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원하는 '평범함'의 트랙을 잘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직장, 결혼, 아이, 집, 평안한 노후. 하나하나를 마치 퀘스트를 깨듯 뛰었다.
네이버 웹툰 출처.
내 삶의 목표는 '평범함'의 바운더리에서 남들보다 '딱 한 숟가락만큼만 더'였던 것 같다. 사회의 주류가 걸어온 트랙을 재밌게 즐겨나가며 하나씩 따라가면 되지. 그래서 그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었고, 나름 과정도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 A+ 만큼 노력하고 A- 성적까진 받으면 된다. 역시나 인생이 항상 A점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만족했고, 노력했으니 앞으로도 비슷한 결과일 거라 감히 예측했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삶이 꽤 재밌었다.
뭐든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더 나이 들어서도 되돌아가거나 시도하는 대단한 사람들도 있다. 늦은 나이에 다른 직업을 찾거나, 대학을 다시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쉽지 않은 길이니 뉴스나 기사에 나는 것 일거라 생각했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늦은 만큼 페널티가 있다고 생각했다.갈 길을 찾았지만 그만큼 공부하는 시간을 더 쓰거나,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들거나, 신체적 한계로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거나.
결혼은 내게 당연한 길이었다. 하지만 긴 연애의 끝, 처음으로 인생의 낙제점을 받은 느낌이었다. 30대 중반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연애. A-는커녕 C+, 아니 F까지 떨어진 기분이었다.미래를 향해 나아갈 이유도 목표도 기력도 없었다. 그렇게 멈춰 섰다.
유유상종이라고 주변 친구들을 바라보니 더했다. "누가 1인가구가 많다고 그랬어! 결혼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랬어!!" 내 주변은 결혼 안 한 친구를 찾기 어렵다.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 6명 중 4명이 결혼했고 2명이 애엄마이다. 대학교 친구들 3명 모두 결혼 및 임신 중이고.
회사 동기도 세어보았다. 정확한 통계를 위해서 궁금했다. 동기들이 꽤 많았었다. 입사한 80명 중 남아있는 동기들은 23명. 이미 육아휴직을 다녀왔거나 현재 진행형인 동기들 11명, 결혼한 동기들 8명. 남아있는 솔로들은 4명이네. 아이러니하게도 그중 3명이 남자다. 아아- 나, 마지막까지 남아버린 솔로 여자네.
그냥 홀로 남았다. 처절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무슨 잘못이 있어서 혼자만 남겨졌는가-
남편과 아이라는 공통사가 없으니 서로 조심하게 되고 말문이 막힌다.
이제는 이야기할 사람도, 이야기할 거리도 없다.
하하- 잘못된 사람에게 인생을 건 마음의 투자를 하면 이렇게 된다. 인생 포트폴리오를 한 사람에게 올인했다는 것을 망해보니 깨달았다. 이젠 받아들여야 했다. 결혼을 못하거나 늦게나마 기회가 닿아 누군가와 결혼했지만 아이를 못 낳을 수 있는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내 인생에 생각해보지 못한 길이라 무엇을 잃고 얻을지 표를 그려봐야 했다.
우선 아이가 없다는 가정을 해본다. 솔직히 마흔이 되어갈수록 아이 낳을 자신은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의 욕심을 위해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주는 것 같다. 직장인 나이 40대부터는 언제든지 길바닥에 앉을 수 있는데, 잘 키울 자신도 없고 신체적인 한계도 느껴질 것 같다.
자식을 위해 해야 할 고민이라.. 자식 교육을 위해 맹모삼천지교처럼 학군 좋은 곳을 가고자 고민 안 해도 된다.혹시 태어날 아이가 부족하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아플 때 우왕좌왕 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물어볼 때 어떻게 대답할지 공부 안 해도 된다. 학폭에 대해 고민할 이유도, 불합리한 사회 현상을 고민할 이유도 없다. 아이를 위해 언젠가는 배우고 익혀야 할 고민들이라 생각했는데, "당연한 게" 아니었다.
또한 직장이 서울이 아닌 이상굳이 재미없는 부동산을 꾸역꾸역 공부하며 서울에 집을 살 이유가 없다. 갖고 싶은 게 별로 없으니 돈을 더 많이 벌려고 노력 안 해도 된다. 미니멀 라이프에 최상이다. 내가 현재 버는 돈은 나와 원가족에게 쓰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정도면 될 것이다.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신다면 시간이 많으니 더 많이 도와드릴 수 있다. 혼자라면어떻게든 먹고살겠지 뭐. 건강만 잘 챙기면 된다.
눈이 많이 왔던 오늘 하루.
결혼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매우 단조로워졌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매우 자유로워졌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든 가도 괜찮겠네. 놀랍게도 나를 둘러싼 미래 고민들 중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나는 그저 이 세상을 여행처럼 시원하게 왔다 가면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