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우리는>(SBS, 2021~2022)
여름이었다.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기억 속에서 첫사랑은 늘 여름이었다. 최웅(최우식)과 국연수(김다미)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만난 최웅과 국연수의 10년 후를 그리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찍은 고3 시절의 다큐멘터리 영상이 역주행하면서 최웅과 국연수는 다시 만나게 된다.
문제는 이들이 이미 헤어진 연인이라는 데 있다. 아마도 첫사랑이었을, 고3의 기억을 10년이 지나 다시 꺼내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이제는 어른이 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함께해서 더러웠던 ‘흑역사’ 정도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해 우리는>은 그 시절 첫사랑에 대한 회고나 향수 보다는 첫사랑을 앓고 난 후의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대부분의 로맨스드라마가 그렇듯 사랑은 오해를 통해 완성된다. 서로에 대한 오해로 시작된 만남은 전투와도 같은 싸움으로 이어지고 두 청춘남녀들은 곧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즉 사랑은 오해를 경유해야지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쿨하게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국연수와 아무것도 아닌 듯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행복의 방법이라 믿었던 최웅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오해로 충돌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때때로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에 상대의 존재만으로도 나의 세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국연수에게 최웅은 원치 않는 침입이었고, 내가 완성한 단단한 세계가 무너졌다는 증거였다. 국연수가 “버릴 수 있는 것은 너밖에” 없다며 최웅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더 이상 너 없이 살 수 없기에 나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소녀의 투정에 가깝다. 반면 최웅에게 국연수는 나를 무너뜨려야만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다. 최웅은 가장 안전한 나만의 세계를 벗어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를 기꺼이 선택했기에 이별의 충격에서 꽤 오랜 시간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면증과 관계기피증을 겪으면서도 끝없이 그림을 그리는 최웅의 모습은 이제 너 없이도 살아가야만 한다는 소년의 다짐에 가깝다. 이 실패에 대한 응답은 10년 후의 국연수와 최웅이 딛고 있는 지금 여기의 세계를 결정짓는 차이였다.
돌이켜보면 첫사랑은 실패해야만 했다. 나는 언제나 바보같은 선택을 해왔고 이를 인정하기에는 너무 미숙했다. 시간을 거스르고(<시간을 달리는 소녀>(호소다 마모루, 2007)), 끝까지 고백을 유예하고(<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구파도, 2012)), 혹은 어긋난 타이밍을 다시 되돌려(<H2>(아다치 미츠루, 1992)) 실패한 첫사랑을 바꾸려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미숙하고 찌질한 그때의 나일 뿐이다. 최웅이 그러했듯 필요한 것은 실패한 나를 받아들일 용기이다. 사랑이 성장의 조건일 필요는 없지만, 성장은 사랑의 결과일 수 있다. ‘우리’가 실패한 것은 첫사랑이지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Rolling Stone Korea 5호(2022.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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