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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tcard Jan 13. 2021

지붕에 오르고 나면 사다리는 치우는 법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장미의 이름』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의 작품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1980)은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이지만 중세의 신학과 철학은 물론 푸코, 롤랑 바르트, 조르주 바타유 같은 현대 철학 사상과
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겠다는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았다.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던 14세기 배경의 이 소설은 카노사의 굴욕(1077)1) 이후 시작되었던 십자군 원정(1096~1270)의 실패로 교황권이 약화되고 봉건제가 붕괴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무렵 교황 측과 황제의 사절이 한 곳에 모여 사전에 협상하는 첫모임 자리를 만드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윌리엄 수사였다. 윌리엄 수사는 프란치스코수도회의 수도자로서 파리에서 유학한 인물이다. 당시 파리 대학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연구가 아주 활발했다는 점도 중요한 암시다.
1327년 겨울, 멜크 수도원의 젊은 수련자 아드소는 스승인 윌리엄 수사와 함께 성베네딕도수도원에 도착한다. 수도원 원장은 윌리엄에게 장서관에서 일하던 아델모 수사가 시체로 발견된 경위를 이야기하며 사건의 전모를 밝혀달라고 한다. 윌리엄은 장서관 사서인 말라키아에게 장서관의 열람을 요청하나 거절당한다. 이튿날 그리스어 번역가인 베난티오 수사가 또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계속해서 혀가 검게 변색된 베렝가리오, 세베리노 수사가 시체로 발견되고,마지막으로 장서관 사서 말라키아 역시 손가락과 혀가 검게 변한 채 죽는다. 수도원 원장과 호르헤의 만류에도 장서관 사서의 계보를 알아낸 윌리엄은 ‘아프리카의 끝’이라는 밀실을 찾아낸다. 그곳에는 40여 년간 금지된 서책에 수도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온 장본인인 늙은 수사 호르헤가  있었다.

웃음과 에로티즘 그리고 탈신화

죽은 수도자들은 모두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내용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시학』 제2권을 몰래 읽어보다가 독살당한 것이다. 호르헤는 책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독약을 묻혀놓았다. 누군가는 유쾌하게 키득거릴 때, 불경스러운 웃음의 값을 목숨으로 치러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사건의 전모를 폭로하는 윌리엄 앞에서 호르헤는 장서관에 불을 지른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은 호르헤의 이빨에 잘근잘근 씹히고 장서관은 불에 타 재로 사라져버렸다. 끔찍한 독살이었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원인이었다. 현존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으로, 많은 학자가 희극을 다룬 제2권이 따로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사라진 제2권의 전말을 이렇게 상상한다. 그런데 왜 그리스 희극을 다룬 『시학』 제2권은 수도자들에게 금서여야 했을까?

인간의 웃음은 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맹목적이고 닫힌 믿음, 바로 진리의 신성함을 ‘비웃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의 ‘희극론’에 접근하는 수도자들을 독살해서라도 신앙과 교회의 영역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배척해야만 그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 사소한(?) ‘웃음’의 문제에 사생결단할 수밖에 없다.
신앙은 근엄해야 하고 신에 대해 두려움을 간직해야 한다는 당시 구성원 대다수가 진실이라고 믿는 일반적 신념 체계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2)의 ‘신화론’과 일치한다. 바르트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신화로 고착되는 것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탈신화를 주장한다. 소설 속 윌리엄 수사의 역할이 바로 탈신화의 방법 중 하나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3)시 신의 아들 예수의 ‘신성’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예수의 결혼 사실과 그의 혈통을 제거하려는 자들, 그리고 진정으로 예수의 혈통을 보존하려는 자들의 대결 구도로 긴박감을 연출한다. 결국 작가는 스토리의 진위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의 근본을 공격하는, 즉 탈신화화하는 엄청난(?) 일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신화’는 무엇이고 ‘탈신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수련자 아드소가 만난 여인과의 하룻밤을 살펴보면, 죄의식이 아니라 ‘우정에서 기인한 사랑의 감정’에서 나온 인간의 순수한 육체적 행위로 표현한다. 이에 연상되는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의 에로티즘 미학, 그리고 방출, 낭비, 소모(dépense)를 떠올릴 수가 있다. 바타유는 오직 생산과 분배에만 관심을 두는 자본주의에서 배제하는 낭비에 해당하는 것들을 일반 경제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유효하다.
인공지능이 생산을 극대화할 수는 있지만 소비는 인간의 몫이기 때문에,낭비이고 소모인 ‘데팡스’는 오히려 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기본소득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방출, 낭비, 소모는 중세로 보면 웃음이고 불경이고 신성모독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중세의 ‘신(神)’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추가 가능하다. 바타유의 토대 유물론은 사적 유물론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물질 그 자체, 더러운 것들과 배설물, 즉 웃음까지도 포함한다. 그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미학이 아닌 에로티시즘 미학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위반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희극은 우스꽝스럽고 웅장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결된 행위의 재현이다. …… 쾌락과 웃음을 통해 그런 종류의 격정적인 것들을 깨끗하게 한다.4)

윌리엄의 말 그대로 웃음은 이성에 반하는 불합리한 명제의 권위를 무화하는 데 아주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으며, 사악한 것의 기를 꺾고 그 허위의 가면을 벗기는 데 요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껏 웃자.


