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솔과 아궁이

by 키아라

어릴 적, 아빠가 거의 없는 평일에는 엄마와 함께 종종 외갓집에 가곤 했다. 택시비는 천 원이었고, 대체로 기본요금이었다. 간혹 미터기의 말이 사정없이 달리면서 백 원이 올라갈 때면, 짠순이 우리 엄마가 외갓집을 이제는 안 갈까 봐 조마조마할 때도 있었다.


나는 외갓집(외가라고 해서는 그 맛이 안 산다.)이 좋았다. 갈 때마다 외할머니께서 과자를 사 먹으라고 천 원을 주셨고, 동생과 함께 한 모퉁이만 돌면 있는 동네슈퍼에서 나에게 할당된 오백 원을 즐겼다.

주방에는 이모와 삼촌들이 솜씨를 뽐낸 음식을 먹으며 "선화야, 맛있지? 맛있지?"하고 물어보면, 선심 쓰듯 맛있다고 해주면 되는 가히 팬미팅현장 같던 식탁이 있었다. 그곳에 앉아 케첩을 콕 찍어먹는 계란말이와 짜파게티가 그렇게 맛있었고, 컵받침이 있는 예쁜 커피잔에 프림과 설탕 등을 섞어 커피를 타는 이모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는 놀이였다. 이모 방의 예쁜 소품들이나 인형이 탐이 나면 전부 내 차지가 되던 것도 나름 즐겼고, 간혹 삼촌이 친구와 롤러스케이트장에 간다고 하면 어렵지 않게 나도 따라나설 수가 있었다. 욕조에서 목욕놀이 후 침대에 누운 엄마 배 위에서 자는 낮잠도 근사했다. 그렇게 실컷 놀다가 잠이 올동말동 할 때 외할아버지의 차로 집에 가는 길도, 그 차 안에서 어렴풋이 잠결에 들리던


"아빠, 또 또 과속한다. 초록불만 보이면 너무 달리는 거 아니야?"


엄마의 잔소리도 꽤 몽환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백미는 바다였다.

외할아버지는 요즘 MBTI로 견주어볼 때 확신의 P였다. 계획이 없이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우리 아빠와는 다르게 외할아버지는 즉흥을 좋아하는 분이었던 것 같다. 누구든 바다가 보고 싶다 하면 그대로 출발! 그래서 어렵지 않게 낮이건 밤이건 여름이건 겨울이건 바다를 보러 다녔다. 외갓집과 바다가 가깝냐고? 그건 아니다. 밤에도 한 시간은 넘게 걸렸던 곳이니 확실히 외할아버지에게는 낭만이 있었다.


파라솔을 펴고 바다를 실컷 즐긴 다음에는 어린아이답게 수돗가에서 대충 씻은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지면 되는 일이었다. 한 여름의 뜨거운 땡볕을 조금이나마 막아주던 파라솔은 바다와 꽤나 어울리는 색깔이었지만 지금의 내 기억에는 흑백으로 남겨졌다. 그 바다 역시 지금은 흑백이 된 듯하다. 근처의 다른 해수욕장에 리조트가 개발되면서 인적이 드문 바다가 되었으니 말이다.


엄마는 행복했을까?

엄마의 아빠와 동생들과 딸과 아들이 함께한 그 바다가 소풍이었을까?



IMG_4928.jpeg 엄마와 바다


구례의 한 시골집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그 작은 집에서의 엄마 자리는 늘 아궁이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