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방 학생의 보은

by 키아라

아빠는 월요일 출근길의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는데도 신이 났다.


"그래도 딸. 아빠는 늦었지만 할아버지를 이장해 드려서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이 34년 만에 그렇게 나란히 누워 계시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 다 마무리하고 입원하니까 속이 다 후련하다."


오십 중반에 처음으로 가져 본 새 차도 찌그러지고 병원에 입원하는 마당에 그게 그렇게 대수인가 싶은 딸의 마음은 모르고 주말에 이장을 마무리하고 사고가 나 오히려 다행이라는 아빠의 목소리는 높으면서도 촉촉했다.


아빠는 외갓집의 옆 방 학생이었다. 구례의 작은 국민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게 되어 증조할머니와 함께 5학년 때 전주로 유학을 왔다는 아빠는 여러 친척집과 이 집 저 집의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고등학생 때 외갓집의 옆 방에 정착했다. 중간에 세가 적은 2층의 옥탑방으로 옮겼다 하더라도 그 집에서 사위가 되었으니 정착인 셈이다.

가난한 학생이었던 아빠는 주인집의 외할머니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차비를 빌리곤 했는데 약속한 상환날짜를 잘 지켜 신용이 좋아 대출이 잘 되었다고 우스갯소리로 회상했다. 엄마는 아빠가 옥탑방에서 줄곧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외할머니께서 목소리가 두꺼우면 큰애, 얄쌍하면 작은애(작은 아빠)라고 했다고 하니 미래의 장모님이 듣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열창을 했었나 보다. 그럼 아빠는 또 엄마가 외삼촌과 싸우고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소리 때문에 공부를 못했다고 핑계를 방음에 대고는 했다. 언제부턴가는 아빠 친구들로부터의 전화가 하도 주인집으로 걸려와 셋방에 전화를 넣어줬다고 하니 나의 외갓집은 굉장히 마음씨 좋은 주인집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의 합심으로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지 돌도 안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아빠는 친장모님을 본 유일한 사위가 되었다.


쌓아온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외갓집과 아빠의 관계는 조금 남달랐다.

아빠는 항상 외삼촌과 이모들을 보고 싶어 했다. 안 맞는 큰 옷이 있으면 체격이 있는 큰 외삼촌을 주고 삼촌이 보고 싶다며 주말출근을 하는 삼촌의 직장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작은 외삼촌을 애틋해했다. 호칭은 늘 재동아, 우진아.

이모들에게는 애칭이 있었다. 큰 이모는 이쁜 처제, 작은 이모는 똑순이 처제였다. 지금도 저녁 시간에는 가까이 사는 이쁜 처제의 집에서 차를 마시고 싶어 하고, 여행이 가고 싶을 때에는 두 시간 거리의 똑순이 처제의 집으로 간다.


그런 아빠에게 이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 형부!"


사위라는 위치도 잊은 채 외갓집 대소사에 아빠는 목소리가 제일 컸다.

이번 이장 역시 철저하게 아빠의 의지로 시작되었다. 재작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빠의 가장 큰 숙제는 이장이었나 보다. 굳이 도심의 납골당에 모셔 둔 할아버지를 이제 와서 할머니가 계신 선산으로 옮기려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 돈이면 차라리 해외에 엄마랑 이모들 자매여행이라도 보내주는 게 낫지 않은지, 선산을 관리할 사람도 없는데 그곳을 다시 단장하는 건 너무 매몰비용처럼 느껴졌다. 주변인들의 소극적(?)인 만류에도 아빠는 기어코 할아버지 장례 때 들어온 부의금 잔액을 무너진 석축을 다시 쌓고, 외할머니의 유골을 수습하여 화장하고, 외할아버지를 이장하여 와비를 놓는 일에 썼다.


아빠의 미적 감각이란..


"외할머니 관이 석관이었더라고. 거기 안에 물이 차 있는데 어휴.. 이장하기를 정말 잘했어! 너네 엄마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엄마도 마음 편해하고. 그렇지 않아도 이장 때문에 일 좀 했더니 피곤해서 저녁에 너희 엄마랑 찜질방이나 가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며칠 푹 쉬면 되겠어, 허허. 장모님이 준 선물인 거 같아."


아빠는 장녀인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저 더 이상 주인집 아주머니를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싶었던 옆 방 학생의 보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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