지식과 권력의 관계

그렇게 호르헤 수사가 책들을 잡아두려고 했던 장서관은 오직 사상의 유입을 막기 위한 방어막이고, 지배를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본관의 맨 위층에는 올라갈 수 없는 것이군요?”
수도원장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도 들어가서는 안 되고, 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장서관은, 그 안에 소장되어 있는 진리 그 자체처럼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그 안에 소장되어 있는 허위처럼 교묘하게 스스로를 지켜냅니다. 장서관은 정신의 미궁이며 지상의 미궁인 것입니다. 혹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오는 것은 뜻 같지 않습니다.” (1권 81쪽)

이에 대해 미셸 푸코5)는 권력을 지탱하는 도구로서의 지식의 힘을 강조한다. 더 이상 권력은 소유물이나 역량이 아니고 현실을 생산하는 것으로 지식은 권력 효과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6부로 구성된 시집 『악의 꽃』(1857년)은 금서조치를 당했던 책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박정희 시대로부터 1988년 해금도서 조치가 있던 월북 작가의 도서 및 도덕성을 이유로 금서가 된 여러 책들이 있다. 이처럼 지도자들이 자신의 사상과 반대되면 탄압하고, 자신의 정책과 일치하는 것만 수용했다는 사실은 지식과 권력과의 밀착된 관계를 방증(傍證)한다.
국정교과서 파문이나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그러한 맥락에서 빚어진 일들이다.
라틴어가 지배언어였던 중세에 교황과 귀족의 권위를 지켜주는 유일한 법전인 성경은 라틴어를 모르는 주변 유럽 국가들을 예속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를 통해 자국의 언어로 지식이 널리 보급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종교의 독재적 권위가 사라졌다.
이런 역사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사교육 열풍도 결국은 지식을 통한 부와 권력의 사다리를 타려는 심리가 내재해 있다. 이른바 공부중독 시대에 공부 때문에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질서 내에서 우세한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하게 하는 진리는 지식과 권력의 연합 관계로 생산된 하나의 담론이자 지식의 구조 체계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인식체계일 뿐이지 확고부동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권력은 언제나 전복 가능하고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푸코의 철학은 열린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한 지식의 절대성을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소설에서는 노수사인 호르헤의 극단적인 행동을 통해, 그리고 오늘날 독재자의 딸을 통해 우리가 보는 현실이다.
하지만 에코는 이성과 합리로 모든 사건을 추리해가는 윌리엄에 대해서 또 다른 반전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을 통해서 전복 가능한 지식의 구조를 떠올린다.

지붕에 오르고 나면 사다리는 치우는 법!

아드소는 소설 뒷말에서 그의 스승 윌리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이렇게 말한다.

아, 바라건대 하느님께서 그분의 영혼을 수습하시되, 지적인 허영에 못 이겨 그분이 지으신 허물을 용서하시기를……. (2권 772쪽)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이교도였지만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를 입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드소가 말한 “지적인 허영”이란 평가는 스승 윌리엄이 갖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해 회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성으로 신앙을 설명할 수 없음을 아드소는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또 하나의 가정을 하자면 일자적 진리, 즉 진리의 절대성에 대한 경계의 말임을 작가노트에서 단초를 찾을 수가 있다. 장서관의 소멸은 일자적 진리가 아닌 다수의 진리가 탄생하고 인정받는 시대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고기를 잡으면 버리게 되는 그물, 높은 데에 이르면 버리게 되는 사다리와
같은……. (2권 764쪽)

윌리엄 자신이 확신에 찬 어조로 아드소에게 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말은 다시 “지적 허영”이라는 말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는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진리란 확고하지 않으며, 매우 유약한 것이라고…….
 따라서 열린 결말이 주는 암시는 저자의 죽음6)과 함께 독자의 몫으로 하고 이 글을 마친다.

성배를 손에 쥐었다고 믿는 순간 하나의 사물을 잡았을 뿐, 우리 손
에 들려져 있는 것은 초라한 술잔에 불과하다.
                                                                                    - 조르주 바타유


1)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주교 선발과 관련해 충돌한 사건을 말한
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군주가 주교를 서임하는 관행을 금하자, 이에 반발한 하인리히 4세가 보름
스 종교회의를 열어 교황을 폐위했다. 이에 그레고리오 교황도 아우구스부르크 회의를 소집하여 황제
를 파문하고 폐위하기로 결의했다. 제후들이 교황의 결정을 따르자,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이 머물던 카
노사 성 앞에서 맨발에 얇은 옷만 걸친 채 3일 동안 눈 속에 서서 죄의 사면을 간청했다.(편집자주)
2) 롤랑 바르트는 1954년부터 1956년까지 《레트르누벨르(les letters nouvelles)》에 부르주아 사회의 현
상들을 비판적 어조로 분석한 단평들을 기고한 이후, 1957년 그 단평들과 ‘신화’라는 개념들을 이론화
하여 『현대의 신화』라는 단행본을 출간한다.
3) 2003년 3월 출간 이후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은 베스트셀러. 미국에서 7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유일하게 『해리포터』 시리즈의 판매량을 앞섰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4) 1643년 발견된 저자 없는 ‘트락타투스 코이슬리아누스’(Tractatus coislianus)라는 이름의 고대 문서
에 실린 내용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 이론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편집자주)
5)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서양문명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비이
성적 사고, 즉 광기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 관계를 파헤쳤다. 『광기의 역사』(1961),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1976), 『주체와 권력』(1982) 등의 저서를 남
겼다.
6)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la mort de l’auteur)』은 미국의 잡지 《아스펜(Aspen)》에 1967년 실린 에
세이다. 저자의 의도를 고정된 작품의 해석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저자의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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