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남원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남원은 고즈넉하고 따뜻한 동네이다. 춘향이로 유명한 광한루원을 들렸다가 점심엔 추어탕 한 그릇, 지역 대표 빵집인 명문제과를 들리면 마무리된달까. 가까워서 지리산 둘레길도 쉬엄쉬엄 다녀올 수 있다.
남원은 3번째 방문. 8년 전, 친동생과 처음 남원을 방문한 때가 떠오른다. 따스한 날씨가 우릴 맴돌았고, 여유롭고 편안하게 유적지를 감상하며 하루를 즐겼다.
8년의 세월. 같은 포즈로 사진을 담아본다.
지역 명물빵이라는 명문제과! 그때 처음 접한 생크림슈보르와 꿀아몬드 식빵은 신세계였다!! 놀라웠다. 너무도 맛있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지역빵집은 웬만큼 먹어봤던 나다.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전주 풍년제과, 경주 황남빵- 그때 당시의 나에겐 남원 빵이 최고였다.인생 빵집.. 찾았다!!
당시에 전남친과 나는 "썸"을 타고 있었다. 도란도란 매일 카톡을 하고 전화도 자주 하는 사이. 빵집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맛있는 빵을 함께 먹고 싶었다. 아니 사실 빵은 겸사겸사, 기회삼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겠지.
카톡을 보낼까 말까 보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용기 내었다."빵 진짜 맛있다! 주고 싶은데 우리 동네 쪽으로 올래?" 으앗 보내버렸다!
아마 전남친도 고민했겠지. 온다는 것은 마음이 있다는 확신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거 아닐까. "좋아. 언제 도착해? 마중 갈게."생각 외로 흔쾌히 우리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올라오는 버스 안이 얼마나 설레었는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빵은 하나의 기회, 몇 번의 우연과 인연의 시간이 스며들며 자연스럽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우리를 맺어준 빵이 너무 고마워서, 다시 먹고 싶어서,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연인이 된 우리는 남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줄을 서서 다시 먹어본 생크림슈보르, 꿀아몬드. 맛은 여전했고, 그렇게 함께 먹는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고마운 빵.
헤어지고서 힘겨운 시간이 지났다. 추억이 짙게 배어있어 남원은 쉽게 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가족 여행으로 우연히 들리게 되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부모님께도 빵 맛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 인생 빵집!!!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인생 빵집과 세 번째 만남을 맞이했다.
다시 만난 생크림슈보르, 안녕?
그 사이에 전경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빵을 사서 바로 앞 CU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서 냠냠 함께먹었던 추억의 장소는 '임대 문의'가 붙어있었다. 마치 우리의 관계처럼.
몇 년 만에 다시 맛본 빵들. 신기하게도 그때의 빵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 속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졌던 생크림의 엄청난 맛, 바삭한 아몬드와 고소한 꿀이 잘 어우러져서 나를 유혹하던 그 맛이 어디 갔는지 갸우뚱했다.
지금도 줄 서서 먹는 빵집의 맛이 변하진 않았을지언데. 내 입맛이 변한 것일까, 추억 보정이 되어 그때 더 맛있게 느껴졌던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맛보는 빵들. 추억의 흔적.
추억은 빛을 바랬고, 빵 맛도 함께 놓아주어야 하나 보다. 남원의 빵집은 전남친처럼 설렘과 행복과 아이러니함을 남기고 나를 지나갔다. 안녕, 남원.