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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Feb 03. 2023

직장인 8년차, 첫 승진을 하였습니다

다이내믹 일상이야기_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다행이다. 

대리 승진 명단에 내가 드디어 들어간 것을 보며 처음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입사 동기들이 4년차부터 조금씩 승진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나는 8년차라는 시간. 너무도 오래 걸렸다. 기쁨을 느낄 순간은 멀리 지나가고 초조함과 걱정이 차오를 때쯤 힘들게 한 계단을 올랐다. 세상 뭐든 쉬운 일은 없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이런 결과에는 나의 선택이 컸다. 나는 본사에서 지점으로 내려갔다. 본사에서 업무에 치이며 층층시하의 답답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힘이 들었다. 출퇴근 3시간 거리, 오늘은 야근을 할지 전전긍긍하며 맞지 않는 업무를 꾸역꾸역 하고 있던 나는 매일이 울상이었다. 이직을 할까 지점에 내려갈까-. 정시출퇴근, 내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담 없는 업무의 양, 유연성 있는 근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 지점의 메리트는 분명했다.


미래의 나의 가정을 위한 준비도 있었던 것 같다. 여자가 다니기에 좋은 회사. 가정을 챙기기에 딱 좋은 우리 회사의 복지가 여럿 있었다. 지점에서는 살림에 더 신경쓸 수 있을 것 같아. 스케줄 근무를 하면 남편이랑 돌아가며 아이를 케어하기에 더 괜찮지 않을까? 하지도 않은 결혼, 낳지도 않은 아이를 미리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였으면 고려하지 않았을 부분들이 여자인 나에게는 고려 대상이었다. 내 인생의 행복을 찾기에는 "지점"이 더 적합해 보였다.



주변의 만류, 본사에서도 다시 생각하라며 잡았지만 나는 내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3년차에 지점으로 내려갔고, 행복을 내 손으로 찾았다고 생각했다. 몇 년간, 나는 정말 회사를 취미처럼 즐겁게 다녔다. 남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돈을 벌지만, 나는 으며 일도 배우고 돈도 벌고 있었. 행이다! 랑 맞는 것 같아.




반대급부였을까. 해 한해 나의 진급은 소식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언젠간 되겠지, 웬만해서는 오래 다닐 수 있을테니 여유롭게 가자. 속도보다는 방향이야!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각자의 길을 떠났다. 진급을 하거나 이직을 하였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육아휴직을 들어갔다. 나도 곧 결혼을 할 테니까. 현재를 즐겁게 지내자. 나의 미래는 잘 굴러가고 있었다. 나의 결혼 계획이 어그러지기 전까지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나는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이었다. 일도 사랑도 둘 다 잃었다. 이게 뭐지. 가정을 위해 내 직업을 조정한 것이었는데 나의 가정이 없어지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두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데,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지점을 간다는 나의 결정을 남들이 우려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을까. 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짜였을까.






부랴부랴 진급을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일'이라도 놓치면 안 되는 거였다. 지점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다는 대리가 아니었다. 업무만 열심히 하는 직원에서, 이전의 내가 굳이 하지 않았던 것들도 꾸역꾸역 시도해 보았다. 상사에게 일하는 티 내는 업무 액션, 술자리 따라다니기, 같은 말이라도 요령껏 잘 어필하기, 휴일, 궂은 날씨, 늦은 밤 등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때에 같이 나가서 일하기...


그리고 1년이 지나, 너무도 다행히 그 노력은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진급 발표가 떴고,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우리 지점에서 단 한 명의 승진자.  


정말 감사했던 것은 이제까지 모셨던 직장 상사분들이 정말 많이 축하 문자를 주셨다는 거다. 고작 한 달을 함께 있었든, 몇 년 전에 함께 있었든 간에 나를 기억해 주셨다는 사실이 감동이었다. 나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알고 보니, 우리 부모님도 정말 많이 걱정하셨단다. 엄마가 나 몰래 백일기도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부모님은 발표 나기 일주일 정도를 잠을 잘 못 주무셨다고 한다. 무던한 딸은 눈만 감으면 푹 자고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 덕분에 진급이 잘 된 것 같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대리는 자동으로 되는 줄 알았는데, 너무도 힘들게 이 자리를 올라왔다. 워라벨, 일과 라이프를 함께 얻으려는 시도를 했던 나의 결정. 나의 하루하루의 즐거움과 미래의 성장을 맞바꾸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다. 분명 지점에서도 배운 것이 있었다. 여러 업무를 경험하며 시야 넓히기, 같은 말이라도 더 센스 있게 말하기, 능글능글 분위기에 따라 유머 던지기.. 치기 어린 젊음의 패기는 조금씩 깎이고, 타인과 배려하며 일하는 모습이 늘어갔다. 돈버는 직장을 다니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시간도 복이었다.



직장인 8년차의 승진이라는 어쩌면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삶의 한 부분인 이야기를 남겨본다. 삶은 항상 나의 예측을 벗어나고, 직장인의 모습도 그러했다. 인생은 모르는 법이라 오늘의 선택이 언젠가는 미래의 강점이 될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생했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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