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제 막 청춘의 꼬리표를 떼어낸 5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매 순간 죽음과 싸우는 의사들의 드라마다. 그래서인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중심서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가는 99즈의 삶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의료 현장의 치열함과 함께 친구, 연인, 가족으로서 이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은 수술실을 나간 이후에야 비로소 다가온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수술복 뒤의 의사선생님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디컬드라마의 거창한 윤리적 딜레마 없이도 생사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2021년의 TV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던지는 가장 진솔한 위안이 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중심 99즈는 병원의 후계자(유연석), 냉정한 외과의(정경호), 배려 깊은 모범생(전미도), 유머러스한 인싸(조정석), 은둔형 외톨이(김대명)으로 이루어진 5명의 의대 동기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이 의사로서 보여주는 전문성과 타인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메디컬드라마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의사지만 동시에 하찮은 일상을 찌질하면서도 진지하게 여기는 99즈의 어리숙한 모습은 이 드라마가 일상의 진정성 위에 놓여져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어설픈 아이들의 성장기보다 성숙한 어른들의 처세술에 가깝다. 이들이 건네는 소박한 삶의 조언이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신원호와 이우정은 청춘을 불완정한 공간을 통해 구축해왔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아이들이 맴돌던 학교와 하숙집, 골목이 환기시키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더없이 아름다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우리가 청춘을 보내던 바로 그 기억이 자리 잡은 일상의 공간이 드라마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응시하는 것으로 신원호·이우정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청춘이라는 테마를 완성해냈고, 이 공간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통해 진정성 있는 위안을 건네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사랑과 이별을 나누며 성장을 공유하던 아이들이 어른이 된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좁은 창고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20살의 기억이 곧바로 현실로 이어질 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성장의 공유 대신 자신들이 그토록 고수해오던 청춘공동체의 경계를 공고히 한다. 때문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성장은 하는 것이 아닌 확인받는 것이 된다.
학교(<인간수업>)와 회사(<미생>)에서 점차 밖으로 밀려나는 수많은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실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건네는 위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그만큼 어둡고 차가운 현실이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패와 이별에 상처입고 망가져도 끝내 괜찮다며 옆을 지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청춘의 곁을 지켜왔던 신원호와 이우정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일 것이다.
* 이 글은 Rolling Stone Korea 4호(2021.10)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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