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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위 ouioui Aug 20. 2020

손님 초대, 이런 식으로 망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려고 작성한) D-1 우선순위 청소 체크리스트

 초대받은 집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으면 환대받는 느낌과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물론, 그렇지 않은 상태여도 나는 전혀, 절대, 속으로 판단하려 든다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쪽은 맘이 편해서 좋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까지 하는 어느 부부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정돈되지 않은 집을 두고 “Don’t judge us. Haha.”하고 우리를 맞이하던 안주인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자세를 배우고 싶기까지 했을 정도. 아, 그러나 나는 왜 그런 부류의 대인배가 되지 못하는가. 손님이 우리 집에 오기로 한 날 일주일 전부터 신경이 쓰이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뭘 그렇게 잘 보이고 싶고 잘 숨기고 싶은 것일까? (소박한 체크리스트는 끝 부분에.)


손님 초대 하루 전, 멘붕이 왔다.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하고 특히 미국에 큰 타격을 입혔다. 산책과 장보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활동을 중지한 채로 몇 달을 지냈다. 그러나 시카고 여름의 날씨는 완벽했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그리웠다. 집에 야외 발코니 공간이 있으니 거기서 거리 유지하며 조심해서 먹고 마시면 어떨까. 우리는 오랜만에 이웃집 부부를 초대했다.

그런데 초대 당일 며칠 전부터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두어 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칩거생활을 하는 동안 손님 초대의 얕은 노하우마저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마음만 심란하고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괜히 커피만 연거푸 끓여 마시며 그렇게 하루 전날을 날리고, 초대 당일 벼락치기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눈 뜨자마자 이것저것 치웠다.(벼락치기의 아이콘) 그러나 시간은 자꾸 가는데 청소하면 아이가 다시 어지르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다시 개수대에 그릇들이 자꾸 쌓이는 식이라 대략 난감했다. 그래도 어쨌든 시험을 치르면 괜찮은 점수를 받아내고 말았던 학생답게 우리 집은 그럴싸한 손님 접대용 모드가 되었다.


초대 당일,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그러나 역시 100점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서 실수해버리는 바람에 항상 몇 개를 틀리던 내가 아니던가. 상상치도 못한 일이 생겼다. 손님들이 도착하고, 짐짓 여유로운 척 인사를 나누고 애피타이저를 권하며 그들이 가져온 와인을 따르려고 찬장을 열었다. 그런데 와인잔 하나가 부족했던 것이다. 손님 초대 준비를 하며 머릿속으로 집에 와인잔이 몇 개가 있는지 세고 안심했던 나였다. 그런데 몇 주 전 설거지하다가 하나를 깨버린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비상사태였다. 나는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실낱같은 희망 한 가닥을 붙잡고 의자에 올라가 상부장 유리잔 쪽을 뒤지다가 설상가상으로 제일 얇은 유리잔 하나를 떨어트려 깨고 말았다. 옆에서 요리하고 있던 남편도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핀잔을 주었고, 나는 창피하고 열 받아서 머리가 새하얘진 상태로 깨진 유리조각들을 치웠다. 손님들은 물론 그 모든 과정의 목격자가 되어버리며, “저.. 저희가 잔 하나 가져올까요? 여기서 몇 분이면 갔다 오는데..” 하고 되려 미안해했다. 식탁에 차려놓은 애피타이저가 무색하게 손님들은 이쪽으로는 민망했는지 오지도 못하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우리집 개와 놀아주기만 했다.

결국 와인잔과 최대한 비슷한 모양의 유리잔을 내어놓고 식사를 시작했다. 당연히 그 잔은 내 앞에 뺏어오듯 냅다 가져왔다. 어색하고 쪽팔린 마음을 무마시키고자 했는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고, 와인이 담긴 유리’컵’이 민망해 그 잔도 더욱 드높이 건배했다. 그가 만든 모든 요리들은 훌륭했고, 마음 맞는 이웃부부와의 대화도 즐거웠기에 먹고 마시는 것은 즐거웠다. 이런저런 실수들이 있었다 해도 친구 같은 동생들이기에, 되려 호탕하게 웃어주며 이해해주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호스팅이 되어버려 속상했다.

