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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위 ouioui Jul 03. 2020

프렌치 불독이 살던 집에 아기가 오면

짠내 나는 공생 이야기

 결혼 전부터 남편이 키우던 프렌치불독 남아 '스모'. 이젠 어엿한 6살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동네 이름을 붙여 '웨스트룹의 왕자'라고 부를 만큼 팔자가 편한 녀석이었다. 리틀몬스터 '엠마'가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는.


  그의 일상은 이러했다. 하루 한 두 번은 꼬박꼬박 산책하고, 최고급 유기농 사료에 유기농 소프트 베이크드 쿠키를 간식으로 먹는다. 집에선 기분 좋은 재즈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 나른함에 어울리는 포즈로 낮잠을 잔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공은 언제나 스모. 산책을 하면 (특히 젊은 여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야단스럽게 예뻐해 준다. 나는 남편을 째려보며 이렇게 물었다.
".... 여보, 이래서 프렌치불독 키웠던 거야?"
"노 코멘트!(찡긋)"

일광욕을 즐기는 스모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남편이 싱글 시절부터 혼자 살던 방 한 개짜리 집에서 살았었는데, 그 집의 가장 큰 장점은 거실 크기만 한 데크(deck), 그러니까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스모는 낮에 햇빛 받으며 일광욕도 하고, 낮잠도 자고, 맘껏 뛰놀며 공놀이도 하곤 했다.

  어느 늦여름에는 스모를 데리고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미시건 호수 근처에 놀러간 적도 있다. 남편의 친구 부부들 몇몇이서 크고 예쁜 별장을 빌려 1박 2일 여행을 갔는데, 꼬맹이들만 모아 놔도 족히 8명은 되는 그 곳에 우리도 초대 받았고, 아이가 없던 우리는 스모를 데려간 것이다. 그러면 그곳의 인기스타는 두말할 것 없이 녀석이었다. 보통 "안 물어요?" 하고 묻는 한국 아이들과는 달리 여기 아이들은 "쓰다듬어도 돼요?" 하고 물었다. 어느 쪽이나 귀엽기는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

   당시 나는 남편 친구들이 낯설기도 하고 영어로 내내 대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오래 머물 수는 없었고, 스모에게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므로 4-5시간 남짓만 있다가 밤늦게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스모는 차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졌고, 나 역시 조수석에서 코를 골며 졸았다고 한다. 그것이 스모와 우리 부부 이렇게 셋이서 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여행인 셈이었다.


  이듬해 2월, 우리 부부가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임신 6개월 즈음에는 이사를 했고, 몇 차례 남편의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집들이를 열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거실에 빙 둘러 앉으면 자연스레 화제의 주인공이 되는 스모에게 친구들이 꼭 한 번은 하는 소리가 있었다.
"Sumo, you'll going to be a 찬밥, dude."
그리고 그들의 슬픈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2018년 11월에 우리 집 꼬마대장 엠마가 태어났다. 병원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집으로 왔는데, 작고 작은 엠마만 보다가 다시 만난 스모녀석은 전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어쨌든 나는 갓 태어난 딸아이를 밤낮으로 돌보며 24시간 걱정과 관심 속에 키워야 했고, 자연스럽게 스모에게는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스모의 호시절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산산조각 나게 되었다. 안 그래도 억울해 보이는 얼굴이 더 시무룩해 보였고, 녀석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미안함과는 별개로, 단모종 특유의 짧고 굵은 털들이 바닥 여기저기 허옇게 깔려있는 것에 짜증이 났다. 무균상태까지는 아니어도 신생아가 있는 집인데. 잘 시간 쪼개가며 암만 치워도 늘 허연 털들이 따라다녔다. 옆집 이웃들 발소리나 문 여닫는 작은 기척에도 컹컹 짖어대는 녀석 때문에 애써 재운 아기가 "왱~~"하고 깰 때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호르몬의 장난질, 수면 부족에 (대부분의 산모들이 안 겪어도 될) 향수병까지 시달리며, 밤낮없이 3시간마다 수유하는ㅡ  죽었다고도 산다고도 할 수 없던 그때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스모가 미웠다.

  엠마가 우리 집에 온 지 2주쯤 됐을 때였나, 스모는 이유 모를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당황하기도 했고 걱정도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번거로운 마음이 함께 든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흰쌀밥에 단호박 으깬 것과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먹이니 다행히 하루만에 괜찮아졌다. 스모 아니어도 이미 힘든 일상을 살아내고 있던 우리였기에 녀석의 설사가 더 길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녀석은 마룻바닥 전체를 캔버스 삼아 그림이라도 그리려는 듯 오줌을 휘갈기며 뛰어다녔다. 이런 기이한 행동 역시 처음이었다.

  경찰견도 될 수 없고, 양치기 개도 될 수 없고, 이제는 더 이상 소불알을 물고 늘어질 일도 없는 ㅡ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ㅡ 프렌치불독들에게는 사랑만이 필요했던 걸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 어쩌면 녀석들의 사명이자 기능인 셈이었는데 우리는 어쩌면 녀석들에게 밥보다도 중요할 그것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스모 : "어머니, 그래도 밥은 필요합니다.")

