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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Jan 05. 2023

결혼적령기의 내가 남자친구를 사귈 수 없는 이유

다이내믹 일상 이야기_연애도 결혼도 다 내려놓는 중입니다


"혹시 누군가를 사귀게 되면 하고 싶었던 데이트가 있으세요?"

지난달 만났던 소개팅에서 상대방이 내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생각이 잘 안 나서 "음~" 갸우뚱했더니,  

"괜찮으시면 영화 올빼미 같이 볼래요? 진짜 재밌다고 하는데!"


분명 이것은 다음 만남을 위한 단도직입적인 데이트 신청!

그래,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누구나 아는 데이트 코스의 정석이랄까-


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스쳐 지나가는 질문이었지만, 이 질문은 꽤 깊게 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러고 보니 남자친구를 사귀면 무슨 데이트를 하고 싶은 걸까?

??????

정말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다해봐서!" ㅋㅋㅋ


 하고 싶은 것은 미루지 않고 잘해보는, 무대포 추진력의 소유자.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즐기는 내 성향은 데이트에서도 똑같이 이어졌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 따라줬다. 아니, 같이 즐긴 것이겠지.

 연인끼리만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씩 쌓아갔다. 맛집 가기, 연극/영화 보기, 퇴근 후에 매일 만나기 같은 소소한 일상은 기본이고- 몇 주년 케이크 만들기, 하나뿐인 반지 만들기, 커플 옷 입고 놀이동산 가기, 커플 심리검사 데이트와 같이 이벤트처럼 펼쳐진 시간도 마음껏 즐겼다. 그뿐만인가, 그때 당시에 여행이 취미였던 나였기에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자주 다녔다. 마치 도장을 깨듯이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어디든 마음이 내키면 계획해서 다녀왔다. 전주에서 한복 입고 예쁜 사진을 남기기도, 반짝이는 남해 바다를 구경하기도, 설악산 정상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기마다 친구 커플이랑 캠핑을 다녔고, 해외여행을 가서도 아름다운 곳을 관광을 하든 예상치 못한 일로 고생을 하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누구든 행복한 연애 시절에 각자의 추억이 있겠다만, 나 또한 후회없이 남김없이 보냈다.


 이렇게 많이 놀러 다닐 수 있었던 것에는, 하늘 같은 우리 어머니의 큰 뜻도 있으셨는데! 본인의 경험에 미루어보았을 때 결혼하면 의외로 여행을 못 다니니 연애할 때 많이 놀러 다니고 즐기라는 쿨하신 신세대 엄마였기 때문이다. (순진한 아빠는 아직도 딸이 혼자만 그 많은 해외여행을 한 줄 아신다 ㅋㅋ) 대신 한 가지 단서를 붙이셨다. 혹시나 만약 헤어지게 된다면, 그때의 추억은 네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헤어질 줄 몰랐던 나는 그 충고를 가벼이 넘기고, 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다 누렸다.





 그래, 이렇게 많은 추억을 쌓고도 인연이 아니면 헤어지더라-. 추억은 기억이 되어 머릿속 깊숙한 곳에 숨겨두어야 했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일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지만 유독 내 옆 남자친구라는 자리는 쉽게 틈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가, 누군가를 다시 알아가고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이런 꽁냥꽁냥한 활동들을 다시 해야 한다고? 엄두가 안 났다. 이미 한 것 이상으로 잘해낼 자신도 없었다. 이제껏 해왔던 수많은 데이트도 어쩌면 낭만 가득 열정적인 청춘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와는 일상이었는데, 다시 하려니 숙제처럼 느껴졌다.

 한번 지나간 길은 웬만하면 다시 가지 않는 나였다. 대학교, 직장- 원하는 곳에 못 미쳤어도 그것이 운명이었겠거니~ 뒤돌아보지도 되돌아가지도 않았다. 목표를 위해 미련 없이 최선을 다해 달려갔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다시 목표를 찾았다. 30대의 연애는 도대체 어떤 활동을 하며 채워나가야 하는가? 마음이 통하는 진솔한 대화? 결혼을 위한 현실적인 이야기? 뭐든 2% 부족해 보였다.





 자, 그러면 현실적인 30대의 연애에서는 결혼을 생각 안 할 수 없으니, 데이트를 뛰어넘고 결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로 몇 달 안 만나고 결혼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무엇을 믿고 결혼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니 받아들여보자.


 어느 정도 조건이 맞고 호감이 생겨서 결혼을 했다? 결혼은 현실이랬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이와 상상되는 모습은, 서로의 직장이 끝나고 "왔어?", "저녁 뭐 먹을까?", "옷 정리 잘해줄래?", "이번 주말엔 뭐 할까?"... 데이트의 형식만 바뀐 것일까? 무미건조한 일상 속 무미건조한 대화들이 떠오른다.


 1년이 되어가는 나 홀로 독립생활로 깨달은 나의 생활 패턴은, 나는 '집안일을 부담 없이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청소,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하지만, 정리는 좋아한다. 칼각잡고 벗어나면 스트레스받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당장 놀러 와도 분주하게 집을 치우는 정도는 아니다. 집에서 혼자서 재미난 요리를 만들어먹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보드게임을 한다. 설거지 부담 없다. 싫어하는 것은 화장실 청소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이지만, 질색하며 못할 것은 아니다. 사치가 없어서 사야 할 물품은 마트 할인을 잘 찾고, 필요한 것에만 신중하게 돈을 쓰곤 한다. 이만하면 혼자서도 잘 사는 것 같다.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 이 모든 일이 2배 이상이다. 심지어 나 혼자서는 신경 안 써도 되는 일이, 누군가와 부대끼기 때문에 당연스럽게 거슬리는 일이 생긴다. 큰일 났다. 사랑으로 결혼해도 처음엔 이해하며 넘어가지만 나중엔 싸우게 된댔다. 적당한 호감으로 결혼하면,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짜증이 날 것 같다. 손해 보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양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은커녕, 결혼이라는 선택이 맞을까 라는 의문이 들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연애도, 상상 속의 결혼도 어려워졌다. 그 어떤 길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삶에서 결혼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이젠 혼란스러워졌다. 결혼을 하고 싶었는지, 그와 계속 가고 싶었던 건지 고민해 보았으나, 후자 쪽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이젠 없는 과거이기에, 덮고 새롭게 길을 개척해야 하지만 길이 행복할지 자신이 없다.


 이런 고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멋모르고 결혼해서 아등바등 싸우고 지지고 볶고 그러다 정들어서 그래 이놈 나 아니면 누가 데리고 살겠노-'라는 부모님 시대의 결혼관과 결을 같이 하기엔 2023년은 이미 다른 세상이었다.


 그렇게 길을 잃었고, 어떤 삶이 행복할지 잠깐의 고민을 하다가 다시 머릿속 저편으로 치워놓아 본다. 상상해봤자 미래는 알 수 없는 길이고, 계획해봤자 그대로 되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연애의 설렘도, 결혼하고 예쁜 아이와 셋이서 걸어가는 결혼의 기대감도 내려놓게 되었다. 흘러지나가는 하루들 속에서 그저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면 되는 인생이 되었다.


 이런 고민들이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의 번아웃일지, 상실감의 흔적일지, 흘러지나가는 생각일지는 먼 훗날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고민의 90%는 쓸데없는 기우'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의 고민의 무게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겠다.



(p.s. 하고 싶은 데이트가 있으신가요??

있으시면 추천 좀 해주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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