 남들을 상담하며 신앙 지도를 한다고 떠들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그만 집사님을 죄짓는 자리에 떨어지게 한 것입니다.    

    이기적이라 욕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가치관이나 윤리나 도덕, 사상이나 이념이 없는 존재라면 자연이 준 욕망대로 사랑하고 하나 되고 분리되기를 거듭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고하는 크기가 크면 큰 존재일수록 쌍방이 서로 이해하고 주어진 환경을 알아야 관계를 깊고 넓게 올바르게 만들며 하나 되는 행복을 그만큼 크게 누릴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각이 짧거나 길고, 깊거나 얇고, 넓거나 좁은 것에 관계없이 그 수준에 따라 진실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천국인 것도 알았습니다. 비록 사실은 틀릴지라도...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내 속에 있는 분과 이웃과 내 실력껏 진실을 나누며 그에서 얻어지는 행복을 누리며 살려합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며 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살겠습니다. 집사님과 나누었던 모든 순간들을 천국에서 있었던 일로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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