  진지하게 파양을 고민했다. 남편의 첫사랑, 우리의 잘생긴(?) 아들, West Loop의 왕자 스모를 보내야 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신생아와 녀석 모두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우리 부부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머님 댁에 스모를 보낼까? 근데 페니(어머님이 키우시는 내성적이고 예민한 개)는 어쩌구. 오빠 친구 부부네 집에 몇 개월이라도 맡길 곳 없나..? 없는 것 같은데.


  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아기의 안전이 최고이기에 아기가 집에 오기 전부터 키우던 개를 다른 곳에 잠시 맡기는 것이 좋다는 개통령님의 조언이 우리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그냥 조심해서 같이 키우지 뭐'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스모를 어디에도, 잠깐이라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아니, 차마 보내지 못했다.

  현재 엠마는 19개월이 되어 집안 여기저기를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스모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 둘은 낮의 대부분의 시간을 붙어 다니는데, 엠마를 성가셔하는 스모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꼬마대장이 간식을 종종 떨어트리면 우리 왕자님이 그걸 낼름 주워 먹기 때문이다. 견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처럼 들리지만, 녀석은 그것을 마치 게임처럼 즐기고 있다. 가끔 엠마가 스모를 꼬집어도, 꼬옥 안아준다는 게 말타기 놀이처럼 되어버려도 여섯 살 스모는 넓은 마음으로 받아준다. 그래도 속으로는 스트레스를 참고 있을 것을 알기에, 녀석이 좋아하는 공놀이를 해주거나 산책을 하루 한 두 번씩 꼭 나간다.


"스모 오빠 사랑해~" "끄응..."


  무는 힘이 센 견종이라 처음에는 걱정도 했었다. 그러나 천성이 소심하고 착한 스모는 행여나 자신이 우리를 물게 될까 봐, 손으로 주는 간식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고 바닥에 던져줘야 그제야 먹는 녀석이다. 게다가 엠마가 놀자고 대책없이 달려들면 자신의 힘이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아는지, 그냥 싫은건지 녀석은 그저 도망친다. 암만 그래도 안전이 제일. 엠마와 스모가 함께 있을 땐 항상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예전엔 집안의 모든 공간이 다 스모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안전을 위해 구획을 나눠 주방과 거실 사이에 게이트를 설치했고, 녀석의 공간은 두 동강이 나버렸다. 내가 집안일로 바쁠 때는 엠마와 스모를 분리시켜 놓는데, 동물원 속 철조망에 갇힌 표정인 것이 엠마인지 스모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쩌면 그 둘 다.)

  퇴근하고 온 남편이 엠마와 격하게 놀고 있으면 아빠를 내내 기다리던 스모는 부러운 듯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가, 같이 놀자고 낄 때가 있다. 그러다 신난 스모에게 떠밀려 엠마가 엉덩방아라도 찧으면 남편은 엄한 목소리로 "Go, Sumo!"하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소심한 녀석은 영문도 모르고 줄행랑을 친다.

  그렇게 스모에게는 본인의 이름보다는 'Go, Sumo'로 더 자주 불리게 되는 시기가 왔고, 짠하고도 짠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찬 밥 정도가 아니라 눈물의 짠 밥이었던 것이다. 엠마가 태어나기 전 남편은 스모를 정말 이지 끔찍하게도 사랑했는데, 딸아이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것보다 몇 배는 컸다. 자신 스스로가 당황할 정도로.

  그래도 엠마가 두 돌이 되어가며 나에게도, 스모에게도 힘들었던 터널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새로운 삶의 규칙과 기존의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공생이란 두 글자에 이런 무게와 책임이 있었던가.

   여전히 스모의 짧고 굵고 허연 털들은 매일 말도 안 되게 빠지고, 안 치우면 쌓인다. (그나마 날리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그것들이 엠마의 애착 담요에 붙어 몇 시간 간격으로 털어내거나, 엠마가 잠자리에 들기 전 빨아서 건조해 대령해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닥을 청소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육아와 살림에 보너스처럼 더해져 있다.

  그리고 여전히 스모는 집 밖의 소리에 민감하여 컹컹 짖어댄다. 하지만 엠마는 고맙게도 잘 적응했고, 이젠 녀석이 짖는 소리에 깨서 우는 일도 없다.

  남자, 여자, 아기, 그리고 개. 이토록 다른 우리가 같이 공생하기 때문에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산다고는 하지만, 이제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불편과 수고다. 익숙해지다가 언젠간 자연스러워지기까지 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이젠 취침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하루 12시간을 자주는 엠마. 그녀가 잠든 후에 우리는 모두 퇴근이다. 퇴근 후 예전처럼 티브이를 보거나 책 읽을 때 스모를 곁에 두고 관심과 사랑을 듬뿍 주고받는다. 녀석은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눈만 껌뻑거리며 푸짐한 엉덩이를 내게 붙이고 누워있을 뿐인데 긴 하루의 끝에 큰 위로를 준다.


 스모의 이름이 '고 스모'가 될 정도로 엄마 아빠에게 자주 혼나야 했던 우리 스모, 미안하고 고마워. 엠마가 조금 더 크면 우리 모두 그만큼은 수월해 질까? 그때까지 조금 더 견뎌 보자. 힘들게 한 만큼 우리가 더 잘할게.


  개는 달릴 때 제일 행복하다고 했던가.
저리 가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더 잘해보자는 의미로 외쳐본다.

Go, Sumo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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