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많은 시간을 SNS로 보내고 있는 현대인답게, 인스타그램을 보던 중 새로이 꽂힌 물건이 있었다. 한 번 보니 알고리즘을 타고 두 번 나오고, 두 번 보니 자꾸만 사고 싶어졌다. 나도 인플루언서들처럼 저 물건과 함께 삶에서 건강 루틴을 만들어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지금 내가 저렇게 못 살고 있는 이유는? 저 블렌더가 없어서야!
이것이 늘 나의 소비를 합리화시키는 기적의 논리였고, 아무래도 내가 저 인플루언서들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린스무디를 만들어주는 블렌더'가 없기 때문이었다.
요즘 인플루언서들은 웬만한 쇼호스트만큼이나 상품을 잘 소개한다. 꼭 그 물건이 있어야만 자기들처럼 멋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마치 나와 나의 재정상황까지 최고로 생각해 주는 사람인 것처럼 말해주기 때문에 사람을 홀리게 한다. 더욱이 판매기간이 수일 이내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다. 실제로 몇 번이나 홀렸고, 덕분에 집에는 요즘 인스타에서 유행하는 반찬 통, 선풍기, 밀키트, 프라이팬 등 갖가지 아이템들이 꽤 많이 있다. 야무지게 잘 쓰고 있기는 하지만 충동적이었단 생각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려 백만 원이 넘는 블렌더였다. 아무리 팔랑귀인 나라도 이번만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동안 태워먹은 저렴한 블렌더들을 생각하면 이번 기회에 괜찮은 걸 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하는 생각까지 이어져갔다. 물욕에 근거가 생기니 약간의 자신이 생겼다. 단순 물욕은 아닌 것 같아 보이기에 조금 더 저렴하게 파는 곳은 없는지 검색에 검색을 더 했다. 더 비싸네. 역시 요즘은 인스타마켓이 최저가이긴 한 것 같다. 다시 또 검색. 오, 이번에는 좋은 정보를 발견했다. 해당 브랜드의 블렌더들은 전부 모터가 같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블렌더의 성능은 같다는 말! 부가적인 기능의 차이에 따라 가격이 더해진다고 한다. 부가적인 기능이 뭘까. 땅콩버터? 전자식 버튼? 빼자, 기능도 빼고 가격도 빼자. 가격이 반절로 홀쭉해져 버렸다. 여전히 고가이긴 하지만 처음의 가격에 비하면 그런대로 합리적인 가격이 되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남편의 결재와 결제였다. 사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좀처럼 반대하는 일이 없는 예스맨이기에 남편이 반대한다면 그건 천재지변과 같이 내 손을 떠난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이유를 물었다. 그걸 왜 꼭 사야 하냐고.
"아니 나 점심에 단백질 셰이크만 먹기 지겨워서..."
"그래? 맞아, 지겨울 때도 되었지. 그럼 하나 사자!"
차마 저 인플루언서들처럼 나의 삶에 건강 루틴을 만들어놓고 싶다는 둥의 이야기는 할 수 없었고 그냥 그린스무디가 먹고 싶다고 심플하게 둘러 대었다. 나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의 마음속 저 기저에서는 그린스무디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나의 삶에 건강 루틴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아니라 내 몸, 내 건강을 챙기는 나의 모습에 취하고 싶은 거라고 소신 발언을 아주 조그맣게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들인 블렌더로 만든 그린스무디는 꾸준히 n일째 섭취 중이다. 역시나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멋진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처음에나 열정적으로 스무디를 만들었지, 나의 모습은 그저 등교 전 엄마가 챙겨주는 홍삼을 간신히 먹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변비에도 효과가 있다는데 그것도 실패했다. 오히려 심해진 편이었는데 이건 평소에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생길 수 있는 그린스무디 부작용이라고 한다. 좋을 줄만 알았는데 부작용도 있더랬다.
다행히 시들해진 나의 열정 대신 남편의 사랑으로 블렌더는 매일 그린스무디를 만들어내고 있다. 스스로는 아니지만 남편이 챙겨주는 건강한 음료를 마심으로써 어떻게든 나를 챙겨주었다는 약간의 뿌듯함은 덤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