다음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하루 전에 해야 할 일들과 초대 당일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았고, 그에 따른 리스트를 작성했다. 친한 친구가 차 한 잔 하러 올 때의 경우가 아닌,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 환대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은 날을 위한 것이다. 남편의 경우 이런 것 없이도 뭐든 척척 해내는 타입이지만, 나는 뭐든 목록을 만들고 지워나가는 게 편한 타입이라 다음에 내가 보기 위해 썼다. 손님이 오시기까지 해야 할 일 대비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용도로도 요긴하다. 물론 매일 매일 깨끗한 집이나 성격상 별로 상관 안 한다는 경우 이하 부분은 스킵하시는 것이 나을 것이다. 손님 초대가 처음이거나, 너무 바쁘거나, 나처럼 오랜만에 손님 초대를 해야 해서 최소한의 목록이 필요한 분이 혹시 계시다면 도움이 되면 좋겠다. 

손님 초대 준비 포인트 :
1. 손님들이 만지거나 닿게 될 부분이 청결할 것
2. 집에 좋은 향까지는 아니어도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할 것
3. 손님들이 사용하게 될 모든 아이템을 인원수에 맞게 넉넉히 구비할 것 (또르르,,)
4. 손님용 화장실 휴지는 통통한 새 것으로 교체해두거나 여분을 가까이에 준비해 둘 것 (손님이 화장실 쓰다가 휴지가 없는 민망한 상태가 되면 곤란), 손 씻는 액상비누 (핸드워시) 또한 마찬가지.

5. 손님 중 특정 음식이나 우리집 반려동물에 대한 알레르기 혹은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등 확인.

D-1, 하루 전 체크리스트:
한 번 치워 놓으면 다음 날까지 그 상태가 유지되는, 비교적 손이 덜 타는 곳을 청소한다. (내일의 나를 돕는다는 맘으로.)

ㅡ손님용 화장실 : 딥클리닝 (세면대, 수전, 변기, 거울, 바닥 등..), 휴지나 핸드워시 충분히 채워 놓기, 향이 좋은 디퓨저나 캔들 놓아 두기.
ㅡ주방 : 그 날 설거지 모두 완료하고 잠자리에 들기
  (아이 있는 집 : 다음날 아이가 먹을 음식 미리 준비해서 냉장/냉동보관 해두기. 우리집의 경우 아이 음식 만들 때 설거지가 제일 많이 발생하므로)
ㅡ의자, 접시, 잔, 수저, 냅킨 등이 인원수에 맞게 갖춰졌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구입
ㅡ거실 : 가구, 전자기기 등 먼지 털기
*청소와 기본 준비에 관한 글이므로 장보기와 요리, 상차림에 대한 부분은 제외

초대 당일 체크리스트:

어제 치워봤자 오늘 다시 어질러졌을 부분들을 마저 손본다.


ㅡ 손님용 화장실 : 마지막 간단 점검 (새 수건 교체, 휴지통 비우기 등)

*집에 화장실이 한 개라면 칫솔이나 면도기, 빗, 너무 많은 화장품 등 퍼스널한 것들은 될 수 있으면 거울 뒤 수납장 등에 숨겨둔다.
ㅡ 주방 : 설거지, 싱크대 안쪽+수전 물때 제거 (집에 오자마자 주방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 손님분들이 은근 많다.) 가스레인지나 아일랜드, 식탁 등 각종 표면 닦기, 쓰레기통 비우기
ㅡ 반려견, 반려묘 등의 배변 판/패드 : 새것으로 교체, 소파나 카펫에 붙은 털 제거 (키우는 사람은 몰라도 손님들은 예민할 수 있다)
ㅡ 거실 : 기본 정리, 바닥 청소(끈적이거나 밟히는 것x)
ㅡ 현관 : 신발 정리, 주변에 널린 짐이나 박스들 치우기 등
ㅡ 10~20분 정도 창문 열고 주기적으로 환기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여유로운 맘으로 준비하자


*커버 사진: mbc 드라마 <십시일반>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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